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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 호주여행 1997. 1. 1. - 1. 12.
97.1.1 오후13시 집을 나섰다. 여행에 방해되는 돌발 사고라도 날 가 염려하다가 집을 나서면서 드디어 여행시작이라고, 모든 것을 훌훌 떨어버리고 여행을 즐기자고 하면서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은 일들이 생긴다. 2:30 광주출발 서울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나왔는데 출발시간이 애매하다. 비가 눈으로 바뀌고 날씨가 좋지 않은 탓으로 시간이 자꾸 연기 되드니 3:35에야 비행기가 출발하는데 창밖을 보니 눈보라가 세차다. 비행기는 틈 하나 없이 하늘을 꽉 메꾼 구름 위를 나른다. 비행기 안에는 햇살이 비친다. 그런데 비행기 아래를 내려다보면 온통 구름밭이다. 사푼히 뛰어 내려 봐도 괜찮을 것 같은 폭신폭신한 기분을 돋구어주는 구름밭이다. 서울에 이미 도착되었을 시간이 되어도 비행기는 계속 하늘 구름 위에 있다. 안내방송에서 지상기류관계로 착륙시간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구름 아래로 내려오면 온통 캄캄한 안개속이다. 창밖에 보이는 비행기의 날개가 어떤 곳에서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하다. 광주에서 이륙 후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착륙이 되었다. 하늘에서 30분 이상의 시간을 더 보낸 것 같았다.
서울에서 호주행 비행기를 바꾸어 탓는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밤 9:45 출발예정시간이 기류관계로 생겼다는 비행기 날개부분의 눈 제거 작업 때문이라고 하면서 지연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행기에 이미 탑승한 상태에서 밤 11시까지 1시간 반 정도를 대기상태로 있었다. 그런데 밤 11시에 공항이 폐쇄되기 때문에 이륙할 수가 없게 되어 출발이 다음날로 연기되고 승객들은 비행기에서 내려 다시 출국수속의 취소절차를 밟게 되었다. 재빠르게 면세품을 구입한 사람들은 맡겨놓고 나와야 되고 어떤 것은 신고를 해야 된다고 법석이다. 동작 빠른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법무부 출입국 관리대가 국내와 해외의 경계인 것이다. 자국 내의 해외지역을 다녀 나온 셈이다. 밤 1시경 비행기회사에서 제공해 준 서울의 조선호텔에 도착하여 뷔페로 준비된 저녁식사 대접을 받고 1416호 방을 배정 받고 뜻밖의 하룻밤을 조선호텔에서 지내게 되었다. 어쩌면 평생 와 볼 수 없을는지 모르는 우리나라 조선호텔에서 하룻밤이다.
아침7시에 일어나 호텔에서 뷔페식 식사를 하고 9시 출발예정시간이었는데 자꾸 지연 되드니 결국 점심식사까지 호텔에서 하고 오후 1시경 호텔을 출발했다.
여행은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은 날씨관계, 비행기의 결함관계 등으로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완전히 하루가 관광일정에서 차질이 생기는데 손해부분에 대해서 비행기회사와 협의 중이라고 한다. 무슨 손해가 얼마나 난 것이고 나에게는 또 어떤 손해배상이 되는 건지 궁금하다. 새로운 경험이기만 하면 나에게는 오히려 이익이다. 더 이상 날짜에 차질이 생기지 않아서 15일 등교 날만 맞추어지면 된다. 다만 계획된 관광코스에 차질이 생길 것 같은데 몇 군데 빠뜨린들 어쩌겠는가? 그냥 새로운 경험, 새로운 상황들 또 얼마든지 더 생기려면 생기라 하지 뭐.
1월 2일 아침.
전날 호텔에서 나와 16시 비행기가 출발한다고 했었는데 지연이 계속되다가 밤 8시에야 대한항공 시드니행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떠났다. 여행일정의 맨 마지막 날 코스를 먼저 하게 된 것이고 첫날의 코스가 마지막으로 간 것일 뿐으로 여행코스에 변동이 없다고 한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 공항에서 저녁식사 시간이 재미있었다. 비행기에 오르면 기내식이 있기 때문에 우동과 샌드위치로 간단히 식사하기로 하고 일행들이 함께 스낵코너에 가니 너무 복잡하여 날라다 먹기로 하고 남자들이 동원되어 공항 내 100여 미터 거리를 음식을 들고 행진을 한 것이다. 나도 우동 세 그릇을 차판에 들고 맨 앞에서 행진을 한 것이다. 2청사 13게이트 앞에서 우리 일행들이 음식을 먹는데 대합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광거리를 제공한 것이다. 우리를 보며 웃는 사람들 틈에서 사진도 찍으며 즐거웠다.
오후시간 내내 2청사 출국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청사내의 구석구석까지 살펴보는 시간이 생겼다. 출국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고 외국인은 드물다. 외국인이 많아야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텐데 그렇지 못함이 비정상적인 것 같이 걱정되는 면이기도 하다.
시드니까지 비행하면서 기내에서 밤10시경과 새벽 4시경 두 차례 기내식 식사를 하는데 주변을 보니 주는 대로 모두 잘들 먹는다. 시드니 킹스피드 스미스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아침 6:40인데 현지시간은 8:40이었다. 우리와 2시간의 시차가 있다. 시드니에서의 가이드를 만나 인사하고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이동해 가는데 왠 우리나라 신사 4명이 서서 유인물을 나누어준다. 관광알선 여행업자들에게 속지 말라는 것이 내용으로 교민사회 대표들이 관광폐단을 없애기 위해 홍보활동을 하는 것이라 했다. 한분의 고향이 장성이고 광고를 나왔다고 해서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 하다가 우리 버스가 와서 승차했다. 버스의 운전대가 우측에 있고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하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이곳은 지금이 한 여름이지만 모두 문들이 꼭꼭 닫혀있다. 열어 놓으면 열이 집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닫아놓고 산다고 한다. 전망이 좋은 높은 지대 땅값이 비싸고 좋은 집들이 있다. 높은 곳에 부자동네가 있다고 한다. 시드니는 구릉지대로 산이 없어 탁 트인 벌판이 끝없이 전개된다. 평균해발 300m 라하며 사암지대로 1m정도의 깊이만 들어가도 바위가 있어 좋지 않은 토양이지만 식물들은 잘 가꾸어 놓았다. 인구는 영국인이 50%, 아시아인은 4%, 한국인은 3만정도 교포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자외선이 강해서 피부암 환자가 많으며 선그라스가 필수품이라 한다.
시드니 시내에 크고 작은 공원이 2500여 군데라 하며 곳곳에 골프장들이 있고 전부 무료라 한다. 공원에 고기만 가져가면 바베큐 할 수 있는 시설들이 되어 있으며 잔디에서 운동들을 한다. 맥주를 많이 마신다고 한다. 단독주택들이 빨간색 지붕을 많이 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빨간 지붕, 파란바다, 초록의 나무숲 세가지색이 이곳 특징이라 한다. 자동차 안에서는 No food, No smocking, No stand 세 가지가 엄격히 규정되어 어린애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면 다 먹은 후에야 차에 오를 수 있게 하기도 했다.
1월 3일 금요일
시드니에서 맨 처음 간곳이 본다이비치(Bon Di) 해수욕장이었다. 여자가 팬티만 입고 윗부분은 개방하고 다니는 사람이 심심치 않게 있는 곳이다. 남태평양바다로 본다이는 바위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란 뜻이라 한다. 흙먼지 같은 가는 모래사장인데 잠시 들린 곳이라 수영할 시간은 없다. 다음에 간 곳은 더들리페이지, 시드니를 한눈에 전망 해 볼 수 있는 언덕으로 된 공원이다. 시드니 시내를 뒤 배경으로 사진촬영하기 좋은 곳이다. 다음에 왓슨 스베이, 영화 빠삐용의 촬영지로 남태평양 바닷가여서 산책하며 자살바위 등 바닷가 기암괴석과 부딪치는 파도들을 보면서 거닐었다.
