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3월 강릉여고에 입학했다
1987년 3월 강릉여고에 입학했다.
그리고 2020년 3월 내 딸이 강릉여고에 입학했다.
딸과 함께 고등학교 동문이 된다는 것은 참 뿌듯하면서도 신기하다.
강릉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과 직장 때문에 20대 시절 잠시 강릉을 떠났다.
그리고 20대 후반 강원일보 강릉주재 기자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순환근무 때문에 잠시 2년 동안 본사근무를 한 것을 빼면 1999년부터 2020년까지 강릉에서 강원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 강릉에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여성계와 교육계, 복지정책, 경찰 등을 출입했었다.
20대 후반 3년차 기자라 천지분간 못하고 뛰어다닐 때 였다. 당시 강릉에 기관장이나 여성단체, 시민사회단체 회장님을 만나 인사할 때 처음 묻는 말이 "고향은 어디인가?"였다. "강릉"이라고 하면 다음 질분은 바로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는가?"였다. "강릉여고를 나왔다"고 하면 바로 반색을 하며 몇 기 인지를 물어봤다. 그래서 내가 46기인지 찾아서 외우고 다녔다.
강릉여고 덕분에 강릉에서 기자활동을 하면서 너무나 쉽고 편하게 강릉사람 일원이 됐다. 두말없이 우리 후배였고 강릉사람이였고 일이 있을 때마다 전화로 알려주고 챙겨줬다.
그런데 실은 지금에서야 고백하자면 난 강릉여고가 아닌 강일여고에 입학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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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릉여고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시험을 봤었다. 고등학교도 입시를 통해서 들어가야 해서 중학교 때 독서실을 다니며 참 치열하게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전교 1ㅡ2등은 아니었지만 못하는 성적은 아니었기에 내심 기대했는데 큰언니는 "도저히 너는 내가 감당이 안 된다. 아무도 나한테 막내 여동생이 있는 줄 모르니까 강릉여고를 가라"고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아닌가?
섭섭한 마음에 강일여고를 가겠다고 계속 고집을 부리자 아버지가 조용히 부르시더니 "내가 강릉 교육계에 30여년 근무했는데 딸 셋 중에 한명은 강릉여고를 가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그날로 강릉여고 원서를 썼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밤 12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물론 야간자율학습 시간은 밤 10시까지였다. 그런데 학교에서 1층 2개 정도의 교실을 밤 12시까지 개방해 줬고 독서실보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택했었다.
밤 12시 집에 가는 길은 참 무서웠다. 학교에서부터 무선국 앞 집까지 걸어가면 20분정도 걸렸는데 문화의 거리에서 서부시장까지 가는 도로를 걸으면 도로 한 중간 하얀 선을 밟으며 집에까지 가던 일이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강원일보 기자의 꿈을 키운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였다. 내가 강릉여고를 다닐 때만해도 각 밤마다 강원일보가 들어왔었다. 매일 신문을 보며 신문기자의 꿈은 더욱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강원일보 기자가 돼 고향 강릉에서 활동하는 꿈은 계속 꿨다. 그 꿈을 현재 이루고 살고 있다니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내 딸 정민이도 지금 강릉여고를 다닌다. 입학하자마자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수업이다 뭐다 하며 꿈꾸던 여고생활은 온전히 즐기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침마다 방긋방긋 웃으며 학교 가는 모습이 흐뭇하다.
박문헌 교장 선생님 이하 선생님들 모두 한마음으로 아이들을 챙겨주는 모습에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든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내가 강릉여고를 다니며 인생의 꿈을 꾸었듯 내 딸도 인생의 꿈을 키우길 바란다. 그 꿈을 구체화시키고 쟁취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나의 모교이자 너의 모교가 될 강릉여고에서 만들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