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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를 긍정적으로 밝혀주는 산방시인
이인환
1. 안분지족의 삶을 실천하는 산방시인
일찍이 공자님은 아들에게 “시를 배우지 않으면 남과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제자들아, 어째서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물정을 살피게 하며,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고, 원망을 발산하게 하며,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게 하며,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며 제자들에게 반드시 시를 배우도록 했다.
시는 그만큼 자아성찰과 자기수양의 도구이자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학문의 길이었다. 물론 시대에 편승해서 시를 입신양면의 도구로 활용한 이도 있지만, 공자님의 뜻을 따르고자 노력한 선비들은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안분지족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자기수양의 도구로 시를 활용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시로 ‘소통과 힐링’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소통과 힐링의 시>의 기본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고요를 안아 적막을 잠재우는 산방은
소리를 내지 않고
나무를 키우고 꽃을 피운다
서로는 색깔과 흔들림으로 교감하며
찾아드는 햇살의 기별로
우듬지에 올라서는 오늘을 함께 만난다
호미 끝으로 전하는 산방지기의 심상은
텃새들의 날개로 상상을 오르내리다
맨드라미 꽃술에 닿아 언어의 씨로 뿌려진다
다시 돌아오는 봄날!
베풂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새기고 쌓아
시편을 싹틔울 꽃밭에서 기다리고 있으리.
- ‘서시’ 전문
시인은 제3시집인 『산방일기』를 통해 ‘산방’이 은퇴 후 현재 머물고 있는 이천시 단월동 단드레 마을에 자리 잡은 시인의 주거공간임을 밝혔다. 이를 통해 시적 비유로 보면 ‘산방’은 단순히 주거공간이 아니라 공자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중국과 고려·조선의 수많은 사대부들과 선비들이 유유자적하며 자아성찰과 자기수양의 공간으로 삼았던 자연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서시’를 통해 시인이 추구하는 시의 세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시인은 ‘서시’를 통해 이번 시집의 주된 정서가 ‘산방’이라는 자연 속에서 ‘산방지기’를 자처하며, ‘호미 끝’과 ‘텃새들의 날개’, ‘맨드라미의 꽃술’로 이어지는 자연의 현상을 자아성찰, 자기수양의 기회로 삼아 ‘베풂’으로 ‘시편들을 싹틔울 꽃밭’에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시세계를 펼쳐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인의 시는 공자님의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고”,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는 말씀과 <소통과 힐링의 시>에서 강조하는 공동체 구성원과 소통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시의 방향과 기본정신이 일치한다. 시인의 시에는 청렴한 삶을 추구했던 선비정신과 일상에서 시를 통해 자아성찰과 자기수양을 하면서 ‘소통과 힐링’의 기쁨을 즐기는 <소통과 힐링의 시>의 묘미가 오롯이 담겨 있다.
나이 듦을 안타까워 마라
지나가버린 날은 그리운 대로
깊이를 헤아려 강으로 흘러들었을 물살이리라
바람처럼 떠돌았던 드난살이
밉기도 나무라기도 하였겠지만
기억의 간격을
비탈진 곳으로 펼치면
바다가 등 내어주는 갯골이 황혼일 것이네
꽃은 웃으며 피워도 웃음이 없고
새는 울며 날아도 눈물이 없다 했듯이
자네에게 보여주었던 삶이
무슨 부끄러움이 있었을 텐가
늙어가는 일이 허무의 탓만은 아닐 터이니
들녘처럼 익어서
물들다 시들고 떨어지는 애틋함도
아름다운 성찰이었을 것이네.
- ‘나에게 보내는 연서’ 전문
우리 사회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후진국에 비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생존의 기본요건인 의식주는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행하게도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뒤쳐지는 나라보다 국민의 행복지수가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모든 이들을 경쟁의 상대로, 심지어 가족 구성원조차 경쟁의 상대로 보는 풍조가 만연하고, 경쟁을 당연시하다 보니 내면의 만족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상대와 비교하는 삶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을까? 공동체의 행복은 경쟁이 아니라 공존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인식으로, 상대와 비교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초가삼간에서 부족한 의식주로, 죽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더라도 자연 속에서 이웃들과 함께 정을 나누며 행복을 추구했던 선조들의 삶의 자세를 챙겨나가야 한다.