Sydney Harbour National Park가 같이 있어서 거대한 소철나무를 비롯한 나무들과 잔디 바닷가를 구경했다. 로즈베이의 수상비행장을 지나면서 물위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도 보았다. 시드니 미항에서 “Showboard Ⅱ"라고 쓰인 유람선에 올라 선상점심을 먹으면서 1시간 반가량 바다 위에서 시드니를 관광했다. 세계 3대 미항 중에 하나라는 곳답게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등을 중심으로 시드니의 여러 모습을 보았다. 요트가 바다 위에 많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어지간한 부자는 요트가 다 있어서 여가를 즐기는데 비싼 것은 70만불이라 한다. 하버브릿지는 193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왕복 12차선 다리인데 교통량이 많아 2.5km의 해저터널이 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유람선에서 내려 시내주변을 운행하는 모노래일을 잠시 탑승하기도 했다.
시드니타워에 올라가 시내를 관광하는데 우리나라 63빌딩 전망대만 못한 것 같다. 타워는 시내중심지에 있어서 오가는 길에 시드니의 가장번화가를 왕래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오페라하우스에 들렸다. 내부는 입구근처 가게들이 있는 곳에 조금 들어 갔을 뿐이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렌지를 쪼개어 포개놓은 현상으로 먼 바다를 향한 배의 모습이기도 하다.
105백만장의 타이루를 스위스에서 수입해서 건축했고 사용된 블루 유리는 프랑스에서 수입했으며 14년간에 걸쳐 건축하여 1973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오페라 음악당 객석이 2700석, 극장 객석 1500석, 1000여 개의 방이 있고 3개월쯤 전에 예약하면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너무도 많이 보고(사진 등으로) 시드니의 상징 같은 곳이어서 감회 깊게 살펴보았다.
호주는 천국이란 말이 흔하다고 한다. 여자의 천국, 어린이 천국, 동물 천국 등 따라서 남자는 별로인 곳이라고 가이드가 푸념한다.
세금은 낸 정도에 따라 노후 연금액이 정해지지만 세금이 많은 나라이기에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서 여행을 즐기며 잘 쓰고 산다고 한다.
나무, 잔디 등 관리는 철저해서 2개 이상인 나무는 자기 집 정원에 있어도 함부로 처리할 수 없게 되어있고 잔디관리를 잘못하면 옆집에서 신고하면 벌금을 내야 된다고 한다.
검정색 차는 장의차로만 쓰기에 승용차들이 검정색은 볼 수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나와 시간이 좀 있으니까 미서스메콰리포인트란 곳에 들려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릿지를 배경으로 사진촬영하기 좋은 곳이기에 그 옆 공원도 있어서 시드니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1월 4일 토요일이다.
아참 5시에 일어나서 바쁘게 움직여 호텔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오전 8시 출발, 뉴질랜드 christchurch로 왔다.
어제 이야기로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바로 출발한다고 했는데 다시 변경되어 아침식사를 하게 되니 바빴다. 식사는 메뉴가 과일위주로 간단했다. 뉴질랜드 비행기 안에서의 기내식도 간단했다. 결국 아침, 점심을 간단히 하고 저녁식사만 한인식당에서 불고기로 잘 먹었다. 하루가 다소 시장기 있는 시간들이었다.
엊저녁에는 집으로 전화해서 어머니와 통화도 했다. 엊저녁 샤워시에는 이마가 따끔따끔해서 시드니에서의 하루가 자외선을 톡톡히 씌운 것 같다.
뉴질랜드 공황에서 검열은 까다로웠다. 일일이 가방을 뒤져서 식품류는 모두 회수해갔다. 덕택에 오후 1시 약간 넘어 도착한 것이 2시 반경까지 공항에 있어야 했다. 시간도 호주보다 두 시간 앞서가니 금방 오후가 되어버렸다.
공항에서의 짜증이 버스에 올라 christchurch시내로 향하면서 경탄으로 바뀌었다. 세상에 이러한 곳도 있었구나. 전원도시라 할까. 집집마다 정원이 있고 꽃이 있고 단층짜리 집들이 깨끗하고 아담하고 조용하다. 넓은 터에 잔디가 있고 꽃밭이 있고 울타리는 없거나 낮게 되어 있다. 금방 선망의 대상이 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도 빌딩도 없고 아파트도 없고 그냥 낮은 집들만 있는 것 같았다.
여러 공항에 내려 보았지만 이렇게 시골 풍경이 나는 공항은 처음이다. 경지정리가 잘된 푸른 초원만이 연속되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1.5배 크기에 인구는 350만 정도라니 쓸 수 있는 땅이 얼마나 넓겠는가? 높이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지진지대가 된 것도 원인이라고 한다. 뉴질랜드 남섬 관문인 christchurch, 이름도 특이하다. 인구35만의 Garden city, 세계 10대 관광도시 중에 하나 (1995년 중국의 어떤 대회에서 선정되었다 함) 공과대학으로 유명한 특성을 가진 캔터베리대학이 있다. 맨 먼저 캐시미언덕에 올라 시내 전체를 관망했다. 마침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높은 곳에 오래 있지는 못했다. 가이드가 비를 맞으라고 한다. 산성비가 아닌 깨끗한 비이고 많이 오지 않는 비이니까 얼마든지 맞아도 좋다고 한다. 이곳은 또 수자원이 풍부해서 수도세도 받지 않는 곳이고 물이 깨끗하니 어느 곳에서나 수도꼭지에서 나온 물은 다 먹어도 좋다고 했다.
박물관에 들려 모아(타조와 비슷한 멸종된 새)의 흔적에 대한 것, NZ에 있다가 지금은 없어진 kiwi에 대한 것, 원주민들의 과거 생활상 등 여러 가지를 관람하고 그 옆 공원에 들려 좀 걸어 보기도 했다. 잔디와 나무, 꽃 그리고 흐르는 물과 오리 등 자연의 모습들이다. 교외 서북쪽에서 남동쪽으로 관통하는 에이번 강이 있고 christchurch 대성당 옆에 victoria 광장이 있다. 성당은 1904년 완공된 곳으로 이 도시의 상징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리틀톤 항구도 다녀왔다. 이곳 동해안 쪽인데 다이아몬드항이 있고 무역선이 드나드는 곳이라 하는데 조그마한 항구이다. 중고차 수입품과 화물들이 약간 쌓여 있고 한쪽에 이 나라 수출품인 흑연이 시커멓게 쌓여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원양어선들도 식품구입 등으로 자주 드나드는 곳이라 한다.
바닷가를 따르는 드라이브 코스로 좋은 곳이기도 했다. NZ의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5년 중등학교 7년으로 12년간의 보통 교육 후 대학에 진학하는데 중등 6학년 때 석차가 전국 5%안이면 학생은 대학에 바로 진학할 수도 있다고 한다. 운동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기며 국기가 럭비(Allbacb 팀)이다.
자동차가 많지 않아 밀리는 일이 없기 때문에 자동차 신호등이 모두 사람높이로 낮게 설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앞으로 NZ south island관광이 3일 더 있다. 좋은 관광으로 기대가 된다.
