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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수 엄마
원작 김 용 만
극본 조 영 훈
연출 임 종 성
나 오 는 사 람 들
기 용 민 주(20대초)
능수 엄마 직원(대승옥, 남)
범 도 사 장(한마디)
황사장 신 사(한마디)
중대장(예비군) 해 설
민 석(30후반)
M 시그널
E 식당 소음(번잡한 시간 직전)
중대장 사장님 계셔?
해 설 춘성옥 저녁 장사가 시작될 무렵 한 무리의 예비군복을 입은 젊 은이들 7, 8명이 카운터 앞에서 기용씨를 찾았다. 그중에서 기용 씨를 찾는 것은 예비군 중대장을 맡고 있는 설계사무소 소장이었 다. 건축과를 나와 ROTC 장교로 제대한 그는 기용씨를 많이 따 랐다.
기 용 아이구, 중대장님 오셨군. 훈련 받고 오시는 모양이지?
중대장 동원훈련 받고 오는 길입니다. 그런데요. 사장님. 우리 사단장님 잘 아세요?
기 용 사단장님? 잘 알지. 우리 집 단골이시잖아. 근데 왜?
중대장 오늘 지휘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단장님이 춘성옥 말씀을 하셔 서요.
기 용 그래?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중대장 사장님의 사업정신이 놀랍다구요. 특히 신용에 대해 칭찬하시던데 요. 우리들 보고 사장님의 그 정신을 본받으라구요. 그러면 틀림 없이 성공할 거라구요.
기 용 그러셨어? 사단장님...내가 존경하는 장군이시지. 매사에 철저한 지휘관이시구.
해 설 그들이 2층으로 올라가자 미스 강에게 맥주 세 병을 들려 기용씨 도 그들의 방으로 올라갔다.
E 왁자한 소음
기 용 국토방위를 위해 수고했는데...이건 내가 서비스 하는 거야.
중대장 고맙습니다.
기 용 독약 아냐. 청탁할 것도 없구. 그냥 모두 이뻐서 한 모금씩 드시 라구 내놓은 거야.
해 설 기용씨의 말이 끝나고 잔에 술이 채워지자 중대장이 사단본부가 있는 방향을 향해 술잔을 높이 들었다.
중대장 (과장되게 외치는) 사단장님.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부디 춘성옥을 칭찬하셔서 저희들이 맘 놓고 공술을 마실 수 있도록 선처해주십 시오.
기 용 (역시 농담) 어림없는 소리...미스 강. 이 맥주 세 병 값 모두 계산 서에 넣어.
미스 강 어쩌죠? 이미 모두 사단장님 명의로 공술 처리됐는데요.
기 용 뭐야?
E 일동 웃음
해 설 금방 자리를 뜰 수 없어 거푸 술잔을 두 잔이나 받았는데 젊은이 하나가 다시 기용씨한데 잔을 내밀었다. 얼굴이 곱상하고 말수가 적은 젊은이였다.
E 술잔에 술 따르며
민 석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사장님을 존경합니다.
기 용 나를 아시오?
민 석 사장님 한강 건너...거기 학교 출신 아니십니까.
기 용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시오?
민 석 벌써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기 용 아니, 어떻게요?
민 석 우리 모교 교지에 칼럼을 쓰셨더군요. 기억에 남는 글이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 용 그럼 동문이란 말이오?
민 석 네. 저는 23회 이민석입니다. 진작에 말씀드리고 싶었지만...죄송 합니다.
기 용 무심한 친구 같으니.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전에도 우리 춘성옥에 왔던 것 같은데....
민 석 동문인 걸 아시면 서로 거북해질까봐...
기 용 그런 말이 어딨어. 동문이면 자주 만났어야지...후배, 술 받게. 선 배가 주는 술이야...
민 석 네, 선배님...
E 술잔에 술 따르는 소리
해 설 술잔을 받은 이민석이 기용씨에게 거푸 잔을 권했다. 함께 취하자 는 뜻일 것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민석도 말이 많아졌다.
민 석 (조금 취한) 춘성옥이 왜 잘되는지 아세요, 선배님?
기 용 글쎄.
민 석 선배님이 착해서 그래요. 너무 착해서 잘 된다구요.
기 용 고마운 소리네만 나도 요즘은 사람이 달라졌어.
민 석 달라져요? 어떻게요?