가까운 자매는 더러 보이고
멀리 있는 형제는 그리움도 좁아진다
외갓집은 책 속의 그림이며
떠나 온 고향은 아린 가슴이 되었다
먹고 사는 일이 삶이라지만
본능이 순리를 초월하여 풍요 위에 있으니
나누고 부대끼고 보듬었던 체온이 식어간다
- ‘울타리’ 중에서
행복은 바깥에서 구할 때보다 자기 내면에서 구할 때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하려면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자기수양을 통해 내면을 안분지족의 자세로 채워나가야 한다.
시인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우리 사회에서 시대가 변하면서 점차로 식어가고 있는 ‘나누고 부대끼고 보듬었던 체온’, 즉 현실에 만족하는 마음으로 이웃들과 나누는 정을 유지하기 위해 솔선수범하고 있다.
무엇이라 적으면
생각이 마음으로 닿아
한 폭의 수채화로 보여질 수 있을까
읽다가 지우고
부치려다 구겨버린 유년의 숨바꼭질
유치했으나 풋풋함이 있어
집착이 흠모의 의상을 입혔으니
편린의 눈엔
신호등 색깔이 물감의 전부였을 순수….
아직도
속내를 다 비워내지 못한,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나뭇가지를 매달고 섰으니
- ‘편지’ 중에서
내면의 행복을 채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순수해야 한다. 순수가 바탕이 되지 않은 자아성찰은 궁극적으로 행복을 채울 수가 없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밤새워 편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던 시절의 순수는 나중에 나이 들어 보면 유치함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었음에도 그 시절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유난히 짧았던 봄도
폭염의 열대야도
마음이 감사했음에 넘치는 날들이었다
비우고 내려놓고 나누자 했던 사무사思無邪
또 한 번,
과수원지기가 되어
청명하고 높은 하늘을 이고
눈 오는 날의 이야기들을 따고 줍고 담아야겠다.
- ‘가을에’ 중에서
공자는 시경을 엮으면서 ‘시삼백 일언이폐지왈 사무사(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 즉 ‘시경에 있는 삼백 편의 시를 한 마디로 한다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고 했다.
여기에서 ‘사무사’란 말만 따로 떼어서 ‘시를 쓸 때는 생각에 사특함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로도 쓰는 이들이 있다. 시인이라면 시를 쓰기 전에 마음의 사특함을 먼저 챙겨봐야 한다는 경구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우고 내려놓고 나누자 했던 사무사’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는 사특함이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자연 속에서 만족하며 내면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인의 진솔하고 순수한 삶의 자세를 만날 수 있다.
풍장 된 꽃잎을 찻잔 속에 띄워놓고
볕살을 업어 우듬지를 바라다본다
가지마다 솟대에 앉은 오리의 염원을 실어
흐드러지게 살았던 봄날의 찬란함을 음미해본다
백발의 붓 끝에 스무 해 겨울 이야기를 담아
시편의 불씨로 묵향을 피워 올린다
겹겹이 쌓았던 연정이 시리고 안타까워도
껴안은 꽃봉오리가 아직은 너무 여리다
기다림이란 색을 감추어도
빛이 있어 한 곳을 바라보는 것
소생이 가까워오는 길목은 신비의 소리가 있다
계절은 왔던 길을 바람으로 지우며 돌아오고
생명들은 흙의 기억으로 다시 노래할 것이다
묵언으로 읊어놓은 순백의 연가를.