1월 5일 일요일
앞으로 8일간 NZ에서의 관광 가이드(오영돈)을 만났다. 자기가 최고 가이드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NZ는 남한의 2.7배 유럽계 79%, 마오리족 9.7%, 한국인 0.5%, 기타 11.2%로 구성, NZ관광은 5개국 관광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산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 켄터베리 평야지대를 1시간여 달리고 나니 멀리 눈이 하얗게 덮인 산들이 나타났다. 남섬에만 3000m이상의 산이 19군데, 2000m이상이223개라 한다. 대부분 Mount cook이 있는 근처에 널려있다. 양이 약 1억만 마리, 사슴이 120만 마리로 통계가 나오는데 사슴 80만은 식용, 40만은 녹용용으로 야생한다고 한다. 자동차를 타고 계속 달리는데 들판이 양떼, 소떼, 사슴 떼들이 많이 보이고 양떼가 노니는 들판 뒤로 만년설이 덮인 산들이 울타리하고 있는 그림 같은 경치가 계속된다. 가는 길에 Rokaia라는 1.6km다리도 지났고 가끔 나타나는 짧은 다리들은 일방통행이다. 자동차가 드믄 나라에 다리 놓는데 경비를 절약한 듯하다. NZ는 신용의 나라, 정직한 나라라 한다. 한번 받은 운전면허증은 35년간 유효하다. 모든 법규는 엄격하여 규정들을 잘 지키고 청렴도가 세계 1위로 독일에서 열린 어느 대회에서 선정되기도 했단다.
가는 길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과일가게가 있어서 오렌지와 사과 그리고 꾀를 한 봉지 사기도 했다.
NZ는 녹색의 나라이다. 녹색의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그래서 녹색 결핍증을 해소시키는, 눈이 나빠지지 않는, 사람을 젊게 하는 나라이다. 빗물을 받아 마실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 깨끗한 나라이다. 평화, 고요, 청결, 풍요로움이 미치게 부러운 나라이다.
mountin cook을 가는 길에 Tekapo호수에서 잠시 머물렀다. 양몰이 개의 상징인 착한양치기교회에 들려 잠시 기도를 하고 나왔다. 마침 주일이기에 교회에 들려 기도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퍽 좋았다. 호수 물은 옥색이다. 빙하의 물과 석회석이 혼합되어 이루는 색이라 한다. 조금 더 가니 길이가 45km라는 푸카키 호수가 나와서 mountin cook까지 계속 연결되어 호수의 아름다운 색을 보며 여행을 했다. 수심 400m의 깊은 호수이기도 한데 호수 물을 위로 끌어올려 만들어 논 푸카키 운하가 28km라는데 운하를 따라 자동차가 움직여 주어서 더욱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했다. 운하 끝에는 수력발전소가 있다고 한다.
NZ는 농수산부가 최고 힘센 관청이고 중심기관이며 가는 길에 보이는 농가에는 드문드문 자가용 비행기를 보유한 농가도 보였는데 넓은 들판이 비행기를 갖게도 하는 조건이 되는 듯했다. 양떼들이 모두 모여 움직이지 않고 마치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의논하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는데 더울 때 하는 짓이라 한다. 더우면 뭉치고 추우면 흩어지는 것이 양으로 그 특성이 털에서 나타나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양모의 특성이라고도 한다.
mountin cook은 1인당 150달러씩 주고 헬기로 관광을 했다. 처음 타보는 헬기에 경치가 장관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지상 3020m 카스만 빙하지대에 착륙하여 사진촬영도 하고 눈 속을 거닐어 보기도 하는 시간들을 가졌고 다시 하늘을 날라 해발 5764m라는 산의 정상부근까지 관광하며 약 40여분의 헬기관광을 했다.
1769년 제임스 쿡 선장이란 분이 최초 NZ에 상륙한 것을 기념해서 산 이름이 부쳐져 있고 만년설의 경치가 일 년 내내 전개되는데 날씨에 따라 산이 가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너무나 쾌청한 날씨여서 cook산 관광에는 최고 행운이 따른 날이 된 것 같았다. 일찍 하산하여 저녁 6시경 저녁식사를 하고 초원 위의 호텔에서 쉬게 되었다.
1월 6일 월요일.
거울을 보니 얼굴이 빨갛게 익어있다. 며칠간 남반구의 여름 태양 볕을 쐬고 다녔더니 얼굴이 모두 익어있다. 내일부터는 모자가 없으니 파라솔이라도 쓰고 다녀야 되려나 보다.
어제 밤 NACKENZIE 호텔에서 하루 밤 쉬고 아침 9시 Queensttown근처의 관광을 위해 출발했다.
여왕이 살기에 알맞은 도시라는 의미의 Queenstown은 과연 이름대로 의미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1억 평 규모라는 커다란 와카티프 호수가 교외에 있어서 물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레저가 다 있다. 모터보트, 제트보트, 물수레, 보트가 끌어주는 나르는 낙하산 등이 있고 수영도 할 수 있고 산책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호수 주변에 아름다운 주택가가 있고 각종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꽃송이가 큰 장미가 각종 색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2700m이상의 높은 산을 비롯해 기암괴석으로 된 월출산 몇 개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산들이 온 시내를 둘러싸고 있어 병풍을 쳐 놓았다고 할까! 상주인구가 3800명 정도라는데 매일 유동인구가 2만여 명이라니 관광명소임에 틀림없다. 스위스의 제네바에 갔던 것이 생각나게 할 경치로 가이드가 자꾸 스위스 오스트리아에 버금가는, 아니 더 좋은 풍치를 이루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Queenstown을 가는 길에 크롬웰 과수단지에 들려 과일가게에서 풍성한 과일을 구경하고 주변 과수원과 웅장한 소나무 숲을 보았다. 체리라는 앵두보다 좀 큰 과일이 이곳에서만 나는 것이라 했다 사금채취의 역사가 깃든 arrowtown(에로우 타운)에 들려 박물관과 옛 중국인들이 사금채취를 위해 몰려와서 살았던 곳으로 역사 유물로 보존되어 있는 움막 촌을 둘러보았으며 1860년대 사금이 있는 산을 향해 산 밑으로 흐르는 카오라우 강물을 이용해 물대포를 산에 쏘아서 흘러내리는 사금을 밑에서 채취했다는 흔적들을 보았다. 물이 흘러내린 골이 패어 있고 물대포도 설치되어 있었으며 강 이쪽에서 저쪽으로 음식 나르는데 사용한 줄과 다리 등이 그대로 보존 되어있다. 조그만 한 arrow town은 상가마을로 관광객이 많음을 엿볼 수 있다.
와카티프 호수에서는 65불씩 주고 제트보트를 40여분 타면서 스릴을 맛보기도 했으나 가지고 온 돈이 떨어져 가는 것이 문제이다. option관광으로 어제 오늘 430불이 날라 가버렸다. 카우라우 다리에서는 번지점프를 구경했다. 우리 일행 중에서도 젊은이 넷이 1인당 115불 정도씩 돈을 내고 번지점프를 하는 것을 보았다. 젊음만이 가능케 하는 레저인 것 같았다.
어제 오늘 버스를 많이 탔다. 버스를 타고 가도 가도 넓은 초원이고 들판일 뿐 가끔 나타나는 집이나 마을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인 것 같았다. 사람이 귀하고 마을이 귀한 것은 틀림없고 넓고 넓은 곳이다. 승용차 꽁무니에 자전거 둘씩 매달고 가는 것, 보트를 끌고 가는 버스, 캠핑차를 매달고 가는 차들이 흔하게 보인다. 자전거 하이킹 족도 심심찮게 보인다. 먼 곳을 이동하는데 자전거로 하면서 운동을 하는 것 같다.
넓은 땅에 오늘은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젖어 본 하루였다. 오늘은 점심과 저녁을 한국인 식당에서 김치, 불고기 등 푸짐하게 먹기도 했다.
