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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로의 초대
할렐루야!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좋으신 하나님 우리 모두 함께 예언서를 배우고 또 이사야서를 배우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저희들에게 지혜와 열심과 즐거움을 주셔서 예언서를 잘 배우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친히 예언이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이사야서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잘 배우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종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게 하소서 저를 위해 수고하는 모든 분을 축복하시고 평안을 주옵소서
샬롬! 많은 분들이 예언서로의 초대를 읽어주셨습니다. 제가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려운 예언서를 공부하니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아서 일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네!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고 그 상태에서 전하려는 욕구도 대단합니다. 먼저 제가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진도가 나갈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이사야서 개관과 1장의 정리분을 올립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성경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읽고 직접 정리를 해 보면 너무나 많이 이해가 됩니다. 시작이 반이니 반은 이사야서를 한 것입니다. 시간과 물질이 있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를 하면 인생 최고 최대의 축복이 임하리라 믿습니다. 먹고 살만하신 분이 무엇이 또 갈급해서 다른 일에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시간을 쓰려고 합니까? 제 나이 또래 성공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젊은이는 좋은 직장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제 한눈에 보는 성경에 소개된 이사야서 개관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사야서로의 초대 (케네스 보아와 브루스 윌킨스의 한눈에 보는 성경 요약)
‘히브리 예언의 에베레스트’와도 같은 이사야서는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첫 39장은 구약성경의 39권에 해당하며 하나님의 공의, 거룩하심, 정의를 강조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로부터 시작하여 그 주변국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온 세상에 대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부도덕한 백성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하심 앞에 숙연해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머지 27장은 신약성경의 27권에 비교되며 하나님의 영광과 긍휼, 무한한 은총을 묘사하고 있다. 장차 메시야가 십자가를 지실 구세주로서, 그리고 면류관을 쓰실 전능자로서 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40:1)고 기록하고 있다.
초점 | 심판의 예언들 1:1-35:10 | 역사적 삽입구 36:1-39:8 | 위로의 예언들 40:1-66:24 | |||||
구 성 | 유다를 향한 예언 1-12장 | 다른 나라 예언 13-23장 | 주의 날 에 대한 예언 24-27장 | 심판과 축복의 예언들 28-35장 | 히스기야 구원, 질병. 죄 36-39장 | 이스라 엘의 구원 40-48 | 이스라엘의 구원자 49-57 | 이스라엘 의 미래 58-66 |
주 제 | 예언적 | 역사적 | 메시야적 | |||||
심판 | 과도기 | 소망 | ||||||
장소 | 이스라엘과 유다 | |||||||
연대 | 주전 740-680 |
이사야서의 개론과 제목
이사야서는 성경의 축소판과도 같다. 첫 39장은 구약 성경의 39장 처럼 부도덕한 우상 숭배자들을 향한 심판으로 가득 차 있다. 유다 민족이 범죄 하였고, 그 주변 국가들이 범죄 하였으며 모든 민족들이 범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명백한 죄악이 묵과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는 분이시기에 심판은 반드시 와야 한다. 하지만 나머지 27장은 신약 성경의 27권처럼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메시야가 장차 십자가를 지고 면류관을 쓰기 위해 구세주와 전능자로 오실 것이다.
유다의 네 명의 왕들의 집권 기간에 걸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사역은 최소한 40년 동안 지속되었다.
Yesha’yahu와 그 간략형인 yeshaiah는 “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갖는다. 이 이름은 본서 전체의 내용을 훌륭하게 요약하는 이름이다. 헬라어로 기록된 구약 성경인 70인 역에 나타난 헬라어 제목 형태는 Hisaias이며 라틴어 형태는 Esaias, 또는 Isaias이다.
