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골암 절로산악회 10월 산행 계획서
<<안산·즐산: 산행전후의 기초운동 10분이 최상의 컨디션을 만듭니다.>>
일시: 2016년 10월 2일(일) 오전 7시00분
장소: 충남 예산군 덕숭산 수덕사와 안면도 또는 대천
<일정표> 6:30 동다리 하상 차량대기
~ 7:00 하상 출발
7:00~ 9:20 보은하상~휴게소 1~2회 정차~예산 수덕사 주차장(150km1시간50분)
9:20~12:00 예산 수덕사
12:00~12:50 안면도 백사장항 주차장 버스 이동(40km1시간)
1:00~ 2:30 이벤트 점식식사 및 수산시장
2:30~ 4:00 안면암 또는 간월암 또는 둘레길, 그외
4:00~6:30 안면도~휴게소 2회 정차~보은 (160km2시간)
서해를 향한 차령산맥의 낙맥(落脈)이 만들어 낸 덕숭산(德崇山)은 북으로는 가야산(伽倻山), 서로는 오서산, 동남간에는 용봉산(龍鳳山)이 병풍처럼 둘러쌓인 중심부에 서 있다. 이 덕숭산 자락에 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한국불교의 선지종찰(禪之宗刹) 수덕사가 자리하고 있다. "백제는 승려와 절과 탑이 많다"라고 중국사서(史書)인 '북사(北史)' , '수서(隨書)', '주서(周書)'에 기록되어 있다. 그 문헌에 나타난 백제 사찰로는 흥륜사(興輪寺), 왕흥사(王興寺), 칠악사(漆岳寺), 수덕사(修德寺), 사자사(師子寺), 미륵사(彌勒寺), 제석 정사(帝釋精寺) 등 12개가 전하지만 현재까지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사찰은 수덕사 뿐이다. 백제사찰인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威德王, 554~597) 재위 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수덕사 경내 옛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와당은 백제시대 창건설을 방증할 수 있는 자료이다. 수덕사의 고려시대 유물로는 충렬왕 34년(1308)에 건축된 대웅전과 통일신라 말기 양식을 모방한 삼층석탑, 수덕사 출토 고려자기, 수덕사 출토 와당 등 있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수덕사 대웅전은 다행히 옛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37~40년 보수 당시 발견된 대웅전 동측 내부 전면에 기록된 단청개칠기 (丹靑改漆記)에 의하면 중종 23년(1528)에 대웅전 색채보수, 영조 27년(1751), 영조 46년(1770)에 대웅전 보수, 순조 3년(1803)에 대웅전 후면의 부연보수와 풍판의 개수 등 4차례 대웅전 보수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 1673년 조성된 수덕사 괘불과 18세기 제작된 수덕사 소종은 조선후기 수덕사의 꾸준한 불사활동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 주요문화재 : 수덕사대웅전(국보 제49호) 수덕사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103호) 수덕사7층석탑 육괴정, 황하루, 근역성보관, 사리탑 외
* 전설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람은 극히 퇴락이 심해 대중창불사를 하여야 했으나 당시의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서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자청하였다. 이 여인의 미모가 빼어난 지라 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원근에 퍼지게 되니, 이 여인을 구경하러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중 신라의 대부호요 재상의 아들인 '정혜(定慧)'라는 사람이 청혼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불사가 원만성취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여인의 말을 듣고 이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10년 걸릴 불사를 3년만에 원만히 끝내고 낙성식을 보게 되었다. 낙성식에 대공덕주로서 참석한 이 청년이 수덕각시에게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 입을 말미를 주소서'하고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었다. 이에 청년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하자 여인은 급히 다른 방으로 사라지려 하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청년이 여인을 잡으려하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지니, 갑자기 사람도 방문도 없어지고 크게 틈이 벌어진 바위 하나만 나타나 있었다. 이후 그 바위가 갈라진 사이에서는 봄이면 기이하게 버선모양의 버선꽃이 지금까지 피고 있으며 그로부터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수덕이었으므로 절이름을 수덕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인을 사랑한 정혜라는 청년은 인생 무상함을 느끼고 산마루에 올라가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정혜사라 하였다고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의 본사이다. 창건이나 그 이후 역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절의 연혁을 알 수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말 숭제법사가 창건하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중수했다고 하며, 일설에는 백제 599년(법왕 1)에 지명법사가 창건하고 원효가 중수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말에 경허가 선풍을 일으킨 뒤 1898년(고종 35) 그의 제자인 만공의 중창으로 번성하여 현재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백제계 사찰 가운데 유일한 사찰[원본 편집]
수덕사는 오래된 절의 역사에 비해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연혁을 살피는 데 어려움이 많다. 어떤 기록에서는 백제 위덕왕 때 지명법사가 창건했다고 하고 또 다른 기록에서는 백제 말 숭제법사가 창건했다고 말하지만 근거는 없다. 백제 무왕 2년(601년) 혜현스님이 수덕사에서 법화경을 강론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이미 그 이전에 창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헌에 언급된 백제사찰 가운데 흥륜사, 왕흥사, 칠악사, 수덕사, 사자사, 미륵사, 제석정사 등 12개의 사찰 이름이 전하지만 수덕사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수덕사 경내에서 백제시대의 와당과 와편 등이 발견된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백제시대부터 유지되어온 사찰임이 분명하다.