1월 7일 화요일
오늘은 Milford여행의 날이다. 오전 7시 30분 호텔을 출발하여 저녁까지 먹고 오후 9시 30분 다시 호텔에 도착했다. 엊저녁 호텔에서 계속 숙박하게 되어 다른 절차 없이 곧바로 방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환상의 코스들을 실컨 드라이브했다. 가이드가 오늘은 눈으로 마음으로 즐기는 관광이라 했다. 호수가 병풍을 두른 높은 산, 산 위에는 녹지 않은 눈이 있고, 실 폭포들이 수없이 높은 산꼭대기에서 수백 미터를 내려오고 있다. 월출산을 확대해서 몇 십 개를 늘어놓은 것 같다. 높은 산들의 기암괴석들이 가지각색이다. 산에 나무가 없으니 제 몸을 다 벗고 전부 보여주는 듯하다. 옷 벗은 여인의 모습이 아름답다면 이 산들이 모두 그 모양이다. 산과 호수(와카티프 호수)를 40여분 드라이브했고 다시 테아나우 호수를 따라 20여분 드라이브 했고 에그린튼 강을 끼고 얼마를 가기도 했다. 피요로드 국립공원이 있는 데를 비롯해서 양쪽에 울창한 산림 속을 중간 중간에 버스가 달리기도 했다. 너무 황홀한 경치에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가이드가 나더러 왜 안자느냐고 묻는다. 우리 일행이 피곤해서인지 모두 자고 있는데 나 혼자만 멀뚱멀뚱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이 가이드가 보기에 신기한 듯 했다.
지구의 최남단 지대인 모스본지대에 들렸다. 휴게소에 사슴동상이 있고 사슴이 많은 고장이라 한다. 사슴이 좋아하는 풀이 많고 공기가 사슴살기에 적당한 곳이어서 사슴을 많이 사육한다고 했다. 들판에서 한가히 풀을 뜯는 사슴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곳은 땅 값이 싸서 30만평-40만평을 1억 원 정도면 살 수 있다고 한다.
개나리 과에 속하는 소화라는 노란 꽃이 만발하기도 했다. 1 년 내내 7-8개월을 피어 있는 꽃이라 한다. 테아나우 호수는 빙하가 흘러내려 만들어진 호수로 그 길이가 67.2km에 1억 2000만평의 넓이로 433m의 깊이를 갖는다고 한다.
빙하의 산들이 물속에 아름답게 비치는 밀러레이크(거울 호수)에는 거꾸로 쓴 글씨를 물위에 놓았는데 물속에서 바르게 보이게 해 놓았다. 물의 표면이 전부 거울이었다.
드넓은 갈색 초원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눈 덮인 산들이 병풍을 친 아름다운 곳, 루카 point라는 산 중턱에서 저아랴 계곡으로 흐르는 옥색 돌에 깨끗한 물과 주변 산들의 절경, 참으로 아름답다.
해발 1000m높이에 바위산을 구멍 뚫어 1.2km길이의 홈마터널, 자연 상황 그대로 굴만 뚫어 놓고 굴 안에 바닥만 포장했을 뿐 위 옆은 전혀 치장이 없는 캄캄한 굴로 겨우 2대의 자동차만 교차할 수 있다고 한다. 굴 옆에 눈이 쌓여있는데 깊이가 10m로 발을 잘못 디디면 큰일 난다고 한다.
바람과 비와(물과) 공기가 빚은 바위와 폭포를 구경하는 chasm(캣슴), 바위해골이라 부르기도 했다. 구멍이 뻥뻥 뚫린 바위들이 쭉 널려져 있다.
Milford 항구에서 유람선을 타고, milford sound(협곡)관광 중 선상 점심을 먹었으며 1시간 반여의 유람선 관광은 장관이다. 일 년 강우량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7000미리로 비오는 날이 많은 지역인데 오늘은 맑은 날이어서 우리의 관광을 복 있는 행운의 관광이라고들 한다. 유람선에서는 한국인들이 많았기에 한국 가이드 한사람이 우리말로 관광안내를 맡아 주어서 더욱 도움이 되었다. 바위 위에서 딩굴면서 낮잠 자는 물개들, 147m 높이에서 낙하하는 풍부한 수량의 폭포, 자연 그대로의 돌고래 쇼, 85도의 경사를 이루는 절벽 밑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위를 쳐다보는 관광, 1시간 반 가량의 선상관광은 장관이었다.
오늘 같은 관광이 날마다 계속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꾸 했다.
‘참 아름다워라’라는 찬송을 이런데서 불러야 제대로 이겠구나 하며 콧노래를 불러보기도 했다.
※이민정책
-일반이민은 점수제
① 학벌(이공계 15점, 인문계12점, 20대 10점, 30대 8점, 40대 6점, 50대 4점)
③ 경력 2년에 1점씩
④ 재산 상태 6천만 원 이상 3점. 보증인 추천서(NZ인) 2점. 계 25점 이상에 영어(토플로 해서)550점 이상이면 ok
-투자이민
① 3억 7천이상 투자(오크랜드, 엘링톤, christchurch는 제외), 2년 이상 은행예치 불가
② 4억 7천 이상 2년간 은행예치도 가, 영어시험 통과는 일반과 동일
-난민이민 : 특수 경우
※ 유학제도
-3개월 관광비자로 입국, 와서 유학비자 받아도 됨. 학교를 정하고 유학허락 받으면 가
- 중, 고생 등 연간 교육비 1500-600만원(경험자 이야기, 하숙비, 한국 집 주당 200-300불 포함). 한국 돈으로 월 500,000원 정도.
해지를 이곳으로 유학시키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기도 했다.
1월 8일 수요일
엊저녁에 빨아서 널어놓은 양말이 덜 말라서 새벽에 일찍 일어난 아내가 전기 불 위에 양말을 널어놓았는데 조금 있으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벽걸이 형식의 전기 위에서 양말에 불이 붙고 전구 갓이 깨졌다. 놀란 아내와 나는 즉시 불을 껐는데 카페트에 떨어진 불똥이 약간 카페트를 그을려 놓았고 방안에 연기가 가득했다. 곧 문을 전부 열어 환기시키고 불붙은 흔적을 없애고 정신이 없었다. 호텔을 떠나오기까지 가슴이 조이고 무슨 말을 들을까, 변상이라도 하라고 할는지 초조했다. Queenstown의 coronet plaza에서 이틀 밤을 쉬었는데 떠나오기 전의 실수는 생각할수록 너무도 아찔하기만 하다.
여행 중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뼈저리게 경험한 셈이다.
Qeenstown 비행장에서 8시 20분 출발 NZ 국내선 비행기로 christcurch까지 왔고 다시 비행기를 바꾸어 타고 12시30분경 Auckland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곳 비행기는 국내선인데도 식사를 제공해 주어 하루 중에 두 번 기내식을 했고 그것이 점심이 되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남섬의 경치는 나무가 없는 높은 산들이 많고 만년설이 덮인 산이 지상에서 돌아다니면서 본 것과는 또 다르게 하얀 눈 덮인 산이 장관을 이루고 있고, 호수와 바둑판같은 초지들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무가 없는 산들은 이짚트, 이스라엘의 광야를 연상케 했고 다르게 표현하면 황무지가 널려 있다고 해야 될 것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다. 북섬에 들어서니 남섬에서와 같은 나무 없는 산은 없고 야산들에 나무도 많고 초지도 남섬의 많은 갈색 초원은 거의 없고 녹색 초지가 풍성하게 펼쳐졌다. 실제로 초지의 질이 북섬이 훨씬 좋다고 한다.
Auckland의 공황은 짐뱉튼 공항이라고 했다. 북섬에서의 가이드도 똑같은 사람이기에 자동차만 바꾸어 탄 셈이 되었고, 곧 우리는 오크랜트 시내를 지나서 이 나라 1번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로토루아로 향했다. 중간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휴게소에 잠시 들렸고 ‘포카레 카레 아나’라는 마오이 언어 노래를 가이드에게서 배우기도 했다. 약 3시간 버스를 타고, 맨 먼저 ‘파라다이스 벨리 스피링스’라는 곳에 들려 울창한 나무 숲 사이를 거닐며 멧돼지, 사자, 사슴 등 동물을 구경했고 맑은 물에서 노니는 수많은 숭어 떼를 보았다. 이곳은 대지가 약 40만평 되는 곳으로 개인이 구축한 관광지라 한다.
