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을 건너다 (여호수아 3장 1~6절) - 믿음이란
광야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땅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 드디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요단을 건너야 하는데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수3: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수3: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요단을 건너기 위해서는 언약궤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고 합니다.
언약궤는 성경에서 여러가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법궤라 부를 때는 심판에 관련된 내용이 나올 때 법궤라 부르고 (레16:2)
증거궤라 할 때는 무엇을 증거하는 내용이 나올 때 증거궤라 부르고 (수4:16)
언약궤라 할 때는 언약에 관련된 내용이 나올 때는 언약궤라 부르고
궤라고 부를 때는 위 내용과 관련이 없는 내용이 나올 때 궤라 부릅니다.
수3:3절에서 언약궤라 부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일하고 계시다는 뜻이 담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실 때에는 미리 계획하시고 알리시고 말씀하시고
백성이 듣게 하신 후에 그 일을 행하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48:3 내가 예로부터 처음 일들을 알게 하였고 내 입에서
그것들이 나갔으며 또 내가 그것들을 듣게 하였고
내가 홀연히 행하여 그 일들이 이루어졌느니라
이 말씀처럼 성경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백성들에게
알리시고 선지자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듣게 하시고
때가 되면 그 일을 행하신 일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는 것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하나님이 지키고 계시다는 뜻으로 언약궤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뒤 따르라’ 하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고 계시는 그 뒤를 따라가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약속하시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 주신 그 뒤를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따라가라 하는가?
언약궤와 백성의 사이를 이천 규빗쯤 되게 하라 말합니다.
이천 규빗은 약 1키로 미터 되는데 이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1키로 앞을 앞서가는 언약궤의 모습은 보일 듯 말듯 할 것입니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요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일 것입니다.
이 모습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11:1 <믿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실상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바라보며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보고 따라가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선진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보이는 것처럼 바라보며 따라가는 삶을 통하여 증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갈대아 우르에 살고있던 아브라함은
자신이 갈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모르고
약속의 말씀만 바라보고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눈으로 보이는
것처럼 바라보며 따라가는 것을 성경은 믿음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 앞에서 기적과 이적을
행하여 주시면 믿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눅16: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눅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눅16: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모세와 선지자는 구약성경을 말함)
눅16: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눅16: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기적과 이적 그리고 죽은 자가 살아와서 증언해도
믿음에 이르지 못하고 성경의 말씀을(복음의 말씀) 보고 들을 때
성령님이 깨우쳐 주셔야 믿음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또 4절에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합니다.
언약궤를 따라가면 무엇을 알게 된다는 것일까?
수3: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수3: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수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언약궤가 강물을 가르고 보이지 않던 길을 만들어 주어
그 길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넌 것입니다.
여기서는 언약궤를 궤라 표현하고 있는데
이 궤는 무엇을 상징하는 표현 일까?
이 궤 안에는 ‘십계명 돌판, 만나,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십계명 돌판은 율법(죄)을 상징하고
만나는 생명의 떡인(대속제물) 예수님을 상징하고
싹난 지팡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자신의 백성의 죄를 지시기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대속의 제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궤는 예수님을 상징하며 예수님이 행하실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길을 만들어 주셔서
지나보지 못한 길을 통하여 요단을 건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길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바라보며 믿음으로 따라갈 때
예수님이 만들어 주신 길을 통하여 건너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실 것이니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 뒤를 따라 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에서 추방하시며
그들의 죄를 덮어 주실 메시아를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시어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굳게 닫혀있던 하나님 나라를 향하는 길을
십자가를 통하여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이천 규빗 앞에서 이 일을 행하여 주신 것이며
우리에게 이것을 실상으로 바라보며
예수님이 행하여 주신 길을 따라오라고 말하고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땅으로 요단을 건너게 된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 반드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소망하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롬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첫댓글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