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시55분, 산자락에서 뒤돌아 지나온 묵정밭을 촬영하는데
하 대장에게 행운이 찾아오려는지 네 잎 크로버를 따서
캠코더 앞에 웃으며 들여 밉니다.
숲 속으로 들어왔지만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는지 하 대장이 받쳐
든 우산아래에서 개피 나무 꽃을 캠코더에 담는데 굵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10시14분, 바위사이 길을 거쳐
비알은 계속 이어지고
10시23분, 턱에 올라 왼편으로 꺾어지며
잠시 평지를 걷습니다.
10시29분, 암괴와 마주치고 바위사이로
네발을 동원하며 올라가는 이 대원과
우산을 접어 스틱으로 짚으며 올라가는
하 대장을 촬영하고 캠코더를 우의 속에 넣고
그 뒤를 힘들게 따라 올라갑니다.
*2003년5월25일(日)風雨
▲낙동정맥종주25구간(자두농원~북문)*32컷
해봉(12명)
제25구간 : 左부산시 금정구, 右경남 양산시 부산시 북구
♠참 고
금정구[金井區]
부산광역시 북부에 있는 구.
면적 65.16㎢
인구 27만 8511명(2002.12)
가구수 9만 692세대(2002.12)
행정구분 18동
1988년 동래구의 북쪽 지역이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현재 관할동은 서(書)1~4동, 금사동
(錦絲洞), 부곡(釜谷)1~4동, 장전(長箭)1~3동, 선두구동(仙杜邱洞), 청룡노포동(靑龍老圃洞),
남산동(南山洞), 구서(久瑞)1~2동, 금성동(金城洞)의 18개동이다.
구청 소재지는 금정구 부곡3동에 있다.
동쪽으로는 개좌산과 공덕산, 서쪽으로는 금정산, 북쪽으로는 계명봉의 능선으로 둘러싸였고
남쪽으로는 트인 분지지형이다. 수영강의 지류인 온천천이 중앙부를 흐르고, 온천천을 따라
펼쳐진 저지대와 구월산 기슭에 시가지가 전개된다. 경부고속도로·도시고속도로·지하철 등
중요교통로가 발달해 있다.
제조업은 주로 금사동에 집중되어 있고 섬유·의류·화학·고무·목재가공·비금속공업 등이 활발
하나 생활권이 대부분 동래구에 소속되어 있어 상업기능의 발달은 미약한 편이다. 청룡노포동·
선두구동 일대에서는 주곡작물 중심의 농업이 이루어지고 근교 원예농업도 성하다. 교육기관
으로 대동대학·지산대학·부산대학교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금정산성(사적 215), 범어사 대웅전(보물 434), 범어사삼층석탑(보물 250), 범어사
등나무군생지(천연기념물 176), 범어사일주문(부산유형문화재 2), 오층석탑(부산 유형문화재 9),
원효암동편삼층석탑(부산유형문화재 11), 원효암서편삼층석탑(부산유형 문화재 12), 범어사당간
지주(부산유형문화재 15), 범어사석등(부산유형문화재 16), 금정 산성부설비(부산기념물 15), 노포
동고분군(부산기념물 42) 등이 있다.
▶사진은 오 지호 대원이 촬영했습니다.
♧ 산행 코스 (24차 )
09시43분:자두농원
10시35분:계명봉
11시08분:임도
11시37분:546.6봉갈림길
12시00분:옹달샘
12시35분:가산리마애불갈림길
13시07분:고당봉샘터
13시20분:북문산장
총 3시간37분
▶참여 대원(12명)
대장 : 김성수, 하종관(후미담당)
신철호, 김두호, 오지호, 이종원, 이승우,
백운기, 조숙희, 남상기, 이혜년, 김윤근,
☞☞☞☞우선 그동안 김 대장과 후미를 담당한 하 대장,
그리고 8차부터 꾸준히 사진촬영 해 주신 오지호 대원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산악회 사정으로 지난 4월5일 개금고개에서 몰운대까지 종주하고,
5월5일 개금고개에서 금정산 북문까지 편법종주를 하였기 때문에
오늘 구간종주가 마지막이 되어 완주식을 하는 산행이지만
나는 그 사이 어머니의 위독과 상중(喪中)으로 불참하여 25차부터
순서대로 몰운대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금요일까지만 해도 일기예보는 계속 개였다 흐림으로 나왔는데
토요일부터 갑자기 비로 돌변하여 걱정을 했고 새벽에 눈을 떠,
창밖의 심한 비바람으로 나뭇가지가 마구 흔들려 은근히 취소를
기대하며 산악회로 전화하니 이미 행사준비로 현수막과 음식들을
준비하여 놓았기 때문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산을 바쳐 들고, 배낭을 메고 대티 지하철로 내려갑니다.