저자
‘구약성경의 사도 바울’인 이사야는 유력한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어휘와 문체는 그가 받은 교육 수준을 말해준다. 그의 저작은 그 범위에 있어서 방대하며 그 메시지를 뛰어나가 전달하고 있다. 이사야는 왕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외세와 연합하는 것을 반대하는 그의 권면이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이 위대한 시인 겸 선지자는 타협할 줄을 몰랐고, 정직했으며 동정심이 많았다. 그의 아내 또한 여자 선지자였으며 이사야는 적어도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7:3, 8:3)
그는 대부분의 생애를 예루살렘에서 보냈고, 탈무드에 따르면 므낫세 치세 동안 그는 박해자들이 그를 톱으로 처형하였다고 한다(히 11:37 참고)
본서의 통일성은 ‘제2 이사야’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40-66장을 기록했다고 주장하는 비평가들에 의해 도전받아왔다. 그들은 1-39장이 앗수르(앗시리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반면, 40-66장은 바벨론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벨론은 40-66장에서뿐만 아니라, 1-39장에서도 두 번 이상 언급되고 있다. 유일한 차이라면 현재적인 관점에서 미래적인 관점으로의 변화일 뿐이다. 비평가들은 또한 언어나 문체, 그리고 신학에 있어서도 두 부분 간에 급격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1-39장과 40-66장 간에는 차이점들보다는 공통점들이 더 많다. 여기에는 주제, 이미지, 수사학적인 수식어들, 독특한 표현들, 그리고 지엽적인 특색들의 유사성들이 포함된다. 첫 단락이 그 내용에 있어서 다소 간결하고 합리적인 것에 반해 후반부는 문체가 보다 매끄럽고 감정적인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주된 이유는 다르게 주제-징계와 위로-의 차이 때문인 것이다. 내용이나 시대, 상황 등이 전형적으로 저자의 문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비평가들은 가끔 망각한다. 게다가, 1-39장에서 메시야를 왕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과 40-66장에서 고난받는 종으로 강조한 것 사이에는 어떠한 신학적인 모순도 전혀 없다.
강조하는 정도에 있어서의 차이일 뿐, 메시야는 두 부분에서 종과 왕으로서 함께 묘사되고 있다. 또 다른 논쟁은 이사야가 바벨론 포로와 고레스(44-45장에서 이름까지 언급되었다) 때의 귀환을 150년 이전에 예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성경의 예언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전제에 입각한 것이며, 본서의 분명한 주장(42:9)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 논리는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문자적으로 실현된 이사야의 놀라운 예언들을 결코 설명할 수 없다(‘이사야서와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
이사야서의 통일성은 집회서(the Book of Ecclesiasticus)나 70인 역, 탈무드 등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신약 성경 또한 이사야가 모든 책을 기록하였다고 인정하고 있다. 요한복음 12장 37-41절은 이사야 6장 9-10절, 53장 1절을 인용하였으며, 모두 이사야를 그 저자로 인정하였다. 로마서 9장 27절, 10장 16-21절에서 바울은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10,53,65장) 그것을 이사야의 저작이라고 말했다. 마태복음 3장 3절, 12장 17-21절 누가복음 3장 4-6절, 그리고 사도행전 8장 28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40-66장이 거기에 기록된 사건들이 발생한 ‘이후’ 다른 선지자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라면, 이는 우리를 현혹하게 하는 믿지 못할 저작(거짓된 위작)이 되고 말 것이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구약 성경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유일한 저술 선지자(writing prophet)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기록 연대와 배경
이사야의 사역은 기원전 740년에서 680년에 걸쳐 오랫동안 계속되었다(1:1) 그는 자신의 사역을 웃시야 왕의 치세 말년(기원전 790-739)에 시작하여 요담 왕(기원전 739-731년), 아하스 왕(기원전 731-715년), 히스기야 왕(기원전 715년-686년)의 치세 기간 동안 지속했다. 앗수르는 디글랏빌레셋 때에 강대국으로 자라났는데, 그는 동방지역을 점령한 이후에 서방으로 세력을 펼쳐나갔다. 그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포함한, 지중해 연안에 산재한 약소국가들을 점령해나갔다.
이사야는 유다에 대한 이러한 정치적 위협이 극심하던 시기에 살면서 유다의 왕들이 하나님의 능력보다 다른 나라들과의 연합을 의지하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인으로서 이사야는 시기적으로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시기에 예언했지만, 자매국인 이스라엘의 죄를 따르고 있던 남왕국 유다를 향해서 주로 사역을 했다. 기원전 722년에 이스라엘이 몰락한 후에, 그는 바벨론이 아직 득세하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앗수르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벨론 왕국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사야는 아수르의 디글랏빌레셀왕의 시기(기원전 745-727년)로부터 시작하여 산헤립 왕(기원전 705-681년) 때까지 사역했다. 그는 37장 38절에서 산혜립이 기원전 681년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히스기야 보다 더 오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히스기야의 뒤를 이어 그의 사악한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었는데, 그는 야훼 숭배를 버리고 이사야의 활동을 핍박했다.
주제와 목적
본서의 중심주제는 이사야의 이름에서 발견된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구원’이란 단어는 이사야서에 26번이나 나타나지만 다른 예언서에서는 모두 합쳐 겨우 7번 나타난다. 1장부터 39장까지는 구원에 대한 인간의 절박한 필요를 묘사하며 40장부터 66장에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보여준다. 구원은 사람으로부터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으며,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통치자, 역사의 주권자, 그리고 유일하신 구세주로 묘사되었다.
