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0
https://youtu.be/EO6p4lJPPjQ?si=-WcjdJpyOuRLi-yt
1.
중3에서 고1로 가는 겨울이었을 거다.
그만큼 오래된 얘기다.
지금은 공터만 남은 광주 계림극장에서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영화를 봤다.
세월이 너무 오래 흘러서인지
아니면 당시 까까머리 학생이던 나에게
대학생 형, 누나들의 고민이나 꿈, 사랑 따위는
애초에 공유가 어려워서였는지 모르지만
이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나
등장인물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동해에 살고있는 고래를 잡는다고
젊은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바다로 달려가는 장면,
주인공 병태의
그야말로 병태(!)같은 웃음,
여주인공 영자가 천cc 생맥주잔을 들고
깔깔거리며 웃던 모습...
그 정도만 흑백사진처럼,
조각그림처럼 떠오른다.
2.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기억나지 않는 장면이나 줄거리와는 달리
지금까지 선명히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고래사냥'이나 '왜불러' 처럼
이 영화를 통해 크게 히트한 노래말고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삽입곡 중 하나로 나왔던
'걷지말고 뛰어라' 라는 노래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이 노래를 아는 이는 드물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감독이 가사를 쓰고
송창식이 곡을 붙이고 노래를 했단다.
3.
영화를 보며 처음 듣던 그순간부터
나는 이 노래가 좋았다.
한창 기타를 독학하던 때였으니
노래 도입부의
전형적인 포크느낌이 좋아서였는지
가사가 와 닿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이 노래가 좋았다.
세월이 많이흐른 지금까지도
가끔 불식중에 가사를 흥얼거릴 정도로.
우리는 언제나 꿈을 꿀때는...
해왕성 명왕성 저먼 우주로...
천국을 찾아서 가야겠다고
환상의 날개를 펴곤했지
검색해 보니 유튜브에도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서너번 반복해서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흥얼거리기만 하다가
오늘처럼 원곡을 듣기는 수십년만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위에 있는 링크를 클릭해서
꼭 들어보시라
곡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지 몰라도
세월과 세대를 넘어
감성의 접점을 느낄수 있으리니.
4.
알래스카에 가고 싶었다.
지구촌 이곳저곳을 가보았으나
아직 가보지 못한 그곳.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고싶은지
언제 어떻게 갈지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분명히 그런꿈이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영화속 젊은이들이
왜 고래를 잡으려 했는지
왜 그꿈이 그들에게 그토록 간절했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저,
그들에게 고래의 꿈이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알래스카의 꿈이 있었다는 것,
한번 가졌던 꿈들은
책갈피 속에서 우연히 찾은
어릴적 사진처럼
세월이 지나도 언젠가 불쑥
다시 나타난다는 것,
영화속 병태와 영자, 영철에게
고래의 꿈이 간절했듯이
나에게도
알래스카의 꿈이 있었다는 것이
이 노래를 들으니 문득 떠올랐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