- ‘백목련, 봄을 기다리다’ 전문
시인의 산방에는 시인이 은퇴 후 이곳을 찾을 때부터 함께 해준 20년이 넘은 백목련 나무가 있다. ‘백발의 붓 끝에 스무 해 겨울 이야기를 담아/ 시편의 불씨로 묵향을 피워 올린다’에서 보는 것처럼 백목련은 시인의 시심을 피워 올려주는 더할 나위 없는 벗이다. 한겨울에 꽃봉오리와 함께 ‘흐드러지게 살았던 봄날의 찬란함을 음미’하면서 소생을 위한 몸짓을 반복하면서 ‘볕살(내리쬐는 햇빛의 우리말)을 업어 우듬지(나무 맨 꼭대기에 있는 줄기의 우리말)’에서 희망을 피우는 백목련은 곧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물아일체, 백목련과 시인은 그렇게 하나가 되어 있다.
생겨나면 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고, 자연의 순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안분지족의 삶이다. 산방에 뿌리내린 백목련과 교감하며 자연의 순리에 맡겨 ‘묵언으로 순백의 연가’로 시심을 풍기는 시인의 삶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주어진 날들이 물처럼 흘러가기를,
나그네의 눈으로 풍경을 바라본다
바람에 묻어온 시절인연도
스쳐만 가는 만남이 아니었으면,
낯가림에 붓을 적신다
나눔과 소통의 물감으로
일탈의 색을 담아내는 캔버스
텃밭은 어머니의 그리움이고
낮달은 외갓집의 등불이 되었다
- ‘산방지기가 그리는 수채화’ 중에서
스스로를 산방지기로 자처하고 ‘사무사’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시인, 그럼으로 나는 임규택 시인을 우리 시대를 살며 선조들의 선비정신을 실천하는 산방시인으로 칭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소통과 힐링의 시>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선비정신을 펼치는 산방시인을 많은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어서 행복할 뿐이다.
2. 소통의 시로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인
예전과 달리 요즘은 전 국민이 글을 배우고, 문학을 향유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시를 쓰고 향유할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만의 시세계를 구축해서 시를 어렵게 만들어 대중의 외면을 받는 시인 부류와 비유와 상징의 문학이라는 시의 기본 특성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서 시의 문학적 가치를 떨어뜨려 대중의 외면을 받는 시인 부류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출판 기획으로 <소통과 힐링의 시>를 이어가면서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쉽고도, 시의 문학적 가치를 빛내는 비유와 상징의 묘미를 잘 살린 작품을 접할 때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임규택 시인의 시들이 바로 그렇다.
내일이 아름다워야 할 꿈이 있어
날마다 낭만이 알을 품다 떠나는 둥지
주머니가 가벼우니 눈치가 비껴 앉고
행선지를 모르니 배차시간도 없다
들어서면 그곳이 노선이요 길이다
경적으로 신음하던 백열등이
갈증을 불러 모은다
환승의 잰걸음들이 쉬이 오르고 내릴 수 있어
훈훈함이 엄마의 품속 같다
끼워 앉은 엉덩이 구수한 사람냄새
- ‘강변역 포장마차’ 중에서
임규택 시인의 시는 쉽기도 하지만, 적절한 비유와 상징을 적절히 활용해서 문학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강변역 포장마차’에서 한번쯤 회포를 풀어본 사람은 공감할 부분이다. ‘내일이 아름다워야 할 꿈이 있어/ 날마다 낭만이 알을 품다 떠나는 둥지’라는 은유에서 문학적 묘미가 살아남은 물론이고 서민들의 보금자리로 사랑을 받던 포장마차의 정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장마가 뙤약볕에 숨을 고르는 날
마로니에 나무그늘로 내 유년을 불러 앉힌다
마음은 하늘에 닿아 구름이 되었다
산 그림자 걷다 멈춘 *범냇골 안창
천수답 다랑이 논, 그곳은
권위로 나락을 키우는 아버지의 성역이었다
미끄러진 시험성적 때문에
몸으로 대신해야 했던 노동의 반성문
피뽑기 멸구박멸 애처로운 시선은 사랑이었다
논두렁 도타워지는 삼복의 계절이 오면
통신표에 묻어 있는 손도장의 섭섭했을 한숨