이사야는 유다의 도덕적인 부패와 정치적인 타락, 사회적인 불의, 그리고 특별히 종교적인 우상 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죄악된 행위에서 돌아서지 않을 것을 알고 이사야는 유다 왕국의 궁극적인 몰락을 선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건한 남은 자들을 보전하시고 장차 올 메시야를 통한 구원과 해방을 약속하셨으므로 자신의 언약을 충실하게 지키실 것이다. 구세주는 유다 족속으로부터 나타날 것이며 구원과 회복의 이중 사역을 성취하실 것이다. 이방인들도 구세주에게로 나아올 것이며 우주적인 축복이 마침내 도래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서의 핵심
핵심 단어-구원
핵심 구절(9:6-7,53: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9:6-7)
핵심 장(53장)- 시편 22편과 더불어 이사야 53장은 메시야의 속죄(atonement) 에 대한 가장 놀랍고 구체적인 예언들을 열거하고 있다. 이 분명한 예언들을 성취하면서 유대 민족은 후에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입증했다.
이사야서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에 관하여 언급하는 측면에 있어서 이사야는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보다는 오히려 신약 성경의 기자처럼 보인다. 그의 메시야 예언들은 구약 성경의 어떤 다른 책들보다 더욱 명료하며 상세하다. 그 예언들은 초림과 재림시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역의 여러 측면들을 설명해주며 이 두 측면들을 자주 혼합하기도 한다.
다음은 기독론적인 예언들과 그에 상응하는 신약성경의 실현의 예들이다. 7장 14절(마 1:22-23), 9장 1-2절(마 4:12-16), 9장 6절(눅 2:11, 엡 2:14-18), 11장 1절(눅 3:23,32, 행 13:22-23), 11장 2절(눅 3:22), 28장 16절(벧전 2:4-6), 40장 3-5절(마 3:1-3), 42장 1-4절(마 12:15-21), 42장 6절(눅 2:29-32), 50장 6절(마 26:67, 27:26,30), 52장 14절(빌 2:7-11), 53장 3절(눅 23:18, 요 1:11, 7:5), 53장 4-5절(롬 5:6,8), 53장 7절(마 27:12-14, 요 1:29, 벧전 1:18-19), 53장 9절(마 27:57-60), 53장 12절(마 27:12-14, 요 1:29, 벧전 1:18-19), 61장 1절(눅 4:17-19,21) 등이다.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 초림에 관련된 예언들이 무려 300가지 이상으로 있으며 이사야가 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 중에 10가지 이상이 한 사람에 의해서 성취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통계적으로 놀라운 일이다. 주님의 재림시에 성취될 이사야의 메시시야 예언들은 다음의 구절들을 포함한다(4:2, 11:2-6, 10, 32:1-8, 49:7, 52:13, 15, 59:20-21, 60:1-3, 61:2-3)
위로의 단락(40-66장) 중의 중심 부분(52:13-53:12)에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다섯 가지 다른 측면들을 보여준다. (1) 52장 13-15절: 그의 철저한 희생(번제), (2) 53장 1-3절: 그의 완전하신 성품(소제), (3) 53장 4-6절: 그는 하나님과 화평을 초래하는 속죄를 가져오셨다(화목제), (4) 53장 7-9절: 그는 사람들의 범죄한 대가를 치르셨다(속죄제), (5) 53장 10-12절: 그는 죄의 결과를 위해서 돌아가셨다(속건제)
성경전체에의 기여
이사야서는 신약성경에서 다른 어떤 선지자들보다도 많이 인용되었다. 그의 이름은 21번 언급되었고 53장 한 장에만도 신약성경에서 85번이나 직접, 간접적으로 인용되었다. 이사야서는 체계적인 전개와 독특한 비유적 표현들, 광범위한 주제, 명료성, 아름답고 강렬한 필체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의 어떤 예언들은 이미 성취되었지만, 많은 예언들은 아직도 그 성취를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4장 18-20절에서 이사야(61:1-2)를 인용하셨지만 문장의 중간인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에서 멈추셨다. 이사야서의 계속되는 구절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 내용은 그리스도에 의해 분명히 성취되었지만, 두 번째 내용은 주님께서 고난받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통치하실 왕으로 다시 오실 때에 성취될 것을 기다리고 있다.
이사야서 개관
‘예언서 중의 셰익스피어’인 이사야서는 그의 믿기 힘들 정도로 뚜렷하고 상세한 메시야 예언들로 인해서 가끔 ‘복음적 선지자’로 불리워졌다. ‘이사야에 의한 복음’은 크게 세 단락으로 구분되어진다. 심판의 예언들(1-35장), 역사적인 삽입구(36-39장), 그리고 위로의 예언들(40-66장).
