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시는 이 큰 사건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오랜 세기 동안 이를 준비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첫째 계약’의 예식과 희생제사, 표상과 상징들을 모두 그리스도를 향해 집중시키셨으며, 계속 출현하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그분을 예고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22항) 또한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구원의 희망을 간직하고, 모든 사람을 위한,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질,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기다리라고 가르치신다. 예언자들은 하느님 백성이 완전히 속량되고, 그들의 모든 불성실이 정화되며, 모든 민족을 망라할 구원을 선포한다. 이러한 희망은 특별히 주님의 가난한 사람들과 겸손한 사람들이 가지게 될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64항)
Propheta(프로페타) : 예언자를 지칭하는 라틴어로
신(神)의 계시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임무를 담당한 자.
고대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고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해결할 길을 찾거나
앞날의 길흉에 대처하기를 바랐다.
이러한 인간의 원초적 갈망은 초월적인 존재, 곧 신(神)을 찾게 되고
삶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신의 섭리를 알고 싶어 하는데 …
하지만 … 신은 쉽사리 인간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하여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해 주려는 중재자들이 생겨났으니
바로 예언자라 불리는 이들이다.
성경의 이스라엘 백성 안에도 여러 예언자가 등장하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선별하시어 그들의 입을 통해
자신의 뜻과 백성의 운명을 계시해 주셨다.
그 가운데 구약과 신약을 대표하는 위대한 두 예언자가 탄생했으니,
바로 이사야와 요한 세례자다.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 메시아의 오심을 알리며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선구자의 삶을 묵묵히 살아간
신앙의 모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 3,4.6)
이스라엘 백성이 오랜 시간 그토록 기다린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훌륭한 예언자들의 희생을 탯줄 삼아
마침내 세상에 탄생하시어 구원의 빛이 되셨다.
05 예언자적 사명
예언자의 소명 체험
성경의 예언자들은 주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그분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권위 있게 말하는 사람이요, 그분의 말씀이 참됨을 드러내는 증인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사람’으로 하느님의 뜻과 자기 시대의 상황에 비춰 그 전승을 재해석하여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여 사람들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며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게 이끌었다. 나아가 자칫 굳어 버리거나 왜곡될 수 있는 종교 전승과 율법을 ‘지금 이 자리’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게 했다.
구약의 이스라엘 예언자들은 신분과 세습에 의해 직무를 수행하는 사제와 달리 하느님의 선택과 소명을 통해 태어난다. 그들은 환시를 보거나 말씀을 듣는 등 여러 가지 형태로 하느님의 소명을 받는 특별한 체험을 한 뒤 예언자로 활동했다. 그들의 소명 체험은 나름대로 고유하고 유일하나, 대개 다음의 일정한 형태로 성경에 표현된다.
첫째 하느님의 부르심과 응답, 둘째 하느님이 예언자로 파견함, 셋째 부르심 받은 이의 항변, 넷째 하느님은 보통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보충함, 다섯째 소명을 확인시키는 징조를 보여 줌이다. 이 양식은 모세(탈출 3,1-4,17), 예레미야(예레 1,4-10), 에제키엘(에제 2,1-3,11)의 소명사화에서 잘 나타난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내가 아뢰었다.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저는 아이입니다.’ 하지 마라.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 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그러고 나서 주님께서는 당신 손을 내미시어 내 입에 대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예레 1,4-10) |
어떤 소명사화에서든 부르심의 주체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먼저 주도적으로 당신이 택한 이를 예언자로 부르시고 그의 온 존재를 사로잡아 그 사명을 다하도록 이끄신다. 소명 받은 이들은 예언자가 되기를 꺼리더라도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하느님 말씀에 압도적으로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다(아모 3,8; 예레 20,8; 에제 1,3). 일반적으로 예언자는 그가 활동할 공동체 내에서 선택되며(예외: 아모스), 선택될 당시 그들의 신분은 제각기 다르다.
예언자는 파견되어 직무를 수행하면서 숱한 고통을 겪는다. 그들은 동시대 백성으로부터 비웃음을 받을뿐더러(이사 28,9-11; 미카 2,6-7) 다른 예언자들의 험한 반발에 직면한다(예레 23,16). 또한 자신들이 전하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백성으로 인해 비탄에 빠지며(예레 13,17),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신의 예언자 사명에 대해 회의를 품거나 자신을 파견한 하느님의 침묵으로 큰 고통을 겪는다(이사 8,17; 예레 15,18).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단둘이 있음으로써’ 그들의 사명을 위한 빛과 힘을 얻는다. 그들의 기도는 불충한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때로는 하느님과 따져 보기도 하고 하느님께 탄식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역사의 주인이신 구세주 하느님의 개입을 열망하고 준비하는 중개의 기도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84항) |
구약 예언자의 사명
예언자들은 역사와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뿐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영성적으로 심화하며 사회 전체에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개인들의 삶의 지침으로 삼도록 자극을 주었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언제나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시킨 하느님의 사자요 참된 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언자들의 역할은 대략 다음의 세 가지 측면으로 드러난다.