고려시대에는 이렇다 할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대웅전 수리 시 나온 묵서명에서 대웅전이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지어진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고려 말까지 대찰로서의 사격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4세기 중후반에 나옹혜근 선사가 절을 중수했다고 전하고, 조선시대에는 1528년(중종 23년)과 영조와 순조 때 대웅전을 중수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한국 근대 선불교의 요람[원본 편집]
구한말에 경허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경허스님은 1880년대 끊어진 선불교의 수행체계와 법통을 다시 수립하고 잇게 한 스님으로 수덕사와 수덕사 인근의 천장암, 부석사, 개심사 등지에서 주로 보림하며 수월, 혜월, 만공, 한암스님 등의 제자를 길러냈다. 이 가운데 수월스님은 만주로 건너가서 숨은 도인으로 살다 열반에 들고 혜월스님은 부산으로 내려가 운봉성수, 향곡혜림, 진제법원 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루었다.
한암중원 스님은 월정사로 가서 탄허택성, 보경희태, 만화희찬 스님으로 이어지는 오대산 법맥을 만들었으며, 수덕사에 남은 만공스님은 보월성인, 용음법천, 벽초경선, 혜암현문, 고봉경욱 스님 등 기라성 같은 제자를 길러 스승이 뿌린 선불교의 씨앗이 곳곳으로 퍼져 나가 넓게 뿌리내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현재 수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5대 총림 가운데 하나인 덕숭총림으로 많은 스님들이 강학과 참선정진하는 종합교육도량이다. 또한, 충청남도 내포 일대의 36개 말사를 관장하는 제7교구본사이기도 하다.
- 수덕사 대웅전, 세운 지 700년이 넘은 건물
수덕사의 성보문화재는 단연 국보 제49호인 대웅전을 먼저 꼽을 수 있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지어졌다고 하니 건립된 지 700년이 지났다. 수덕사 대웅전은 단지 오래된 것뿐만 아니라 안정감 있는 모습과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하면서도 은은한 멋이 느껴지는 건축이다. 옆면 공포와 벽이 이루고 있는 환상적인 면 분할은 그대로가 하나의 추상화 같다.
이외에도 보물 제1263호인 노사나불괘불탱과 보물 제1381호 목조 삼세불좌상 등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5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가 5점, 문화재자료와 등록문화재 4점 등 수덕사는 총 15점의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말사인 예산 화암사에 걸려있던 무량수각, 시경루 등 추사 김정희의 친필 편액과 만공스님이 조선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이강공에게 받았다고 하는 고려시대 공민왕의 거문고도 남아 있다. 이 거문고에는 조선후기 이조묵이 새긴 공민왕금이라는 글씨와 만공스님의 시가 새겨져 있다.
수덕사 뒤 덕숭산 정상부에는 선방인 정혜사와 여러 토굴들이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금선대에서는 경허, 만공, 혜월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덕숭산 꼭대기에 위치한 전월사는 만공스님이 말년을 주로 보낸 곳이라 한다. 그 근처에 세계일화라고 쓰여진 탑이 만공스님 부도탑으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473호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의 중 혜현이 이곳에서 삼론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산 위에는 비구(남자 중)가 거처하는 정혜사가 있으며, 서쪽에 비구니(여자 중)가 사는 총림이 있다. 관음 바위, 미륵 석불, 만공탑, 전원사 등이 있다. 특히 담징이 그린 대웅전 벽화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