한 컵의 물을 마시면 5년씩 젊어진다는 샘물을 마시기도 했다. 나도 두 컵을 마셨다.
다음에 polynesian spa(폴리네시안 온천)에 가서 미네랄 온천, 라듐 온천, 유황 온천을 골고루 돌면서 온천욕을 하기도 했다.
주변 곳곳에서 온천수가 나오는지 김이 무럭무럭 나는 곳이 많으나 온천은 한 군데만 개발하고 모든 온천수가 한 곳으로 모이게 해 놓은 것이라 한다. 다음 스케줄 때문에 아쉽지만 약 1시간 정도의 온천욕으로 끝내야 했다.
저녁에는 로토루아에 있는 Quality Hotels Rotorua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뷔페로 한 후 마오리 항이 및 민속춤이라는 마오리족의 민속춤과 노래를 약 1시간 정도 관람하고 오늘 일정을 끝냈다. 온천에서는 뜻밖에 광여고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고 선생을 만나기도 했다.
1월 9일 목요일
로토루아에서의 하루였다. 호텔도 엊저녁과 같은 호텔이다. 오늘은 가이드가 쇼핑센터를 두 군데 안내해서 비교적 한가한 시간들이다. 같이 관광하는 젊은 층 세 가족은 쇼핑을 많이 하는데 우리는 전혀 쇼핑을 아니 했기에 다소 우울한 하루였다고 해야겠다. 양모 이불 등 양모제품들이 싸다고 가이드가 권장하고 실제로 값을 아는 사람들이 싸다고 모두 사는데 돈도 없고 필요도 없어서 그냥 구경만 했다.
이 곳 로토루아는 인구가 65,000인데 우리 한국인은 120명 정도 거주한다고 한다. 저녁식사는 한인식당에 가서 입맛에 맞는 식사를 했다.
NZ의 주요 산업은 목축, 임업, 관광업이라 한다. 이 나라의 목재가 좋아서 우리나라도 매년 1억 3000만 불의 목재를 수입해 간다고 한다. 임업 계통의 학자로 서울대 교수였던 홍 성우박사가 이곳에 이민 와서 산림연구원으로 종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이곳의 수목의 성장속도가 6배 정도 빠르다는 것을 논문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고 한다. 홍박사가 이곳에 이민 온 이유는 불구자 자녀(딸)가 있는데 이곳이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딸 때문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데 그 딸이 이곳에서 구김 없이 잘 성장해서 지금 의과대학 4학년이 되어 있고 딸의 공부가 끝나면 한국으로 다시 가겠다고 한다고 했다.
이 나라는 다리가 불구인 자녀가 있는 집은 학교에서 매일 학생을 데리러오고 끝나고 데려다 주고 하는 등 장애자에 대한 배려를 비롯해서 55세 이상 된 자에게 매월 60만 여원 정도의 노인 수당이 나오는 등 200여 가지의 각종 사회보장 혜택의 수당이 있는 나라라고 한다.
오늘은 맨 먼저 마오리 민속촌인 와카레와레와 지역에 갔다.
버스가 도착하니 마오리 여인 2명이 대기하고 있다가 코를 두 번씩 부딪치는 홍이라는 인사로 맞아주었다. 이 나라의 국목이라고 하는 고사리 나무를 비롯해서 숲이 좋고 마오리족의 집들이 고사리 나무로 지어져 있는 것들을 보았다. 대화산 지대였던 이곳은 대지혈지대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진흙천(내부 200C, 외부 89C)과 땅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물과 김으로 장관이다. 유황천이라고 하는데 황 냄새가 주위에 가득했고 뜨거운 물이 흐르는 간헐천이 있으며 한 곳에 돌바닥과 목욕시설이 있는데 돌바닥에서 찜질을 할 수 있는 곳이 되어 상당시간 누워서 찜질들을 하기도 했다.
높이 치솟는 물과 곳곳에 마오리족들이 지열을 이용해서 요리를 한다는 우물같이 된 곳들이 있고 지열로 옥수수를 삶아서 팔고 있기도 했다. 실제로 마오리족들이 생활하는 동네를 통과해서 나왔다.
다음에 blue and green 호수가 언덕에 올라 호수를 내려다보고 고사리 나무숲이 장관이어서 숲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었다. 440만평의 면적을 가진 레드우드 삼림욕장에서는 30분 코스의 산림욕을 하면서 숲속길이 좋아 소리 질러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 곳 삼림욕장 입구에는 색깔로 각 코스와 소요시간을 안내하고 있었는데 제일 짧은 것이 30분, 그 다음 1시간, 2시간, 8시간짜리까지 코스가 있는데 8시간 코스를 가게 되면 자연 동물들과도 만나게 된다고 한다. NZ의 산이나 들에는 뱀은 전혀 없다고 한다. 유황성분이 있는 화산지대여서 뱀은 살 수 없는 곳이기에 어디서나 뱀은 볼 수 없다고 한다.
오전 관광을 끝내고 skyline에 가서 곤돌라를 타고 산 위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바로 앞에 로토루아 호수가 넓게 있는 전망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는 것도 처음 맛보는 아름다운 정경이고 너무 좋았다. 산 위에 각종 놀이시설도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후 관광은 먼저 로투루아 호숫가에 나가서 검정고니, 오리, 비둘기.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아름다운 자연의 경지에서 시간을 보냈고, 아그로돔에 가서 19종류의 양을 소개받고 양털 깎기 show와, 양몰이 개의 쇼 등을 보았다. 관중 중에 사람이 나와서 젖소의 젖을 짜 보기도 하고 어린 양 5마리에게 우유를 먹이는 것들이 곁들어졌다. 해드폰을 끼고 있으니 한국어로 해설이 되어서 이해하기 좋았다.
저녁식사를 하게 된 코리아 하우스 한인식당에 들어가는 식당 벽에 한국인들 다녀간 사람들의 글과 이름들이 많이 붙어있어서 우리 일행도 이름들을 써서 벽에 붙여놓고 나왔다.
저녁 식사 후에 Govermant Garden에 들려 산책을 하며 장미를 비롯한 각종 꽃과 여러 조형물들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오후 8시경 호텔에 돌아왔다.
1월 10일 금요일
아침 8시 50분 호텔을 출발했는데 구름이 잔뜩 끼고 날씨가 좋지 않다. 로토로우에서 Auckland까지 오는데 Auckland에 가까이 올수록 날씨는 더욱 나빠져서 Auckland에 도착했을 때는 바람이 강하게 불고 비가 계속 내려서 관광에는 최악의 날씨였다. 100%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NZ의 마지막 날 교훈으로 주는 듯하다.
4시간이상 버스로 달린 것 같은데 좌우에 펼쳐지는 푸른 초원을 마음껏 감상한 하루였다. 초지가 바둑판같이 잘려서 울타리로 경계를 한 것을 이곳에서 패덕이라고 한다는데 양이나 소, 말 사슴들이 한 패덕씩 돌아가면서 풀을 먹어서 한 농장에 모든 패덕을 1년에 한 바퀴씩 도는 것으로 풀을 뜯어먹고 다음 패덕으로 옮기면 다시 풀이 자라서 다음에 와서 풀을 뜯을 수 있게 만들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한 농장이 소유한 초지의 넓이에 따라서 짐승을 기를 수 있는 마리수가 법으로 제한되어있고 초과되는 짐승을 길가에 울타리로 막은 곳에 가두어 두면 마리수가 부족한 농가에서 가져다가 기르게 된다고 한다. 참으로 좋은 나라이다.
