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이른 저녁을 먹자마자 잠에 들어 다음 날 새벽까지 긴 잠을 잤다. 그동안 피로가 쌓였었나. 푹 잔 느낌이다. 등반하기 좋은 날이지만 이번 일요일은 등반을 하지 않기로 했었다. 망가진 작업 도구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이미 틀은 만들어놨으니 줄을 달고 엮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도 서너 시간은 걸릴 일이었다. 작업 도구를 만드는 일은 오후로 미뤄 놓고, 모처럼 일요일 시내로 나가보기로 한다.
일요일에 시내에 나와보기는 오랜만이다.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는 일요일 시내에 나와 영화를 보거나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곤 했었다. 종로의 번잡한 구역을 벗어나면 일요일 시내의 거리는 한적했었다. 사람이나 차가 드문 거리를 걷노라면 도시의 빈 공간은 일요일 오후 나와 함께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만 같았다. 그때는 젊었지만 몸과 마음이 늘 일에 묶여 있었고 외로웠고 지쳐 있었다.
광화문 근처 영화관에 들어갔다.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영화였지만 시간 때문에 그냥 보기로 한다. 십오 분 쯤 지났을까. 잠이 쏟아진다. 억지로 영화를 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냥 자 버린다. 몇 년 전 영화를 보다 잠든 자신에 대해 놀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랄지라도 영화를 보다 잠든 적은 없었는데... 이제 나도...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사실 숀펜 주연의 <아버지를 위한 노래>를 보고 싶었다. 일전에 어느 영화제에서 보았던 영화였는데 개봉하면 다시 한 번 봤으면 했다. 하지만 하루에 한 번 밖에 상영하지 않아 아쉽게도 오늘 시간을 놓쳤다. 숀펜은 고스족 같은 외모의 락가수로 나온다. 외모에 걸 맞지 않게 (어쩌면 당연하게도) 마음이 여리다. 막 임종한 아버지의 평생 짊어진 치욕의 짐을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 같은 영화이다. 영화 속에 흐르는 음악도 좋았다. 마지막 부분과 장면도. 곧 종영될 것 같은데 다시 볼 시간이 생길지 모르겠다.
영화관을 나오니 약간 더운 듯 싶게 햇살이 눈부셨다. 작업 도구에 들어 갈 소도구 몇 개를 사기 위해 을지로를 향해 걸어갔다. 일요일에 이렇게 시내에 있는 게 어색했다. 산에 있어야 하는데... 산을 생각하니 외로운 마음이 든다. 지난 몇 년 동안 산에서 외로움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산에 있는 게 좋기만 했었던 것 같은데... 좋기만 하지는 않아진다. 어느 누가 인수봉을 하루종일 바라만보다 돌아서며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다고 했었는데 그 심정을 이제 알 것만 같다. 청계천을 따라 걷는 데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도 차도 없는 텅 빈 거리의 정적 속에 잠시나마 있고 싶어진다.
첫댓글 영도쌤에게 또 다른면이...
쌤~보고싶어요~^o^
영도야~ 광장시장 호박전에 막걸리...편한게 좋찮어? 한 잔 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