심판의 예언들(Prophecies of Condemnation, 1-35장): 이사야의 첫 번째 심판의 메시지는 유다왕국에 있는 자신의 동족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1-12장). 1장은 본서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는 메시지다. 유다왕국은 도덕적, 영적인 질병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의식주의와 이기주의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 하나님께만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은혜스럽게도 그들을 회개하고 그분에게로 돌아오도록 초청하셨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라는 이사야의 소명은 6장에서 나오며, 이어서 임마누엘의 내용이 뒤따른다(7-12장). 이 장들은 거듭해서 메시야를 언급하고 있으며(7:14, 8:14, 9:2, 6-7, 11:1-2를 보라), 그가 장차 통치할 것이라는 축복을 고대하고 있다.
이사야는 주변국들을 향한 일련의 심판들을 선포하면서 그 심판의 범위를 넓혀나간다(13-23장). 여기에 나열되고 있는 11개 국가들은 바벨론, 앗수르(앗시리아), 블레셋, 모압, 다메섹(시리아), 이디오피아, 이집트, 바벨론(반복), 에돔, 아라비아, 예루살렘(유다), 그리고 두로 등이다. 이사야서의 묵시(24-27장)는 왕국의 축복에 선행할 우주적인 환란을 묘사하고 있다. 28-33장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죄악들을 향한 여섯 가지의 화들을 선포하고 있다. 이사야의 예언적인 심판은 우주적인 축복에 선행하게 될 전 세계적인 황폐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로서 끝을 맺는다(34-35장)
역사적인 삽입구(Historical Parenthesis, 36-39장): 이 역사적인 삽입구는 기원전 701년에 있었던 앗수르의 유다 침공을 회고하고 있으며, 장차 있을 바벨론의 유다 침공을 예견하고 있다. 유다 왕국은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는 일은 면했지만(36-37장, 왕하 18-19장), 바벨론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38-39장, 왕하 20장).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응답하셔 앗수르의 산헤립에 의한 멸망에서 유다를 구원하셨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병중에서 하나님께 간구했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우매하게도 자신의 모든 보물들을 바벨론의 사절들에게 보여주었고 이사야는 바벨론이 그의 모든 보화와 자손들을 자신들의 나라로 모두 가져갈 것이라고 히스기야에게 말했다.
위로의 예언들(Prophecies of Comfort, 40-66장): 유다에게 심판을 선포한 후에 이사야는 소망과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로 그들을 위로했다. 이 소망의 기초는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하심이다(40-48장). 이 아홉 장에 나타난 216 구절들 중에서 115개 구절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능력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창조한 우상들과 비교되고 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성품은 유다 왕국이 장차 올 회복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분명 바벨론이 그들을 사로잡아갈 것이지만, 바벨론도 궁극적으로는 심판을 받아 멸망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포로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다.
49-57장은 그들의 구세주요, 고난받는 종이 될, 장차 올 메시야에 초점을 두고 있다. 거절당한 후에 높임을 받게 될 이 메시야는 그들의 죄악들을 담당하시고 이 땅 위에 평화와 정의의 왕국을 시작하실 것이다. 자신들의 죄악을 시인하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58-66장). 그날에는 예루살렘이 재건될 것이며, 이스라엘의 경계가 확장될 것이며 메시야가 시온에서 통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죄악을 자백하게 될 것이며 그를 대적하는 세력들은 모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평화와 번영, 정의가 세상에 가득 차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이상 케네스 보아와 브루스 윌킨스의 ‘한눈에 보는 성경“에서 이사야서 부분을 정리함: TALK THROGH THE BIBLE)
이사야서 요약정리
이사야서 요약정리
부 | 예언 | 구체적인 내용 | 성경 장절 | 부 | 예언 | 구체적인 내용 | 성경 장절 |
제 1 부 심 판 의 예 언 들 1 장 - 35 장 | 유 다 를 향 한 예 언 | 1:1-12:6 | 2 삽 입 구 | 히스기야 | 36:1-39:8 | ||
유다의 심판 | 1:1-31 | 앗수르로부터 구원 | 36:1-37:38 | ||||
2. 주의 날 | 2:1-4:6 | 1) 앗수르의 대적 | 36:1-22 | ||||
3. 포도원의 비유 | 5:1-30 | 2) 앗수르의 멸함 | 37:1-38 | ||||
4. 이사야의 소명 | 6:1-13 | 2. 히스기야의 치유 | 38:1-22 | ||||
5. 이스라엘 멸망 | 7:1-10:4 | 3. 히스기야의 죄 | 39:1-8 | ||||
1) 임마누엘 표적 | 7:1-25 | 제 3 부 위 로 의 예 언 들 40 장 - 66 장 | 이 스 라 엘 의 구 원 | 40:1-48:22 | |||
2) 마헬살렐하스.. | 8:1-22 | 구원으로 위로 | 40:1-11 | ||||
3) 메시야 탄생 | 9:1-7 | 2. 하나님 성품 위로 | 40:12-31 | ||||
4) 에브라임 심판 | 9:8-10:4 | 3. 위대하심으로 위로 | 41:1-29 | ||||
6. 앗수르 멸망 | 10:5-12:6 | 4. 하나님 종의 위로 | 42:1-25 | ||||
1) 앗수르 멸망 | 10:5-19 | 5. 회복으로 위로 | 43:1-44:28 | ||||
2) 남은 자 | 10:20-34 | 6. 고레스 통한 위로 | 45:1-25 | ||||
3) 메시야 왕국 | 11:1-16 | 7. 바벨론 멸망 위로 | 46:1-48:22 | ||||
4) 왕국에서 감사 | 12:1-6 | 1) 우상의 파멸 | 46:1-13 | ||||
이 방 예 언 | 13:1-23:18 | 2) 바벨론의 파멸 | 47:1-15 | ||||
바벨론 예언 | 13:1-14:23 | 3) 유다가 받을 징벌 | 48:1-22 | ||||
2. 앗수르에 대한 | 14:24-27 | 구 원 자 예 언 | 49:1-57:21 | ||||
3. 블레셋에 대한 | 14:28-32 | 메시야의 사명 | 49:1-26 | ||||
4. 모압에 대한 | 15:1-16:14 | 2. 메시야의 순종 | 50:1-11 | ||||
5. 다메섹 사마리아 | 17:1-14 | 3. 메시야의 권고 | 51:1-52:12 | ||||
6. 이디오피아 | 18:1-17 | 4. 메시야의 속죄 | 52:13-53:12 | ||||