열차안의 노부부가 대단하다는 눈초리로 이렇게 비가 오시는데도
등산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9시, 범어사 역 도착. 북쪽 출입구로 올라가니
신 고문이 평소의 성격대로 완전 방우장비로 무장하여
웃으며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금 늦게 조 대원이 비가 너무 와 산행은 포기하고
바로 북문산장 행사장으로 가겠다며 엄살을 떨고
하 대장이 방수한다며 비닐봉지로 감싼 등산화에
반바지차림으로 나타납니다.
김 대장이 새벽에 이 종원대원에게 전화로 집결지가
범어사역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는데 노포동으로 가
있다는 전화연락으로 기다리다
9시33분, 택시 2대로 나누어 타고 달리는데
김 대장의 폰으로 김 윤근 대원으로부터 또 전화가 오는지
택시타고 뒤따라오라고 답합니다.
이제 오늘로 낙동정맥 종주가 끝난다는 마음이
긴장을 풀어버린 탓인가 봅니다.
9시42분, 지하도로 돌아서 자두농원입구 도착.
이 폭우 속에 제대로 촬영할지 염려하며
우의 속에 캠코더를 넣은 체 하차합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별다른 이야기 없이
곧장 산행 길에 오릅니다.
캠코더를 꺼내어 지난번 넘어 온
270봉을 촬영하고 뒤따라 출발합니다.
왼편으로 임도 확장공사 시에 피해를 입었는지
잡목뿌리가 흉물스럽게 그대로 노출되어
보강작업을 하지 않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옛날 이 지경고개에서
어느 종2품 양반이 불귀의 객이 되었는지
‘京居嘉善大夫梁公 不忘碑’석비가 큼직하게 서있고
콘크리트 포장로를 따라가다
9시50분,
‘개인사업장이오니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붙여놓은 차단기와 마주합니다.
지나가는 길손은 봐주리라 여기고
그냥 뒤따라 올라가니
잡초가 무성한 묵정밭이 나타나고
그 가장자리 등로를 따라 올라갑니다.
9시55분, 산자락에서 뒤돌아
지나온 묵정밭을 촬영하는데
하 대장에게 행운이 찾아오려는지
네 잎 크로버를 따서
캠코더 앞에 웃으며 들여 밉니다.
숲 속으로 들어왔지만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는지
하 대장이 받쳐 든 우산아래에서
개피 나무 꽃을 캠코더에 담는데
굵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10시14분, 바위사이 길을 거쳐
비알은 계속 이어지고
10시23분, 턱에 올라 왼편으로 꺾어지며
잠시 평지를 걷습니다.
10시29분, 암괴와 마주치고 바위사이로
네발을 동원하며 올라가는
이 대원과 우산을 접어 스틱으로 짚으며
올라가는 하 대장을 촬영하고
캠코더를 우의 속에 넣고
그 뒤를 힘들게 따라 올라갑니다.
10시32분, 어느새 뒤쫓아 왔는지
김 윤근 대원이 가쁜 숨을 쉬며 눈 깜짝할 사이
추월하여 올라갑니다. 대단한 체력입니다.
10시35분, 정상비 대신
돌탑 두개를 쌓아놓은
계명봉(鷄鳴峰)에 올라섭니다.
금정산 8경중의 하나인
계명추월(鷄鳴秋月)대신
안개비구름이 비바람만 뿌리고
앞서 올라가
후미를 기다리든 오 지호 대원이
세 사람을 돌탑 옆에 서게 하고
기념 촬영해줍니다.
여기서 잠시 계명봉의 유래를 옮겨놓습니다.
'계명'이란 '닭 울음'이란 뜻입니다.
♠옛날 의상대사가 이 부근에서
절터를 물색하던 중 한 밤중에 느닷없이
닭 울음을 들었기에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고
이 암자에서 정진하던 납자들이
새벽 예불 때마다 하늘에서 울려오는
닭 울음소리를 들어 그것으로 시간을
가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계명이란 고유어는 '새울이'를 한자의
훈을 빌어 차자한 것이다.
계명봉의 본 이름이 '새울이뫼'이다.
새울이란 동쪽에 있는 새우물(新井)이란 뜻이다.
계명이나 금정, 나아가서 동래란 지명도
모두 새울이의 차자표기에 지나지 않는다.