들창코 왕집게발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 ‘아버지가 그립다’ 전문
시인의 시가 쉽게 읽히는 것은 쉬운 시어를 썼기 때문만이 아니다. 시의 담긴 대상과 정서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이야기를 가까운 이들과 대화하듯이 풀어놓은 시어라서 더욱 쉽게 다가오는 것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자식의 아버지이자 손주들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인이 그리워하는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바라는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고, 손주들에게 심어주고자 하는 아버지의 모습일 수도 있다. 아버지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때로는 권위를 내세워 엄하기도 하지만 그게 다 자식을 위한 일이었음을, 구체적인 경험담으로 표현하면서 아버지와 아들, 손주에 걸친 삼대의 화합을 꾀하는 노력을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은 가족을 떠나서 행복을 추구할 수 없다. ‘가화만사성’은 동서고금을 통한 진리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가화만사성’을 이루려면 가족 구성원들끼리 화합이 잘 이뤄져야 한다. 그 화합의 출발점은 표현이다. 따라서 표현을 잘 하는 집안은 그만큼 화합할 수가 있다. 시인은 이를 잘 알기에 일상에서 가족을 향한 마음을 시로 표현하며 가족의 화합을 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는 이처럼 속내를 표현하기 좋아서, 시를 일상에 소통의 도구로 활용하면 가까운 이들과 속내를 교류하며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어 좋다. <소통과 힐링의 시>에서 시를 소통의 가장 좋은 도구로 강조하는 이유다. 임규택 시인은 시가 현실과 동떨어진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소통의 도구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계절 따라,
군사우편은 노래를 실어 갔다
핑크빛 연서로 되돌아왔다
만남은 소풍이 되고 인생이 되었다
반백년, 서로 부대기며 닳은 조각
가지런히 땋아 내린 두 갈래 댕기머리에도
풋풋했던 까까머리에도
백발의 수수께끼만 남았다
주어졌던 날에 감사하자
둘이라 금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으니
시월이 가고 또 와도 다시 봄을 기다리자
오늘처럼 아침을 함께 일으키기 위하여.
- ‘금혼의 약속’ 중에서
우리 주변에 금혼을 맞아 청춘의 사랑을 떠올리며 이렇게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물길 따라 흐르다 시간이 휘었습니다.
굽이굽이 할퀸 등골에
둔덕이 먼저 자리하여 있습니다
가슴으로 적시다 강을 이룬
눈물방울 방울들
쉼없이 낮은 곳으로
자신을 지우며 버린 묵언의 옹이
꺾어지지 않으려 뼛속까지 비워낸 결핍들이
출렁다리 안고 누운 바다가 되었습니다
바쁘지도, 깐깐하지도, 소탈할 줄도 모르는,
노여움의 동굴을 걸어온 사람
별과 달을 잃어버린 한 여인의 우주
희생에 감사하며 고맙고 행복했어요
다시 태어나 우리 또 만날 수 있다면
돛배의 노가 되어 당신의 바다를 지키리오.
- ‘반백년의 더께’ 전문
‘아내의 고희를 맞아’라는 부제가 붙은 위의 시를 보면서 시인이 누리는 노년의 행복이 결코 저절로 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내에게 진솔한 속내를 표현해 주는 것만큼 가정의 행복을 꾀하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렇게 해서 부모가 행복하면 자식들은 저절로 행복한 자리에 들어서게 된다.
시인은 백세시대를 맞아 예전 사람들이 누려보지 못한 황혼의 오랜 세월을 즐겨야 하는 현대인들이 왜 지금이라도 시를 배우고 익혀 아내, 또는 남편, 그리고 가족들과 소통의 도구로 활용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고사리 손으로 움켜쥐는 바지가랭이는
봄볕보다 살가운 정감이라 행복이었다
심술도 예쁜 짓이고 억지도 귀여움이니
무럭무럭 자라나며 건강으로 되돌려다오
귓속에 담아온 울음소리 숨소리마저도
하루하루 꺼내어 감사하게 들어볼게
꽃길에도 아파라 탐라의 소식.
