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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언 송년의 때에 도달하였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먼길 떠났던 나그네 고향 초막으로 돌아올때에 이르렀으니,
범부의 가슴엔들 어찌 한해를 보내는 싸아한 감상이 없으랴.
그래서인가?
영하 12도를 경고하는 엄동설한의 날씨임에도 산을 오르겠다는 뱃장좋은 사내들이 우글거렷다.
아침부터 내내, 그냥 따뜻한 거실에 뭉갤까를 열번쯤 번뇌하다가 그래도 나가야 하리라, 나가서 서너명 용감한 친구들을 만나
하얀 입김을 쏟으리라..장엄한 결의로 나와보니, 웬걸 완전무장한 노인네들이 와글와글하지않는가?
놀라워라 그 기상, 기특하여라 그 성의.
면면을 보자.
대용, 부익, 상희, 세훈, 승기, 인주, 재윤, 종구, 형철, 호경 그리고 종기
무려 11명이다.
그뒤 뒷풀이에 동행한 달섭, 성호, 신찬까지 합치면 14명이니, 눈부신 5월의 산행도 이토록 열광하지는 못할것이다.
(옛골에서 굴다리 지나)
김회장은 신났다. 자신의 영도력을 확실히 검증해주는 2009년 last climbing은 일단 성공적으로 개막된 셈이었다.
겨울산은 그 청량한 기운으로 우리들의 용기가 정당한것이었음을 격려하였다.
추위도 잠시,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며 격하게 토해내는 날숨에 따라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였으므로 추위는 아예 관심사가 아니었다.
(등산로 초입)
(이수봉 정상이 보인다)
(얼어붙은 계곡)
(정상을 향하다)
(웬 보따리 장수(?))
( 깔딱고개 위 이정표)
깔딱고개 중반쯤에서 잠시쉬면서 대용이 준비한 달콤한 감말랭이로 당분을 보충한것을 제외하는고 정상근처에 이르도록
쉬어가자는 자가 없었다.
좋다, 그 강인함이 9988234를 보장하리라.
내옆에 종구가 속삭였다. 아침에 아내가 .. 이보시오 낭군 이추위에 어딜가시려하오.. 가지마오...
정성으로 꼬득여 번뇌가 많았으나 역시 나오니 이렇게 좋을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을 지었다, 결론, 내가 늘 확신하는 바로 그 결론이었다.
날씨 불문하고 등산 할까말까하다 나와서 후회해본일이 없다... 옳다, 뛔이 뛔이..
(마지막 힘을 모아)
금방 이수봉에 이르니 인간들이 우글거린다.
중종조에 개혁파의 거두들이, 돌연 중종의 변심과 훈구세력의 모함으로 나락으로 떨어질때 정여창등이 이곳에 칩거하며
변심한 나랏님을 사모하였다는 것이니 옛날 사대부들은 배알도 없나..?
일단 팽당했으면, 그까짓 먼지요 그림자인 인생 막걸리나 퍼마시며 향략할 일이지 버린자에 대한 사모는 무슨놈의 사모..
단정한 비앞에 앉아 알리바이 사진을 박으려하는데 마침 지나가는 "샤오지"에가 참으로 우아해보였다.
큰키, 군살하나없는 몸매, 얼굴에 착함이 가득한 28 전후의 처녀는 웃음을 가득담아 애비뻘되는 자들의 농담을 용납하며
샷터를 눌러주었다.
이 처녀와의 스토리는 뒤에 다시 이어진다.
(정상에서)
어디쯤 왔을까?
관습에따라 적당한 양지녁에 자리펴고 군것질을 하려고 하는데 자리가 마땅치 않고,
산등성이인데다 걸음을 멈추자 심장작동이 느슨해지며 열량이 급히 떨어지므로 모두들, 어이,어이, 그냥 내려가자,
내려가서 푸자고 와글거린다. 회장과 "오자와"는 말없이 정착의사를 접고 앞서나간다.
백성의 요구가 관철된것인가?
