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아쉬워하는 사람
경남 진주시 경상대병원 장례식장. 검은색 옷을 입은 70대 여성이 내과 의사 이영곤(62)씨 영정 앞에서 통곡했습니다.
그는 고인의 유족도, 지인도 아니었습니다. 문상을 마치고 나온 그는 “저는 이 원장님과 30여 년 전 의사와 환자로 만난 일흔두 살 우영순”이라며 이 씨 사망소식을 듣고 무작정 장례식장을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울음을 삼키던 그가 힘들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원장님은 형편이 어려워 검사받을 돈도 없었던 제게 ‘돈 걱정 하지 말고 검사받고 가시라’며 사비를 털어 치료해주시던 분입니다. 병원에서 저 같은 환자를 돌봐야 할 분을 여기서 봐야 한다니, 마음이 무너집니다.”
이날 빈소엔 생전 이 씨가 보살폈던 환자 10여 명이 찾아와 영정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또 다른 70대 환자는 “어떻게 제 형편을 아셨는지, 원장님은 비싼 약값 때문에 우물쭈물하던 제게 ‘꼭 약국에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약국에 가보니, ‘원장님이 다 계산하셨다’며 약사가 약통 여러 개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성분(56)씨는 “아파서 찡그린 얼굴로 병원을 찾았지만, 늘 웃으면서 나왔던 기억이 많다”고 했습니다.
이씨는 1996년부터 경남 진주시 대안동 중앙시장 인근에서 작은 내과를 운영하는 ‘동네 병원 원장’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교통사고 부상자를 도우려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인과 동료 의료인은 물론이고, 그의 진료실을 찾았던 환자 등이 빈소를 찾아 추모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 씨는 개인 병원을 차린 뒤, ‘돈이 모자라거나 치료비가 없어 머뭇거리는 환자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5년 전부터 이 씨 병원에서 일했던 송숙희(56) 간호사는 “병원이 시장주변에 있고,
내과 특성상 만성질환자가 많다 보니,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 환자가 상당수”라며 “원장님은 치료비를 받지 않는 것은 예사였고, 몇 년째 폐결핵 환자에게 무료로 약을 처방하기도 했다.”는 겁니다.
이씨는 1998년부터 매주 3번씩 ‘진주교도소’를 찾아 재소자를 진료해 왔습니다. 고교친구이자 치과의사인 김법환(62)씨는 “병원근무와 비교하면, 열악하고 처우도 낮아서 의사 사이에서는 꺼리는 일인데,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진주교도소 관계자는 “진료해줄 의사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원장님은 20년 넘게 이 일을 맡아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씨는 점심 식사 시간을 쪼개 교도소 왕진을 갔고, 차 안에서 빵이나 계란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합니다 .(출처; 조선일보 9월 25일자, 김준호 기자)
이미 이 기사를 읽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만, 못 보신 분들을 위하여 이 기사를 소개합니다. 이런 분들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을 보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이런 분들이 오히려 더 많음을 확신하고, 우리도 이런 분들을 본받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겁니다. 작은 빛이라도 함께 모으면 밝은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물맷돌)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춰라. 그래서 사람들이 너희의 선한 행동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마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