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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7: 27. 군대를 모으고 - 마 27: 31. 희롱 당한 후
4. 군병들이 예수를 희롱하다 ( 27: 27-31. 막 15: 16-20. 요 19: 2-3 )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나가니라.
예수께서는 로마 군병들, 죄 많은 이방인에게 조롱을 받으셨다. 그들은 조롱을 다한 후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으셨다. 또 기사관을 쓰셨고 갈대를 들었다. 그들은 침뱉고 갈대로 때렸다. 온갖 조롱을 당하신 뒤 십자가에 못 박히시려 끌려 나갔다.
마 27: 27. 군대를 모으고 -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
1]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빌라도는 자기 수하에 있는 로마 출신 군사들에게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할 것을 명령하였다.
'총독의 군병들'은 이후부터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라 부르며 모멸적인 조롱을 하였다.
* 막 15: 16-20 –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 요 19: 2-3 – 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이는 이사야 예언의 온전한 성취였다.
* 사 53: 3 -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2]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관정'은 헬라어로 '프라이토리온'(*)으로 라틴어 '프레토리옴'(Preatorium)과 상응하는 말이다. 본래 장군의 본부를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총독의 공식 거주지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즉 유대 총독의 본거지는 가이사랴였지만 명절의 치안 유지를 위해 예루살렘에 주둔할 때는 특별 거주지가 마련되었었다.
당시 빌라도 총독은 자신의 예루살렘 특별 거주지를 안토니아 요새에 정하고 있었고, 로마 군대를 그곳에 함께 주둔시키고 있었다. 공동 번역 성서는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총독 관저'로 번역하고 있다.
3]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군대'란 헬라어로 '스페이라'(*)인데 26: 53, 54에 언급된 '군단(영)'(*, 레기온)을 10등분한 한 부대이며, 천부장의 지휘 아래 있는 300명에서 600명에 이르는 부대이다.
이 '군대'가 소집된 것은 무죄한 죄수이신 예수를 놀이삼아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실로 그들은 예수의 주위에 모여 예수의 왕권을 마음껏 놀리고 조롱하였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책임자 빌라도의 묵허(黙許)하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빌라도의 죄책은 더욱 가중된다 하겠다.
마 27: 28. 홍포를 입히며 -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
1] 그의 옷을 벗기고
예수께서는 채찍질을 당하기 전에 옷이 벗겨졌을 것이다.
예수께서 계속 옷을 벗기는 데 이곳까지 끌려와 희롱 당하셨는지, 아니면 채찍 후 입던 옷을 다시 입으신 후 여기서 다시 옷이 벗겨는지 분명치 않다.
2] 홍포를 입히며
예수는 걸레처럼 찢겨진 당신의 어깨 위에 '홍포'를 걸치게 된 것이다.
'홍포'(*, 클라뮈스)는 로마의 군인들이나 사정관들이 입던 짧고 붉은 망토였을 것이다(28절). 홍포의 색상에 대해 '진흥색'이라 한 마태복음과는 달리 마가와 요한복음에서는 '자색 옷'이라고 되어 있다.
'자색'으로 된 옷은 황제만이 입을 수 있었고(Macc 10:20,62. 11:58. 14:43,44) 군인들은 옷을 착용했다는 점에서 예수가 입은 '홍포'는 군병들의 망토였던 것으로 추적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군병들이 예수께 입힌 옷은 헤롯왕의 옷장에서 버려졌던 왕의 의복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Elsner).
마태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로마 병사들이 예수께 왕을 상징(象徵)하는 옷으로 갈아입힌 후 그분을 조롱하려 했다는 점이다.
마 27: 29. 가시관을 엮어 -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 할지어다. 하며 )
1]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당시 사용되던 동전에 보면 티베우스 가이사(Tiberius Caesar)가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이 새겨져 있다. 그 면류관 위에는 빛나는 못들이 달려 있었다.
군인들은 그것을 생각하여 주변에서 자라는 가시로 엮은 면류관을 예수의 머리 위에 씌웠다.
가시나무에 관해서는 야자나무나 아칸더스(acanthus)나무, 또는 아랍의 나바(naba)나 나브카(nabka) 심지어 선인장 종류나 아카시아 종류의 나무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가시나무와 가시덤불이 쉽게 자라는 팔레스타인에서 흔한 종류의 것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들이 가시관을 씌운 원래 목적은 예수를 조롱하기 위해서였을지라도 결국 그들은 고난의 왕관을 예수께 씌웠다. 따라서 그 가시에 의해 찢어진 예수의 머리에는 검붉은 핏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음이 분명하다.
2]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동전에 새겨진 황제의 오른손에는 통치권의 상징인 황제의 홀(笏)이 쥐어져 있다.
로마 군병들은 이것을 모방하여 예수의 오른손에 '갈대'를 쥐어 주었다.
'갈대'는 등나무 종류의 평범한 풀이나 줄기가 꿋꿋한 갈대였음이 분명하다.