새는 날이 새는 동쪽이며 새롭게 하루가 시작됨을
뜻하면서 때로는 새(鳥)와 쇠(金)와는 동음어의 관계가 있다.
한편, 현대어 우물(井)은 본래 울(井) 혹은 천(川)에
물(水)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말이다. 따라서 새울이라고 할 때
『울』은 운다는 뜻의 한자명을 취하여 계명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 계명은 '날이 새는 동쪽이며 새롭게 하루가 시작됨에
닭이 운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지금은 안개비구름으로 가려 잿빛이지만 맑은 날,
남쪽으로 범어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는
정상을 뒤로하고 서쪽으로 숲 속길 된비알을 내려갑니다.
비에 젖고, 빗발이 떨어져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잡목을 잡으며 내려갑니다.
10시57분, 잘록이에 내려서고
10시59분, 좌로 시계가 트이며
밭이 보이는 계명고개인가
갈림길을 거쳐 3시 방향으로
급류에 깊게 파인 골을 건너
등산로를 따라 올라갑니다.
11시8분, 임도를 만나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11시12분, 임도와 헤어져
등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계속 떨어지는 빗줄기를 감당 못하고
등로는 개울처럼 많은 황토 물을 흘러 보냅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등로를 따라 느긋하게 올라가는데
위쪽에서 내려오는 두 중년등산객과 조우합니다.
“일로 내려가면 어디로 갑니꺼?”
“계명봉, 지경고개로 빠집니다. 어디서 옵니까?”
“은동굴에서 오는데요, 금정산으로 갈려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며 되돌아 올라갑니다.
11시33분, 빗발 속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턱에 올라서지만 온통 잿빛 뿐
전혀 조망이 되지 않습니다.
11시37분, 546.6봉 갈림길에 당도
직선코스에 나뭇가지가 가로놓여있어
김 대장이 후미를 배려해 놓은 조치로 판단하고
왼편으로 90도로 꺾어지는 등로를 따라 갑니다.
하 대장의 우산아래에서 평탄한 등산로를 따라가며
비에 젖어 있는 잘 생긴 어린반송과
키 낮은 소나무의 송화를 촬영하며 가는데
앞서가든 이 대원이 한 나무 앞에서
꽃꽂이에 사용하는 화살나무라 하자
뒤따라가든 하 대장은 나물해 먹는
흘립나무라며 이견을 제시 합니다.
나는 소나무 잎에 매달린
영롱한 빗물방울 촬영에 여념이 없고...
한데 얼마가지 않아 왼편으로 꺾어지며
계속 떨어지기에 잠시 잘못 든 걸로 여기고
하 대장이 핸드폰으로 김 대장과 교신을 시도했으나 불통.
길을 잘못 든 걸로 판단하고 되돌아 올라가다
뒤늦게 잔솔가지에 매달린 ‘낙동정맥’ 시그널을 발견,
안심하고 되돌아 내려갑니다.
지금까지 우중산행을 수없이 했지만
방수등산화에 양말은 항상 말라있었는데
오늘은 사정이 다릅니다.
바지를 타고 내려간 물이 워낙 많은 탓인지 촉감이
이상하고 비닐을 감싼 하 대장도 빗물이 스며들었다고 합니다.
12시, ‘금정산 옹달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워놓은
간판이 서있는 갈림길 옹달샘 도착.
팔지송이 우람하게 서있는데
다방골에서 출발하여 장군봉을 거쳐 온다는
등산객들과 만납니다.
왼편으로 꺾어져 내려가다
물이 질펀하게 깔린 바위 길과
등로를 따라 평지를 걷다
흙에 묻힌 듯 한 너럭바위를 거쳐
왼편으로 송전철탑을 지나치고
12시12분, 오른편으로 ‘梵魚寺基’
석비를 지나칩니다.
이제부터 범어사 땅에서 벗어난단 말인가.
들어선단 말인가.
12시26분, 오른편으로 운무 속에
희미하게 칼바위 암괴가 보이고
평탄한 등로를 따라 시원시원하게
뻗어 올라간 잣나무 숲 속으로 들어갑니다.
숲을 벗어나 비바람은 계속 휘몰아치고
왼편으로 송전철탑이 보이는데
비바람에 떨었는지
괴기한 울림으로 들려옵니다.
12시35분, 오른편으로 갈림길이 있는 길목에
‘가산리마애여래입상(높이12m 폭25m 음각 통일신라시대추정)’
안내간판이 보여 하 대장의 우산아래에서 촬영하니
마애여래 입상에 내려갔다 오겠다고 합니다.
