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508]약천(藥泉)남구만(南九萬)선생시 靈光郡事先祖墓下
靈光郡事先祖墓下。春城相公曾置守塚奴。其中爲僧者懷認。 영광군사선조묘하, 춘성상공증치수총노, 기중위승자회인. 近刱舊日齋寺鳳棲菴。壺谷大學士有記文。且贈詩。認又來訪余。贈以一絶。 근인구일재사봉서암, 호곡대학사유기문, 차증시, 인우래방여, 증이일절. 영광군사(靈光郡事) 선조(先祖)의 묘소 아래에 춘성 상공(春城相公)이 일찍이 묘소를 지키는 종을 두었는데, 그들 중에 승려가 된 회인(懷認)이 근래 예전에 재계(齋戒)하던 곳에 봉서암(鳳棲菴)이라는 절을 창건하였다. 호곡(壺谷) 태학사(太學士)가 기문(記文)을 짓고 또 시를 지어 주었는데, 회인이 또다시 나를 찾아왔으므로 절구 한 수를 지어 주었다.
남구만(南九萬)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미재(美齋).
問爾何來自武靈。문이하래자무령 森溪樹木幾株靑。삼계수목기주청 菴成不是資冥福。암성불시자명복 只恐樵蘇近柏庭。지공초소근백정 그대 어디서 왔는가 물었더니 무령이라 하니 삼계에 나무 몇 그루나 푸르게 자라는가 암자를 지은 것은 명복을 빌려고 해서가 아니요 다만 나무꾼들 잣나무 뜰에 가까이할까 두려워서라네 ⓒ 한국고전번역원 | 성백효 (역) | 2004
[주-1] 영광군사(靈光郡事) 선조(先祖) :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를 지낸 남천로(南天老)로 약천의 12대조이다.[주2] 춘성 상공(春城相公) : 춘성군(春城君)에 봉해진 남이웅(南以雄 : 1575~1648)을 가리킨다. 인조 24년(1646)에 우의정이 되고 인조 26년(1648)에 좌의정이 되었기 때문에 상공이라 칭한 것이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爾이=너 이. 武靈무령=본래 백제의 무시이군(武尸伊郡)이었는데, 당나라에 망한 뒤 사반주(沙泮州)의 영현(領縣)으로 모지군(牟支郡)이 되었다. 신라 경덕왕 때 무령군으로 바꾸어 무진주(武珍州)에 예속시켰고, 장사(長沙)ㆍ무송(茂松)ㆍ고창(高敞)의 세 현을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태조 때 영광군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무시이의 ‘무시(武尸)’는 크다는 뜻을 가지며 ‘이(伊)’는 거리ㆍ읍성(邑城)을 뜻하므로 ‘대읍(大邑)’이 된다. 무령도 무시이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부근에 법성창(法聖倉)이 있어 백제 때 당나라와의 무역이 활발하였다고 한다. 森溪삼계=본래 백제의 소비혜현(所非兮縣, 또는 所乙夫里縣)이었는데, 신라의 영토가 된 뒤 757년(경덕왕 16) 삼계로 고쳐 갑성군(岬城郡: 지금의 장성군)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 때 영광군(靈光郡)에 예속시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영광군에서 장성군 삼계면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삼계의 옛 지명인 소을부리는 ‘수읍(首邑)’ 또는 ‘장성(長城)’의 뜻을 가진다. 이곳은 부족국가시대에 부족장이 있었던 곳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까지 이곳에는 삼계고현성(森溪古縣城)이 있었는데, 이는 산위에 흙으로 쌓은 유적이며 고성산(高城山)이라 했다. 오늘날 장성군 삼계면과 영광군 대마면 경계에 있는 고성산(古城山, 546m)이 그곳이다. 고성산 남쪽으로는 영암과 장성을 잇는 도로가 발달했었다. 삼계현 지역에는 일찍부터 수연사(隨緣寺)가 있었는데 이 절은 수련산(水蓮山: 과거에는 靈鷲山) 아래 있었다. 지형적으로 중북부지역은 산지로 되어 있고, 남부지방에는 평야가 발달되어 이곳으로 평림천(平林川)과 삼계천이 남류한다. 樵蘇초소=나무하는 일과 풀을 베는 일. 생계(生計). 柏庭백정=잣나무 뜰.
원문=藥泉集第二 /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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