3]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마가복음에서는 '예배하다'를 뜻하는 '푸로스퀴네오'(*)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마태는 단순히 '무릎을 꿇다'는 뜻인 '고뉘페테오'(*)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이 두 단어는 의미상 동일하게 언급됨이 마땅하다. 즉 군인들이 예수를 조롱하는 자리에서 그들이 마치 자신들의 군주인 '가이사'에게 경배하듯 예수를 경배하며 심히 우롱했다.
4]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이는 '가이사 만세'라는 로마인들의 황제에 대한 찬사의 외침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공동 번역과 새 번역에서는 이를 '유대인의 왕 만세'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께서 하찮은 로마 군병들에게 치욕스러운 조롱을 당하셨다. 마태는 그들의 조롱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진리를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묵묵히 시사해 주고 있다.
군인들은 조롱의 차원에서 예수께 황제에게 대한 모든 예를 갖춤으로써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께 경배하리라'는 시 22: 27의 내용을 역설적으로 성취하고 있었다.
* 시 22: 27 -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사실상 군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가운데 진리를 증언하고 있었다. 예수는 면류관을 쓰시고, 홀을 들고,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신 동시에 여호와의 고난 받는 종이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진리의 선포이다.
마 27: 30. 머리를 치더라. -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
1] 그에게 침 뱉고,
로마 군인들은 왕에 대한 충성의 표로 입 맞추는 대신 가장 모욕적인 행동으로서 그에게 침을 뱉었다.
2]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그리고 왕을 위하여 목숨 바쳐 싸우는 대신 갈대로 머리를 내리쳤다. 그 결과 그분의 머리에 씌워진 가시는 더 깊이 그분의 피부 속으로 박혀 들어갔을 것이며 얼굴은 더욱 검붉게 물들어 갔을 것이다.
여기서 '치더라'는 말은 어쩌면 이것은 지상에서의 그리스도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대접(待接)이었는지 모른다. 마태는 조롱과 육체적 학대를 구별하여 먼저 조롱한 후에 학대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마 27: 31. 희롱 당한 후 -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는 옷을 입혀 십자기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
1] 희롱을 다 한 후
여기에 사용된 동사는 과거 완료의 시제를 의미하는 부정과거형으로 씌어졌다. 마태는 그 어간에 된 세세한 내용을 어느 정도 생략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 희롱과 학대가 언제까지 계속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로마 군병들이 자신들의 기분을 마음껏 푼 정도로 예수는 육체적으로 서서히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요한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 빌라도는 다시 한번 예수의 석방을 해 노력한 흔적이 발견된다.
* 요 19: 4-6 –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2]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는 옷을 입혀
대개 옷을 벗긴 채로 형장을 향하며, 가는 도중에 사람들의 비웃음과 매질을 당해야만 했다. 이러한 관습이 예수께 적용되지 않은 것은 아마 그가 너무 많은 매질을 이미 당했기 때문에 더 매질을 당하게 되면 아예 죽게 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그때가 유월절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신경을 너무 자극하지 않도록 삼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예수께서 다시 입으신 '옷'(*, 히마티온)은 주로 겉옷을 뜻하지만, 군병들이 제비뽑은 사건에 비춰볼 때 분명 속옷까지 포함한 표현일 것이다.
* 시 22: 18 -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 요 19: 23 -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3] 십자기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때가 유대 시간으로 '제 3시', 곧 오늘날의 오전 9시였으므로, 본문은 아직 오전 9시가 되기 전의 일이라 본다.
* 막 15: 25 -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유대 지도자들의 고소에서부터 로마 당국의 사형 언도에 이르기까지 예수에 대한 판결은 밤새 급속히 진행되었고 급기야 아침에 이르러 십자가형을 집행하기에 이르렀다.
유대인의 습관을 좆아 그 사형 집행은 성문 밖에서 이뤄졌다.
* 민 15: 35-36 – 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36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 행 7: 58 -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 히 13: 11-12 –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이때 예수는 관례를 따라 자신이질 십자가를 친히 지고 형장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이 형장으로의 이동은 원래 죄수처형을 전담했던 부 총독이 맡아야 했으나 그 부 총독(Lictor)이 빌라도의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에 대신 말 탄 백부장이 형장 이동을 진두지휘(陳頭指揮)하였으며, 네 명의 군병들이 예수의 신변 호위를 했고 그 뒤에 군병들이 따라 나섰다고 전한다. (Lange, The pulpit Commentary).
* 요 19: 17, 23 –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말로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예수님은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증언하셨다. 그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그의 질문에 대해 ‘네 말이 옳도다(네가 말하는 도다.)’라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공회에서도, 로마 총독의 법정에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셨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엄숙히 입증하신 예수님의 증언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확실히 믿고 의지하자.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6: 31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한다.
또 예수님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 빌라도는 예수께서 죄가 없음을 알았고(특히 눅 23: 4, 14-15, 22) 그를 ‘이 옳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도(마 27: 24, 전통 본문) 무리의 여론에 따라 그에게 사형 언도를 내렸다.
그의 판결은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이고 불의하였다.예수님은 사형수로 정죄를 받으신 후 책찍질을 당하셨고 로마 군병들에게 조롱을 받으셨다.
