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야스 시대는 끝났는가? ⓒgettyimages/멀티비츠 |
지난 주말을 전후로 세계 각지에서 A매치가 이어졌다. 평가전과 유로2016 지역예선 등 크고 작은 국가 대항전이 연이어 펼쳐졌다.유로2016 지역예선 중 눈에 띈 몇 경기를 살피자면 오랜 시간 팀 재건에 애 쓰고 있는 체코가 원정에서 터키를 잡으며 2연승을 달렸다. 네덜란드는 홈에서 훈텔라르, 아펠라이, 반 페르시의 연속골로 약체 카자흐스탄을 3-1로 완파하며 1패 뒤 반전에 성공했다. 이탈리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경기에선 이탈리아의 키엘리니가 2골과 하나의 자책골 등 이날 나온 3골을 모두 넣는 진풍경을 낳았고 아일랜드와 지브롤터의 경기에선 미국 LA갤럭시에서 뛰고 있는 아일랜드의 로비 킨이 12분 사이(6분, 14분, 18분)에 해트트릭을 성공시키며 7-0 대승을 이끌었다. 로비 킨은 이날 3골로 유로 지역예선에서만 통산 21골을 기록, 터키의 전설 하칸 슈쿠르의 20골을 넘어선 역대 유로 지역예선 최다 골의 주인공이 됐다. 로비 킨은 A매치 통산 기록에 있어서도 65골을 기록하며 전 세계 축구선수를 모두 포함한 A매치 최다 골 부문에서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 드로그바와 같은 12위에 올랐다.
이 밖에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부상으로 결장한 스웨덴은 홈에서 리히텐슈타인을 2-0으로 잡고 예선 첫 승을 올렸으며 잉글랜드는 결정력 부족 속에 에스토니아 원정 경기에서 힘든 경기를 펼치다 루니의 프리킥 결승골로 1-0으로 신승했다. 에스토니아 수비수 클라반이 후반 초반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한 걸 감안하면 잉글랜드로서도 이기고도 찜찜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타이틀 매치가 아닌 평가전 중 가장 관심을 모은 경기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프랑스와 포르투갈 경기였다. 네이마르, 윌리안, 오스카, 카카(이상 브라질) 메시, 아구에로, 디 마리아, 라멜라(이상 아르헨티나)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대거 나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중국 평가전에선 신임 둥가 감독이 브라질대표팀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받은 최전방 공격수 문제를 풀기 위해 발탁한 29살의 베테랑 스트라이커 디에구 타르델리가 2골을 몰아넣으며 셀레상이 완승을 거두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스콜라리 감독 이후 지휘봉을 넘겨받은 둥가 감독은 이로써 3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를 거두면서 월드컵 당시 불안했던 수비 조직력과 우승 좌절에 따른 심적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유로2016 개최국 프랑스와 호날두의 포르투갈이 격돌한 평가전에선 벤제마와 포그바가 연속골을 넣은 프랑스가 콰레스마의 만회골에 그친 포르투갈을 2-1로 제압하며 승리했다.
고개 숙인 노이어와 카시야스
지구촌 전역에서 이어진 A매치들 중 특히 결과에 관심이 집중됐던 경기는 폴란드와 독일, 룩셈부르크와 스페인의 유로2016 예선 경기였다. 폴란드와 독일 경기는 말 그대로 최대 이변의 결과로 화제를 모았다. 브라질 월드컵 챔피언 독일이 사상 최초로 폴란드에 무너진 것이다. 두 팀이 처음으로 격돌했던 1933년 이후 폴란드가 81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을 꺾었다. 19전 1승7무11패로 통산 전적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올린 폴란드다. 룩셈부르크와 스페인전은 객관 전력만 놓고 본다면 크게 관심 갈 것 없는 경기였다. 하지만 스페인이 룩셈부르크 경기 3일 전 치러진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무력하게 무너지면서 이어진 룩셈부르크와의 원정 경기라 결과에 관심이 모였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한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 스페인으로선 약체를 상대로 2연패 당한다면 그 충격은 더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경기는 스페인의 4-0 완승으로 끝났지만, 델 보스케 감독이 룩셈부르크와의 경기에서 큰 폭으로 변화를 준 선택에 경기가 끝나고도 설왕설래가 이어진 경기였다.