- ‘시원이 마법사’ 전문
손바닥에 천방지축 영상속의 개구쟁이
미소가 인사이고 이름이며 관계다, 고로
도깨비로 바다를 건너다니는
내 영혼의 지배자다
- ‘두 볼 자손’ 중에서
손자도 분명히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이다. 이렇듯 자신을 향한 사랑을 진솔하게 표현해주는 할아버지를 찾는 손자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 어린 시절에 배고픔으로 고생을 해야 했던 할아버지 세대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배고픔을 모르는 손자 세대가 갈등을 빚기 쉬운 현실에서 소통의 시를 통해 손자와 소통을 시도하며 화합을 다져가는 시인의 삶에 절로 존경의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3. 산업화의 역군으로 시대와 소통하는 시인
시인은 역사의 격변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해에 부산에서 태어났다. 동 시대의 태어난 이들이 거의 다 그런 것처럼 시인 역시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재건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후 ‘한강의 기적’으로 알려진 60~70년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데 산업화 역군으로 청춘을 보냈다.
선택의 여지없이 둥지로 받들었던 곳
통금이 끌어다 놓은 철길위의 탄광
동해를 달려온 무연탄 화차들이
새벽을 부리며 아궁이를 찾아 나서고 있다
19공탄의 이름을 달아 아랫목을 데우기까지
어둠을 까맣게 폐부로 쌓아 올리는 노동
올라 가거라, 내려 오너라,
선로를 들락거리느라 지친 메가폰
졸음을 얹은 역무원의 세레나데
- ‘풍경, 주안역 79’ 중에서
그 당시는 사는 일이 우선이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살기 위해 모든 것을 헝그리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시인의 세대가 ‘선택의 여지없이’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이뤄놓은 고도의 경제성장 덕분에 지금의 세대들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예전에 비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그래서인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는 이들이 많다. 그러면서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이 있는데, 대부분 ‘꼰대’의 소리로 치부당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듣는 이가 귀를 닫고 있으면 결코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없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이 깊이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그렇다면 그때 이야기 중에는 젊은 세대들이 받아들이고 배워야 할 부분이 있기에, 어떻게든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데, 어떻게 ‘꼰대’ 소리를 듣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시인은 이를 잘 알기에 시를 소통의 도구로 활용해서 감성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고 있다. 시를 통해 그 시대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는 방법으로 시대를 아우르는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금방 나타날 것만 같은 허공에
문간방 세 들었던 봉순이 누나의 모습이
백일홍 꽃잎으로 떨어진다
방직회사 견습공이었던 쳇바퀴의 나날
고향의 피붙이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누런색 월급봉투를 보여 주며
나의 손 이끌어 생일을 함께해 주었던 그날
- ‘봉순이 누나’ 중에서
‘봉순이’라는 이름은 베스트셀러 소설인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로 젊은 세대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시인은 여기에서 ‘언니’ 대신 ‘누나’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그 시대의 ‘봉순이 언니’가 소설 속에 인물만이 아니라 산업화 시대에 현실에서 실존했던 인물이기도 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며 젊은 세대들에게 그 시절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대를 아우르는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시대의 열악한 경제 환경을
스스로 극복해내며 이 나라
상하수도 기반시설 구축의 선봉이었던 역군들
국가 발전의 미래를 호흡으로 함께 바친 증인들
이제 한수회는 아름다운 사명을 다하고
나이를 사랑하기로 했다
광화문,
둥지에 알을 품었던 날들을 회상하며
한 장의 흑백 세월을
사진첩에 끼워놓고자 한다.
- ‘광화문, 둥지에 알을 품었던 날들’ 중에서
과거를 내세워 무용담만 늘어놓거나, 과거를 잣대로 현재를 재단하려는 이들은 자칫 ‘꼰대’ 소리를 들어가며 세대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으로 전락할 수 있다.