그는 옷을 벗기시고 왕의 의복처럼 홍포를 입히셨다. 왕관처럼 가시관을 씌우고 금홀처럼 갈대를 들리셨다. 군병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며 그를 조롱하였고 침을 뱉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쳤다.
그는 사람들에게, 죄 많은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다.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죄인들에게 이렇게 정죄되시고 조롱을 당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바였다. 그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구주셨다. 그는 우리를 위해, 죄인들을 위해 고난을 겪으셨다.
우리는 그의 고난과 그 고난의 의미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또 우리는 그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르자. 그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마 5: 10-12).
우리는 어느 때든지 진리를 대적하는 무지하고 위선적인 교인이 되지 말고, 진리를 위해 고난을 받는 자가 되자.
빌립보서 1: 29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고난도 받을 각오를 하며 살자.
4] 희롱을 받으신 예수님
십자가형이 결정되고 그 형이 집행되기까지 예수께서 로마 군인들로부터 받으신 희롱 장면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희롱은 고대 사형 집행이 있을 때 흔히 볼 수 있었던 일로서 흔히 야만인들이 취한 '가혹한 장난' 이었다.
이처럼 희롱당하신 그리스도의 종교는 이런 수치와 고난과 핍박을 통해서 발전해 왔다.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는 질고를 당하셨고, 고난과 수치를 당하셨으며, 채찍에 맞고, 찔림을 받으셨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의 사형으로 죽임을 당하셨다.
지상에서의 예수님은 짧은 생애는 한마디로 고난의 생애였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수치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묵상해 보자.
(1)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겼다.
옷을 벗긴다는 것은 수치이며 모멸이다. 사실 벌거벗은 수치감은 죄와 더불어 왔다.
* 창 3: 7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의 수치를 덮으려고 자신은 벌거벗음의 수치를 당하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
주님은 장차 우리에게 입혀 줄 '흰옷'을 준비하신다고 말씀하셨다.
* 계 3: 18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흰옷'은 '의의 옷'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김을 받은 사람만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이 '의의 옷'을 주시려고 당신은 모멸과 수치의 옷 벗김을 당하셨다.
(2) 예수님은 홍포를 입으셨다.
마가복음 15: 7이나 요한복음 19: 2에는 '자색 옷'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홍포는 왕들이나 황제가 입었던 옷으로 빌라도와 헤롯도 이 옷을 입었다.
예수님께서 낡은 주홍색 외투를 입힌 것은 '왕'이라고 불리운 것에 대한 모욕이었다. 예수님께서 홍포를 입게 한 것은 왕으로서 홍포를 입히신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서 홍포를 입혔던 것이다. 우리의 죄는 주홍과 같다.
* 사 1: 18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해주신다고 말씀했다. 또한 그리스도가 입은 홍포는 그의 피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고 정결케 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다.
(3) 그는 채찍을 맞았다.
채찍질을 하는 것은 십자가형의 전제다. 채찍질은 무서운 능욕이었다. 채찍은 가죽 채찍 끝에 납이나 못을 달아 침으로 이 집행 중에 죽는 죄수가 많았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것은 구약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기도 했다.
* 사 53: 5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4) 그들은 '가시관'을 씌웠다.
면류관은 왕관이요 승리자들이 쓰는 것이다.
그들은 금면류관 대신 가시관을 씌우고 예수님을 왕으로 가장하여 희롱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가시관을 쓰신 주님의 모습은 모든 성도의 숭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인류의 왕중 왕으로 영원히 모셔질 것이다.
(5)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희롱했다.
예수님을 가짜 왕으로 만들고 왕에 대한 경배의 흉내를 낸 것이다. 그들은 끓어 경배하고, 얼굴에 침을 뱉고 갈대로 머리를 치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때렸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무서운 모욕이었다. 불신앙은 이러한 '신성모독' 죄를 짓게 한다.
(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며 하늘나라를 통치하실 왕이다.
예수님은 세계적으로 천대와 멸시를 당하셨으나 그것은 만왕의 왕이 되시는 방법이었다. 그는 이사야 53장의 예언대로 능욕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서 만왕의 왕 되신 영광을 얻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참된 메시야 곧 참 이스라엘의 왕이다. 예수님은 자기의 왕권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왕이신 사실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왕권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그의 나라(천국)의 왕이신 것이다.
(7) 그들은 예수님의 손에 갈대를 들리어 주었다.
그들은 갈대로 왕의 홀을 대신하게 하여 그를 조롱하였다. 그들은 마치 이것이 거짓 왕으로 만들어 버린 예수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예수에게 들리워 주었다.
* 마 11: 7 -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온갖 조롱과 멸시를 묵묵히 받으시는 예수님을 볼 때 그들에게는 예수가 심히 나약하고 무력하게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죄악과 수치를 덮으시고 영원한 제사장으로써 우리에게 사죄의 은총을 주시기 위해서 이런 모욕과 고난과 수모를 받으신 것이다.
주님은 영원한 우리의 왕이시오, 통치자이시다. 그는 우리의 왕과 심판주로 오실 것이며, 당신의 백성을 그의 영원한 나라에 초청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