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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스위스기행
단해/김영규
올해도 쉽지 않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집사람이 최근 몇 년간 손자들을 보살피느라 고생한 덕에 애들이 휴가 겸 여행을 권해서 나오게 되었다. 요즘 건강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서 1주일 이상 비교적 장기간 여행은 꺼려 지지만 아직 60대 중반 나이를 믿고 감행하였다. 여행국은 아내가 스위스를 꼭 가보고 싶다고 고집하였고, 나는 단조로우니 다른 나라를 끼워서 가자고 설득을 하여 이태리, 스위스 2개국을 패키지로 가게 되었다.
두 나라 모두 현직에 있을 때 출장을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관광을 하지는 못하였는데 이번 여행에서 커버할 수 있게 되어 퍽 다행이었다. 스위스에서는 17년 전 기상 탓으로 못 올라가 본 알프스 융프라우, 이태리는 못 가본 피렌체, 베니스, 밀라노를 가게 되었고 그 외 남부 이태리와 스위스 호반도시, 국경지대인 알프스도 버스로 넘게 된다. 내 가슴속에 비어 있던 여행 퍼즐이 하나씩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바티칸성당, 피렌체 두오모 성당, 산마르코 성당 등 기독교 성지순례도 겸하니 일석이조 여행이다. 인천공항에서 로마 직항편으로 로마 ‘레오나르도다빈치’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당일은 로마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본격적인 여행 첫째 날을 맞았다.
여행 첫째 날은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카프리섬에 갔다가 로마로 돌아오는 당일 코스였다. 나폴리는 로마 남쪽으로 약 3시간 거리에 있고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며, ‘산타루치아’, ‘오 솔레미오’ 등 민요가 유명하다. 나폴리 인근에 있는 폼페이는 2000년 전 ‘베수비오스’ 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덮였다가 1740년경 우연히 농부에 의해 발견된 이래 현재까지 약 70%가 발굴되고 관광지로 거듭난 비운의 고대도시로서 규모가 상당하고 그 당시 생활상을 생생하게 볼 수가 있었다. 다시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소렌토. 소렌토는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로 유명하며 지중해를 따라 해안 절벽을 끼고 조성된 아름다운 휴양지로서 가로수가 레몬 나무이며 누구도 손대지 않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3개 도시가 관광벨트를 이루고 로마로부터 당일 패키지여행이 성행하며 개별여행을 가면 호텔에서도 신청할 수가 있다.
여기에 추가하여 옵션으로 소렌토에서 배를 타고 다시 30분을 가면 휴양지로 유명한 카프리섬이 나오며, 로마 아우구스토 황제의 별장이 있다. 우리도 이 아름다운 섬을 방문하였는 데, 영국의 찰스 황태자(지금은 찰스 3세 영국국왕)와 우리의 2002년 월드컵 축구영웅 박지성 선수가 신혼여행을 여기에 왔었다고 가이드는 전한다. 로마에서 버스, 열차, 유람선을 번갈아 타며 하루 만에 이태리 남부 일정을 소화하였고, 점심은 스파게티와 해산물을 곁들인 야채 살라드로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은 이태리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로마시내 관광이 잡혀있었다.
로마는 로마제국의 수도로서 많은 유적이 남아 있고, 기독교 성지, 르네상스 문물의 보고 등 인류 문명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다음날 로마 여행은 ‘바티칸시티국’에 속하는 바티칸 박물관부터 시작되었는데 관광시즌이라 줄서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여행사에서도 예약이 여의치 않아서 아침 식사도 빵으로 떼우고 아침 6시 반부터 단체로 줄을 섰다. 쌀쌀한 날씨 가운데 3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겨우 입장을 할 수 있었다.
바티칸 박물관은 바티칸 궁에 교황들이 모아놓은 예술작품 들을 모아 놓은 곳으로서 나폴레옹 이태리원정 때 많이 가져가고 벽화나 부조물이 많이 남아있는 데, 대표적으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인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과 보티첼리, 라파엘 등 많은 화가들이 그린 시스티나 채플 벽화 및 조각품 들을 감상하고 바티칸성당으로 넘어갔다. 바티칸성당은 2세기 중엽에 작은 성당이 세워진 이래 몇 차례 재건축을 통해 17세기 초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으로서 세계 최대의 성당이며 로마 교황께서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곳이다. 실내에는 수많은 조각품과 성화 그리고 역대 교황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고 성당 입구에는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조각품인 ‘피에타상’이 있다.
