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8: 8-18
지난 주 "참된 부흥"에 대한 말씀을 증거했는데, 이 한 주간 동안에 여러분의 심령에 어떤 부흥이 일어났습니까?
말씀을 듣고, 우리 심령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의 부흥으로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당신이 붙들 때에 비로소 부흥은 시작된 것입니다. 또 성경이 당신을 붙들었을 때에, 곧 말씀이 당신의 의식과 삶을 지배했을 때 당신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앙생활에 들어간 것입니다.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이 위대한 부흥! 이것이 일어나야합니다.
느헤미야의 백성들은 말씀에의 사모를 가져서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들에게 외적인 면에서의 성벽재건의 부흥은 있었지만, 참다운 부흥인 심령에의 부흥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그들이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이 이 심령의 갈급함을 가지는 것도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역사하심임을 믿어야합니다.
이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백성들이 다 함께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읽어주는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귀를 기울려 들었습니다.
에스라와 또 지도자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뜻을 해석하고, 그 말씀으로 깨닫게 하는데, (느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울었습니다.
백성들에게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에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첫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과를 대조해 보므로, 묻혔던 양심이 되 살아나면서 너무나 비뚤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 때에 회개가 일어나게 됩니다. 회개의 눈물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때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마땅한 죄인된 것을 깨닫게 까지 되는 것이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왜 이 회개의 은혜가 없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하심을 간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각이 다른 데는 아주 예민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는 무뎌져 있습니다.
연속극을 보면서는 찔금 찔금 잘도 눈물 흘리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그 마음이 무쇠같이 강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이 백성들에게 "울지 말라" 하였습니다.
우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회개 다음에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서 기뻐하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회개가 있다면, 우리의 심령에 부흥만 일어났다면, 우리는 근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 계시니, 기뻐할 것 뿐입니다.
(느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말라 하고
(느8:10)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0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이날은 여호와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는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리고는 회개하는 역사가 있고, 하나님께 그 심령들이 돌아왔으면, 이제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합니다. 주일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인 주일이 피곤하지 않습니다. 과중한 주의 일로 우리의 육신은 피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의 강건은 모든 피곤을 이기고, 우리의 한 주간을 승리로 이끕니다.
(느8: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이 백성들이 주시는 말씀을 밝히 깨달아 알아서 은혜 받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크게 즐거워함이 있었습니다. 또 서로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교제의 나눔도 있었습니다.
무엇이 진정 우리를 기쁘게합니까?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간 것이 기쁨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어떤 것입니까?
교회에서의 교제는 세상의 어떤 친목 단체와 같은 사귐이나, 즐거움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보니 한 형제, 한 지체인 것을 깨달아 알므로 서로 자신의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 나누는 삶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의미의 진정한 교제가 있습니까?
그저 취미가 맞고, 생각이 같고해서 생겨진 그런 하나됨은 없습니까?
그것은 교회의 단체가 아닙니다. 세상적인 모임과 같이 교회의 성도의 거룩한 교제를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 교회가 성도의 교제가 부족합니까?
부족해도 좋으나, 비뚤어진 하나됨은 없어야합니다.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온 지체가 하나되는 그런 교제가 아니면 실은 교회를 세우는 것 같으나, 허무는 것이 됩니다. 이런 것이 있으면, 속히 허물어야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하나되어야 하지만, 그리스도 중심으로 한, 다른 모든 이에게 이색됨이 없이,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 사귐이 있어야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령의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것 아니면 마귀 노름만하게 됩니다.
이들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자세히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백성의 지도자들이 에스라의 있는 곳에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보니 초막절을 지킬 때가 가까운 것을 발견합니다.
(느8: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기록한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하였는지라
이전에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를 지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40년간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켜 보호하신 것을 잊지 않고, 기념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7월 15일부터 한 주간을 초막절을 지키게하고, 제 8일에는 성회로 다 하나님 앞에 모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을 돌아보니, 저희 조상들이 이 초막절행사를 너무 소홀히 여긴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또 그들 자신은 포로된 자들로서 이 절기를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잊고 있었던 초막절 행사를 지키라는 말씀을 실천하기로 결심합니다.
백성들이 나가서 스스로 나뭇 가지를 취하여 지붕 위나, 뜰 안에,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과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지었습니다. 거기 거하면서 하나님의 보호하신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에의 순종은 즉각적이어야합니다.
이들은 은혜를 받고, 회개에 이르렀는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자세히 알고자 했습니다. 이는 순종하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입니다. 그러자 저희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 것들이 발견됩니다. 이 때에 머뭇 거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이전의 우리 교단의 집회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스라엘의 초막절 같은 행사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집을 떠나서 힘들게 산에 천막들을 치고, 한 주간을 땀을 흘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잠기고, 해서 많은 회개와 변화의 역사를 받았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에어컨 아래서 해 주는 밥 먹고, 편안하게 은혜 받는 이번 집회입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형편도 좋아졌지만, 이전의 어려웠을 때를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그래도 집에서 보다는 불편할 것입니다. 잠자리가 좋아도 집에서 같이 되겠습니까? 그만큼 편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얻으려고 갑니까? 무슨 목적입니까? 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가를 즐기는 일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변화를 받아야합니다. 그래서 준비되어야합니다.
이들이 이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서 14일간을 준비합니다.
이같이 준비된 자에게 금번에도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안일함을 버려야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게을리 맙시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얼마나 높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할 말씀으로 듣습니까?
이것이 부흥임을 믿습니까?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괴로워함이 있습니까?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을 대조해야합니다.
잘못된 것을 고쳐야합니다. 회개의 은혜를 방아서 회개한 자에게 기쁨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게 됩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성일입니다. 이 날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형제간의 우애를 나누는 날입니다.
오늘이 기쁩니까? 주일이 없는 것이 낫다고 여겨집니까, 아니면, 주간에 그래도 주일이 기다려지고, 주일에 은혜를 받습니까?
회개하여 갈급함이 있는 가난한 자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종이 미력하다고 은혜 받지 못한다고 핑계하면 안됩니다. 부족하지만, 저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증거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 말씀앞에 저 자신부터 깨어지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는 줄 알기 때문에 이 말씀을 누구보다 먼저 지켜 살려고 애를 씁니다.
은혜는 성령께서 사모하는 자에게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줄 믿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다른 데 돌리는 사람은 계속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붙들어 매려고 하셔야합니다.
오늘은 설교를 어떻게 하나, 오늘은 어떤 말씀을 하시나, 구경만하고 주일을 지납니까? 아예 관심 조차 없습니까? 큰일입니다.
지나가시는 주님입니다. 은혜 받지 못한다고 하는 이 시간에도 은혜를 받는 사람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이 갈급함이 없으면, 굶어야합니다. 몸부림쳐야합니다.
삭개오 이야기 아십니까?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자존심도, 직장도, 무엇도 다 뒤로 두고서 특수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앞으로 달려나갔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이 변태 같은 행위가 옳다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권합니다.
왜 주님을 만나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번 집회에 저는 이 은혜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번에 참여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하나님께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삼일예배, 새벽기도에 같은 시각에라도 나와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입혀주시길 기도하셔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그 은혜를 같이 내려주실 것입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