7. 이집트 | 19:1-20:6 | 5. 메시야의 약속 | 54:1-17 | ||||
8. 바벨론 | 21:1-10 | 6. 메시야의 초청 | 55:1-56:21 | ||||
9. 에돔에 대한 | 21:11-12 | 7. 메시야의 책망 | 56:9-57:21 | ||||
10. 아라비아 | 21:13-17 | 이스라엘 미래 | 58:1-66:24 | ||||
11. 예루살렘 | 22:1-25 | 1. 참된 예배의 축복 | 58:1-14 | ||||
12. 두로 | 23:1-18 | 2. 이스라엘의 죄악 | 59:1-21 | ||||
주 의 날 | 24:1-27:13 | 3. 이스라엘의 영광 | 60:1-22 | ||||
환란기의 심판 | 24:1-23 | 4. 메시야의 도래 | 61:1-11 | ||||
2. 왕국의 승리 | 25:1-2723 | 5. 예루살렘의 미래 | 62:1-12 | ||||
1) 이스라엘 찬양 | 25:1-12 | 6. 하나님의 보수 | 63:1-6 | ||||
2) 이스라엘 노래 | 26:1-21 | 7. 남은 자들의 기도 | 63:7-64:12 | ||||
3) 이스라엘 번영 | 27:1-13 | 8. 주님의 응답 | 65:1-16 | ||||
심 판과 축복 | 28:1-35:10 | 9. 영광스러운 역사절정 | 65:17-66:24 | ||||
에브라임의 화 | 28:1-29 | 한 눈에 보는 이사야서 도표(한눈에 보는 성경을 참고로 만듦 | |||||
2. 아리엘 화 | 29:1-24 | ||||||
3. 애굽 동맹 화 | 30:1-3:19 | ||||||
4. 장차 임할 왕 | 32:1-20 | ||||||
5. 앗수르 화 | 33:1-24 | ||||||
6. 열방들의 화 | 34:1-17 | ||||||
7. 장차 임할 왕국 | 35:1-10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천하 만물의 창조주 이심을 믿는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과 만물들 그리고 우주와 인간의 창조주가 예수님이심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로고스)이심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 말씀의 모습으로 계셨고 이 말씀이 예수님이시며 이 말씀이 세상을 만들었음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우리가 복음서를 읽고서 하나님의 은혜로 반드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왕과 제사장 그리고 예언자의 신분을 지니신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 위를 걸으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분이심을 믿는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모습을 하고 계셨지만 인간과는 다른 왕 중의 왕이시며 인간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시고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시신 분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육체를 입으시고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와 같이 배가 고프시고 우리와 같이 맞으면 고통이 있고 우리와 같이 우시고 기뻐하신 인간이셨음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약속된 메시야이시며 성경이 신약 구약을 포함해서 모두가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신구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가 예수님이시고 그 예언은 예수님 오시기 전 천년 이상의 기간 전부터 그리고 예언자를 통해서 수백 년 전에 예수님의 모습과 사역과 오심과 수난과 죽으심, 부활에 대해서 예언된 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졌고 그리고 재림하시는 예수님께서 이제는 세상을 심판하실 주로 오심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율법과 예언이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심을 잘 설명하셨고 그리고 예언된 대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임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표현과 동시에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대신에 자신의 독생자를 우리를 대신해서 매다셨는데 이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우리의 죄에 대한 의의 표현이다. 즉 하나님의 의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대신 받을 형벌을 자신의 아들에게 주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피 흘림과 죽음 외에는 아무런 다른 해결할 방법이 없는데 우리를 사랑하셔서 벌을 주지 않고 죄를 묻지 않기 위해서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았음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표현 속에는 이런 의미를 알고 믿어야 함이 내포되어 있고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은 십자가에 하나님의 사랑과 의가 동시에 존재하며 의롭게 된 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이런 창조주 하나님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을 입고 또 예수님께서 대신 피 흘리심과 죽으심으로 얻은 공로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의로움의 인정(칭의)의 숨은 의미를 안다면 죄에 대해선 목숨을 걸고 죽은 자로 반응해야 함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은 감독자로서 우리의 모든 행위를 감시 감독하시기 위함이라고 보기보다는 우리를 사랑해서이다. 사랑의 속성 중에 하나는 함께 함이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고자 하고 부모가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자녀에게 오랫동안 함께 함으로 평생 자녀를 돕고 싶기 때문이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은 같이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돌보고 싶은 마음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예수님의 모습과 사랑을 이해하고 믿고서 늘 모든 일에 주님과 함께하고 또 주님 앞에서 겸손히 행하고 스스로 정의롭게 살며, 사람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고 나를 도우심을 믿는다는 것이고 우리의 이해와 인식을 초월해서 우리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면에서 복 주시고 풍성하게 해 주실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이런 사실을 믿고서 굳세게 살며 늘 기뻐하며 사랑을 실천하며 산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원받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행한다는 것이다. 