기 용 사기꾼이 됐어. 사기라는 말만 들어도 이젠 그 말에서 향기가 느 껴져.
중대장 사장님 취하셨군요. 농담 색깔이 달라졌어요.
기 용 진짜야. 이젠 여자도 순진하고 고운 여자보단 노회하고 사기성이 있는 여자한테 더 마음이 끌려.
민 석 그럼 저희들도 사기꾼이 돼야겠네요. 선배님을 본받자면 말예요.
기 용 암, 그래야지. 내 진실은 쓰레기에 불과해. 이젠 가짜 진실을 만들 어서 재미나게 활용해볼 참이야. 공자는 그럴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자를 싫어한다...이렇게 말했지만 이제부터 나는 진실되게 살 지 않고 거짓으로만 살아갈 거야.
민 석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우리 누나도 그런 말을 하셨죠.
기 용 누나가?
민 석 네. 우리 누나는 사기꾼을 사랑하다 진짜 사기꾼이 되셨죠. 지금 미국에 사시는데 진짜 못 말리는 분이죠.
기 용 미국에?
민 석 엘에이에 사시는데 대단한 인물이죠.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겠다고 법석이신데....입후보 자격이 안 돼 포기하셨죠.
E 몇 사람 웃음
기 용 성함을 물어도 될까.
민 석 성함이요?
기 용 혹시...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나 해서 말이야.
민 석 왜요, 사장님도 아시는 분일까 해서요?
기 용 아, 아니야, 알긴....
민 석 이민주. 중년이신데 아직도 청춘이에요.
해 설 이럴 수가...기용씨는 하마터면 입 밖에 뱉아 말할 뻔했다. 민주가 미국에 살고 있다니.
기 용 누님이 특별한 분이시군. 한국에 계셨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은 데....그런데 사기꾼이란 건 무슨 소리야? 농담이겠지만.
민 석 농담 아녜요. 진짜 사기꾼이에요. 그래도 들통 난 적은 한 번도 없죠. 미국사람들도 바보가 아닐진대 누나 말에 안 넘어간 사람이 없어요. 정치계, 경제계, 종교계, 어디를 가나 스타 대접을 받아 요.
해 설 기용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모처럼 담배를 피워 물 었다. 끊은 담배지만 담배라도 안 피우면 못견딜 것 같았다. 민주 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밤에 이런 말을 했다.
민 주 (에코) 나는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 소름이 끼쳐요. 착하다는 말은 이 사회를 떠나라는 말과 같아요. 이 사회에서 살 능력도 없고, 살 필요도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왜 이처럼 장삿속은 밝은지 모 르겠어요. 대체 나는 누굴까요?
M 브릿지
아 내 이민주요? 글쎄요. 이름만 가지고는 생각이 안나네. 그 여자가 누 구죠?
기 용 대구에서 공장 태워먹고 서울 와서 셋방살이할 때 옆방에 세들어 살던 아가씨...왜 술집에 나간다며 저녁때만 되면 외출을 했던 아 가씨 있잖아. 나보고 오라버니, 오라버니...하며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그랬지.
아 내 아, 그 아가씨....이쁘장하던....생각나요.
기 용 그래. 양심을 지키느라 직장생활로 모은 돈 다 날리고 술집에 나 간다고 그랬잖아.
아 내 알아요. 그 아가씨...헌데 그 이민주씨 동생이 우리 춘성옥에 왔었 다구요?
기 용 진짜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지...그 여자의 동생이 어떻게 우리 가게에...
아 내 세상 참 좁네요. 그래 그 아가씨...아니지. 지금은 우리처럼 중년 아줌마가 돼 있겠지만....어디 산대요?
기 용 미국 엘에이에....생각 나. 나를 처음 봤을 때 첫마디가 그거였어. 양심이 밥 먹여줘요?
아 내 (웃으며) 그런 말을 했어요?
기 용 묘한 여자였어. 그때 그 여자한테 이 얘기를 들려줬던 것 같아.
아 내 무슨 얘기요.
기 용 정비공장에서 광내준 차 노임 받을 때 얘기. 그때 공장 사장과 구 내식당에서 계산을 보다가 액수 차이로 따진 일이 있었어.
아 내 액수가 차이가 났어요?
