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는 제우스와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헤라는 인간을 어머니로 해서 태어난 남편의 자식이면 누구나 미워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가 태어났을 때도 이 아이에게 선전을 포고했다. 헤라는 두 마리 독사를 보내어 요람에서 자고 있는 헤라클레스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이 조숙한 아기는 독사를 한 손에 한 마리씩 잡아 목졸라 죽여 버리는 바람에 헤라는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뒷날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간계에 말려 에우뤼스테우스의 부하가 되었다. 말하자면, 에우뤼스테우스가 시키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해야 할 입장으로 몰린 것이다. 에우뤼스테우스는 목숨을 내놓고 해도 해내기 어려운 임무를 차례로 헤라클레스에게 맡겼으니 이것이 이른바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난사(難事)라는 것이다.
첫번째 난사는 네메아 사자와 싸우는 일이었다. 네메아 골짜기에 무서운 사자 한 마리가 출몰했는데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이 괴물의 모피를 가져오라고 명했다. 헤라클레스는 곤봉으로 때려도, 활로 쏘아도 뜻대로 되지 않자 맨손으로 이 괴물의 목을 졸라 죽여 버렸다. 헤라클레스가 죽은 사자를 둘러메고 오자 에우뤼스테우스는 그 죽은 사자를 보고, 이 영웅의 괴력에 기겁을 하고는 앞으로 모험의 결과를 보고할 때는 도시 바깥에서 하라고 명했다.
헤라클레스에게 주어진 두 번째 난사는 휘드라(물뱀)를 퇴치하는 것이었다. 이 괴물은 아뮈모네 샘 가까이에 있는 늪지에 살면서 아르고스 땅 사람들을 못살게 했다. 아뮈모네 샘은 이 나라가 가뭄에 시달릴 때 아뮈모네가 발견한 샘이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뮈모네를 사랑했던 포세이돈이 아뮈모네로 하여금 자기 삼지창으로 바위를 찌르게 하자 거기에서 세 줄기의 물이 솟아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소중한 샘에 휘드라가 도사리고 있어서 아르고스 인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헤라클레스는 바로 이 휘드라를 퇴치해야 하는 것이었다. 휘드라는 머리가 아홉 개나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불사(不死)의 운명을 타고난 머리였다. 헤라클레스가 곤봉으로 머리를 차례로 쳐 떨어뜨렸으나 떨어진 자리에서 두 개씩 새로 돋아났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이올라오스라고 하는 충복의 손을 빌려 휘드라의 머리를 모두 태워버리고, 아홉 번째의 불사의 머리를 커다란 바위 밑에다 묻어 버렸다.
세 번째 난사는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치우는 일이었다. 엘리스의 왕 아우게이아스는 3천 마리의 황소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 외양간은 자그만치 30년간 한번도 치워진 적이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알페이오스 강과 페네이오스 강을 끌어들여 단 하루 만에 이 외양간을 깨끗이 청소해 버렸다.
네 번째 난사는 몹시 까다로운 임무였다. 곧 에우뤼스테우스 왕의 딸 아드메테는 아마존 족5)의 여왕이 허리에 매고 있는 허리띠를 몹시 갖고 싶어했는데,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그것을 좀 빼앗아 오라고 명한 것이었다. 아마존 족은 여자들뿐인 종족이었다. 이들은 전쟁을 몹시 좋아하는 종족으로, 몇 개의 번창한 도시를 거느리고 있었다.
여자 아이만을 기르는 게 이들의 관습이었기 때문에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이웃 나라로 쫓아 버리거나 죽여 버리거나 했다.
헤라클레스는 수많은 지원병을 데리고 천신만고의 모험 끝에 이 아마존 나라에 도착했다. 여왕 히폴뤼테는 헤라클레스를 따뜻하게 영접하고 허리띠를 풀어 주겠다는 말까지 했는데, 헤라가 아마존 족의 한 여자로 둔갑하여 동네방네 다니며 외국인들이 자기네 여왕을 납치하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문을 들은 이들 아마존 족들은 무장하고 헤라클레스가 타고 온 배를 나포하려 했다. 이에 노한 헤라클레스는 히폴뤼테가 무슨 음모를 꾸민 것으로 알고, 여왕을 죽여 허리띠를 빼앗고는 배를 타고 돌아와 버렸다.