그분의 우리에게 명하시는 계명을 즐거이 순종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계명을 즐거워하고 계명을 지키기를 세상의 모든 법과 제도 사상에 우선해서 한다는 것이며 세상 법에 저촉되는 것이 없어도 예수님의 법을 순종하지 않으면 잘못 믿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심을 안다는 것이다. 세상 법도 잘 지키고 적당히 교회생활도 잘 하는 것이 예수님을 잘 믿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행동임을 잘 아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언제인지는 잘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반드시 오심을 믿는다는 것이고 오실 예수님을 언제든지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함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곧 오신다고 했으니 그리고 맞이할 준비를 하고 살라고 했으니 이렇게 늘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믿고서 준비를 잘 하고 있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평균 수명 이상의 연세가 되신 분들이 아직도 많은 돈을 가지고 나누지 않고 아직도 믿지 않는 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돈 버는 일이 재미가 있고 이에 열중하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또 남을 가르치고 있다면 이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자세와는 너무나 다르게 살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살아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성경과 교회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나를 영원한 생명과 천국으로 인도하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믿고 있는 것이다. 낮에도 사랑 밤에도 사랑, 잠자리에 사랑, 잠에서 깨면서도 사랑, 사랑 사랑 늘 사랑하는 것이고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과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면서 자나 깨나 예수님,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임을 간절히 바라고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형제를 사랑하고 불신 이웃을 사랑해서 늘 복음을 전하고 나누고 베풀면서 산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바울과 같이 한 평생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뜻을 잘 받들고 죽을 때 그분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너무 미리 믿고 행함도 없이 살다가 어떻게 될까 의심하는 것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며 주님 앞에 겸손하게 살다가 비로소 바울의 고백같이 죽음을 앞두고 그분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리라 하고 고백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사는 날 동안 사랑을 모든 힘을 다 바쳐서 하고 죽도록 충성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고서 주님 만나는 것이 참으로 기쁜 순간이 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남겨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많지만 주님을 만나는 설렘이 또한 가득해야 하는 노년의 삶이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포함해서 모든 믿는 이가 부족하며 그래서 죄를 짓기도 하고 실망을 주고, 받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래 참으시면서 용서하시고 또 격려하시고 그렇게 우리를 성장시키시며 이런 우리의 성장을 기뻐하시는 것과 같이 우리도 믿음이 약한 형제를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오래 참고 기다려 준 것과 같이 사랑으로 사랑으로 돌보며 양육하고 그들의 성장을 무엇보다도 기뻐하며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을 본받아 형제를 위해서 양보하고, 지고, 피 흘리고, 또 나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고, 그리고 형제를 위해서 죽을 기회가 왔을 때 죽을 수 있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종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양이 자신보다 너무나 가난하게 살고 있어도 외면하고 양들이 하나님께 바친 헌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고 또 하나님께 바쳐진 헌금을 자신의 부를 축척하는데 사용하는 목자가 있다면 이는 결단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어려운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기게 되어 있고 돕게 되어 있는데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양이 어려운데도 잘 살면서 그냥 외면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된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예언서 그중에서 이사야서 하나만 해도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시며 위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떤 일인지 언급한 모든 사실을 그대로 믿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정상이며 믿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된다. 예언서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기록된 구약성경임을 부인할 사람은 이 세상에 건전한 사람이라면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는 모습을 곁에서 자세하게 살핀 사람이 이를 바탕으로 이사야서의 다른 내용과 함께 53장을 기록했다고 주장을 한다면 믿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도 이 사람이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간 사람이라고 욕을 할 것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은 이제는 예언서 즉 구약성경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 모두 작성이 되었음을 믿는다. 