이 비바람 속에 제대로 촬영도 못할 것 같고
선두와 많이 쳐져있어 망설이다 촬영해 보겠느냐고 물으니
금세 반겨 빗물을 조심하라며 캠코더를 건네주니
이 대원도 따라나섭니다.
한데 10m도 못가 오른편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보여
뒤따라 올 두 사람과 엇갈릴 것 같아 갈림길로 되돌아갑니다.
비바람과 비구름이 더욱 사납게 휘몰아치며 능선을 넘어가고
좀 전 까지 더워서 소매를 걷어 올린 우의를 추위가 엄습해와
소매를 다시 내리고 지퍼를 턱밑에까지 바짝 올립니다.
5,6분이면 갔다 올 거리인데 10여분이 지나도 올라오는 기척이 없어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어 돌계단을 내려가니
그제야 하 대장이 올라오고 이 대원이 뒤따라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앞장서
오른편 철망사이의 능선 길로 올라갑니다.
뒤에 촬영한 내용을 보니
음각된 거대한 마애불, 오랜 풍상에 닳았지만
안전장치가 잘 되어있고 많은 신도들을 수용하기 위해
제단과 마당이 넓게 마련되어있습니다.
모가 없는 바위사이와 암능은
갠 날 같으면 바로 고당봉과 오른편으로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터인데
온통 잿빛과 비바람만 더욱 거세게 휘몰아쳐
눈도 제대로 못 뜰 정도고 추위가 다시 쓰며 들려합니다.
왼편으로 송전철탑이 괴성으로 울부짖고
너럭바위를 타고 왼편으로 내려갑니다.
고당봉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에서
이 폭풍우로 도저히 촬영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하 대장도 그냥 갔으면 하는 눈치고
캠코더 보호와 안전사고의 위험성도 있어
깨끗이 마음을 비우기로 하고 그냥 내려가면서
고당봉의 내력만 옮기기로 합니다.
♠1740년 편찬된 《동래부지》에 나오는 지도에는 '고암(姑岩), 고당봉(姑堂峰),
고담봉 (高潭峰), 고단봉(高壇峰), 고당봉(高堂峰), 고당봉(姑黨峰), 고당봉(高幢峰)
이라 하여 어느 것이 진짜 명칭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고당봉의 명칭에 대해서는 1994년 8월 금정구청에서 산 이름 찾기 고증작업
추진으로 '고당봉(姑堂峰)'과 '고당봉(高幢峰)'의 두 가지 의견으로 함축하여
역사(민속)학자및 향토사학자들의 의견을 들어 공식적으로 고당봉 정상에는
고당봉(姑堂峰)으로 확정하여 기념표석은 세웠다.
▲앞서 간 오 대원이 촬영한
비바람속의 고당봉 사진을 올려놓습니다.
용감한 세 대원이 암봉에 올라
고담봉 정상비를 끼고 있는 오 대원
김두호 대원, 오지호 대원의 기념 촬영
자일잡고 하산하는 신 고문 신발 안은
이제 빗물로 완전히 반죽이 되어
질퍼득 거린지 오래되었습니다.
13시7분, 고당봉 아래 고모신당 밑 ‘금샘0.5km'
간판이 앉아있는 샘터에 당도하고
치성 드리러 온 두 장년아주머니가
하산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완만한 너럭바위와 돌계단을 거쳐
13시20분, 북문 산장에 당도합니다.
하지만 무사 완주산신제와
자축행사장으로 정했다는
산장 안은 텅 빈 체 비바람으로
을씨년스럽게 젖어있습니다.
당초 산장에서 행사를 촬영하고
식사 후 곧 바로 만덕고개까지 갈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 샘인데
산성마을로 장소를 옮긴 걸로 생각하고
주변을 촬영할 동안 앞서가든
하 대장 과 이 대원이 보이지 않습니다.
비구름, 잿빛으로 물든 광장을 지나
원효봉 쪽으로 올라 간 걸로 판단하고
돌계단으로 뒤를 쫓는데
뒤쪽에서 바람결에
하 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고함을 지르며 응답했으나 잘 듣지 못했는지
계속 들려와 찾아 해맬 걸 생각하고
되돌아 내려가니 두 사람이 올라오면서
산성마을에서 '무소 사륜구동차'가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저만큼 김 신 총무가 웃으며 인사하고
집행부의 이 동희군도 함께 서있습니다.
뒤늦게 오늘 행사는 비바람으로
산성마을로 장소가 변경된걸 알았고
이로써 3시간37분의 산행이 끝납니다.
