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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욥기 1:8-9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구약] 욥기 9:33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가 없구나)
[구약] 욥기 19:25-27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신약] 디모데전서 2:5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신약] 베드로전서 2:19-21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1. 서론: 까닭 없는 고난 (Suffering without Cause)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욥 1:1).
그런데 사탄이 참소합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For nothing)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하나님은 욥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유 없는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 관주의 맥: 무죄한 자의 수난
죄가 있어서 매를 맞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욥은 죄 없이 맞았습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표합니다.
[요 15:25] "그들이 이유 없이(Without a cause) 나를 미워하였다 함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시 69:4 인용)
[벧전 2: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욥이 겪은 '까닭 없는 고난'은 우리를 위해 죄 없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고난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2. 절망의 탄식: 판결자(Daysman)가 없구나
고난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친구들의 정죄였습니다. "네가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지!"
욥은 답답했습니다. 하나님께 따지고 싶은데, 하나님은 너무 높고 자신은 너무 비천합니다.
그래서 욥은 **'중보자'**를 갈망하며 탄식합니다.
[욥 9:32-33]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Umpire/Mediator)**도 없구나"
▶ 관주의 맥: 십자가의 중보자
욥은 "하나님 어깨에 한 손을, 내 어깨에 한 손을 얹고 화해시켜 줄 분이 필요하다"고 절규했습니다.
구약 시대 욥은 그분의 이름을 몰랐지만, 우리는 압니다.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양쪽에 손을 얹을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딤전 2:5]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3. 신앙의 절정: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욥기 19장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온 욥의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헨델의 <메시아>에서도 가장 웅장하게 불리는 대목입니다.
[욥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My Redeemer)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 관주의 맥 1: 고엘(Redeemer)
여기서 '대속자'는 룻기에서 보았던 **'고엘(기업 무를 자)'**과 같은 단어입니다.
욥은 확신했습니다. "내 친구들은 나를 정죄하지만, 하늘에 계신 나의 고엘(예수님)은 살아계셔서 반드시 나의 무죄를 변호해 주실 것이다!"
▶ 관주의 맥 2: 부활 신앙 (Resurrection)
욥의 고백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육체의 부활로 나아갑니다.
[욥 19: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혹은 육체를 입고) 하나님을 보리라"
이것은 썩어질 육체가 죽은 뒤에,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고 재림하실 주님(땅 위에 서실 분)을 만날 것이라는 놀라운 종말론적 예언입니다.
구약의 성도 욥은 고난의 끝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4. 갑절의 축복과 중보 기도
결국 하나님은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시고, 욥의 무죄를 입증하십니다.
그리고 욥이 자기를 괴롭혔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갑절의 축복을 주십니다.
[욥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 관주의 맥: 대제사장의 기도
욥이 자기를 비난하던 친구들을 용서하고 중보 기도한 것은, 십자가 위에서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예수님은 고난(십자가)을 통과하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모든 영광을 회복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롬 8:34).
5. 귀로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다
욥의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 구속사적 의미:
고난 이전의 욥은 율법적이고 교과서적인 신앙(귀로 듣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풀무불을 통과한 후,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는 신앙(눈으로 보는 신앙)으로 성숙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고난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습니다(No Cross, No Crown).
[제24강 결론: 고난 중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다 보면 욥처럼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묻고 싶은 억울한 고난을 만납니다.
중보자도 없고, 변호사도 없는 것 같은 외로운 밤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2천 년 전,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까닭 없는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아계셔서(He Lives!),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대속자가 되어 우리를 변호하고 계십니다.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이 욥의 고백이 오늘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다음 강의 예고]
제25강에서는 시가서의 심장, **시편(Psalms)**으로 들어갑니다.
다윗이 수많은 대적에게 둘러싸여 불렀던 비탄의 노래, 시편 22편.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다윗의 절규가 어떻게 골고다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가상칠언)으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성취되었는지, 그 전율의 현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