기 용 들어봐. 나는 25만원만 받으면 되는데 사장은 28만원을 주는 게 맞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야. 그때 옆자리에서 차를 마시던 신사가 끼어들더군. 그 사람은 사장의 친구로 사장 편을 들었어.
신 사 (에코) 여보시오. 우리 조사장은 누구와 싸운 적이 없소. 신용으로 따지자면 귀신도 당해내지 못할 사람요. 아마 댁에서 착각했을 거 요.
기 용 그러자 사장이 친구를 나무랐어.
사 장 (에코) 이 사람아. 확실히 알고나 끼어들어. 지금 더 달라 덜 주겠 다 싸움이 아니라...더 주겠다 덜 받겠다 싸움이란 말이야.
기 용 그러자 사장 친구가 민망한지 슬그머니 자리를 떴어. 참으로 아름 다운 싸움이었지...
아 내 그 얘길 해줬다구요? 그 아가씨한테.
기 용 그랬어. 세상의 모든 싸움이 이처럼 어이없는 싸움이라면 이 세상 은 과연 이상적인 세계가 될까....아니면 단순하고 지루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하는 얘기도 했던 것 같구....
아 내 하긴 그런 싸움은 다시 없겠죠. 더 주겠다, 덜 받겠다가 아니라... 덜 주겠다, 더 받겠다...라는 싸움밖에 없는 게 바로 이 세상이니 까요.
기 용 그때 그 아가씨가 이런 말도 했던 게 기억 나...
M 회상
민 주 사기꾼이 제일 부러워요. 존경스럽고요. 제가 이제 터득한 건 그 거예요. 그게 진리죠.
기 용 (젊은 날) 슬픈 깨달음이군. 맞아. 우리는 지금 무서운 시대에 살 고 있어. 사기를 생존전략이라며 눈감아 주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거라구.
민 주 제가 사기꾼이 돼야 하는 이유는 또 있어요. 인생이 장난 같아 보 이거든요. 세상을 산다는 게 장난치는 기술을 익히는 일인데...그 기술이 바로 사기술이 아닌가 싶어요.
기 용 (현재) 그러면서 술을 사겠다고 나를 술집으로 이끄는 거야. 나이 도 더 먹은 내가 술을 얻어 마시는 게 뭐해서 내가 사겠다니까 막무가내기로 고집을 부리는 거야. 그 여자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사랑한 남자한테 모든 걸 잃었다고 했어.
민 주 (에코) 어찌 생각하면 그 사람이 고마워요. 일찍 나를 개명시켰으 니까요. 이제야 세상이 바로 보여요.
기 용 그 아가씬 일주일 후에 아무 말 없이 미국으로 떠났어. 나를 술집 으로 데려가던 날 그 아가씬 이런 말을 했어.
민 주 (에코) 오라버니가 나처럼 사기란 단어에서 매력을 느껴질 때쯤 한번 찾아올 게요...
M 브릿지
E 왁자한 분위기
E 남녀 웃음소리
해 설 대승옥 분위기가 여름 날씨만큼이나 싱싱하다. 홀 여기저기서 웃 음꽃이 피고 황사장의 목소리에도 모처럼 생기가 넘친다. 그는 오 늘을 사실상의 개업날짜로 정한 것이다. 능수 엄마와 주방장 범도 가 자기네 식구가 됐다는 사실에 한껏 고무되어 있는 그는 직원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한다.
황사장 에...이제 새 세상을 얻고...새 세상을 맞은 것 같습니다. 개업을 잘못한 탓에 한번 홍역을 치렀는데 그건 모두 내 실수였습니다. 내가 경험이 없어서 그 주방장놈 사기에 넘어가는 바람에 휘청했 던 거지요. 식당은 개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 어요. 그러나 이제 우리는 탄탄한 기반을 다져놨으니 희망이 넘칠 뿐입니다.
E 박수
E 환호성
황사장 우리 대승옥이 이 근방에서 제일 거창한 업소로 이미 정평이 난 것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긍지를 갖도 록 해요. 모두 알겠지만...오늘 한국에서 알아주는 전문가 두 분이 우리 대승옥에 입사했어요. 아, 능수엄마는 며칠 됐지. 아무튼 여 러분도 알다시피 춘성옥 하면 한국이 알아주는 업손데....거기서 책임자로 명성을 날려온 능수엄마와 한국 일류 주방장으로 소문 난 김범도 요리사가 바로 그분들입니다. 여러분 환영해주세요.
