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1-09
저 자 세(低姿勢)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제법 아침과 저녁으로는 산 위로부터 바람이 솔솔 내려 불어주어 온 마당 안에 햇볕이 한없이 드리우는 낮과 다르게, 선선함이 감도는 가을에 접어드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흙에 심겨져서 자리를 차지하고 주뼛주뼛 서있는 식물(植物)들이 바람결에 삭삭 흔들리는 소리를 내가며, 익은 벼처럼 이제는 제가 심겨진 밑을 보아가며 고개를 깊숙이 숙여가기 시작하였다. 제가 나고, 저를 자라게 하였던 근본(根本)인 땅을 보아 가는 것이다. 귀정(歸程)이라는 생각이 든다. 활개를 피었던 것도 접어가며 속으로 알알이 맺음을 하는 철이다. 누구 말처럼 고자세(高姿勢)가 아니라 저자세(低姿勢)이다. 겉 매무새보다는 내용(內容)이 들어차서 이제는 단단해져 가는 때이다.
일년 남짓 전에 연세 드신 목사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 지역 연합회에서 여는 연합집회 모임에서, 우리 공동체를 알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겠다고 하셨다. 갑자기 좋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 모임 속에 나서려면 “새터공동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안이 될 것 같다고 얘기하셨다. 가까이에 서대산이 있으니 “서대산공동체”라든가 무슨 다른 이름이 어울릴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젊은이로써 뜻을 가지고 지어서 이제 것 사용하는 이름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 후에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대(下待)까지 하시는 것이었다. 물론 그 목사님은 생각해주는 마음으로, 무의식 가운데 아무 뜻 없이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나는 사실상 다른 구실을 가져다 대다시피 하면서 그 모임에 참여치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전화기를 내려놓는 손이 가볍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 후에 그 목사님을 뵈올 때 잘 대하여 주시니 나에게는 그지없이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윗분들이 경직된 모습보다는 부드러우며 품에 안는 듯한 모습으로 아랫사람들을 맞아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선배 혹은 후배라는 말을 잘 쓰지를 않는다. 나의 제자(弟子) 누구누구라는 말은 더더욱 못쓴다. 나이가 적은 연소의 사람들이 어렵게 여겨질 때도 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라”(빌립보서 2:3)는 말씀까지 있다. 몸이 불편한 중에도 나는 청소년기까지에는 아이들 가운데서 제일 키가 큰 아이였다. 그러나 그 후에는 더 자라지를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중간 이상의 몸체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자세를 곧게 하고 내려보는 시선으로 사람을 맞이하거나 대할 때가 있다. 상대편이 얼마나 안절부절못하겠는가? 모든 사람은 골리앗과 같은 거인 앞에서는 다 도토리 키 제기 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골리앗은 없다.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은 모든 사람이 낮아지면 된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이가 낮아지면 우리는 함께 받들려질 것이다. 이것이 함께할 共자를 쓰는 공동체(共同體)이다.
공동체 이야기
청 풍 명 월(淸風明月)
우리 마을은 비교적 큰 마을이라서 면(面)에나 나가야 있을 법한 농협(農協)이 자리하고 있다. 그 농협에 가면 나에게 재미있게 눈에 와 닿는 것이 있다. 한쪽 귀퉁이에 불쑥 쌓여있는 쌀포대들이다. 요사이는 쌀이 궁해져서도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이름이 “청풍명월 쌀”에 생산지가 “당진군 신평면”이라는 글귀를 볼 때마다 그것을 눈여겨보게 한다. 농협에서 이 동네 신평리의 이름과 같은 당진의 신평면에서 나는 쌀을 가져다놓고 파는 꼴이 바로 나한테는, 같은 이름의 것을 끌어온 것이 우스갯거리로 눈에 보여진다.
오늘은 “청풍명월”이 눈길을 더 끌었다. 그네들은 충청도에서 농사한 쌀이라서 이름을 그같이 붙였으리라마는 나는 그것만은 아니다. 불타 가는 가을 속에 그렇지가 않다. 서서히 조락(凋落)의 계절로 치달을 것이다. 봄바람은 아지랑이를 일으키는 피어오르게 하는 바람이라면, 가을에 부는 바람은 청순(淸純)한 코스모스를 나붓거리게 하는 청량(淸涼)한 바람이다. 청풍(靑風)이 봄 불을 일으키는 바람이라면, 청풍(淸風)은 해지기 시작하는 불그스름한 저녁 무렵에 갈대를 흔드는 바람이다. 같이 계시는 사모님께서 근처를 다니면서 누렇게 익어 떨어져 땅에 나뒹구는 감을 여러 개 주어 오셨다. 우리는 떫은맛이 가셔가고 단맛이 드는 감을 맛있게 먹었다. 그 오래 전을 회상(回想)하며 말씀하신다. 그 예전 아이시절에 그 분께서는 지금보다 더 늦은 가을의 정취(情趣)의 한 가운데 을 속속들이 걸으셨단다. 물 흐르는 내를 옆으로 한 높은 언덕길을 걸으며 갈대를 스치셨단다. 들꽃들도 눈 안에 들었을 것이다. 요사이에 그분께서 물가의 언덕길과 우리 주위에서 매암돌고 계신다. 옆에서 같은 슬픈 생각까지 든다. 다른 한쪽으로는 가을의 맑은 바람이 사느랗고 부드럽게 부는 탓에 그 결에 맞추어 우리 마저 들에서 서성이게 한다.
청량(淸涼)한 가을하늘은 참신(斬新)하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은 풍자(諷刺)와 해학(諧謔)으로 써 세상사(世上事)를 바르게 세우자고, 비판도하며 깨우쳐 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급하게 청하다시피 하는 우매(愚昧)한 사람들 앞에서 한유(閑裕)하게, 붉은 저녁노을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셨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表蹟)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天氣)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마태복음 16:1-4). 예수가 말하는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태복음 12:40).
탁한 도심지(都心地)에서 불어 대는 바람이 아닌, 산바람인 청풍(淸風)을 맞이함도 자연의 혜택(惠澤)이다.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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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차현선
김귀숙
정무래
박종만
어귀녀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8월 21일에 금산 제원교회 조종국 목사님 부부의 도움으로 공동체 식구들이 영동 양산 송호리로 물놀이를 다녀왔습니다.
☻ 새터 공동체에서는 거처를 정하지 못하는 노인, 장애인 분들을 모시고자 합나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성남교회안수집사회.일양교회.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20인).어귀녀.조종국김영창.예수사랑공동체우리집(박성훈외2인).채윤기(박현실).왕지교회.진수정.박종만.이종국(조용석).대전지역사회선교협의회.구세군덕암영문(김인호).예수마을.대덕교회.대전서노회.이원교회.판암제일교회.김영창.옥천동부교회.한삼천교회.정용철.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최길애외3인).찬미교회.대전서노회전도부(이순.정진모.설효희.남금식).대전노회사회부(김수택).이종국.유인숙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