시인은 이를 잘 알기에 담담히 ‘아름다운 사명을 다하고/ 나이를 사랑하기로 했다’고 토로한다. 산업화 시대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줌으로써 젊은 세대들이 거부감 없이 자연스레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4. 백세시대를 긍정적으로 밝혀주는 시인
우리는 지금 이전 세대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백세 시대와 코로나 팬 데믹 시대를 살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담고 있다. 백세 시대와 코로나 팬 데믹 시대도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면을 보면 희망을 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주인이 되고, 부정적인 면을 보면 절망과 좌절에 휩싸여 급변하는 시대에 도태자가 되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창의적인 관점으로 독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하는 시인들의 사회적인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시인의 시 한 편이 독자들을 시대의 주인으로 이끌거나, 또는 도태자로 떨어지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비말의 유령으로부터 멀어서 좋다
역병의 일기를 흙속에 쓰는 산방
볼모의 시간이 출구를 찾다 못해 뒤뚱거린다
쳇바퀴 돌리듯 나날이 그리는 호미 끝의 풍경
속내를 읽혀버린 잡초와의 자리다툼이 웃프다
봄은 누구에게 일러주며 가고 있을까
벚꽃의 낙화에도 라일락의 코밑은 여백이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승리는
고립무원을 즐기며 익숙해지는 일
마스크 한 장으로 가린 초조의 어둠을 벗어나
모두가 본래의 빛으로
돌아가는 날은 언제쯤이 되리
젊음을 아프게 걸었으니
나이를 여유로 섬기려 했던 가치
내 안의 나를 은밀히 만나는 기회가 되자
개나리 울타리는
변함없이 꽃다발을 두르고 있다.
- ‘고립무원’ 전문
임규택 시인은 시의 효용적인 가치와 시인의 사회적인 역할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팬 데믹 시대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보고, 그것을 자아성찰과 자기수양의 기회로 삼고, 그 과정을 시로 형상화함으로써 독자들도 더불어 긍정적인 면을 보고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승리는/ 고립무원을 즐기며 익숙해지는 일’, ‘젊음을 아프게 걸었으니/ 나이를 여유로 섬기려 했던 가치’, ‘개나리 울타리는/ 변함없이 꽃다발을 두르고 있다’로 이어지는 시상의 전개를 팬 데믹 시대를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도 어떤 마음으로 팬 데믹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지 챙겨보게 한다.
면벽수행의 틈을 보이기라도 한 것인가
마을 어귀에 돌기의 유령이 다녀갔다고 한다
카톡이 쉼없이 딸꾹질을 해댄다
민초들의 발자국에 추적의 불이 켜지고
머물다간 맛집에 금기 줄이 쳐 진다
잠시 비웠던 손에 다시 쥐어지는 긴장과 초조
봄날의 다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면벽의 시간은 간절함이 있어 외롭지 않을 것이다
- ‘면벽수행’ 중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이면 즐기라고 했다. 시인은 피할 수 없는 코로나 시대의 고통을 ‘면벽수행’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얼마나 긍정적인 마음인가? 실제로 많은 어르신들이 코로나에 희생을 치르는 것에서 보듯이 코로나는 시인과 같은 연배의 어르신들에게 더 치명적인 질병이라 두려움으로 치면 젊은 세대들보다 훨씬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백세시대를 열어가는 어르신으로서, 시대를 노래하는 시인으로서 피할 수 없는 시대의 고통을 긍정적으로 펼쳐주는 시인의 삶은 동시대를 사는 독자들이나 후손들에게 귀감으로 새겨질 것이다.
게임이 공정하면
승자를 인정하고 물러나는
패자의 뒷모습도 함께 자랑스럽다
- ‘트로트의 비상’ 중에서
마음이 즐거우면 스스로도 행복해진다
면역력 생성은 코로나의 어둠을 헤쳐 나오게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빛이요 쉼터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봄, 트로트의 날개에 얹어
긍정의 신바람으로 역병창궐을 종식시키고
신록의 오월을 우리 함께 맞이하자.