가이드가 오늘 여행 중에 눈 한번 감으면 1000원씩 손해를 본다고 한다. 좋은 경치를 보지 못한 데에 따른 손해라는 것이다. 나는 오늘 손해를 하나도 보지 않았다. 눈을 감지 않고 계속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여행을 했으니까.
오늘 첫 관광지는 와이토모 동굴이었다. 석회석 동굴로 석조와 석순은 우리나라의 고수동굴보다 더 단순했으나 동굴 130m아래 흐르는 강에서 배를 타고 밖으로 나오면서 보게 된 Glowworm(반딧불 같은 벌레)들이 동굴 천정에 붙어 은하수처럼 빛을 발하는 것은 신기한 것이다. 버나드 쇼가 와서 보고 세계 8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라고 했다한다. 동굴관리는 마오이족들이 하고 있었고 모든 수입은 마오이족을 위해 쓰여 진다고 한다. 가는 길에 머드 팩 무역회사에 들려 미용에도 좋은 것, 신경통 관절염 등의 치료제 등 진흙 천에서 나온 원료로 만들었다는 머드 팩 쇼핑도 했다.
점심은 Kiwi가 운영하는 한식집에서 사슴 바베큐 등 한식 뷔페로 푸짐하게 먹고 Kiwi집 내부가 공개되어 있어서 집안도 샅샅이 구경했다. 우리와 큰 차이는 없지만 주방과 거실이 크고 많이 활용되는 것으로 보였다.
바람이 불고 비가 몹시 오기에 Auckland 시내 관광은 버스 안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하버브리즈 통과 바닷가 드라이브, 에덴동산, 한국전쟁참전비 등이 있는데 에덴동산에서만 잠시 내려서 Auckland 시내 전망을 했으나 비바람이 강해 사진도 못 찍고 곧 차에 올랐다. 196m의 에덴동산은 제일 높은 곳이고 분화구가 있는 곳이다.
Auckland 시가지에 들어서 비로소 NZ에 와서 처음으로 높은 빌딩을 보았다. 10여개의 높은 빌딩이 눈에 띄었고 타워도 상당히 높이 건설 중에 있다. 시내 주변에도 소들이 한가히 풀을 뜯고 있기도 했다.
바닷가에 있어도 바다냄새가 없다. 해초류가 없고 소금기가 다른 바다에 비해 적기에 냄새가 없고 부식시키는 요인도 없다고 한다.
Auckland는 요트의 도시라 한다. 바닷가에 숫한 요트들이 메어져 있다. 2000여대의 요트가 있어서 인구 1.8명당 요트가 1대씩 있는 셈이고 요트 복권도 있다고 한다. 요트를 바닷가에 정박시켜놓을 경우 정박료가 1년에 2,000,000원 정도여서 차 꽁무니에 달고 끌고 다니는 사람도 많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시이지만 집집마다 나무와 잔디밭은 다 있는 전원도시로 NZ의 인구 3분의 1가량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인도 12,000명가량이 살고 있고 하버브릿지 다리건너 북쪽에 70%가량이 거주한다고 했다. 상가가 좋고 바닷가가 가까우며 학군이 좋은 때문이다.
학교에 가면 한국인 학생이 20%정도 차지해서 외국어를 빨리 익혀야 되는 것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Auckland대학에도 140여명의 한국인 학생이 있다고 한다.
NZ은 6.25 때 우리 나라를 도운 16개국 중의 한 나라이다. 1550명이 참전하여 47명이 사망하고 141명이 부상을 당한 기록을 가진 나라이다.
한 달여 전에는 우리나라 해사생도들이 졸업여행 중 이곳에 들려서 교민들과 함께 Longbeach party를 바닷가에서 한 일이 있는데 200여명이 모여서 즐긴 후 끝난 다음 쓰레기 처리를 깨끗이 잘 처리하여 정리해 놓은 것이 신문 1면에 대서특필되어 모두 배우라고 해서 교민들의 가슴이 뿌듯했다고 한다.
이 나라는 쓰레기 분리수거제가 잘 시행되어 1주일에 한 번씩 쓰레기를 수거하는데 집집마다 잡쓰레기와 종이류와 재활용 가능 물 등 3가지로 분리해서 봉지 등에 잘 담아 집 밖에 내어놓으면 세 종류의 쓰레기차가 지나가면서 모두 수거해 가므로 청결을 잘 유지한다고 한다. 한국산 TV와 타이어 등이 점점 인기가 상승되고 있고 이 나라에서 사용되는 콘테이너는 한국산이 70%정도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녹용 판매점과 면세점에서 쇼핑의 기회를 더 가졌고 저녁식사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일관에서 갈비찜과 도미매운탕이 곁들인 푸짐한 식사를 했다.
해외여행은 해외교민을 돕는 일이 되는 것도 같다. 해외교민이 경영하는 식당, 쇼핑가게 등에서 돈을 쓰게 되고 가이드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결국 우리 동포를 돕는 면도 많이 있게 됨을 알 수 있다. NZ의 관광이 7박 8일에 걸쳐 끝났다. 내일은 아침 일찍 서둘러 호주의 브리스베인으로 가서 마지막 관광을 하고 모래 아침 한국을 향해 가게 된다.
1월 11일 토요일
관광의 마지막 날이다. 그동안 NZ에서 7박 8일간 무사히 관광을 마치고 오늘은 호주의 브리스베인으로 왔다. NZ를 관광한 소감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자연을 관리하는 사람의 지혜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우리나라는 지구의 북반구인데 이곳 NZ나 호주는 남반구의 나라들이다. 따라서 북반구와 남반구라는 차이 때문에 반대현상들이 많다. 계절이 반대이다. 이곳은 지금이 한여름이다. 밤하늘에 별자리와 달의 모양도 약간 다르다. 북두칠성을 볼 수 없고 남십자성 별 다섯 개가 선명하다. 물 흐르는 방향이 반대이다. 이곳은 북에서 남으로 물이 흐른다. 자동차는 전부 좌측통행이고 운전대는 오른쪽에 있다. 휘발유보다 디젤 값이 더 비싸다. 공해유발세가 붙어 있기 때문이라 한다.
까마귀가 길조이고 까치는 흉조인 것도 반대 현상이다. 예약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어 식당도 예약되어야 하고 지정된 장소에만 앉아야 한다. 화장실출입구는 문이 둘씩이고 장애자 화장실이 같이 있으며 어떤 곳은 어린이 화장실도 따로 있다. 화장실에서는 향수냄새가 있다. 사람들의 행동은 빠르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생활하며 웃어주는 버릇이 있다. 햇빛이 강하여 어린애 때는 참 귀여운 아이들이지만 사람이 나이가 들면 나이에 비해 더 늙어보이게 된다. 자외선이 우리나라의 3배정도 강하다고 한다.
오늘 아침 Auckland에서 5시 40분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9시 30분경 비행기로 이곳 호주 브리스베인으로 출발해 왔는데, 브리스베인까지는 3시간여의 비행시간이 걸렸는데 도착하니 이곳 시간으로 10시였다. NZ와 이곳 브리스베인과는 3시간 시차가 생겨서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이 같은 현상이 된 것이다. 오늘은 시간을 3시간 더 번 셈이 되었다. 호주는 지방자치제가 잘 시행되다 보니 같은 나라안 에서도 시차가 생긴다. 시드니와 이곳 브리스베인도 1시간 차이가 나는데 시드니가 있는 곳은 summertime을 실시하지 않고 브리스베인이 있는 곳은 실시하는데서 오는 차이라고 한다.
