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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보러 가자
김나현
봄은 꿈틀거림으로 시작한다. 생명체가 일제히 치켜드는 눈망울로 대지가 들썩인다. 몸을 휘감는 실바람에 가슴엔 두근두근 연둣빛 움이 트고, 헐벗었던 나무의 모공마다 싹과 꽃망울이 태동하는 봄은 축제 그 자체다. 매화며 산수유, 목련, 벚꽃, 유채꽃이 앞 다퉈 꽃바람 일으키면 누리는 꽃향기에 나른하게 취하고 만다.
봄은 ‘보다’의 ‘봄’이 아닐까. 살랑대는 봄의 유혹에 밖으로 뛰쳐나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보라는 몸짓일 터. 묵은 나무에 싹이 돋고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에 봄은 날마다 왁자지껄한 축제의 마당인 게다. 각양 꽃이 출렁출렁 벙그는 기척에 움츠렸던 마음들도 빗장을 활짝 연다. 그럴 때 걸음은 어느새 봄 속으로 슬몃 들어서는 것이다.
뭐니 해도 봄 마중할 곳으로는 꽃시장이 적격지다. 부산에는 큰 규모의 꽃시장이 여럿 있다. 노포 꽃시장, 석대 꽃시장, 엄궁 화훼공판장, 철마 화훼단지에 가면 형형색색, 알록달록 갖은 원색 차림의 봄꽃이 계절을 앞서 나온다. 겨울이 칙칙해 보이는 까닭은 어둔 계열의 옷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속 움직임까지 두꺼운 옷 속에 꼭꼭 가둬둔 탓이 클 거다. 이렇게 둔한 차림이 슬슬 싫증날 즈음 꽃시장에 가보자. 이곳에 가면 대상이 화초라 그런지 동공과 표정이 꽃처럼 피어난다. 공기 중에 퍼진 향이 주변을 자옥이 감싸면 꽃을 구경하는 한나절 발품도 사뿐사뿐 가볍다.
저마다의 향기를 내뿜어 자신을 알리는 꽃. 올망졸망 나와 앉은, 앙증맞은 꽃모종을 보기만 해도 푸릇한 기운이 전달된다. 까라솔, 비모란, 정야, 청옥, 취설송, 하트호야 같은 생소한 이름의 다육 식물과 수선화, 히아신스와 같은 구근 류가 주를 이룬다. 갓 꽃망울을 피운 천리향 묘목은 향낭 터트린 듯 향을 내뿜는다. 그러고 보니 화원은 정염의 꽃에다 향까지 덤으로 얹어 판다. 꽃향을 날마다 맡는 꽃집 사람은 향에 무감각해질 것 같다. 공기 속으로 흩어지는 달콤한 향을 비닐주머니에 밀봉해 담아와 거실이며 안방에 풀어놓고 싶어진다.
겨울을 보내느라 뻐근하고 무겁고 결린 몸을 팔팔한 봄기운으로 일으키고 싶다면 꽃시장에 가 볼 일이다. 꽃잔디, 단정화, 바위솔, 아기별꽃, 애기똥풀, 천상초, 풍로초, 할미꽃…… , 이름도 꽃처럼 예쁜 꽃들이 함박웃음으로 생기 채워줄 것이다.
집 뒷산 언저리 양지바른 곳에 땅 열두 세 평을 세내었다. 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려 모종 심을 땅을 파 엎고 애벌갈이하여 농사지을 생각에 들떠있었다. 한데 꽃시장에 오니 채소 농사는 관두고 꽃모종이나 종류별로 사다가 골골이 다른 꽃을 심어 밭을 온통 꽃밭으로 만들고 싶다. 베란다에 한 평 땅만 있어도 천리향과 라일락 같은 봄꽃을 심을 텐데.
봄은 흔드는 계절이다. 봄바람은 물결을, 꽃가지를 흔든다. 뿐이랴. 아직 잠든 뿌리도 흔들고 생기 잃은 영혼도 뒤흔든다. 겨우내 둔해지고 늘어진 마음을, 몸을 흔든다. 언 땅도 꿈틀대는 봄엔 좀 흔들린들 어떠랴.
동면 동안 듬뿍 머금은 땅 기운을 발산하여 그런가. 이른 봄에 피는 꽃은 그 색깔과 향이 온화한 듯하지만, 기실 꽃잎의 색도 선연하고 향도 짙다. 특히 매화꽃이 그렇다. 꽃이 화사하면서도 강렬하지 않고, 향은 한없이 그윽하다.
김해건설공고는 남녘지방에서 꼭 가야 할 출사지 중 한 곳이다. 이곳 매향이 남풍 타고 북녘으로 퍼지면 너도나도 카메라를 챙겨 들고 김해로 모여든다. 교문을 들어서면 양쪽으로 사열하듯 늘어선 매화나무가 흰눈색, 유백색, 진분홍 꽃을 만발해 나풀나풀 손짓한다. 마디마디 굽고 휜 매화나무, 죽은 듯 살아있는 고목 어디에서 그 많은 꽃을 피울 힘이 샘솟는지. 줄기의 굽이친 모양새가 엎드린 용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와룡매라는 이름도 붙었다. 우둘투둘 거친 가지마다 고아한 매화꽃이 피었다. 고목의 거칢과 꽃의 연함, 투박함과 보드라움이 노파와 갓난아이를 연상시킨다.
옹이 지고 꺾일 듯 휘어서도 꽃을 소복이 맺어 봄을 진두지휘한다. 이 학교 학생들은 행복하겠다. 봄이면 수십 그루가 동시에 뿜어내는 매향에 날마다 젖어있을 테니.
봄의 이런 화사한 기운은 해묵고 맺힌 감정도 풀리게 한다. 딱히 상한 감정의 실체도 모른 채 연락 두절했던 친구에게서 불쑥 연락이 왔다.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만나 쌓였던 감정을 먼지 털 듯 털어내고, 달콤한 매화꽃 향기에 함께 취하고 있다. 봄빛은 무심하던 사이를 휘젓는다.
어찌되었건 봄은 봄이다. 춘풍이 대지를 들깨우고, 간지러운 봄바람이 마구잡이로 들쑤시면 세상 생명의 문이 모조리 열린다. 잔뜩 팽배한 봄은 한껏 기지개를 켠다. 싱그러운 봄이 어서 와 기운 처졌던 우리도 생기 차기를 얼마나 고대했나. 봄엔 꽃 보러 가자. 훈풍에 봄 갈라. 하룻밤에 꽃 다 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