구약성경이 존재하고 이를 헬라어로 예수님 오시기 전 약 100년 전에 모두 번역을 했고 이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잘 지금까지 보존을 해 놓았기에 지각이 있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보면 이제는 약 기원전 1세기 전의 히브리어로 된 이사야서도 우리 모두가 만날 수가 있게 되었다. 따라서 모든 예언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완성이 되었다. 즉 예수님께서 실제로 오셔서 하시는 일들을 보고서 그때 예언서를 만들고 세상의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도 없고 그런 시도를 감히 시도한 인간도 지금까지 없다.
다시 말해서 예언은 틀림없이 예수님 이전에 완성이 되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이사야서의 경우 예수님께서 실제로 사시면서 하시는 일들 그리고 당하시는 일들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기록을 할 수가 있을까? 이 세상의 모든 권력과 과학적인 지식을 동원해도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즉 이는 인간의 일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고 이를 이사야가 기록한 것이다.
이사야서는 지금 우리는 예언의 실제 글과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언대로 행하신 것을 대조를 하면서 이사야서의 예언의 정확성을 확인하고 인정할 수가 있지만 만약에 예수님을 통한 이사야서의 예언이 풀리기 전 과연 누가 예언의 내용을 수도 없이 읽고 공부를 했지만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으시는 것과 이것이 우리의 죄악 때문임을 믿고 설명할 수 있었을까? 예수님께서 예언대로 그대로 실천하셨기 때문이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 예언이 실행되도록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예언의 존재와 함께 그 예언이 실행되도록 행동한 분이 있어야만 비로소 예언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이 되는데 이사야서와 예수님의 예언과 실현은 이 두 가지가 모두 실천이 된 것이다. 이를 부인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를 부인하자면 온 세상의 모든 지식과 억지를 다 동원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사야서는 예수님의 실천을 통해서 비로소 실현이 된 부분도 있지만 그 해석이 완전하게 우리에게 풀린 것이다. 예언의 존재를 부정한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 둘째 예수님께서 그 예언대로 행하신 것을 부정할 인간도 존재하지 아니한다. 지금 내가 혹시 이것이 무슨 말이지 하시는 분은 아직 예수님을 덜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서가 믿는 이는 이런 사실을 알든 모르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너무나 잘 예언했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그대로 실천을 하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께서 이사야서 예언대로 그대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죽으셨기에 우리가 이사야서의 53장을 이렇게 믿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부정할 수 없는 너무나 정확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시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것이다. 이제 이를 부정하고 믿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이 되는 것이다.
예언의 존재(예언서)가 100%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예언의 실천(실행: 예수님의 사역)도 우리가 100% 확실할 수 있는 내용이다. 예수님 오시기 전 예언이 틀림없이 존재하고 그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오시고 사시고 사역하시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그리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예언의 말씀을 다 이루셨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는 예언서의 예수님 오시기 전 구약의 연구가들이 오랫동안 풀지 못한 예언의 내용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구약 즉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그 사람이라고 해도 잘 믿지를 못했다. 그리고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여러 번 이야기를 해도 잘 믿지를 못했다. 모든 일이 성경의 말씀대로 다 이루어진 후에야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 그분들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도 믿게 되고 이사야서도 믿게 되고 복음서도 읽고 이사야서도 읽고서 비교를 해 보면서 너무나 정확한 예언의 존재함으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이시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임을 믿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이사야서를 제5의 복음서(4복음서와 같이 생생하게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에)라고 칭하는 이유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모두 함께 이사야서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내용이 틀림이 없는지 내가 읽고서 확인을 해 보지 않으면 내 믿음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함께 성경을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1장을 해 보겠습니다.
1장 |
범죄한 유다와 회개 촉구
1 표제 : 이사야의 예언 :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인
2-3 범죄한 백성 : 나귀, 소, 양 같은 짐승이 주인을 알아보는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모른다.