30여년 전 처음 바티칸성당을 방문했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당은 위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이며 성당의 건축 규모 면이나 수많은 조각과 그림들에 감동되어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훌륭한 성당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 자신이 세운 거야”라고 나는 그 당시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1층에는 교단이 있고 맨 앞에는 성령을 나타내는 비둘기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으며, 성당 중간에는 성 베드로의 청동상이 있는데 방문객들이 발을 만지면 축복을 받는다는 말에 하도 만져서 오른쪽 발이 닳아 매끈 했지만 지금은 만질 수 없도록 울타리가 처져 있었다. 그리고 성 베드로와 역대 교황들의 유해는 성당 지하에 안치되어 있으며 그 곳도 관람이 가능했다.
바티칸 방문 후에는 베네치아 광장과 영화 ‘벤허’에 나오는 로마제국 때의 전차경기장, ‘로마의 휴일’ 영화에 나오는 ‘진실의 입’이 있는 코스메딘 성모마리아 성당, 포로로마노 구시가지, 트레비분수, 스페인 계단, 판테온, 개선문과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등을 차례로 둘러보고 로마의 일정을 마쳤다. 지하 교회 ‘카타쿰베’, ‘성 바오로 대성당’, ‘라보나 광장’, ‘카라칼라 목욕탕’ 등 아직도 보지 못한 유적지가 즐비하기도 하지만 여행 일정상 제약이 따랐고 가는 곳마다 인파에 입장료까지 내야 하는 까닭에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제대로 감상할 여건이 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여행 3일차는 로마에서 3시간 반을 달려서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를 보고 다시 1시간 반을 더 달려 베네치아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피렌체도 로마와 같이 대형차들의 접근을 통제하는 까닭에 피렌체 근교 스칸디치에 버스를 세워두고 지상 전차인 트램으로 이동하였다. 열차를 타고 이태리인들의 일상 속에 섞이는 재미도 있었다.
피렌체에서는 대표적인 건축물인 두오모 성당을 먼저 방문하였다. 다른 중세건물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붉은색, 녹색, 흰색 3가지의 대리석으로 건축하고 문양을 낸 정말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두오모 성당의 지붕은 세계에서 제일 큰 돔을 자랑하고 있는 데 그 당시의 피렌체의 위상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피렌체의 중앙에 위치한 시뇨리아 광장과 많은 조각품들, 단테의 생가, 산타크로체 성당, 베키오다리와 강변을 돌며 사진을 찍고 기념하였다. 그러나 르네상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레오나르도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 등 천재 화가의 후원을 아끼지 않은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발자취를 둘러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점심 식사는 피렌체의 명물 T본 스테이크와 스파게티, 발사믹 식초를 곁들인 야채 살라드와 적포도주로 맛있게 마쳤다. 관광 중간에는 젤라또 아이스크림도 맛을 보았다. 피렌체에서는 여행사의 옵션으로 가죽 면세점 구경을 끝으로 다시 베네치아로 향했다. 가는 중간 아펜니노산맥을 넘고 평야 지대를 지나서 저녁 무렵 베네치아의 한 호텔에 닿았다. 베네치아 섬 관광은 다음 날 예정되어 있었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베네치아 관광에 나섰다.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는 베네치아는 118개의 섬, 409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기 567년 훈족의 침략을 피해 도피처로 베네치아 습지 위에 말뚝을 박고 처음 조성된 도시가 베네치아였으며 인공섬을 추가로 만들고 부를 축적하여 도시국가로 발전해 갔다. 특히 13세기 초 발발한 십자군 전쟁 때 중계무역으로 많은 부를 쌓아 지중해도처에 영토를 넓혀 갔다고 한다. 지금은 이태리의 일부가 됐다.