폴란드와 독일, 룩셈부르크와 스페인전의 공통점은 경기 전후 누구보다 골키퍼들을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대단했단 점이다. 폴란드와 독일전은 경기 내용으로만 보자면 독일의 일방적 흐름이었다. 점유율 62% 대 38%, 슈팅 숫자 22개 대 4개, 패스 횟수 525개 대 207개 등 모든 면에서 독일이 폴란드를 압도했다. 폴란드가 앞 선 게 있다면 2골과 슈체즈니 키퍼의 슈퍼세이브뿐이었다. 물론 이 두 개가 이날 두 팀의 모든 걸 갈라놓았다. 뮐러, 괴체, 쉬얼레, 크로스 등을 앞세운 독일은 파상 공세를 퍼부었지만 믿기 힘든 슈체즈니 키퍼의 환상 세이브에 번번이 골 넣는데 실패했다.
1974년 월드컵 지역예선 당시 웸블리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비현실적인 슈퍼세이브로 폴란드를 월드컵 본선으로 이끈 폴란드의 전설적 골키퍼 얀 토마세프스키는 “내가 본 최고의 플레이다. 오늘 승리는 온전히 슈체즈니의 것”이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럽 축구 통계 사이트인 <후스코어드>는 슈체즈니 골키퍼에게 웬만해선 주지 않는다는 만점인 10점의 평점을 주었다. 반대로 독일의 골키퍼 노이어는 폴란드의 밀리크에게 헤딩으로 내준 첫 번째 실점 장면에서 나오는 위치를 잘못 잡으면서 골을 내주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뒤 노이어는 “내 실수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후스코어드>는 노이어에게 슈체즈니 키퍼의 절반 수준인 5.8점의 평점을 주었다.
지난 주말 주요 A매치 결과 |
사상 최초 골키퍼 MVP 올리버 칸 이후 변화들
룩셈부르크와 스페인전은 경기 시작 전부터 골키퍼 문제를 두고 시끄러웠다. 스페인 주전 수문장의 교체 건 때문이었다. 카시야스 키퍼가 슬로바키아전서 골문을 지켰지만 2실점 과정에서 확실한 위치 선정과 방어에 실패하면서 또 다시 주전 골키퍼 자격 논란에 휩싸였다.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물론 지난 브라질 월드컵을 거치며 더 극심해진 카시야스를 향한 비판이 더 격해진 듯한 논란이었다. 결국 델 보스케 감독은 룩셈부르크전 주전 골키퍼로 맨유의 데헤아를 선택했다. 슬로바키아전과 비교하면 4명이란 큰 폭의 선발 변화를 주었지만 이 중에서도 골키퍼 교체는 단연 압도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거쳐 맨유에서 4시즌 째 뛰면서 보여주고 있는 활약을 떠올리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데헤아의 선택이지만, 데헤아의 이번 출전이 A매치 3번째 경기일 정도로 생각만큼 기회를 얻진 못했다. 데헤아가 지난해까지 연령별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이유도 있겠지만 카시야스와 레이나, 발데스 등 기존 장벽들이 얼마나 높았는지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날 카시야스→데헤아의 교체로 스페인 현지에서는 대표팀 골키퍼의 주전 구도가 크게 요동칠 것이란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스페인의 <마르카>지는 이번 교체가 대표팀은 물론 향후 레알 마드리드 주전 골키퍼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골문에 취약점을 지닌 레알 마드리드가 데헤아의 영입전에 뛰어들 수 있단 전망을 내놓으면서 데헤아의 에이전트인 ‘큰 손’ 조르주 멘데스의 향후 행보에 관심을 표했다.
