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아리랑 음악회를 마치고
베를리너 돔(Berliner Dom)은 700여명의 파독근로자와 그 가족 그리고 재독동포들의 아리랑 합창으로 가득 찼다. 베를린에서 가장 유서 깊고 아름다운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모두의 노래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이어졌다. 눈물을 훔치는 파독근로자 어르신들을 보며, 우리의 음악이 그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감사와 축복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베를린 아리랑은 파독 근로자 60주년 및 한독수교1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나눔클라리넷앙상블(이하 나눔클라리넷)이 주최한 행사다. 나눔클라리넷은 단 한사람이라도 음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연주로 섬기고 나누는 것을 목적으로 2007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의 김문길 지휘자는 독일 유학시절 음악을 전공할 때 파독근로자 가정의 도움으로 힘든시기를 잘 극복하였고, 그 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 조국을 떠나 독일의 탄광과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생을 바친 대가로,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초석을 놓은 60년 전의 젊은이들. 김문길 지휘자와 나눔클라리넷은 그 분들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고자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
먼저 4월 7일~ 8일 진행된 ‘리멤버 픽쳐’는 선발대 12명이 진행한 사진촬영 행사다. 부부사진을 찍는 분도 계셨고,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분들, 키우는 반려견까지 함께 사진을 찍는 분들까지 총 200여명의 분들이 방문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신 덕에 선발대팀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어르신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금세 힘이 솟았다.
50~60년의 세월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아낼 수 있을까. 청년으로 독일에 도착하여 길고 고단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흰머리 성성한 노인이 된 어르신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빛나게 사진 속에 담기길 바랬다. 말을 걸고 재미있는 질문을 해가며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게 하고, 한 분 당 이백 번씩 셔터를 누르는 나의 수고도 최고의 사진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당할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사진을 촬영한 탓에 액자로 제작할 사진을 선택하는 것도 전담인원이 붙어야 할 정도로 복잡한 과정이었다. 선별된 사진파일을 서울로 보내 프린트를 하였다. 모두 액자에 넣어 본대가 올 때 갖고와 음악회가 끝나고 나눠드렸다. 사진을 확인한 어르신들이 모두 만족하셨다. 촬영책임자로서 최선을 다한 나의 마음이 그분들의 기쁨이 되었다니 다행이고 뿌듯하다.
4월 11일에는 독일 한인분들과 함께하는 ‘찾아가는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파독근로자분들이 고국을 떠나던 그 시절 부르던 ‘오빠생각’ ‘ 반달‘ ’퐁당퐁당‘을 하나되어 노래하고, ’꿈에 본 내고향‘을 부르던 중에는 파독간호사로 떠난 딸에게 보낸 아버지의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흘렸다. 음악회의 마지막은 ‘만남’을 합창했는데, 누구라고 할것 없이 서로 부둥켜 안으며 감사와 사랑을 나누었다. 음악은 이렇게 서로의 벽을 허물고, 마음을 치유하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4월 15일에 진행된 ‘베를린 아리랑’은 나눔클라리넷이 2년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기념음악회다. ‘그리운 금강산’과 ‘고향의 봄’처럼 고국에서 즐겨 들으시던 노래를 연주하고 피리와 태평소가 어우러진 ‘어라운드 아리랑’, 태극기와 독일국기를 흔들며 한마음으로 합창한 ‘아리랑’까지 파독근로자 어르신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곡들로 베를리너 돔을 가득 채웠다. 60년 전 낯선 이국 땅에서 헌신한 어르신들의 삶이, 단 한 번의 음악회로 모두 보상받을 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정성을 다한 음악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렸다.
대한민국이 경제규모 세계 13위, 무역규모 세계8위의 경제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신들이 흘린 땀과 눈물 덕분이라고. 그 수고와 헌신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그러니 아리랑 부르며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했다.
나눔클라리넷의 ‘베를린 아리랑’이야기는 5월 25일 다큐인사이트에서 방송된다. 이 방송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파독근로자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