- ‘트로트의 날개’ 중에서
소통은 눈높이를 맞출 때 효과가 크다. 눈높이를 맞추려면 상대의 관심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인은 때마침 ‘트로트 열풍’이 부는 현상에 관심을 갖고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트로트에 눈높이를 맞춰 비유와 상징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시인도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배로 힘이 든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시적표현을 통해 돌려서 말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청바지에 서니커즈 반백의 장발
죽은 깨 검버섯 지우고 또 지워도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다
인생 칠십 고래희 망팔이 한창이니
나이사랑 늙은이,
동안이라 우겨도 어림없는 꼰대.
- ‘별명의 이해와 오해’ 중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세대도 겪어보지 못한 백세 시대로 열면서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은퇴 후 사회적으로 어르신으로 존경받아야 할 고희를 넘긴 노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각종 노인성 질병은 물론이고, 가치관의 차이로 젊은 세대와 갈등을 유발하는 노인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지금은 노인들이 백세시대를 맞아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시인이 ‘고래희 망팔이 한창’인 현실을 직시하며, ‘동안이라 우겨도 어림없는 꼰대’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이를 사랑’하며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자각하는 삶의 자세는 절로 존경을 표하게 한다. 백세시대를 맞아 은퇴 후 안분지족의 자세로 시를 쓰면서 자기수양은 물론이고,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이들과 소통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심어주는 시인의 삶은 백세 시대를 열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귀감으로 다가온다.
얼어붙은 강섶에
생각이라는 은유의 가슴으로 흔들리고 있다
마음은 삭풍의 한계에도 늘 목이 마르다
바람 잘날 없는 저항이 주어진 운명이며
쭉정이 몸짓을 고행이라 않는다
굽은 허리로도
뿌리의 깊이를 헤아리지 않는다
꽃술에 감추어 놓은 혹한의 의지는
꺾이지 말아야 할 동그라미의 믿음이다
여럿이 부르는 순정의 노래도
저 혼자의 소리로는 아우성일 뿐이다
군무의 서걱거림은 털리고, 떨어진
그루터기 영혼들을 향한 장엄한 묵상이다.
- ‘겨울 갈대’ 전문
이제 ‘겨울 갈대’를 볼 때마다 시인이 뿌리 내리고 있는 이천 단월동 단드레 마을에서 여유로운 삶을 실천하고 있는 산방시인이 뇌리에 스쳐갈 것이고, 그때만이라도 시인을 귀감으로 삼아 어떻게 사는 것이 백세시대를 잘 사는 것인지 절로 되새겨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본능 속의 동그라미는 이상이었다
촘촘히 시간을 새기려 했던 나이테가
빛과 어둠의 간극으로 멈칫거린다
새로이 가야하는 길이 안타까울 이유는 없다
연륜의 눈이 긍정으로 바라보는 창을 달았으니
주어지는 시간의 여백은 여정 속의 그늘이 되어
풍경화의 명암을 완성하는 물감이 될 것이다
묵향과 언어의 신비를 품어줄 자리
한 그루 향나무로 서 있어서….
치열하게 흘린 땀의 궤적들을 씻어내고
흘러가는 구름, 산 그림자 붙들어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함께하여
저녁으로 돌아가는 노을을 만나고 싶은 곳
로뎀파크에 쉼표를 새겨 놓았다.
- ‘로뎀파크에 쉼표를 새기다’ 전문
로뎀파크는 용인시 처인구에 자리 잡은 수목장이다. 시인은 시대가 바뀌면서 매장문화가 후손들에게 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수목장을 결심했다고 한다. 살아있을 때도 그렇지만 사후에도 깨끗한 모습으로 쉼표를 찍으려는 시인의 아름다운 마음이 잘 담겨 있다. ‘새로이 가야하는 길이 안타까울 이유는 없다/ 연륜의 눈이 긍정으로 바라보는 창을 달았으니’에서 시인의 시편들이 한결같이 따뜻하게 가슴을 녹여주는 이유를 알 수 있겠다. 죽음은 슬픈 일이 분명하지만 자연의 순리인 만큼 슬퍼할 일만도 아니다. 죽음마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묵향과 언어의 신비를 품어줄 자리’를 준비하는 시인의 노래가 아름답게 귓가를 스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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