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편(學而篇) 제15장 해설
<제15장>
子貢이 曰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호대 何如하니잇고
子ㅣ 曰可也ㅣ나 未若賓而樂하며 富而好禮者也ㅣ니라
자공이 가로대 가난해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해도 교만함이 없으되 어떠하니잇고? 공자 가라사대 가하나 가난해도 즐거워하며 부해도 예를 좋아하는 자만 같지 못하니라.
諂은 卑屈也ㅣ오 驕는 矜肆也ㅣ라 常人은 溺於貧富之中하야 而不知所以自守라 故로 必有二者之病이라 無諂無驕면 則知自守矣나 而未能超乎貧富之外也ㅣ니라 凡曰可者는 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ㅣ라 樂則心廣體胖하야 而忘其貧이오 好禮則安處善 樂循理하야 亦不自知其富矣니라 子貢은 貨殖하니 蓋先貧後富而嘗用力於自守者라 故로 以此爲問에 而夫子ㅣ 答之如此하시니 蓋許其所己能而勉其所未至也ㅣ라
첨은 비굴이오, 교는 자랑하고 방자함이라. 보통 사람은 빈부 속에 빠져서 스스로 지켜야 할 바를 아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반드시 두 가지의 병이 있음이라.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으면 곧 스스로 지킴을 아나 능히 빈부의 바깥을 뛰어넘지 못하느니라. 무릇 가로대 가하다는 것은 겨우 가하기만 하고 다하지 못한 바가 있는 말이라.
즐거워한즉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살져서 그 가난함을 잊어버리고, 예를 좋아하면 편안히 선한데 처하고 즐거워하면서 이치를 따라 또한 스스로 그 부를 알지 못하니라. 자공은 재물을 불리니 대개 먼저 가난하고 뒤에 부해서 일찍이 힘을 스스로 지킴에 썼느니라. 그러므로 이로써 물음에 부자가 대답을 이와 같이 하시니 대개 그 이미 능한 바를 인정해주시고 그 이르지 못한 바를 힘쓰게 하심이라.
子貢이 曰詩云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ㅣ라 하니 其斯之謂與인저
자공이 가로대 시에 이르기를 끊는 것과 같고 가는 것과 같으며 쪼는 것과 같고 가는 것과 같다 하니 그 이를 이름인저?
詩는 衛風淇奧之篇이라 言治骨角者는 旣切之而復磋之하고 治玉石者는 旣琢之而復磨之하니 治之已精而益求其精也ㅣ라 子貢이 自以無諂無驕로 爲至矣라가 聞夫子之言하고 又知義理之無窮하야 雖有得焉이나 而未可遽自足也ㅣ라 故로 引是詩以明之하니라
시는 위풍 기욱편이라. 골각을 다스리는 자는 이미 끊고 다시 갈고, 옥석을 다스리는 자는 이미 쪼고 다시 가니 다스리는 것을 이미 정하게 하여 더욱 그 정함을 구함이라. 자공이 스스로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음으로써 지극하게 여겼다가 부자의 말씀을 듣고 또한 의리의 무궁함을 알아 비록 얻음이 있었으니 가히 문득 스스로 족하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이 시를 인용하여 써 밝혔느니라.
子ㅣ 曰賜也는 始可與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ㅣ온여
공자 가라사대 사는 비로소 가히 더불어 시를 말하리로다. 저 감을 가르치니 옴을 아온여!
往者는 其所己言者요 來者는 其所未言者라
○愚는 按此章問答이 其淺深高下를 固不待辨說而明矣나 然이나 不切則磋無所施요 不琢則磨無所措니라 故로 學者ㅣ 雖不可安於小成이나 而不求造道之極致하며 亦不可騖於虛遠이나 而不察切己之實病也ㅣ니라
왕이라는 것은 이미 말한 바요, 내라는 것은 말하지 않은 바라.
○우는 이 장의 문답이 그 얕고 깊고 높고 낮음을 진실로 변설해서 기다리지 아니해도 밝아지나 그러나 끊지 않으면 닦는 것을 베풀 바가 없고 쪼지 않으면 가는 것을 둘 바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비록 가히 조금 이루는데 편안하지 아니하나 도의 극치에 나아감을 구하지 아니하며, 또한 가히 허무하고 먼데 치닫지 아니하나 몸의 절실한 실제 병을 살피지 않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