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9월 1일 저녁, 응창기배 세계바둑대회 결승4국 전야제가 대회 개최 장소인 싱가포르 웨스틴 호텔에서 열렸다. 오후6시 조금 지나 조훈현 국수, 윤기현 단장 그리고 필자는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중국인들 특유의 붉은색 휘장으로 단장된 실내는 먼저 와 있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쏠린다. 조국수의 표정을 힐끗 살피니 생소한 분위기에 약간 긴장된 표정이다. 느긋하게 긴장을 좀 풀었으면 좋으련만, 이때부터 조 국수의 표정을 살피는 것은 필자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
어제 저녁에 들은 중국에서의 어려웠던 대국 분위기 때문이다. 정상들 간의 실력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도 안 된다는 이야기. 승패는 오직 그 날의 컨디션에 달렸다는 이야기를 윤 단장으로부터 들은 것도 이때였다.
칵테일 파티가 진행되고 있는 홀 한쪽에 녜웨이핑과 부인, 일행인 듯한 무리들이 눈길에 잡혔다. 즐거운 듯 담소를 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2: 1이라는 결과를 이 순간에도 즐기는 듯한 표정이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우리 측 지원군은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다. 서로 입 밖에 내지는 않았으나 한국 매스컴이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내심 분통을 새기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본인들 서너 명이 조 국수와 윤 단장을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왔다. 우리 측 분위기가 삽시간에 달라졌다. 윤 단장이 그들과 필자를 수인사 시켰다. 일본기원 관계자와 기자들이었다. 잠시 후 한국 대사관에서 공보관과 교민 2명이 합세하여 우리 측 인원도 제법 큰(?) 무리가 되었다. 조국수의 표정도 이제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내방객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유명 인사들을 소개하였다. 오청원 선생을 소개할 때에는 여기저기에서 가벼운 탄성이 들렸다. 곧이어 녜웨이핑을 무대 중앙으로 불러냈다.
사회자와 녜웨이핑 사이에는 중국어로 대화가 이루어졌다. 매스컴과 관중을 의식한 듯, 응씨배의 선전 효과를 노린 어구가 한동안 카메라의 앵글을 향하여 계속 되었다.
녜웨이핑에게 임전 소감이 어떠냐고 묻는다. 녜웨이핑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지며 자신 있게 답한다.
"응씨배 기전이 중국인이 만든 기전이기 때문에 첫번째 우승컵은 중국인이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가져가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
사전에 예행연습을 한 듯 거침없이 나온다. 주위에서 환호와 함께 박수 소리가 터졌다. 사회자가 장내를 진정시키고 조 국수를 호명했다. 조 국수와 필자가 사회자 앞에 섰다. 사용언어는 영어다. 몇 가지 질문 끝에 같은 질문을 한다.
" 지금까지 어려운 싸움을 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컨디션도 좋고 4국, 5국까지 갈 각오가 되어 있다.”
필자의 통역으로 의사가 전달되었지만 주위가 조용하다. 아무도 손뼉을 쳐 주지 않는다. 이 냉엄한 반응이 오히려 조 국수에게는 다음 날에 있을 제4국의 전의를 일깨운 기폭제가 되었다.
응씨룰에 따른 덤은 8점. 우리 식으로 환산하면 7집반이다. 이때만 해도 덤 5집반의 시대. 따라서 흑을 쥐는 건 절대 불리하다고 생각할 때였다.
2: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4국은 조 국수의 흑번. 게다가 녜웨이핑은 일본의 9단들을 모조리 날려버린 대륙의 영웅이다. 조 국수가 소문난 천재였기는 하나 바둑 변방국으로 치부되던 한국에서나 통하는 ‘ 골목 대장 ' 쯤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모르긴 몰라도 중국이나 응씨배 관계자들은 녜웨이핑의 우승을 떼어논당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
| 중국에서 벌어진 결승2국 모습. 조훈현 9단은 중국에서 벌어진 결승 1라운드에서 악전고투했지만 적지에서의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1승2패로 마쳐 싱가포르에서의 결승 2라운드 두 판을 모두 이겨야만 우승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처지에 놓였다. |
1989년 9월 2일 오전 10시 웨스틴 호텔 특별대국실. 응씨배 결승 제4국이 시작되었다. 조 국수가 2분전에 입장하고 곧이어 녜웨이핑이 입장하였다. 계시원은 이미 자리에서 두 사람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국장 안은 긴장잠이 감돌았다. 대국 개시 선언과 함께 조 국수가 첫 점을 우상귀 화점에 놓았다. 곧이어 녜웨이핑이 좌하귀 화점에 착수하자 허용된 5분 동안의 사진 촬영이 끝나고 모든 관전자들을 퇴장시켰다.
