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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13-15)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계2:20)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성경적인 예배에 대한 세 번째 글이다.
예배란 동침하는 것?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래서 함께 말씀을 묵상해 보기로 한다. 요한 계시록에서 책망하고 있는 발람의 교훈과 이세벨의 교훈, 그리고 니골라 당의 교훈……이 세 교훈의 본질은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것과 행음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증거이다. 이 말은 곧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곧 행음(간음)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저는 성경적인 예배(2)예배란 무엇인가? 라는 글에서 예배란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가르침 받고 배우느냐의 문제는 곧 누구를 예배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러한 것을 행7:42-43에서 스데반은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라고 증거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배가 왜 동침하는 것인가? 라고 반문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말씀을 먹는 것이라면 동침하는 것이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 그리고 누구에게 가르침 받고 배우는 가는 누구와 동침 하느냐인 것이고 그리고 누구의 씨를 잉태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이삭,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대표적인 사례이다.
(창4: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카인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낳은 것이다? 이 말은 카인의 아비가 여호와 라는 말이다. 즉 카인은 여호와의 가르침을 통하여 받은 말씀(씨)으로 잉태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천만의 말씀이다. 아담과 하와는 반드시(죽고) 죽으리라(무트,무트)는 말씀은 거부(부인)하고 너희가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뱀의 말(가르침)을 믿고 순종하여 낳은 아들이다. 즉 뱀으로 말미암아 잉태된 아들이라는 말이다.(예수의 잉태와 비교하여 보라)
(창2: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3: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2:17 : 반드시(무트) 죽으리라(무트)
창3:4 : 결코(무트) 죽지 아니하리라(무트)
“무트”란 말은 죽는것을 말하는 히브리어이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처음 하셨기 때문에 그냥 무트 무트 하셨을 것이다. 이것을 그냥 읽으면 “죽고 죽을 것이니라”라고 읽고 그렇게 이해 하여야 한다.
그런데 번역 하는 이들이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번역하였다.
아마도 번역한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또 죽을 수는 없기에 틀림없이 죽는다고 강조하는 의미로 “무트” "무트"를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번역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렇게 번역한 사람들처럼 아담과 하와도 같은 의문을 하였을 것이다. 죽으리라는 무트를 한번만 쓰면 될 것을 왜 무트를 또 썼을까? 라고……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영의 남편이신 하나님에게 물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묻지 않고 정말 죽을까? 하나님이 설마……아담과 하와가 왜 이렇게 생각 하였을까? “무트’를 하나만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트 무트 라고 쓰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와에게는 죽을까? 안 죽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겨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이런 하와에게 뱀이 말한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않는다고……무트(결코) 무트(죽지) 로(아니 하리라) 로가 더 붙었지요? “로”란 말은 아닌, 아니다 라고 부정하는 부정사이다. 그러므로 무트(죽으리라)를 부정하니까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가 되는 것이다. 결국 뱀이 한 일은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을 부정(부인)하게 한 것이다.
(롬6: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아담과 하와가 이해 못한 무트 무트를 저는 이 말씀으로 해석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부인)하고 먹으면 그리스도가 죽고(무트) 나도 함께 죽는 죽음……그렇다 창2:17에 쓰여진 무트 무트는 그리스도(말씀,성령)가 죽으실(첫 번째 무트) 때 나도 함께 죽는(두 번째 무트) 십자가 죽음을 태초부터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트 무트는 십자가 복음(교훈,가르침)인 것이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뱀의 교훈(복음)……이렇게 말한 뱀의 교훈(복음, 가르침)의 목적은 무엇일까?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는 “무트”는 뱀도 거스르지 못한 것을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뱀의 목적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그리스도를 살아나지(부활) 못하게 함으로 그리스도와 내가 함께 살아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씀을 부정(부인)하여 그리스도가 죽고 나도 죽게 되었다면 내가 살아나지 못하게 하려면 그리스도가 살아(부활)나지 못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시인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말씀(그리스도)을 부정(부인)하여 그리스도를 죽게 하고 나도 함께 죽었다면 그리스도가 살아나고 나도 함께 살아 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씀(그리스도)을 부정(부인)하지 않고 시인하고 나의 원함을 부인(부정)하면 되는 것이다.
(마10: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막8:34-36)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성경(말씀)이 성경(말씀)을 명확하게 해석해 주지 않나요? 뱀(사탄)의 전략은 그리스도(말씀)가 살아나기 위한 자기 십자가의 필요성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구원” 이라는 십자가 구원의 복음은 뱀의 교훈(뱀의씨,영)인 것이다. 즉 아담과 하와에게 무트 무트에 “로”라는 부정사를 더하여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속였던 뱀(사탄)은 오늘날에는 너희가 결코 죽을 필요가 없다는 말로 계속 그리스도(말씀)를 부인(부정)하게 하고 있다. 이를 새로운 무트 무트라고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구원”이라는 말이 맞기는 하지만 이는 자기 십자가를 부정하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맞지요. 그러나 그렇게 죽으신 그리스도가 내가 자기 십자가에서 죽을 때 비로소 살아나시는(부활) 것이다. 죄 사함이 구원 이라고 하면 모르지만 존재의 구원을 이야기 한다면 그리스도가 살아나는 부활이 반드시 있어야 구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가 필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트 무트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않으리라”라고 가르쳤던 뱀은 지금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라고 하며 우리로 하여금 자기 십자가에 죽지 못하게 하는 새로운 무트 무트에 대한 해석으로 속이고 있다. 그러나 “부인”(부정)과 “시인”에 대하여 묵상해 본다면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다.