국경을 또 한 번 넘다보니 공항출입이 까다로와 일행 중에 한 가족이 NZ에서 쇼핑한 깨 등을 공항에서 압수당하고 나오는 현상이 생겨서 다소 지체하다가 11시경 공항을 출발하여 관광명소인 Gold coast로 향했다.
브리스배인은 면적이 서울의 4배정도 되는데 인구는 175만이고 주택들은 단층으로 정원이 잘 가꾸어진 모습들이 보인다. 땅이 넓으니 정부에서 주택건설은 단층으로 하게 한다고 한다. 가옥내의 구조도 편리하게 잘 되어 있어서 음식 쓰레기 같은 것은 바로 주방에서 분해 정화되어 처리된다.
호주는 8%정도가 농업인구이고 석탄 철광석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해서 광업도 주요산업이며 76%정도의 인구는 서비스업에 종사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골드 코스트는 50%이상 일본인들이 살고 있고 그들에 의해 개발된 곳이라 한다. 해변의 길이가 43.7Km에 모래사장이 31Km라 한다. 해변에 잠시 내려서 모래를 밟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가 해수욕과 일광욕들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니 여름휴가철임을 실감했다. 호주의 많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철을 이곳에서 보낸다고 한다. 거기에 세계 여러 나라 관광객까지 몰려드니 국제인종 박람회 같은 인상이다. 면세상가도 많고 휴양지 탓이라고는 하지만 수영복만 입고 시내를 활보하며 대부분 반바지에 런닝 정도의 옷차림이다. 긴바지를 입은 우리 일행은 촌티가 나는 것 같은 인상이다.
NZ는 뱀이 전혀 없다고 했는데 호주는 뱀이 많다고 한다. 프라스틱 지폐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세계 최초라 한다.
점심식사는 독일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생선 등으로 맛있게 먹고 동물원에 갔다. 동물원에는 외부에서 들여 온 동물은 없고 순 호주가 원산지인 동물들만 있다고 하는데 앵무새종류에 속하는 아름다운 새들이 눈에 많이 띄고 캥거루와 쿠알라 등 많이 듣던 동물들을 보고 먹이를 주며 가까이서 동물들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새들이 쇼를 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먹이를 들고 있으면 앵무새 같이 생긴 예쁜 새가 날아와서 머리에도 앉고 먹이그릇에도 앉으며 먹이를 먹으면 그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고 야단들이다. 다행이 나와 아내의 그릇에도 새가 날아와서 사진을 찍었는데 허탕을 치는 사람이 많다. 저녁식사 전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오팔가게에 가서 보석구경도 하고 저녁식사는 한국인 교회장로가 경영하는 초원식당에서 불고기로 푸짐하게 식사를 했다. 덕분에 주인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뜻밖에 계림교회에서 아내가 중등부 교사로 봉사할 때 가르친 동탁이를 만나서 반갑기도 했다. 동탁이는 군대제대하고 대학 복학 전에 이곳에 여행 와서 7월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대견했다. 여행 중에 아는 사람 만나기가 어려운데 이번 여행에서는 아는 사람도 만나고 하니 해외여행이 그만큼 흔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녁식사 후에는 마지막 관광지인 Sea world에 가서 수상스키 쇼와 불꽃놀이를 보았다. 관광여행의 휘나래가 참 멋지게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좋은 관광이었다. 남녀 수상스키 선수들의 각종 묘기 후에 어둠이 깃든 밤하늘에 펼쳐지는 불꽃놀이는 장관이었다. 가까이에서 불꽃놀이를 본 것도 처음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피로를 가시게 하는 것 같은, 본 사람만이 알 것 같은 화려한 불꽃 놀이었다. 1월 19일까지 한정된 행사라 하는데 우리가 때맞춰 와서 보게 된 것이라 했고 수상스키도 낮 시간인 것을 공항에서 지체한 것 때문에 밤 시간으로 변경되어 불꽃놀이까지 보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모든 구경이 끝나고 브리스배인에 있는 호텔까지 1시간 달려오니 골드 코스트와 브리스배인의 야경까지 겸하여 볼 수 있었다. 야간의 조명은 간접조명방식이라 하는데 다리도 아래부문에서 조명을 해주므로 공중에 떠있는 것 같이 보이고 나무들도 밑에서 위로 불을 비쳐주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긴 해변이 있지만 해변에서 술을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서 포장마차 같은 것 하나 없는 깨끗한 자연의 유지에 노력한다고 한다.
여행은 가슴 눈 피부로 느끼는 것이라 한다. 피곤한 중에도 느낌이 많고 배워지는 것이 많다. 좋은 면들을 배워 우리나라에 가서 실천하고 보급하는 노력도 해야 할 일이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내일은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향해 가면 서울에는 밤에 도착하게 되고 광주는 모래 비행기로 내려 갈 예정이다. 여행기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도록 건강을 지켜주신 하나님 사랑에 감사기도를 드리고 분위기 좋은 이곳 Powerhouse Hotel에서 편한 밤을 지낸다.
1월 13일 月.
어제는 호주의 브리스배인에서 NZ항공편으로 서울을 향해 하루 종일 날아 왔다. 약 10시간의 비행으로 서울에 오후 7시경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일행의 좌석이 보통석이 아닌 business class였다. 1등석으로 자리가 주어진 것이다. 여행사측에서는 생색을 내느라 야단인데 내 짐작으로는 출발 때 서울에서 지연된 것에 대한 비행기회사 측의 보상차원의 배려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보통석도 많이 비어 있었고 1등석도 비게 되니 주어진 혜택 같았다. 1등석은 처음 타본 것인데 좋은 점이 많았다. 세면도구와 약간의 화장품이 들어 있는 지갑도 선물로 주고 식사도 보통석과 다름을 알 수 있고 좌석도 넓고 편하다. 어쩌면 평생 앉아 볼 수 없을 것 같은 좌석에서 대우를 받으며 귀국한 것이다.
서울에 도착하여 공항부근의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오늘아침 10:30비행기로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한국의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모든 상황이 돌변했다. 꿈속에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우선 사람이 많고 차가 많다. 화장실에 가도 다르다. 향수 냄새가 화장실 냄새로 바뀌었다. 여관에 들어가니 고리타분한 냄새에 침구도 지저분하고 욕실도 침침하여 들어가기가 싫다. 물론 일류호텔로 다니다가 장급 여관에 들어온 차이도 있겠지만 그 차이가 너무 큰 것이다. 기분이 내키지 않아 샤워도 하지 않고 그냥 잤다. 한 가지 좋은 점은 방바닥이 따스해서 온돌방의 따스함이 우리 체질에 맞은 것 같고, 아침에 일어나니 피로가 가신 듯 몸이 가벼웠다. 된장찌개로 아침식사를 하니 그 맛 또한 좋았다.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10여 일간 꿈속을 헤매다가 현실로 돌아왔다. 꿈같은 나라 그 곳에 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좋은 여행이었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람의 지혜 (여행 후 기행문으로 교회 회보에 기고한 글)
1997.1.2.-12. 호주 뉴질랜드 여행
사람의 지식은 공부를 해서 늘어나지만 경험과 여행에 의해서 늘어나기도 한다. 공부는 조금 했어도 나이가 든 어른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인생을 살아 온 동안에 경험에 의해서 쌓인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에 의해서 늘어난 지식도 경험의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여행은 취미 생활과 관련이 있다. 여행은 피곤하게도 하고 돈과 시간이 많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취미가 없으면 하지 않게 된다. 여행의 재미를 알고 취미가 있게 되면 피곤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여건만 마련되면 여행을 하기 마련이다. 나는 내 자신이 생각해도 여행에는 대단한 취미를 가진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적금 등으로 시간 있을 때 떠나기 위한 준비를 자주 한다. 97년 1월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을 했다. 해외여행은 낭비이고 국가 재정이 어려운 때 자제해야 된다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도 얻어지는 것이 많고,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기에 떠났다. 그 대신 여행경비 외에는 일체의 쇼핑은 하지 않았다. 호주에서 2박 3일, 뉴질랜드에서 7박 8일을 보내면서 뉴질랜드의 남섬과 북섬, 주요 관광지를 다 돌아보았고, 호주는 시드니와 브리스베인, 그리고 골드코스트 세 군데만 다녀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뉴질랜드라는 나라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었고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뉴질랜드의 곳곳을 버스로, 또는 비행기로 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내가 세계 모든 곳을 다 다녀 본 것도 아니고 7박 8일 정도로 우리나라의 1.5배, 남한의 2.7배라는 큰 나라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다녀본 것에 불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들에서 감히 해 보는 말이다.