대국장은 두 대국자와 계시원만 남고 모든 관전자들은 공개 해설장과 별도 준비된 검토실로 이동하였다. 검토실은 두 개의 방이 준비되어 하나는 윤 단장, 필자 그리고 교민들과 일본인들이 사용하였고, 다른 하나는 중국인들의 검토실이 되었다.
검토실에 중계되는 대국장면에는 두 대국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바둑판을 채워 가는 바둑돌만 보인다. 조 국수의 우상귀 첫 점과 좌하귀 화점에 놓인 백돌이 보였다. 곧이어 조 국수의 우하귀 소목. 조 국수가 흑번일 경우 어김없이 등장하는 화점-소목 포석은 조 국수의 그 당시 전매특허였다. 백번인 경우는 양화점.
상대방도 좌변에 화점-소목을 똑같이 두어온다. 조 국수의 흑5, 한칸걸침에 상대방도 똑같다. 흉내 바둑으로 가나? 윤 단장이 2국 때와 똑같이 간다고 한다. 실제로 25수까지는 2국 때와 똑같이 진행되었다.
백26과 흑27, 날일자와 한칸 높은 지킴으로 각자 귀를 지킨다. 백28, 흑백이 대진하고 있는 중앙을 선점한다. 흑29, 선제공격은 조 국수 쪽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백은 40부터 52까지 우상귀 화점 밑으로 파고 귀살이를 한다.
60수까지 조국수의 공격과 녜웨이핑의 수비 형태로 바둑은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녜웨이핑은 4귀를 선점하고 조 국수는 중앙에 흑 세력을 쌓아가는 형국이 되었다. 조국수가 101 수를 착수한 시점에서 백은 4귀를 차지한 반면, 흑은 상하변에 세력을 쌓아 우변에서 좌변에 이르는 중앙에 광대한 영토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중간 집계를 해 본다. <백집> 우하귀 8집, 우상귀 6집, 좌하귀와 변에 걸쳐 25집, 좌상귀와 변에 14집, 덤 8집 … 합계 61집. <흑집> 중앙 53집, 좌상변 14집, 따낸 돌 1집, 합계 68집. 덤 8집을 제하고 나면 1집 부족이다.
윤 단장과 일본 프로가 머리를 맞대고 복기를 해 보며 연신 머리를 끄덕이다가는 갸웃뚱하기를 반복한다. 녜웨이핑(백)은 실리를 철두철미하게 챙기는 타입이며 거센 반발 없이 꾸준히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반면 조 국수(흑)는 여기 저기 섬광을 일으킨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균형을 섬세하게 잡아 나간다. 그러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집 차이는 한 집에 불과하다.
두 대국자가 한 집의 중요함을 너무나 잘 안다. 한 집 선수면 어디든지 손이 돌아간다. 숨막히는 순간의 연속이다.
그렇게 인내심을 발휘하던 녜웨이핑도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 모양이다. 조 국수의 103에 잇지 않고 패로 버틴다. 조 국수도 맛좋게 따낸다. 패를 한번씩 교환하고 난 후 이 패는 100수 가까이 방치되었다가 종반전에 접어들어 무려 38회의 패싸움으로 이어져 승패의 분기점이 되었다.
오늘 이 대국이 역사적인 대국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 못했다. 세계 바둑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분수령이 되었음을 아무도 몰랐다. 싱겁게 끝나리라 생각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매스컴을 포함한 모든 바둑계 인사들이 응씨배 결승4국이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조차도 잊어버린 듯했다. 본국의 어느 신문사에서도 기자를 보내지 않았다.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모르나, 그만큼 국내 매스컴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었다.
