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6년 10월 2일
장소: 화순 일원[ 특강(빨치산의 생성과 전개과정-박동기 남녁현대사연구소장)- 백아산등반-하늘바위 전적지-오지호기념관-김삿갓종명지-연둔리 숲정이 걷기]
인원: 33명
기념사진 남기는 남역원회원님들!
특강- 빨치산의 생성과 전개과정( 박동기 남녁현대사연구소장)
1950년대 전남 화순 백아산(810m)은 태백산맥의 줄기이자 험준한 산세를 갖추어, 한국전쟁 전후 입산한 빨치산의 핵심 거점이자 전남도당의 당사 및 군사적 요새 역할을 했다.
백아산 지구 빨치산은 지리산과 연결되는 요충지라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경찰서·면사무소 등 지방 행정기관 습격, 경전선 철도 및 통신망 교란, 식량 및 물자 확보 작전을 지속하며 군경의 보급선과 후방을 위협했다.
특히 특히 전남도당 위원장이자 남부군 유격대 책임자 중 한 명이었던 김선우(金善佑)는 1918년생 보성출신으로, 백아산을 중심으로 전남 지역 빨치산 투쟁을 총지휘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사회주의 지하활동을 했고 1946년부터 한국전쟁 직전까지 전남도당 유격대를 지휘했던 '구빨치' 출신이다. 한때 조선노동당 전남도책을 맡았다가 박영발이 위원장으로 내려오자 부위원장이 되었다. 9·28 후 백아산의 전남도당 부위원장 겸 인민유격대 전남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952년 초 개편된 제5지구당 부위원장이 된 박영발 후임으로 도당위원장을 맡게 된 그는 인민유격대 전남 총사령관직을 부사령관 오금일에게 넘겨주고 백운산에서 도당 위원장 임무를 수행하던 중 1954년 4월 5일 토벌군의 공격을 받고 사살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망일자가 4월 5일이 아닌 "1954년 2월 27일 백운산 아지트를 습격받자 수류탄으로 자결했다"는 기록도 있다. 백아산 일대에 거점을 두고 있던 빨치산 전남총사령관 오금일은 1954년 봄까지 전개된 토벌작전 때문에 통명산으로 이동했으나 끝내 체포돼 호송도중 자살했고, 이 무렵 빨치산 소탕작전으로 전남지역 뿐만 아니라 지리산 유격대도 거의 궤멸되었다.(자료집)
힘든 등반속에서 나눔정신을 실천하는 회원님들! 멋집니다...
오늘 백아산 등반에서 2명이 상당히 뒤처졌습니다. 한 사람은 저 신길웅입니다. 자동차로 말하면 1951년 산이니 폐차가 얼마 남지 않았지요. 앞서간 일행이 하늘다리에서 사진을 찍는 등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길에, 그 때 두 사람은 다리 못 미쳐 200미터 지점을 허덕이며 가고 있어습니다. 돌아가던 김상숙 선생(그 때는 이름도 모름)이 하늘 다리로 우리를 리드.. 사진도 찍어 주고. 더 놀라운 것은 내려 올때 끝까지 우리와 보조를 맞추어 주고 격려해가면서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는 것. 우리 둘이는 크게 힘을 받아 무사히 내려 왔습니다. 앞서간 분들의 식사가 다 끝난 시간에....나 라도 김상숙 선생처럼 못했을겁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생명의 은인입니다. 봉사와 희생이 몸에 베었더군요. 정말 감동의 백아산이었습니다. (신길웅 회원이 카톡방에 남긴 감동적인 사연 중에서....)
하늘다리에서 기념사진 찍어야죠! 1+1은?
하늘다리 부근 정상에서 가을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남역원 회원님들!
백아산 루트를 답사하면서 "굶어서 죽고, 얼어서 죽고, 총맞아서 죽었다"는 빨치산의 삶을 생각한다...
하늘다리에서 바라본 화순 들녁과 아름다운 남도 산하(山河)
1951년 7월 2일 미군 전투기 추락지 답사에 나선 회원님들!
오지호(吳之湖, 1905~1982)화가는 한국적 인상주의 회화를 개척한 서양화단의 거목이다. 전남 화순 출생으로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공부하며 빛과 색채에 매료되었다. 귀국 후 서구 인상파 수용에 그치지 않고, 맑고 투명한 한국의 자연광선과 풍광을 표현하기 위해 모색하였다. 1938년 김주경과 함께 한국 최초의 원색 화집인 《이인화집》을 발간하고 대표작 〈남향집〉을 남기며 '한국적 인상주의'의 기틀을 확립하였으며, 해방 후 조선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과 지역 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일제강점기 친일 협력을 거부한 민족주의자이자, 평생 자연의 생명력과 정서를 독창적인 색채와 거친 필치로 그려내며 한국 현대회화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아들인 오승우, 오승윤 화가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채종기 회원(은암미술관장)의 설명에 집중하는 회원님들!
인상파적인 시각이 잘 나타난 대표작 "남향집"(1939년) 젊은 아내를 모델로 그린 "처(妻)의 상"(1936년)
오지호 화백의 해방전후 활동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이건상 상임운영위원
김삿갓 종명지(終命地)에서 김삿갓의 생애에 대한 노성태 원장의 설명에 집중하는 회원님들!
김삿갓(난고 김병연, 1807~1863)은 할아버지가 홍경래의 난 때 선천 부사로 있다가 항복한 것을 두고 비난하는 시를 지어 장원급제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평생을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각지로 방랑한다. 전국을 돌며 독특한 풍자와 해학으로 권력을 풍자하고 세상을 개탄해 민중시인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화순 김삿갓 종명지는 길고 길었던 유랑 생활을 마치고 생을 마감한 역사적 장소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에 위치하며, 화순적벽 등 지역의 수려한 자연 풍광에 매료된 김삿갓이 일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그의 외가가 함평이었다는 사실도 전라도에 머물게 된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구암마을의 선비 정씨 가문의 사랑채에 머물며 시상을 다듬다가 1863년 57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현재 이곳에는 복원된 종명가(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친필 시비와 삿갓동산 등이 조성되어 있어 방랑 시인의 발자취와 묵향을 추모하는 명소로 가꾸어져 있다. 사후 3년 뒤 유골은 아들에 의해 강원도 영월로 이장되었다.
김삿갓 동산
화순 동복 연둔리 숲정이는 전남 화순군 동복면 연둔리에 위치한 아름다운 개울가 마을숲이다. 1500년경 마을이 형성되면서 동복천 변의 수해를 막고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되었다. 왕버들, 버드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200여 그루의 오래된 거목들이 약 700m에 걸쳐 울창한 숲터널을 이룬다. 물가에 반사되는 고목의 수형이 빚어내는 환상적인 풍경 덕분에 출사지(出寫地)와 산책 명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역사적·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아름다운 숲으로 꼽히는 자연유산이다.
오늘도 여유로운 남역원의 맛있는 점심식사 및 차담(茶談)시간 & 시(詩)낭송~~~
가을이 참 좋~다!! 남역원 답사가 최고여!!
선생님들~
이번에도 멋졌어요^^
멋진 사진 올려 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사진을 다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는 남역원 답사! 화이팅!!!!!
첫댓글 답사내용을 멋지게 정리해 올려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