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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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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스크랩 낙안오씨종택(감호헌)이야기
혜명 추천 0 조회 10 13.06.23 19: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명 칭 :  낙안오씨종택(감호헌)(樂安吳氏宗宅)
소 재 지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감천1리 379번지
건축시기 :  1800년대
소 유 자 :  낙안오씨(樂安吳氏) 종중(宗中)


건축 이야기
낙안오씨종택은 낙안(樂安)인 오시준(吳時俊)의 종택으로 문중에서 1800년대에 건립한 건물이다.


건축 특징
낙안오씨종택은 ㄷ자형의 정침과 일자형 고방채가 튼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불천위 사당인 충효사(忠孝祠)는 종택과 동떨어져 토석담장 안에 별도의 공간을 이루며 정침의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건축 구성
낙안오씨종택은 정침과 고방채, 충효사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채는 콘리트로 50cm의 가단을 만들고 사각형의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웠다.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5량 가구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전면 1칸은 퇴칸을 두었다. 동쪽 첫 번째 칸은 안채로 통하는 진입문이다. 어칸 2칸에는 사분합문과 미닫이문을 2중으로 설치하였고, 서쪽 1칸에는 여닫이문을 설치하였다. 서쪽편 어칸에 ‘감호헌(鑑湖軒)’ 현판이 걸려 있다.
안채는 좌측 2칸은 부엌으로 통칸이다. 대청은 따로 없고, 부엌에서 오른쪽으로 방과 고방, 건넌방이 차례대로 연결되어 있다. 안채의 오른쪽에는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을 얹은 고방채가 위치한다. 그래서 정침과 고방채가 튼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고방채와 정침은 판벽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진입문과 접하고 있는 판벽에는 독대로 출입할 수 있도록 판문을 만들었다.
정침과 고방채는 기와를 얹은 토석담장이 경사진 지형으로 인해 계단식 모양으로 정면을 제외한 3면에 둘러 있다.
정침을 나와서 우회하여 토석담장을 따라 20m가량 걸어가면 오수눌(吳受訥) 내외를 모신 불천위사당인 충효사(忠孝祠)가 있다. 충효사로 진입하는 사주문은 1칸 규모로 자연석 주춧돌에 사각형의 기둥을 세우고, 사당 쪽으로 문을 열수 있도록 2짝의 판문을 달았다. 문은 판벽이 없고, 하인방 아래에는 석회와 돌을 섞어서 칸을 메웠다. 맞배지붕을 얹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맞배지붕을 얹고, 지붕의 양 옆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기단은 자연석 돌을 2층으로 40cm가량 쌓고 그 위에 석회로 마무리 하였다. 맨 앞줄의 툇기둥은 원형으로 깎은 주춧돌에 원형 기둥을 세웠고, 사당 본 건물은 사각형의 주춧돌 위에 사각형의 기둥을 세웠다. 어칸에만 두 짝의 문을 달고, 양쪽에는 1짝의 문을 달았다. 각 칸마다 장석으로 계단을 만들었는데, 어칸에는 2단, 나머지는 1단으로 만들고, 어칸과 진입문은 석회와 돌을 섞어서 신도(神道)를 표시하였다. 사당건물의 측면에는 상인방과 중인방 사이는 흙벽을 바르고, 중인방과 하인방 사이는 벽돌로 꾸몄다.
사당과 진입문은 정침과 별도로 기와를 얹은 토석담장이 사각형으로 두르고 있다.


현판
감호헌(鑑湖軒)
정침 사랑채의 어칸에 걸려 있다.
충효사(忠孝祠)
불천위 사당의 이름으로, 사당의 어칸에 걸려 있다.

 

 

영양 > 영양청기권 > 영양읍 감천1리
- 영양읍 감천리는 뒷산이 청기리와 연접해 있고, 31번 국도에서 맞은 편 산기슭에 자리한다. 큰 시냇물이 마을 앞을 흐르기 때문에 감들내 혹은 감내,감천(甘川)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영양읍 읍내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을 고칠 때 남면의 지평동과 하풍동을 합쳐 감천동이라 하였다.
이 마을은 오일도 시인의 시비(詩碑)와 범바위 위에 있는 폭포, 근처의 절벽과 측백나무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오일도 시비는 국도 앞동산에 마련되어 있어 왕래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폭포는 마을의 서편 산 위, 백여 척 되는 범바위 안에 있다. 또한 마을의 동남쪽에 있는 바위 절벽 주위에는 측백나무가 무리지어 숲을 형성하고 있다. 이 측백나무는 절벽의 바위틈에 신기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는 천연기념물 제114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절벽 아래에는 깊은 소가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5개의 자연 마을이 감천리 한 동으로 묶여 있다.
가짓들,지평골,지평(芝坪)은 토질이 비옥하고 살기 좋아 가짓들이라 불린다. 한양조씨 문중의 조규(趙?)가 입암면 연당리 임천에서 이곳으로 집을 옮겨와 가짓들을 사서 집과 묘우를 세워 삼수당(三秀堂)이라고 하였다. 조규가 삼수당을 지은 뒤부터 마을 이름을 지평이라 불렀다고 한다.
감내,감들내,동곡(桐谷),지곡(地谷)은 큰 시내가 마을 앞을 감돌아 흐르는 모양에서 이름을 땄다. 처음에는 지곡이라 불렀는데 4백년 전 오시준(吳時俊, 1527~1613)이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동곡이라 하였다고 한다. 마을 뒤 산기슭에 맛이 단 물이 솟는다고 하여 감천(甘泉)이라고 부르다가 감천(甘川)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괴박골,괘벽(掛壁)은 바위가 벽에 걸려 있다는 뜻이다. 감천 1리의 뒤쪽 골짜기로, 현재 대여섯 가구가 흩어져서 살고 있다. 이곳에 깨밭이 많아서 ‘깨’가 ‘개’나 ‘괘’로 비슷하게 발음한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는 설도 전한다.
진마골(陳馬谷),진막곡(鎭幕谷),김막곡(金幕谷)은 마을 입구 오른쪽 능선에 있는 산성에서 마을명이 유래한다.
하풍(河豊),합풍(合風)은 가짓들 아래쪽에 있고, 입암면과 경계를 이룬다. 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며, 바람도 이곳에 머물렀다 가는 좋은 산세를 지녀 합풍이라도 한다. 높은 산기슭에 자리하면서 샘이 풍부하여 하풍으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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