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거기 너 있었는가?!
찬송가 중에서 그때 거기 너 있었는가?! 라는 찬송을 부를 때면, 과연 이러한
가사가 맞는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 달리실 때에, 바로 그곳에 있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그저 담담하게
스쳐가는 생각과 같이, 단순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생각하는 정도로
받아들이곤 하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삶을 따르는 삶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과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22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23 이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이다.
24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제 스승만큼 되고, 종이 제 주인만큼 되면, 충분하다.
그들이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고 불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겠느냐!"
26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 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28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30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할 것이다."
34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35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37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의인이라고 해서 맞아들이는
사람은,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마태복음 10 : 22 ~ 42절 - 새번역성경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 하셔서, 창세 이후로 모든 영혼들의 죄를 대속하셨던
것은 초림 이전에 살았던 사람의 영혼들도 살리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서, 대속이 초림 시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 이후를 사는 사람에게
한하여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라면, 초림 이전을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영벌에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는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으신 일로
우주만물을 공의와 질서 가운데 운행하시는 이치와 맞지 않습니다.
즉 심판의 주재가 되실 수 없는 일이 되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되며,
심판을 받는 존재들도 순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 자들도
올바르지 못한 판결이나, 정치를 하게 되면 지탄을 받고, 국민들에 의하여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하물며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공의와 정의와 질서를 무시하시면서 심판을 하시는 것이 타당한가?!를
생각하면 답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 못 박히는
대속의 사역을 감당하셨어야 했던 것입니다.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절대로 함께 할 수 없기에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구원의 은혜에 이르는 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
대속의 의미가 구원받는 사람과 항상 함께 하시면서 죄에서 회개하는 삶으로
동행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사시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것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23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24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
25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26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요한복음 11 : 23 ~ 27절 - 새번역성경
그때 너 거기 있었는가?! 라는 말은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죄의 대가를 치러 주셨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일이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을 중심으로 앞 사십일을 사순절이라 하며,
뒤 오십일을 오순절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러한 일을 증명하여 주는 일로
믿음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자신의 옛 사람, 곧 육체의 소욕을
따르던 삶에서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말씀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19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의롭다고 하여 주시는 것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2 : 19 ~ 21절 - 새번역성경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가운데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앞에
서야 할 때가 이를 것이며, 이 때가 이르면 자신이 삶을 살았던 것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즉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 곧 이성으로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잘 다스려서, 선한 양심으로
살았는가?!에 따라서 곧 순종하는 삶을 살았는가?! 불 순종의 삶을 살았는가?!
따라서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될 것인지?!, 사탄과 함께 할 것인지?! 결정되어질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일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초림 하시기
이전을 살았던 사람들에게까지 하늘나라의 복음이 선포 되어진 것으로
이해되며, 비록 죽음의 세상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영혼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될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말씀이 최초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하여 알 수 있게 하시고 계십니다. 특히 순종의 제사를 드린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을 때에, 가인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게
양심을 깨우시고 계심을 알 수 있으며, 믿음의 글 히브리서 9장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9절에서 구약의 제사, 곧 율법으로 드리는 제사와 14절에
기록하신 성령을 통하여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통하여 양심을
깨우시고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깨우셔서,
성삼위일체로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한 것이며,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 동안 하나님에 대하여 깨닫고, 믿어서 순종의
삶을 살 때에 비로소 자신의 영원한 삶을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르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각 사람의 시작과 끝이 되셔서, 모든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것이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서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창세기 4장 7절 - 새번역성경
이 장막은 현 시대를 상징합니다. 그 장막 제의를 따라 예물과 제사를
드리지만, 그것이 의식 집례자의 양심을 완전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히브리서 9장 9절 - 새번역성경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히브리서 9장 14절 - 새번역성경
믿음의 사람들이 항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매일,
매순간마다 죽어야 하는 말씀이 바로 그때에 거기 너 있었는가?! 라는
질문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모든 숨겨진 일들이 가시적으로 나타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부터
곧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될 때부터 일 것입니다. 이때가 이를 때까지
모든 사람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성령을 의지하여 영혼의
양식, 성경 말씀을 항상 살피고, 자신의 삶의 거울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