베네치아 섬에 들어갈 때는 유람선을 타고 물고기 형태 섬들의 배부분을 따라 산 마르코광장 부근 항구에 닿았다. 베네치아의 중심지인 산 마르코광장은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칭했다고 하며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인 산마르코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산마르코성당과 두칼레궁전이 있으며, 광장주변 구경을 마친 뒤 탄식의 다리, 곤돌라 승선과 골목 관광을 하고 수상택시로 뭍으로 다시 나오면서 베네치아를 일주하고 이태리에서의 마지막 여정인 밀라노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베네치아에서 아쉬웠던 점은 일요일이라 산마르코 성당 관람 시간이 오후 2시부터로 우리 관광시간과 맞지 않아서 금빛 모자이크로 아름답게 장식된 성당 내부를 직접 보지 못한 점이었고, 지구 온난화 여파로 베네치아의 보전 문제가 심각하다는 우려도 갖게 되었다. 관광지 곳곳이 조금씩 침하하거나 침수가 잦고, 교회종탑이 기우는 등으로 내년부터는 관광객을 제한할 목적으로 베네치아 당국이 관광객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계획이라고 하며, 유네스코 차원에서도 보존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불행중 다행일까?
베네치아를 떠나 다시 버스로 3시간여, 이태리의 패션과 경제의 중심지인 밀라노에 도착했다. 밀라노는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는 밀라노공국의 수도로 번성하였으며,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밀라노에서는 유럽 최대 고딕 성당인 두오모 성당과 유럽 3대 오페라 극장인 스칼라 극장, 그리고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를 관광했다. 밀라노는 스위스로 이동하기 위한 관문 도시로 가볍게 관광을 마치고 호텔에서 여정을 풀었다. 내일부터는 스위스로 넘어 간다. 스위스에서는 4,000미터 고지인 마테호른과 융프라우를 오르고, 또 호반 도시 루체른 등을 관광할 계획이다.
다음날 아침 8시 15분 우리는 버스로 스위스 국경을 넘었다. 밀라노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동하였으며, 스위스의 한 도시인 태쉬에 도착한 후 열차로 바꿔 타고 마테호른 산행 거점도시인 체르마트까지 이동하였다. 체르마트는 마테호른 산행의 최접점으로서 숙박시설과 음식점, 쇼핑 샵 등 관광지 여건을 다 갖춘 곳이었다. 우리는 체르마트에서 간단한 점심 후 산악열차를 탔다. 40분가량 마테호른과 숨바꼭질을 하듯 숨었다 보였다 하며 산비탈 길을 따라 산악열차가 마테호른과 거리를 좁혀가더니 마침내 해발 3,100미터 고르너그라트 산악열차 종점에 도착했다.
전망대가 해발 3,000미터가 넘어 고산병 걱정을 하고 준비한 약을 미리 복용한 덕분일까 별다른 증상없이 관광을 하였다. 마테호른의 높이가 4,478미터로서 알프스 4,000미터 이상 고봉 중의 하나이며 프랑스쪽 알프스 몽블랑이 4,807미터로 최고로 높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프스 연봉들은 여름 폭양에도 녹지 않고 견딘 만년설과 빙하가 9월초 쾌청한 날씨 아래 아름다움을 더해줬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빙하가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녹아내려 그 두께가 점점 얇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신문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알프스 빙하의 두께가 50센티가량 얇아졌다고 한다. 머지않아 빙하가 다 녹아내리면 여름에 지금 같은 진풍경을 볼 수가 없다는 게 끔찍한 일이다.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놓고 있다가 아쉬움을 뒤로 남긴 채 하산길에 올랐다. 내일은 또 하나의 감동 융프라우 산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테호른 등정 후 스위스 중턱의 거점도시 그린델발트에서 늦은 시간에 여정을 풀었다. 소세지와 감자튀김과 빵, 아이스크림 후식으로 비교적 만족스러운 저녁을 즐겼으며, 다음날 아침은 이젤발트 호수마을 방문이 있었는데 몇 년 전 성황리에 방영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가 그곳이다. 인기 방영된 관계로 요즘 부쩍 찾는 관광객이 많아서 입장료를 5스위스프랑 내고 들어가서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그날도 중국 관광객들이 먼저 와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인근 마을도 관광지가 아닌데 한국 드라마 덕분에 명승지가 되어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뿌듯한 일이다.