E 박수
E 환호성
황사장 아무튼 연조나 명성으로 두 분이 주방과 홀의 책임을 맡을 수밖 에 없으니 다른 직원들은 잘 협조해서 대승옥을 더욱 빛내주기 바랍니다. 그럼 두 분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힘찬 박수 다시 한 번 보내주세요.
E 박수
E 환호성
능수엄마 능수엄마라예. 여러분. 잘 부탁합니더.
E 박수 요란히...길게
범 도 김범도유. 잘 부탁합니다유. 부탁해유.
E 긴 박수
직 원 그럼 꽃다발 증정이 있겠습니다.
능수엄마 (꽃다발 받으며) 고맙습니더. 고맙습니더.
E (사이) 터지는 박수
범 도 (역시 꽃다발) 고맙습니다유. 고마워유.
E 박수
직 원 그럼 다음으로 제복 증정식이 있겠습니다. 본 제복은 우리 대승옥 에서 하나 씩밖에 없는 제복으로 시내 일류 양복점에서 특별히 주문 제작되었음도 알려드립니다. 자 능수엄마 앞으로 나오세요.
능수엄마 (사이, 받으며) 고맙습니더. 고맙습니더.
E 박수
직 원 다음은 김범도 주방장님...
범 도 (받으며) 고맙습니다유. 고맙습니다유.
M 브릿지
E 소란한 회식 분위기
해 설 장사를 마치자 두 직원의 입사를 축하하는 성대한 회식이 열렸다. 황사장은 두 책임자의 심난한 마음을 풀어줄 요량으로 바짝 다가 앉아 연방 흥을 돋아주고 말을 걸었다.
황사장 정말 고맙소. 내가 능수엄마를 모셔오려고 얼마나 속이 탄 줄 아 시오? 내 매부 박사장은 맘이 느린 사람이라 아무리 재촉을 해도 서두는 법이 없어요. 이제 우리 식구가 됐으니 춘성옥에서보다 열배 백배로 뛰어줘요. 그래서 한국의 최고 인물로 성공해 봐요. 내가 죽을 힘을 다해 팍팍 밀어드릴 테니 말이오.
능수엄마 부족한 저희들을 이래 환대해 주시고 정말로 고맙심더. 사장님만 믿습니더. 사장님 믿고 이래 안 왔능교.
해 설 능수엄마 기분도 점점 고조된다. 어찌 생각하면 춘성옥을 잘 나왔 다는 생각도 든다.
능수엄마 (마음 속) 춘성옥에서는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지만도 책임감 때문에 늘 중압감에 시달려야 했어. 잘한다는 그 인정에 흠을 내 지 말자꼬 남들보다 두 배 세배 더 뛰어야 했으니까네 말이제.... 그렇지만 이제 자유야. 여기서 다시 내 세상을 만들면 돼...
해 설 범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별로 인정받지 못한 춘성옥보다는 지금 처럼 받들어주는 대승옥에서 더 친밀감이 느껴졌다.
범 도 (마음 속) 황사장님이 보수도 배로 주고 오래 있으면 분점도 채려 준다고 했으니께 더 이상 바랄게 없어. 다만 미스강과 떨어져 있 는 게 괴롭기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야. 능수엄마가 도와준다 했으니께.
해 설 범도는 어깨에 절로 힘이 솟는 느낌이었다. 그는 노래 부를 차례 가 오자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신나게 뽑았다. 박수가 요란했다.
E 박수소리
황사장 아주 잘했소. 우리 대승옥에 가수 한분이 오셨군. 일 잘하고 노래 잘 부르는 건 서로 비례하나 보오. 자, 잔 받으시오.
범 도 예, 사장님.
E 술잔에 술 따르는 소리
해 설 범도를 한껏 치켜세워준 황사장은 이번에는 능수엄마에게 수작을 부린다.
황사장 능수엄마는 이름이 뭐요?
능수엄마 이름예?
능수엄마 (에코) 소라라꼬 불러주이소. 소라라 불러달라 안했능교.
능수엄마 이름은... 쓰기 싫어예.
황사장 애 엄마라고 부르기 싫어서...
능수엄마 지는 능수엄마가 좋으니까네 그리 불러주이소.
M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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