조 국수의 집흑으로 시작된 이 대국은 각자 제한시간 3시간씩 주어진 상황에서 모두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시간을 물 쓰듯 했다. 160수 언저리에서 두 대국자 모두 주어진 3시간을 다 소진하였다.
종국은 316수에 이루어진 긴 여로였다. 응씨배 기전에서는 공배까지 번갈아 메워야 한다. 그러나 이 대국은 처음부터 조밀하게 둔 관계로 메워야 할 공배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316수까지는 참으로 먼길이었다.
가는 도중 구비구비 많은 역경도 거쳐야 했다. 처절함과 기세의 싸움이 곳곳에서 불꽃을 튕겨냈다. 시작부터 조밀하게 짜여가던 판은 끝까지 한 집 두 집을 다투는 격돌의 연속이었다. 백이 두면 백이 우세해 보이고 흑이 두면 흑이 우세해 보였다.
208수부터 시작된 패싸움은 초읽기에 피를 말리면서도 한없이 이어졌다. 4집 크기의 패싸움을 두고 무려 38회의 패싸움을 이어갔다. 숨막히는 순간의 연속이고 눈 터지는 계가의 반복이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대국은 오후 6시 20분경에 종국되었다. 점심 때 1시간을 제하고 무료 7시간 넘게 사투를 벌인 셈이다. 결과는 조국수의 반면 9집 승. 덤 8집을 제하고 1집 승이다.
검토실에서 마지막 계가를 하던 윤단장, 김학수 4단, 일본인, 필자와 교민들은 순간 서로를 쳐다볼 뿐 할 말을 잊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 누구의 입에서 먼저 터졌는지 모를 우렁찬 함성이 방안을 진동했다. 일본인을 제외한 모두가 두 손을 하늘높이 번쩍 치켜 들었다.
"조훈현 만세! 대한민국 만세! 조훈현 이겼다! 만세! 만세!"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 앉고 펄쩍펄쩍 뛰었다. 윤기현 단장은 눈물을 글썽이며 목소리마저 쉬어 있었다.
"해냈어, 훈현이가! 정말 대단해."
계시자의 종국 선언이 있자 기자와 사진사들이 대국장 안으로 몰려들어 금방 아수라장이 되었다. 복기할 여가도 없이 기자들이 몰려들어 약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 국수의 소감이 귓가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 컨디션도 좋았고, 운이 따라주어 이길 수 있었다. "
조 국수가 대국장을 떠난 후에도 녜웨이핑은 돌부처가 된 양 바둑판을 내려다 보며 좀처럼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깊은 회오와 자괴에 빠져 절망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느끼게 했다.
다음 날은 오전부터 일정에 없던 일들이 생겼다. 싱가포르 영자 신문인 ‘ 스트레이트 타임 ' 지와 중국 일간지에서 기자들이 몰려와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인터뷰를 마치자 이번에는 일본인들이 달려 와 어제 둔 바둑의 복기와 해설을 요청하였다. 이번에는 필자의 도움 없이 조 국수와 윤 단장의 유창한 일본어로 해설이 이루어졌다. 일본인 중에는 기보해설을 전문으로 쓰는 작가도 있었다.
오후에는 주 싱가포르 한국대사관을 방문하였다. 대사께서도 어제의 승전 보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문을 환영한다고 했다. 대사도 2급 정도의 실력을 갖춘 바둑 매니아다. 필자보다 2년 선배인 대사와는 여가를 이용하여 바둑, 골프로 곧잘 어울리곤 했었다.
대사를 예방한 자리에서는 자연히 바둑에 관한 이야기로 의기투합하였다.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칭찬의 말과 함께 저녁에는 교민들을 초청하여 대사 관저에서 가든파티를 열어 주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가든 파티에 참석한 교민상사 주재원, 은행 주재원, 대사관 직원의 수는 100명이 넘었다.
오래간만에 국위를 선양한 민간 외교사를 둘러싼 파티에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몰랐다. 애석하게도 그 많은 인원 중에 본국 기자는 한명도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교민들은 그날 밤하늘의 별빛이 유난히 맑고 투명 하다는 것을 느꼈다. <사진/월간바둑>
(4편에서 마지막 회가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