첫째, 죄를 고발하는 것이다. 유배 이전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계약을 외면한 백성의 죄를 왕과 백성 전체에게 구체적으로 고발한다. 그들이 불의의 불충을 고발하는 이유는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임박한 하느님의 심판이 정당함을 밝히려는 의도에서였다(이사 6,10; 예레 2,22; 13,23). 특히 이스라엘의 멸망이라는 위기를 지켜보았던 예언자들은 주 하느님만이 미래를 결정하실 수 있는 분이며(이사 43,9-10), 본질적으로 철저하게 유일무이한 분임을 명백하게 밝혔다(이사 45,5). 이런 관점에서 그들은 민족 멸망의 이유를 밝히고 새 계약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틀을 세워 놓았다(예레 24,7; 에제 16,60).
둘째,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다. 예언자들이 선포한 가장 뚜렷한 메시지는 임박한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하느님께 충실하게 살지 않으면, 멀지 않아 파멸이 닥친다고 예고한다(아모 8,2; 미카 3,12). 그렇지만 메시지의 초점은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자리’에 맞춰져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시대의 문제와 자신들의 삶을 제대로 보고, 하느님의 권능과 뜻을 인정해 받아들이도록 일러준다.
셋째, 희망을 알리는 것이다. 유배 이후 예언자들은 심판이 백성의 정화를 위해 행해졌으며(이사 1,21-26), 하느님은 넘치는 사랑과 은총을 베푸시어 새로운 계약(예레 31,31-34)과 새로운 신앙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주실 것이라는 구원을 선포한다.
신약에 등장한 새로운 예언자
신약에 들어와 세례자 요한의 등장과 함께 이스라엘에 새로운 예언이 선포된다. 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불렀지만, 그가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하느님께서 하실 일을 백성에게 선포한 일은 예언자들의 역할과 동일하였다(1요한 1,6-23). 그 시대에 살았던 유다인들도 요한을 예언자로 존경했으며, 예수님은 그를 사람들이 기다렸던 엘리야, 곧 ‘모든 것을 바로잡을 예언자’라고 가르치셨다(마태 17,9-13; 루카 1,17).
예수님 역시 예언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분은 나자렛 회당에서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사명을 받았음을 밝혔다(루카 4,16-22). 신약성경 저자들은 메시아에 관한 예언 대목(이사 7,14-15; 52,13-53,
12)뿐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를 “예언의 말씀”으로 간주하여, 예언되었던 새 세상의 희망과 기대가 예수님의 삶과 활동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고 주장했다(마태 1,23; 2,5-6; 3,3). 그리하여 예수님은 예언자인 동시에 그를 넘어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했다. 결국 예언자들이 열심히 찾고 연구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며(1베드 1,10-11), “예수님의 증언은 곧 예언의 영”(묵시 19,10)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예언자적 사명
신 ․ 구약 성경에서 예언자는 그들 자신의 세대에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 이들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믿음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된다. 나아가 예언자 자신보다 더 중요하고 위대한, 그들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들이 온 삶으로 증거했듯이, 그 말씀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살아 있으며 실제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지금도 당신의 백성에게 당신 사랑과 뜻을 알려주시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택하신다.
신앙은 사색이나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들음에서 생긴다. 즉 전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형성될 수 있다. 사도 바오로는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라고 하면서 교회의 첫째 임무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세상의 복음화를 시작한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12항은 그리스도의 예언직을 전제로 하면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그리스도의 예언직에도 참여한다.”고 선언하였다. 따라서 신자들은 신앙과 사랑의 생활로 그리스도께 대한 증거를 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하여 구원의 메시지를 세상에 선포하고, 삶을 통해 그 메시지가 진리임을 증거하는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예언자의 말은 단순한 교의적 제안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기에 그는 항상 종교적 ․ 사회적 변화의 주도자이며 조직자일 것이다. 따라서 예언자적 사명인 그리스도인의 예언직은 부족한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와 사회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없어서는 안 될 구원 역사의 누룩이다.
