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 곧 나에게 행함이라 / 마태복음 25:40
나라의 풍속이 순수하여 남을 돕는 것을 힘쓰지만, 때에 따라 각박하여 남을 돌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는 그 나라의 종교적 수양에 달려 있다. 불교나 유교의 결과와 기독교의 결과를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몇십 년 전 동경의 송원에서 행한 경양의 연설에서, 일본이 불교를 종교로 삼아 오랜 기간 교육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각총리대신이 사기로 징역 중에 있다며 일본의 큰 수치라고 지적했다.
조선도 500년 동안 유교적 수양을 쌓아왔지만, 관료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역적이 되었으니 이 또한 조선의 큰 부끄러움이다. 약자를 동정하고 불쌍한 이들을 돌보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모든 사람이 이런 마음을 갖는다면 전국에 불행한 이가 없어지고 천국이 임할 것이다.
과거 일제 및 군정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우리 당국자들의 사상에 대해서도 걱정이다. 무엇으로 민중들에게 기쁨을 줄지, 경제·교육·정치 문제 등을 논의하지만 모두 공허한 이론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의 냉수라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실천이다.
어느 부인이 꿈에 예수님이 오셔서 내일 부인의 집에 오시겠다고 하셨다. 부인은 너무 기뻐 집안을 정돈하고 좋은 음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지 않고 대신 거지 아이 한 명이 와서 밥을 달라고 했다. 부인은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준비한 음식을 줄 수 없다고 하며 거지를 보냈다. 다음 날 밤 다시 꿈을 꾸었는데, 예수님께서 "어제 왔던 그 거지가 바로 나다"라고 하셨다. 이에 부인은 거지를 대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구제 사업에 더욱 힘썼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을 때, 교육, 의료, 구제 사업 등 모든 일을 주님을 위해 행하며, 내가 가진 것도 전부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세에서 자선가가 되면 내세에서 천국의 높은 대접을 받습니다.
강릉김씨 이야기처럼, 약자를 동정하는 나라가 곧 천국입니다. 하지만 조선이나 중국은 아직 이 원리를 모르고 있습니다.
약자는 크게 세 부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린이, 둘째는 여성, 셋째는 노동자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린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고, 어린이를 범죄하게 하는 자는 차라리 돌매를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지라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약자들을 돌보아 향상시키는 것이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자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약자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이에서 믿음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우리를 보시고 듣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 밑 기도하는 나다나엘, 여러 남편을 가진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의 은밀한 일까지도 주님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린이나 약자, 불쌍한 이들을 학대하거나 동정하지 않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보고 계시며 노하지만 참으시는 것입니다.
아이의 떡을 빼앗으면 주님의 것을 빼앗는 것이며, 약자의 피땀을 착취하면 주님의 피와 땀을 짜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은 주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의인이나 선지자를 대접하면 당연히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겠지만, 약자와 거지를 대접하는 것도 주님께 인정받을 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 마음으로 움직이는 모든 것이 주님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원산 학생이 계모를 위해 기도하여 계모가 회개했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내가 사람을 속이면 그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곧 예수님을 속이는 것이며, 남을 때리면 남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곧 예수님을 치는 것이라는 것이 믿음의 진정한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