말없이 앞서가는 회장과 막후의 실력자... 그뒤를 일정구간 떨어져 가던 백성들은 중도에 막걸리와 오뎅을 파는 산상주막이 나타나자
순간 왁자지껄하며 한잔걸치자는 의견이 압도했다. 회장과 오자와는 이미 뒷모습이 안보인다.반란이었다. 설왕설래.. 이거 회장을 따돌리고 이래도 되는거냐.. 반란의 주모자가 누구냐? 총장을 볼모로 잡아라이 ,
오우케이 총장이 확보되었다... 사무총장 세훈이 느긋이 백성의 편에 편입해 있었다.
시끌벅적, 한잔씩 장수막걸리를 마시고 오뎅 한가닥씩 물어뜯으니 속이 뜨뜻해져 영 사는게 편한 느낌이었다.
자, 이제 이대로 사당동 해물탕집으로 가자.
백성들은 제멋대로 진로를 꿈꾸고 있는데 웬걸 몇발작 못가서 저만치 내려간 양지바른곳에 영도들이 자리를 펴고앉아
길잃은 백성들을 한심한듯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기어이 좌정을 하자는 것인가?
이미 배가 따뜻한 무리들은, 저멀리 내려가 앉아있는 두 영도를 바라보며, 저자들을 설득하여 그만 하산하자고 결론내는데,
재윤이 의기양양 나서며 어이 , 그대들은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가서 반드시 설복하여 데려올것인즉...
양지쪽으로 다섯발쯤 내려갔을까?
재윤이 금방 오금어린 눈빛으로 어이, 다 내려오래하며 꽁무니를 내린다. 호경의 일갈에 겁먹은것인가?
모두들 사신의 소심함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느니 하며 낄낄대고 내려갔는데...
오호라, 역시 지도자는 선견과 통찰이 있는것인가?
양지쪽 낙엽위에 펼쳐진 주연은 이날 그 향기로움의 극치였으니 만일 우매한 백성들의 요구에 굴하여 그냥 햐산했다면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존재하지 않았을것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통찰과 똥고집이 아주 중요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이리라.
회장이 결연히 선언한다.
"산상에서 일배하며 인생을 논하는것은 우리 상산회의 유서깊은 전통이다. 누가 감히 이를 개변하려하는가?"
반란군에 합세했던 사무총장이 신속히 중국 최고의 명주 수정방을 꺼내며 분위기를 바꾸려한다.
"이건 진짜로 가짜가 아니야"
목에 칼이 들어와도 가짜가 아니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중국 최고주의 가짜 논쟁에 쐐기를 박는다.
필자가 자칭 수정방 판별전문가라며 첫잔을 테스트하니 그 향기가 혀뿌리부분을 여지없이 농락하므로
"이건 진짜로 가짜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선언이 끝나자 모두들 일배하려고 잔을 들이민다.
안주는 단촐하나 intensive했다. 부익의 준비가 가장 정성스러워 보였고 회장의 쏘세지가 아주 부드러웠다.
순식간에 수정방이 끝나자 이번엔 부익이 중국에서 직접공수한 마오타이 54도짜리를 내민다.
참고로 54도 짜리는 통상적인 38도짜리보다 가격이 훨씬쎄다.
이건 중국 세무국에 납품된거니 두말없이 진짜다는 물건설명이 뒤따랐다. 다시 내가 감정사로 나섰다.
54도의 짙은 향미가 코와 혀를 자극한다. 잠깐 넘기니 식도가 따끈해진다.
수정방과 마오타이의 이 격렬한 차이.
수정방이 퓨전 중국명주라면 마오타이는 갈데없이 오리지날 뙤놈술이다.
수정방이 슬림한 샹하이 미인이라면, 마오타이는 오동통한 창안가인, 체모짙은 양귀비같은 술일것이다.
감정사가 두 명주의 향기에 취하여 다시 선언했다. 이것도 진짜로 가짜가 아니다 !!!
수정방으로 위벽을 달랜후의 54도짜리 마오타이는 그 강렬한 향과 뜨거운 열정으로 좌중의 정신들을 고양시켰다.
겨울날 나무들은 이미 그 잎을 다 버렸고, 우리들도 인생의 헛된 욕망을 다 벗고서,
생명그 고귀한 심연을 언뜩언뜻 넘겨다 보는 나이에 이르렀다.