교회의 신앙 유산에 충실한 예언직
예언자의 예언이 과연 하느님의 말씀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1테살 1,19-20). 교회는 이 기준이 교회의 유산에 충실한 신앙이라고 말한다.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누구도 정통 신앙을 고백할 수 없으며, 정통 신앙에 부합하는 예언이 아니면 결코 하느님의 말씀일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예언직 수행자는 교회의 판단에 순응해야 한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들이 될 것이다.”(사도 1,8)라는 말씀대로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서 그리스도를 증언하였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영으로 예언한 것처럼 신약의 백성도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한다. 또한 진리의 성령은 교회가 예언직을 수행하며 진리를 믿거나 가르치는 데 있어서 오류가 없도록 보호해 주신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요한 12,27) 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교회는 신앙의 유산을 잘 간직할 수 있으며(2티모 1,14), 오류 없이 진리를 선포할 수 있다(1코린 12,3).
예수님께서는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0-11)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언직 수행이 희생과 봉사를 통해서만 효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늘날 예언직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말씀과 생활이 일치되는 모범을 통해 세상에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해야 한다. 나아가 교회가 예언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하느님 백성은 기도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성실해 질 수 있다.
둘째, 예언직 수행자는 그 시대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하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 이웃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쉽게 알아듣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시대의 징표를 읽어야 하는 교회의 사명
예언직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시대의 징표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읽으며, 삶을 위협하는 여러 형태의 불의와 폭력에 직면하여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하느님 백성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직시하고 시대적 상황을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해 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회가 하느님의 계시와 세상 사이의 중재자로서 자신의 예언적 사명을 세상과의 긴밀한 관계 안에서 조명하며 실행하는 데 있어서 시대의 징표를 읽는 것은 필수적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시대의 징표에 관심을 보이면서, 역사와 세상을 주시하고 복음의 진리에 비추어 올바르게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시대적 징표의 기원은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아적 징표로 알아보기를 촉구하셨던 가르침에 두고 있으며, 그 목적은 각 시대적 사건과 상황을 신앙의 눈으로 통찰하여 그 내면에 담긴 하느님의 현존과 뜻을 파악하는 데 있다. 특히 <사목헌장> 4항은,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분별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진리를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지속하기 위한 교회 본연의 임무이며, 이 시대의 징표 해석의 기준은 복음이라고 밝혔다. 또 <사제교령> 9항은 시대의 징표를 성령의 은사와 관련시켜 언급하고 있다. 즉 신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여러 활동 분야에서 그들의 경험과 능력을, 특히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신앙의 눈으로 발견하고 교회에 선익이 되도록 활용하는 것이 시대적 특성을 인식하고 올바르게 대처하려는 자세임을 시사했다.
시대적 징표에 대한 식별과 해석의 원리
역사의 모든 사건과 현상이 시대의 징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세계의 중요한 특징, 역사의 흐름 등을 나타내는 것이 시대의 징표로 여겨질 수 있다. 따라서 시대의 징표는 개인적인 관심을 넘어서 보편적인 차원에서 인간 정신에 파고들거나 교회와 인류의 장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시대의 지배적인 사상 또는 구체적인 큰 사건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가운데 인간의 자유와 품위의 증진, 정의로운 사회 정착을 위한 일련의 노력과 결실들은 긍정적인 징표에 속한다. 부정적인 징표는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징표로,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의 역사를 보지 못하도록 한다. 우리 시대의 어두운 징표로는 하느님을 배제한 문화적 퇴화, 불의한 사회구조, 죄의식의 상실, 이혼과 낙태의 급증, 폭력과 죽음의 문화 등을 들 수 있다.
시대의 징표를 통찰하여 현재와 미래 삶의 의미를 밝혀 주기 위해서는 복음을 해석의 원리로 삼아야 한다. ‘복음의 빛’에 견주어 시대의 징표를 조명함으로써 시대적 여러 변형이 인간적 가치, 정신적 발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있다(<사목헌장> 4항). 또한 ‘신앙’은 계시진리를 고백할 뿐만 아니라 인식하는 방식이며, 하느님의 메시지와 활동에 개방된 자세로 경청하며 주시하는 윤리적 유연성이기도 하다. 신앙은 하느님의 현존을 알리는 징표들을 감지하는 초자연적 감각과 시야를 제공하여 만사를 하느님의 섭리와 연관지어 바라보게 해 준다(요한 9,39; 12,37). 한편 시대적 징표를 해석함에 있어 발생할 수 있는 오류와 혼동에서 벗어나는 길은, 성령의 비춤에 힘입은 교도권의 도덕적 성찰과 교회의 가르침에 도움을 받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에 따르면, 시대의 징표를 읽을 의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니지만 특별히 사목자와 신학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