13시35분, 울퉁불퉁한 임도를 따라 운전하면서
먼저 도착한 대원들도 이차로 내려갔다며
김 신 총무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계회대로 산장에서 행사를 하려고 하다
비바람이 너무 거세고 비 맞고 올 대원들을 생각해
따뜻한 방이 필요할 것 같다는 회장님의 주장으로
산성마을에 들어가 식당에 방을 전세내기로 하고
10만원으로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13시50분, ‘낙동정맥완주’현수막이 걸려있는
산성마을 식당에 도착.
비좁은 식당 안은
이 비바람 속에 노심초사한 조 회장 부부와 부 회장부부,
오랜만에 보게 되는 정 대장부부와 집행부 젊은이들,
오 지호 김 두호대원 부인들의 얼굴이 보이는 등
30여명이 모여 앉아있고 먼저 도착한 대원들은
술잔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 진복 대원이 어서 옷을 바꾸어 입으라하지만
이럴 줄을 미쳐 예상 못하고 여분 바지를
준비하지 않아 엄두를 못내고 있는데
정 대장이 별도로 준비한 바지와 T샤스를 빌려주어
물이 한바가지 나 쏟아져 나오는 신발을 벗고 임시
특실로 들어가 간신히 옷을 바꾸어입고
주변의 강권에 잠시 합석하여 목을 추깁니다.
임시 간이주방으로 변한 어수선한 방밖 마루풍경
정 대장의 사회로
“해봉산악회가 천리능선 낙동정맥 무사종주산행을
완주하였기에 천지 신명께 고합니다....”
는 축문낭독으로 실내 산신제가 경건하게 이어집니다.
젖은 양말 때문에 맨발로 배추 잎 삼배를 올리다
회장님으로부터 꾸중 듣는 대원,
회원들의 삼배 순서에서 화기애애,
가벼운 웃음 속에 계속되고 회장님의 축문소지로
산신제는 끝이 나 완주패, 공로패수여로 이어집니다.
♣자랑스러운 완주자는
김 성수, 신 철호, 오 지호, 이 승우, 조 숙희등 5명이지만
당초 완주자 에게만 주기로 한
비디오테이프를 피치 못할 사정으로
1회 불참자 김 윤근, 하 종관,
2회 불참자 김 두호, 이 혜년 등 9명에게 드리기로 합니다.
마지막으로 공로패 수여(하 종관, 남 상기)등
상패 수여식이 끝나고 정 대장이
“자~~우리, 자축의 뜻에서 10분 동안 박쑤 칲씨다!”
긴 박수가 계속 이어지자
“아~ 진짜로 칠껀가베~~”
하는 소리에 폭소가 터집니다.
그리고 ‘메아리산악회’ 박 영태회장님의 완주축전이 왔다며
알리고 다시 감사의 박수가 터집니다.
기념촬영시간이 주어지자
오 대원의 디카가 습기로 흐릿하게 나왔는지
김 대장의 자동카메라로 촬영합니다.
수상자들
장한 김성수대장과 하종관대장
이어서 현수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이 이어지고
조 대원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체
완주패를 가슴에 품고 한마디 하자
다시 웃음꽃이 터집니다.
“내가 유산을 물려줄 아아가 있나
내사 이 완주패를 밤마다 꼬옥 끼어 안고 잘끼다!”
조 회장님의 주제로 건배의 장이 마련됩니다.
하 대장의 지명 건배제의에 이어
자청하여 건배를 제의합니다.
“저가 해봉산악회와 인연을 맺은 지가 수년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에 해봉산악회 명의로 글을 올릴 때 머리맡에
사랑의 하트♥를 부치는데 그건 해봉산악회가 사랑으로 뭉친
사랑방 같은 산악회로 해봉산악회에 나오면 온갖 일상의 스트레스도
단번에 날아가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랑방 해봉산악회의 사랑으로 단합된 발전을 위해 건배를 제의합니다.
저의 제의에 동의하시면 저가 지화자! 소리치면 큰소리로 좋~타!
라고 외쳐 주십시요.... 지화자!”
“조오~타!”
산신제 실내마당은 따뜻한 웃음꽃으로 만발,
주고받는 온기로 가득합니다.
정 대장의 매봉산 자락에서 낙동정맥 출발 직전,
캠코더 앞에서 금연을 다짐한 게 화제에 오르는가하면
8차, 자래목이를 출발하여 율치를 앞두고
이 혜년대원이 어둠 속에 눈앞에 고라니가 뛰어나와
혼비백산한 이야기등
종주 후일담은 막걸리잔과
맥주 컵이 오가는 가운데 끝없이 이어집니다.
바깥은 계속 비바람이 불어오고 있는데....
-산 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