다음으로 이번 스위스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산악열차 출발역이 있는 인터라켄으로 이동해서 모처럼 한식으로 식사를 한 후 기차를 탔다. 융프라우는 해발 4,158미터로서 전망대까지는 열차를 세 번 타야 했는데, 첫 번째는 일반 열차였고 두 번째 열차부터는 레일 중간에 톱니가 깔리고 톱니바퀴가 하나 더 달린 산악열차로 바꿔 탔으며, 세 번 째 마지막 열차는 암반을 뚫고 건설된 긴 터널을 통과한 후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산악열차였다.
고산병 예방약을 복용한 덕분인지 해발 3,500미터 전망대까지 올라도 큰 어려움 없었으며, 얼음 궁전, 스핑크스 전망대를 보고 야외에 나가서 사진을 찍고, 만년설도 만져보고, 휴게소에서 한국산 컵라면을 먹는 등 잘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즐거운 시간을 갖고 난 뒤 하산을 했는데, 경치는 주변 시야가 좁아서 마테호른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길에는 최근 새롭게 조성된 케이블카로 어제 숙식을 하였던 그랜트발트까지 곧바로 하산을 할 수 있었다. 하산길에 케이블카 너머로 보이는 산악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다음날은 스위스 여행 마지막 날로서 호반의 도시 루체른에 가서 시티투어를 했다. 스위스는 과거 용병으로 유명한 데 프랑스대혁명 당시 프랑스 왕가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 시민군과 끝까지 싸우다 전사한 768명의 용병들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된 위령비를 관람하였고, 이어 중세에 지어진 목조 카펠교와 주변 시가지를 구경했다. 일부 팀은 호수유람선을 탔고 우리는 배 타는 것도 지겨워서 커피숍에 들러 커피와 다과를 즐기며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우리는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밀라노 국제공항까지 다시 국경을 넘었다. 스위스 건너갈 때 감명 깊었던 산맥이 다시 눈에 들어 왔지만 알프스의 고봉 마테호른과 융프라우를 다녀온 터라 덤덤했다. 아무튼 일행들의 여행 평가는 매우 만족스럽게 나왔다. 이태리에서는 인간이 창조한 위대한 유산과 예술작품이 돋보였다면, 스위스는 신이 빚어놓은 다른 차원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지구환경 문제를 베네치아와 알프스에서 직접 체험했고, 많은 사람들에 치여서 갈수록 여행의 깊이와 맛이 얇아지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래도 여행은 항상 많은 깨달음을 주기에 기회가 되면 다시 길 위에 서리라 다짐하면서 7박 9일의 이태리와 스위스 여행을 잘 마쳤다. 육로로 3,000여km, 알프스 4,000미터 고봉 2개를 오르고, 르네상스의 현장과 기독교 성지를 돌아본 긴 여행, 돌아오는 항공기 내에서 안도하면서 내일의 일상을 위해 오지 않는 잠을 청해본다.
첫댓글 30대에 다녀왔던 15일여의 유럽투어가 생각 나는군요
알프스 산정에서 내려다본 은색의 설원에서 본 곰과 카메라의 셔터가 얼어서 고장 난줄 알고 버리려 했던 기억들이 ...
회장님 ! 아직 유럽여행을 다녀 오지 못한 회원과 독자 여러분을 위한 따뜻한 배려 감사 합니다
김영규 회장님 !
사진 및 문학 스펙 3-4 개 보내주실수 있겠지요
네, 원장님
@열정
@열정
김영규회장님 덕분에 이탈리아와스위스를 함께 여행한 기분 입니다
안전한 여행이 되셨을 줄 믿습니다.고맙습니다
역시 덕향은 따뜻한 고향입니다.
집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식구들이 따뜻하게 맞아주는 기분입니다. 서울산다는 핑계로 소식 못드리고 산지도 7~8년 돤것 같습니다.
자주 소식드리고 가끔씩 행사때 뵙기도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