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어디서 생을 찾는가 / 요한복음 5:38
사람들은 매일 삶의 의미를 찾고 있나요? 이를 잘 찾는 사람이 진정한 사람입니다. 얻지 못하는 것을 계속 추구하는 사람은 평생 고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가는 방식은 각자 다릅니다. 청렴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부정하게 사는 사람도 있으며, 부유하게 사는 사람과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가난한 사람 중에는 부자를 도리어 무시하는 사람도 있고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부자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부자보다 더 값진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소부와 허유는 요임금이 사랑하는 천하를 자신들이 가진 도(道)에 비해 하찮게 여겨 귀를 씻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네 내면에 있는 것은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물질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이는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확장하려고, 즉 천하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품은 사람을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 같은 사람은 자신이 올바른 삶을 찾는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미워하셨습니다. 권력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자도 어리석고, 높은 지식에서 생명을 찾는 자도 그 뜻이 고상해 보이고 세상에 이롭게 보일지 모르나, 그 삶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히려 이를 악용하여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무선전을 발명한 마르코니의 발명품이 에티오피아 침공에 사용되었고, 미국이 발명한 원자폭탄으로 인해 일본과 독일이 패망하면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따라서 지식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어리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고,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그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으니, 곧 주님의 말씀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노아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므로, 그 말씀을 따른 가족들은 살았고 믿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