4-9 유다 민족의 비가 : 이방인이 파괴하고 시온만이 겨우 남는다 : 히스기야 시대
앗수르 침공
10-20 거짓 예배 : 욥, 마음을 깨끗이 씻어라(회개 촉구)
21-28 남은 자의 미래 : 시온에서 살아남으리
29-31 산당 제사의 종료
○ 이사야, 이스라엘 백성
과거에 제가 정리를 한 자료입니다. 너무나 간단하게 그리고 성경을 읽고서 성경에 있는 소제목을 그대로 부치고 그리고 간단하게 설명을 했는데 이사야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성경 전체를 빨리 정리를 하고픈 마음에서 이렇게 하였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켜고 우선 개역개정, 공동 번역, 그리고 NIV 영어성경을 동시에 화면에 띠우고 내용을 각각 읽어보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다른 성경의 번역을 보면서 이해를 높이고 정리를 합니다.
1 이사야가 본 계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서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의 시대를 산 이사야가 본 계시
2-3 죄를 범하고, 미련한 백성: 택한 백성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 짐승들도 아는 주인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백성을 온 세상에 알림
4 민족의 호칭: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간 유다 백성을 안타깝게 부르시는 하나님
5-8 범죄로 인한 유다의 상황: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맞아서 멍들고 터진 상처투성이가 됨
9 생존자: 하나님의 자비가 없었다면 소돔과 고모라같이 모두가 멸망을 당했을 것임
10-20 거짓된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고발
10-11 짐승의 번제와 기름에 지쳤고 짐승의 흘리는 피를 기뻐하지 않노라
12 나를 보러 성전의 뜰을 밟는데 누가 너희를 초청하였느냐?
13-14 드려지는 분향도 싫고 안식일과 절기로 모이는 것도 싫고 귀찮은데 너희가 악과 함께
이를 행함 때문이다.
15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하니 아무리 빌어도 기도해도 듣지 아니하리라
16-17 하나님의 해결책: 스스로 씻어 깨끗 하라, 내 목전에서 악한 행실을 버리고 악에서 떠 나라, 선행을 배우고 정의를 행하며 학대받는 자를 돕고 고아와 과부를 잘 돌 보아라.
18 하나님의 초청: 오라! 누가 옳은지 토론해 보자 너희가 순종하고 위와 같이 선행을 배우
고 정의를 행하고 학대받는 자를 돕고 고아와 과부를 잘 돌보면 너희의 죄가 주홍과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지리라
19-20 순종하면 좋은 것을 먹을 것이되 배반하면 칼에 맞아서 죽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21-23 예루살렘의 죄상: 신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되고 정의롭던 곳에 살인자만 가득하다, 은과 포도주가 변질이 되고 지도자는 썩었고 뇌물이 성행하며 고아와 과부의 인권이 짓밟힌다.
24 슬픈 하나님의 결단과 선포: 하나님과 적이 되고 원수가 된 민족에게 보복하고 시원하게 물리치리라
25-31 하나님의 보복의 방법: 1) 용광로를 통한 불순물이 제거: 용광로와 불순물의 의미?
2) 재판관과 지도자를 다시 세워 정의의 도시 신실한 성읍 재건
3) 시온이 회복되고 사는 주민은 정의롭게 되리라
4) 패역한 죄인이 멸망하고 하나님을 버린 자도 망하리라
5)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상수리나무와 동산이 수치가 되리라
6) 상수리나무는 잎이 마르고 동산은 물이 없어지리라
7) 하나님께 죄를 범하던 강한 사람들 능력 있던 사람들과 그
행적들이 불에 타게 되고 아무도 그 불을 끌자가 없을 것임
이렇게 다시 정리를 세밀하게 3가지 번역의 성경을 보면서 새로 해 보았습니다. 많은 새로운 내용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1장의 제목을 새로 생각해 보고 부쳐야 하는데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서 본 계시’로 정해 봅니다. 죄를 거듭 짓는 유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죄를 짓고 피 묻은 손으로 제사만 부지런히 지내지 말고 제사보다는 먼저 착하게 살아라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방법대로 제사를 지내는데 하나님께서 이제는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용서를 받았다고 믿고 또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완전히 다릅니다.
구약의 제사를 주신지 약 700년이 지난 시점에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사야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700년 동안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한 행동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율법입니다. 율법에서 명하는 정의와 사랑은 행치 않고 제사와 절기는 너무나 철저히 지키는 이스라엘에 700년을 참으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과 정의는 행치 않고 밤낮으로 용서를 비는 우리는 아닌지... 다음 시간에는 2장부터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부디 저를 위해서 제가 이곳에 오시는 분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같이 간절히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참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