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1 장1절 -2절)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저는 이미 창세기 1장1절 의 말씀을 원어를 살펴보며 글을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쓰는 것은 지금의 현실이 하나님께서 태초(처음)에 창조하시기 전의 하늘과 땅의 상태와 같지 않을까 싶어서 이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태초(처음)에 창조하시기 전의 하늘과 땅은 흑암 이었습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쓰여 있지만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하늘과 땅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인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하늘과 땅을 이제 창조 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인지는 묵상의 대상입니다.
(요한계시록21장1절-2절)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요한계시록21장1절의 말씀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하늘과 땅을 이제부터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창조 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초(처음)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하늘과 땅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신(성령)은 수면(물위)에 운행하시는 때를 말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혼돈하고 공허할까요?
(창세기1장3절-8절)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혼돈”은 빛과 어둠이 그리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나누어지지 않은 것이 혼돈 입니다. 그리고 “공허”한 것은 하나님의 신(성령, 그리스도)이 수면 위에 있음으로 땅의 안에 들어오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우주 만물의 창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21장1절-2절의 말씀을 볼 때 성경은 하나님께서 태초(처음)의 하늘과 땅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창조하시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볼 때 이런 관점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태초(처음)의 하늘과 땅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요한복음1장1절-5절)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8장12절)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흑암(어둠)은 빛이 없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흑암이라 함은 빛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여기에서 먼저 정리하고 넘어갈 사항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우주 만물의 창조인가? 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우주 만물의 창조가 아니라 사람 안에 영의 하늘과 땅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에 초점을 맞춰서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볼 때 저의 이해가 맞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말씀과 말씀이 서로 충돌하게 됩니다. 창조의 과정을 볼 때에 그렇습니다.
첫째 날에 이미 빛을 창조하셔서 빛과 어둠이 나누어 지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넷째 날에 궁창이라는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셔서 땅을 비취게 합니다. 이미 빛을 만드셔서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칭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또 궁창이라는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셔서 땅을 비취게 하셔야 할까요? 우주 만물의 창조라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현상은 낮은 해가 비취는 때이며 밤은 달과 별이 비취는 때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창조는 우주 만물의 창조가 아니라 영적인 하늘과 땅을 우리 안에 창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을 우주 만물을 창조하는 비유의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8장12절)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1장1절-3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4장13절-14절)
(1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혼돈이 빛과 어둠이, 그리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빛과 어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은 무엇일까요? 빛이 무엇이라고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이라고요? 말씀이고요. 물이 무엇이라고요? 물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가르침의 말씀입니다. 빛과 물 모두 말씀이신 하나님을 말하지만 빛은 말씀 자체를 말하는 것이라면 물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을 분별하기 전에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를 살펴봅니다. 이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빛과 어둠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4장13절-14절에서 13절의 “이물”은 야곱의 우물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야곱의 교훈, 가르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에서의 “내가 주는 물”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물로서 예수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이 두 불을 비교해 볼 때 어느 것이 궁창 위의 물이고 궁창 아래의 물인지는 누구든지 분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자세히 살펴보고 성령(그리스도)의 인도하심(가르침)만 있다면 쉬운 것입니다.
(요한복음4장15절-19절)
(15)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라고 하시다가 갑자기 남편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이게 무슨 말인가? 사마리아 여자는 여섯번이나 결혼한 여자인가? 아니면……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 하여야 할까요? 어둠, 빛, 궁창 위의 물에 대하여는 이미 설명 드렸고 이제 어둠, 그리고 궁창 아래의 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씀 드리려고 요한복음4장15절-19절의 말씀을 가져온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4장34절-35절)
(34)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성경에서의 남편은 말씀을 가르치는 남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섯 남편이 있었다는 말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남자가 다섯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섯 남편이 가르친 말씀은 야곱의 우물의 물(교훈)이라는 말이고요. 즉 사람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창세기에서는 어둠이라고 하고 궁창 아래의 물이라고 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3장20절)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라는 창세기1장2절의 말씀은 사람의 가르침의 물 때문에 하나님의 신(성령, 그리스도)은 그 가르침 밖에서 두드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혼돈하고 공허하다고……그래서 우리에게 빛과 어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는 창조를 하시는 것이 창세기 1장의 말씀입니다.
태초(처음)의 사람들은 빛의 말씀과 어둠의 말씀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흑암(어둠)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과 어둠을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어둠(흑암)의 실체는 궁창 아래의 몰인 해와 달과 별의 가르침(사람의 가르침) 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성령)은 지금도 궁창 아래의 물(가르침) 위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우리도 태초(처음)의 하늘과 땅처럼 흑암이 깊음 위l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시작조차 하시지 못하고 계시지 않나 싶습니다. 이제부터 그 증거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궁창 아래의 물(가르침)이 깊이 드리워진 하늘과 땅……현대 교회가 그러하고 여러분이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궁창 위의 물인 그리스도(성령)의 가르침이 아니라 밤의 말씀을 전하는 밤의 사역자인 목사와 신부(해와 달과 별)에게 가르침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19편1절)
(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밤은 밤의 말씀의사역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밤에게는 밤의 말씀을 배우는 사람을 말하고 지식은 밤의 지식(교훈)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 결과로 흑암이 깊음 위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독 소경과 귀머거리를 많이 고쳤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을 고쳐주고 구원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도행전7장42절-43절)
(42)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43)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에게 희생의 제사를 드리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반은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한 것은 하늘의 군대인 해와 달, 별인 사람에게 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21장22절-27절)
(22)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요한계시록22장5절-12절)
(5)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6)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8)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10)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새 하늘과 새 땅은 해와 달과 별의 비침이 쓸데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시기 때문에 다시는 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말씀이 있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21장15절-17절)
(15)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서는 반드시 측(척)량을 받습니다. 혼돈을 창조하신 결과의 측(척)량입니다. 그리고 공허를 창조한 결과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비치심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구원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해와 달 별의 비침(가르침)에 있지 않습니까? 태초(처음) 하늘과 땅입니다. 그럼에도 구원 받았다고 세뇌 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원 받은 자라면 해와 달과 별(사람)의 비침(가르침)이 쓸데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머문다면 구원 의 기회가 없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태초를 우리는 우주 만물이 생길때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태초란 하나님께서 내 안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되게하는 창조를 시작하는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요한 계시록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새 예루살렘 역시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태초(처음)의 하늘과 땅을 없애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사람에게 하나님과 어힌양(그리스도)의 집(성전)으로 완성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태초에,어떤 사람은 계시록에 이른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적용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아직도 창조를 시작하지도 않은 흑암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복음 시대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