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교천
바다에는 작은 파문이 일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파문을 일으키는 바다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있다.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어떤 장소에 대한 느낌이 있다. 오래전 한 번이라도 가 본 적이 있는 장소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고, 경험이 없는 곳이라도 친근한 지명에서 오는 까닭 없는 친밀감, 또 어떤 정보를 확인하고 싶은 조급함 같은 것이 있다. 여러 번 미루고 망설이다가 한번 마음으로 정하면 그곳은 마치 향수처럼 그리워지고 꼭 만나야 하는 친구처럼 마음이 조급해진다.
삽교천은 오래전에 여러 번 가 본 적이 있어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새롭다. 봄철이면 제방 둑 위에서 숭어 낚시도 하고 또 갓 잡아 올린 생선을 파는 아낙들이 길가에 좌판을 놓고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아낙들은 쉴 새 없이 손으로 조개를 까면서도 눈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향하고, 혹 마주치면 얼른 몸을 반쯤 일으키고 고객에 대한 예를 갖추는 정겨운 풍경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삽교천은 외형상으로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주말인데도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거리는 한산한 느낌이었다. 지난 기억을 회상하고 바닷가 쪽으로 발길을 옮기자 낯익은 방파제 앞으로 갑문이 무거운 쇳덩이로만 보였다.
‘삽교‘라는 이름은 섶(땔나무)으로 다리를 만들었다는’삽다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옛날부터 사람들은 아산만에서 삽교천 하구를 횡단하여 당진으로 넘어 다녔다고 한다. 그 후 이곳에 방조제를 만들고 왕복 2차선 도로가 가설되었다. 방조제 공사는 1976년 12월에 착공하여 1979년 10월 26일에 준공하였으며, 당시에는 획기적인 토목공사였기에 고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하였고, 그날 저녁 10·26 사태가 일어났다. 이 도로는 세월이 지나면서 현재는 왕복 4차선 도로로 확충되었다.
바다 건너편 멀리 평택항은 아스라이 피어오른 오전 안개에 가려져 있고, 크고 작은 고깃배들이 방파제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정박한 채 밀물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닷물은 그릇에 담긴 것처럼 평온한데, 작은 파문이 끊임없이 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잘게 쪼개진 세월의 변화처럼 보이는데 정작 파도를 이루고 있는 바닷물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스물여덟 살에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당하기 직전에 형 집행이 중지되어 극적으로 살아남아서 시베리아로 유형 되었다. 이후 그는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그는 죽음과 같은 시간에 오히려 삶에 대한 강한 욕구가 생겼고, 그 희망이 삶에 대한 의미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들은 지난날 많은 일들을 이루었음에도 헛되이 삶을 소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그것은 시대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며, 지나간 것들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서 뒷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파문만 바라본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삶은 슬픈 일이다. 그래도 바다는 제 자리인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파문을 일며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것이 곧 자연의 순리요 진리이기 때문이다. 삶도 진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지금은 방파제 위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쉼터와 규모가 작은 해상 테크도 만들어 놓아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지난날처럼 거리에 생선 좌판을 놓고 늘어선 아낙들의 정감어린 모습은 볼 수 없고, 규격화된 식당 거리에는 대형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이곳을 가려면 수원 터미널에서 당진행 버스가 자주 운행하며, 삽교천에서 내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