뉴질랜드의 관문이라고 하는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공항에 내리니 공항 통과가 매우 까다로 왔다. 외국인 보따리들을 전부 풀어본다. 일체의 농산물 반입이 금지된다고 한다. 밖에서 묻어오는 균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2시간여에 걸친 까다로운 공항통과 절차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시내로 들어가는데 도로변에 있는 주택들을 보면서 눈이 번쩍 뜨이고 어느 낙원에 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담한 단층집이 넓은 잔디가 덮인 정원이 있고 나무가 있고 아름다운 꽃들이 집 주위를 두르고 있다.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조용한 분위기에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의 집들이 연속이다. 울타리는 없거나 짐승이 넘지 못할 정도의 낮은 울타리들이다. 잔디를 밟고 다니고 잔디 위에 자동차도 주차되어 있다. 여러 공항에 내려 보았지만 이렇게 정원 풍경이 있는 공항은 처음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볼 때도 경지 정리가 잘 된 초원이 연속되고 빌딩 하나 보이지 않는, 모든 건물이 단층으로 되어 있는 시골 풍경이다. 뉴질랜드의 모든 곳에서 계속적으로 보게 된 아름다운 전원의 모습이었다.
여왕이 살기에 알맞은 도시라는 뜻을 가진 퀸스타운(Queenstown)이라는 곳은 우리 평수로 계산해서 1억만 평의 넓이를 가진다는 와카티푸 호숫가에 있는 도시로, 호수 주변에 아름다운 주택들이 있고 장미를 비롯해서 각종 꽃 속에 묻힌 도시였다. 인구가 고작 3,800명인데, 매일 유동 인구가 2만 여명이라니 유명 관광지이다. 해발 2,700m가 넘는 높은 산을 비롯해서 기암괴석으로 된 월출산 몇 개를 이어 놓은 것 같은 산들이 호수 뒤편으로 병풍을 두르고 있고, 산 위에는 만년설로 하얀 모자를 쓰고 있다. 정말로 여왕이나 살아야 될 것 같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북섬의 로토루아도 커다란 호숫가에 있는 도시로 비슷했으며, 높은 곳에 있는 식당으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점심을 먹으면서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충분히 황홀하게 했다.
관광지를 옮겨 다니면서 많게는 5시간, 적게는 2시간 정도씩 버스를 탔다. 버스로 달리면서 바라다 보이는 것은 끝없이 넓은 초원에 양과 소와 말과 사슴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들이 번갈아 나타났다. 축사가 없고 모든 가축들은 방목을 하기 때문에 짐승들이 자유자재로 풀을 뜯으며 살고 있고, 자연적으로 번식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필요시에만 사람이 나올 뿐, 많은 가축들이 있는데도 인건비가 전혀 들지 않고, 잘 훈련된 개를 이용해서 필요시 짐승들을 옮긴다. 초지를 구획정리해서 울타리로 경계를 지어 놓고 돌아가면서 방목을 하기 때문에 초지 관리도 저절로 된다. 초지를 소유한 면적에 따라 가축 수를 제한하고 있고, 남는 가축은 도로변에 조그마한 테두리로 막아 놓은 곳에 모아 놓으면 가축수가 부족한 집에서 가져가도록 되어 있다. 참으로 좋은 나라이다.
뉴질랜드는 국가 시책으로 자연을 최대한 원형대로 보존하기 위해 개발을 억제한다고 했다. 폴리네시안 온천 지역에 가니 곳곳에서 뜨거운 물이 흐리고 땅에서 김이 무럭무럭 났다. 그런데 온천탕은 한 군데 뿐이다. 온천욕은 노천탕으로 만들어진 그 한 곳에서만 하도록 했을 뿐 개발을 하지 않는다. 와카레와레라는 원주민이 있는 마오리 민속촌에 가니 땅에서 진흙이 부글부글 끓고 있고 땅속에서 분수처럼 물이 솟으며, 뜨거운 김으로 일대가 뿌옇다. 가까이 갈 수 없게 울타리만 해 놓았을 뿐 자연 그대로이다.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는 호수와 바다가 연결된 곳인데 147m높이의 장대한 폭포와 호숫가 바위에서 낮잠 자는 물개들, 돌고래들이 쇼 하는 모습을 자연 그대로를 보았다. 밀포드를 가는 길에 1.2km되는 터널을 지났다. 바위를 뚫은 터널의 내부와 외부가 전혀 치장이 되지 않고 있다. 자연 그대로에 자동차 2대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굴을 뚫어 놓고 바닥만 포장을 했을 뿐 굴 앞이나 속이 울퉁불퉁한 바위 그대로이다.
뉴질랜드에서 제일 높은 마운틴 쿡(해발 3,764m)은 헬리콥터를 타고 관광을 했다. 해발 3,020m지점 빙하지대에 착륙하여 눈 속을 거닐며 사진을 찍고 무공해의 눈을 먹어도 보았으며, 산 정상은 다시 헬기로 아주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다. 날씨에 따라 산이 구름 속에 가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데 우리가 간 날은 너무도 쾌청한 날씨여서 최고 행운이 따른 날이라 했다.
1억 평이 넘는다는 거대한 와카티프 호수에서는 제트보트를 타고 스릴을 만끽하며 호수로 물이 모여드는 한쪽 계곡을 이곳저곳 살펴보기도 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자연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현장들이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원형대로 보존하려고 애 쓰는 인간의 지혜가 현명함도 엿볼 수 있는 곳들이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그 관리를 맡은 인간의 지혜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 뉴질랜드이다. 순수한 자연 속에 푹 파묻혀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뉴질랜드는 사회보장 제도가 잘된 나라이기도 하다. 55세 이상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60여만 원의 노인수당이 나오고, 학생이든 어른이든 학교나 국가가 인정하는 학원에서 공부를 하면 학생수당이 나와서 학비는 물론 식생활까지 해결된다고 한다. 장애자가 결코 부끄럽지 않은 사회이기도하다. 서울대학교 농대 홍모 교수가 장애자 딸 때문에 이민 가서 살고 있다고 했다. 장애자는 학교에서 데리러 오고 하교 시에는 데려다 준다. 모든 시설에 장애자 편의 시설이 같이 있다. 그렇다고 장애자가 많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수 장애자를 위해 모든 시설에 배려가 되고 있는 사회였다. 200여 가지의 사회보장 수당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겠는가. 국민들은 돈 벌려고 애 쓸 필요가 없고, 여행을 즐기며 자신의 시간을 아끼며 산다.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된 만큼 조세제도가 철저해서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이기도 한다. 그러한 것이 돈 벌기에 애쓸 필요가 없게 하기도 한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김포공항에 내리니 꿈속에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높은 빌딩, 아파트 숲들이 가득하고 길에는 자동차들이 꽉 차 있다. 내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빠르고 어떤 사람은 뛰어간다. 꿈속에서 현실로 돌아 온 듯한 입맛이 씁쓸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모여 살아야지 드문드문 떨어져서 자연과 벗하며 산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 하는 시새움으로 현실적인 나의 환경에 대한 위로나 받아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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