데헤아의 이적 여부야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일로 지켜봐야 하겠지만, 분명한 건 요즘처럼 골키퍼에 대한 관심이나 비중이 커진 시기도 없었단 사실이다. FIFA월드컵 역사에서 사상 최초로 골키퍼(독일 올리버 칸)가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2002월드컵 이후 골키퍼가 팀 전력과 전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확대돼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는 가장 뜨거운 화두로 부상했었다. 독일의 노이어, 코스타리카의 나바스, 칠레의 브라보, 미국의 하워드, 멕시코의 오초아 등이 엄청난 선방 능력을 보여주면서 팀의 흥망성쇠를 주도하기까지 했다.
5C를 넘어선 확장된 골키퍼의 영역
브라질월드컵 등 최근 축구에서 골키퍼의 비중이 확대된 건 비단 슈퍼 세이브 등 골문을 지키는 능력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다. 골키퍼에게 필요한 기본 자질을 뜻하는 5C, 냉정함(cool) 용기(courage) 의사 전달(communication) 영리함(clever) 경쟁심(competition)을 바탕으로 하는 골문 앞에서의 선방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지만 요즘 축구에 있어 골키퍼의 비중과 역할이 확장된 건 골문을 넘어선 앞 선 선수들과의 연계 부분 때문이다. 연계 플레이의 확대로 손뿐만이 아닌 발을 잘 쓰는 골키퍼의 등장과 확장이 그 속도를 더하고 있다. 점차 축구가 공수 간격이 좁아지고 압박이 강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공간이 열려 있는 후방에서부터 경기를 만들어나가는, 뒤에서부터 하는 축구를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나바스는 한국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일까? ⓒgettyimages/멀티비츠 |
자연스럽게 현대축구에서 골키퍼는 골문을 지키는 제한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골문을 지키는 동시에 앞 선과의 패스플레이에 가담하고 공격 조립에 참가하는 매우 능동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골키퍼가 패스플레이에 참가할 경우 필드 플레이어가 한 명 더 있는 효과가 가능하다. 예컨대 양 팀이 4명 대 4명으로 패스 게임을 하고 압박하는데 골키퍼가 이 중 한 팀 플레이에 관여한다면 5대4 구도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골키퍼가 뒤에만 물러나 있다면 그 만큼 앞 선의 숫자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골키퍼의 역할과 활동 반경에 따라 현대축구의 주요 키워드인 공간과 숫자, 압박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유럽 팀들이 발을 잘 쓰는 골키퍼를 육성하거나 영입하기 위해 애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골키퍼가 패스 플레이에 관여하는 흐름 때문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능력을 넘어선 팀의 시대 그 안에서 팀 전술과 전략의 진일보가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수비 전술 또한 크게 발전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비라인 전체를 통제하고 최후 보루 역할로서도 골키퍼의 비중이 크게 확장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과거에 축구란 골을 많이 넣으면 이기는 경기라는 인식에서 근래엔 골을 허용하지 않으면 최소한 지지 않거나 이길 수 있는 경기라는 인식으로 전환하면서 확장된 골키퍼의 역할과 존재감이기도 하다.
이 같은 세계 축구의 흐름이 우리와 무관할 순 없다. 2014브라질 월드컵 이후 한국대표팀 골키퍼 라인에도 큰 폭의 변화 흐름과 함께 무한 경쟁이 시작되었는데 내일(14일 화요일) 밤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지는, 브라질 월드컵 당시 강력한 수비와 함께 최고의 선방 플레이를 보여주었던 코스타리카와 그 주전 수문장 케일러 나바스와의 일전은 그래서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나바스는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기도 했는데, 같은 소속팀 카시야스의 침체와 맞물려 또 김승규 혹은 김진현이 나설 한국대표팀의 골문과 견줘 어떠한 플레이를 펼쳐 보일지 세계 축구 변화 흐름과 묶어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