여름날 태양을 향해 무성하던 욕망, 그 나무잎들을 깔고 앉아서 이제 우리는 진짜 인생의 쾌락을 맛볼것이다.
(즐거운 시간)
(중국통의 중국사랑)
(술을 보자 만세를)
(종구의 나무사랑)
산상주연을 끝내고, 약간 어지러움속에 비탈길을 겨우 내려오다보니 대오가 마구 엇갈렸다.
누가 따라오는지 어쩐지는 누구도 신경쓰지않았다. 중국명주의 효용에 휘둘리고 있었음이리라.
부익이 없어졌고 맨뒤에 오던 회장과 오자와가 없어졌다. 종구도 잠시 없어졌다.
통신병이 회장과 통하니 길이 좀 엇갈린듯하니 먼저내려가 사당동 해물탕집으로 가라는것이다.
관악과 청계산을 손금보듯 들여다보는 회장과 오자와가 길을 잃었다?
나는 믿지못하여 직접전화를 걸어, 기다릴테니 빨리 내려오라고 떠보니 강력히 손사래치듯이 먼저 내려가라고 외친다.
수상하다.
좀 늦게 내려온 종구가 길을 잃은듯하여 회장에게 전화하고 볼일이 있어 먼저가련다고 했더니 두말없이 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무언가 있다.
우리는 낄낄대며 하산하여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사당동에 당도하였다.
그곳에 성호, 달섭, 신찬이가 있었다. 이 엄동의 산상에서 중국명주로 정신을 고양시키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것은 유감이었으나
정녕 사당동까지 달려온것은 69의 정성이 아니고 무엇이랴!
성호는 혼자서 산길을 걸었다 했다. 년말 혹한의 산중을 혼자 걸을때 그의 고독한 사색이 넘나든 영역은 어떤것이었을까?
해물탕시켜 막걸리로 다시 위를 적시고 있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도 승기와 호경이 나타나질 않는다.
분위기는 그만이다.
산비탈을 내려올때 인주가 남존여비의 4개 버젼을 해설했고 , 누군가 설파하기를,
40대에 남편이 바람피면 이판사판으로 길길이 뛰던 아내가, 60넘어 바람피면 아쭈구리..아직 불씨가 살아있네하고 좋아한다고 했다.
자, 이제 아내를 위하여 바람필 나이가 되었다??
마침내 회장과 오자와가 돌아왔다. 해물과 신선한 굴접시를 다 비운후이니 한시간도 넘어서였다.
그사이 대용, 재윤, 종구는 이자들이 정말..하고는 다른일 때문에 먼저 자리를 떴다.
회장은, 도대체 어디서 무슨 향락을 즐기다가 이리늦었는가는 빗발치는 질문에는 콧똥도 안뀌고,
대뜸, " 에~ 지금부터 상산회 망년회를 시작한다"고 짐짓 엄숙하게 선언한다.
질문을 거부하는 공격적 방어술이다.
지난 일년간 각 회원들의 출석기록이 발표되었다.거의 대다수가 1~2회 참석을 기록한것을 개탄하는 지적이 있었다.
내년에는 해외원정을 꼭 넣자는 제안도 나왔다.
뒤이어 회장은 2년임기를 힘들게 했으니 차기회장을 선출하자고 기습적으로 제의했는데
다분히 백성들의 만류를 예상하는 제스처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무리들이 일년더해달라는 요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에~ 그럼 일년 더 하겠읍니다...ㅋㅋㅋ
고마운 지도자, 비가오나 눈이오나 출석률을 헤아리며 다음산행을 구상하는 그 헌신..
정말이지 내년부터는 회장수당좀 책정했으면 좋겠다.
적당한 알콜과 활달한 방담으로 한없이 이완된 영육을 일으켜, 해피 뉴이여 외치며 돌아설때에,
유쾌한 피로가 몸을 감싸며 속삭였다. 오늘 산에 참 잘왔다.
(근데 회장과 호경이 어디서 무얼 한것일까? 호경이 살짝 말했다. 아까 그 우아한 찍사와 한잔했다고...스토리는 진행형이다.
다음 산행에서 문초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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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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