헤라클레스에게 맡겨진 또 하나의 난사는, 게뤼오네우스의 소떼를 끌고 오는 일이었다. 이 게뤼오네우스의 소는 몸뚱이가 셋이나 되는 괴물로 당시 에뤼테이아 섬6)에 살고 있었다. 이 섬은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지는 해에 물들어 그런 이름으로 불리었다. 묘사의 문맥으로 보아, 오늘날의 스페인을 지칭하는 듯하다.
게뤼오네우스는 그 나라의 왕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여러 나라를 횡단하여 마침내 리비아와 유럽의 경계선에 이르렀다. 이곳에다 헤라클레스는 칼레 산과 아빌레 산을 세워 그가 다녀갔다는 기념비로 삼았다. 하나의 산을 둘로 쪼개고 이를 양쪽으로 나누어 세워 오늘날의 지브랄타르 해협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이 두 산은 〈헤라클레스의 기둥〉(Pillars of Hercules)이라고 불린다. 헤라클레스는 에우뤼티온이라는 거인과 개를 죽이고 소를 에우뤼스테우스에게로 몰고 왔다.
열두 가지 난사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웠던 일은 헤스페리스들이 지키고 있는 황금 사과를 따 오는 일이었다. 우선 그 사과 있는 곳의 위치가 묘연했다. 사과는 헤라가 결혼할 때 대지의 여신(가이아)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헤라는 그것을 헤스페로스(샛별)의 딸들에게 지키게 하고, 그 딸들에게 잠들지 않는 용 한 마리를 붙여 준 바 있다.
헤라클레스는 온갖 모험 끝에 아프리카에 있는 아틀라스 산에 이르렀다. 아틀라스는 신들과 맞서 싸운 저 티탄 족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패배하자 신들이 그에게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게 했던 것이었다.7) 아틀라스는 헤스페리스들의 아버지였다.8)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헤스페리스들이 지키고 있는 사과를 따다 자기에게 갖다 줄 이는 아틀라스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틀라스를 부려먹자면 그 동안 누군가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야 했다. 헤라클레스는 자기 어깨로 하늘을 대신 떠받치고 아틀라스를 시켜 사과를 따 오게 했다. 오래지 않아 아틀라스는 사과를 따 가지고 왔다. 아틀라스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다시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고, 헤라클레스로 하여금 그 사과를 가지고 에우뤼스테우스에게로 돌아가게 했다.
밀턴은 『코무스』에서 헤스페리스들을, 헤스페로스의 딸이며 아틀라스의 질녀들이라고 쓰고 있다(981~983행).
저 헤스페로스의 아름다운 뜰에서
황금 나무를 노래한다.
세 딸과 더불어.
시인들은 해가 질 때 서쪽 하늘이 아름답게 물드는 걸 보고는 서방에 있을 광휘와 영광의 나라를 상상했다. 그들은 축복받은 자들의 섬, 게뤼네이우스의 빛나는 소떼가 풀을 뜯는 붉은 에뤼테이아 섬, 헤스페리스들의 섬 같은 것을 생각해 냈다. 따라서 예의 황금 사과도 당시의 그리스 인들이 전해 들었던 스페인의 오렌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헤라클레스가 해낸 난사 가운데서도 유명한 난사 중의 하나는 안타이오스와의 싸움이었다. 물론 헤라클레스는 이 싸움에서도 승리했다.
안타이오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로, 힘이 장사며 거인인데다 씨름의 명인이었다. 이 사내의 힘은, 어머니인 대지에 발을 붙이고 있을 동안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그는 자기 나라로 오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가 누구든 싸움을 거는데, 자기를 이기면 보내 주거니와 지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지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이 안타이오스와 맞붙었다. 헤라클레스는 안타이오스를 몇 번 집어던져보다가, 집어던져서는 그를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안타이오스는 넘어지면 넘어질수록 새로운 힘을 얻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안타이오스를 번쩍 들어올려, 공중에서 목을 졸라 죽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