(창6:1-7)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해석이 난해한 말씀 중 하나이다. 우리는 가인을 최초의 살인자라고 배웠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최초의 살인자는 아담과 하와이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는 그리스도(말씀)를 죽이는 최초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겠다고 하시며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율법도 주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어떤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기에,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어떻기에 하나님께서는 한탄하고 근심하게 된 것일까?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하나님께서 한탄 하시고 근심하게 된 원인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말씀이다. 딸은 여자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남자이다. 사람의 딸(여자)은 하나님의 아내가 되어야 할 정혼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아내가 되어야 할 정혼자를 자기 아내 삼아 네피림을 낳았다는 것이다. 네피림은 큰자, 용사 곧 명성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죄악은 결국 홍수의 심판으로 나타난다.
(마24:37-39)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나는 이 말씀을 보면서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는 죄는 바로 하나님의 아내가 되어야 할 여자(딸)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 아내 삼는 시집가고 장가 드는 영적인 혼인을 말하는 것이지 우리가 시집가고 장가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 6장의 상황이, 그리고 예수님의 때에도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 하셔서 다시 오실 때에도 이 죄가 세상에 가득해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한탄하시고 근심하신다는 말인 것이다. 이 죄의 원조는 아담과 하와이고……
여기에서 뱀에 대하여 잠깐 묵상해 보자. 여러분은 말하는 뱀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못 보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니까 믿으라네요? 맞나요? 그렇다면 뱀은 지금도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태초의 하나님과 지금의 하나님이 같고 그 때 창조한 세상이 지금의 세상과 동일하다면 말하는 뱀이 계속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뱀이 전혀 발견 할 수가 없을까요? 저는 말하는 뱀을 날마다 본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말하는 뱀 때문이다.
창세기 3장에서의 뱀은 결코 동물 뱀이 아니다. 뱀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나하쉬”는 “쉿”하는 소리에서 왔다고 하네요. 그리고 은밀하게 점을 치거나 복을 빌어주는 복술사,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아담과 하와가 뱀(복술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배웠다면 이는 뱀과 동침하는 행음(간음)을 한 것이고 그리고 낳은 아들이 카인 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말씀)를 부정(부인)해서 낳은 독사의 새끼……그리고 그 뱀을 “여호와(하나님)”라고 한 것이다.
(마3:7-10)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마12:34)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23:33)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창세기 3장에서는 뱀으로, 창세기 6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예수님의 때에는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으로, 지금은 목사와 신부로 있어서 하나님의 아내가 되어야 할 정혼자인 여자를 자기 아내삼고 행음(간음)하고 행음(간음)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네피림을 낳는다. 눈을 들어 보라 수천억을 들여서 예배당을 건축하고 수 백만 명을 자기 아내삼고 있지 않는가? 아닌 교회를 찾을 수 있는가? 이 정도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실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불로 심판하겠다고 하시지 않을까요?
샬롬~
첫댓글 예배가 동침하는 것 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잉태 때의 상황을 묵상해 본다면 결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마1: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18-21)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성경을 문자로 보는 형제가 있다.
처녀가 아들을 낳을수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에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믿으라고 한다.
아마도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선생이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요셉이 생각한 것처럼 마리아가 행음(간음)하여 잉태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
성령과 마리아가 육체적이 관계를 맺었다는 말인가?
전혀 아닐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다.
그리고 영은 말씀이다.
이제 난해한 문제가 풀리지 않나요?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는 말은 말씀이 잉태되었다는 말인데 말씀이 잉태되는 유일한 방법은 가르침 받고 배움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받고 배우는 예배는 남자의 씨를 받는 동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편으로 말미암아 잉태 해야한다,
만일 다른 남자로 인하여 잉태되었다면 이는 행음( 간음)한 것이다.
이 말씀을 해석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말도 안된다고 성경이 훼방받는 것이다.
성경을 이렇게 풀어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성경을 비유로 봄에 있어서 어디에서어디까지 비유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예수님께서도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하는 말씀이 거짓이 아니라면 성경은 모든 말씀이 비유잂 것이다.
비유라는 말은 물론 그 말씀 안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말씀이 나에게 적용되어 이루어 지지 않으면 그저 비유일 뿐일 것이다.
그것도 햐석된 말씀으로......
이런 맥락으로 볼 때 비유로 그냥 있는 말씀은 다른 사람이 한말 또는 그가 살아온 모습이므로 나에게 비유일 뿐이다.
그 비유의 말씀이 해석되어 나에게 이루어 져야 진정한 기름 부음이 된 그리스도 예수가 아닐까?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는것을 알리라. 라는 말씀이 성취될 때 비유의 말씀이 잔정한 해석된 말씀으로 온전해 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