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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6월 14일 주일 메시지
누가가 들려주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 19
제목: 하나님 나라 상속자들에게
누가복음 12: 1~12
설교 동영상: https://youtu.be/I5rgZL5TSdw
설교 목적
예수님이 꿈꾸시던 세상은 어떤 곳일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펴보면서 이것을 알아보고자 한다. 특별히 제자들에게 주시는 그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이 어떤 결단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전파되었으며, 그것이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 다시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을 오늘 우리 시대에 적용하여 우리들도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는 일에 동참하고자 한다. 이 메시지가 과거에서 얼마나 현재로 가까이 올 수 있는가에 이 설교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설교 개요
1. 누구에게 주시는 말씀인가?
2.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
3. 왜 이런 말씀을 하시나?
4.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고 숨긴 것이 알려지게 되려면
5. 성령을 모독하지 말라
1. 누구에게 주시는 말씀인가?
예수님을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출신지와 함께 불렀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구별하는 고대의 방식입니다. 우리도 해남댁이나 해주댁처럼 출신지로 사람을 구별하여 부르던 풍습이 있습니다.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사람을 구별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나사렛 예수라고 하여 예수님의 출신지가 갈릴리 변방임을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갈릴리라는 변방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일어나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유대 땅의 중심도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을 결심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열두 사람으로 구성된 핵심 측근에서부터 칠십 명의 활동요원들까지 점차 늘어났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동네마다 다니며 전할 때 예수님의 소문은 온 유대 땅에 퍼져 나갔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누가복음 12:1
공동번역성경은 이 말씀의 앞 부분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들어 서로 짓밟힐 지경이 되었다.
이 때 예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그들의 위선을 조심해야 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수가 얼마나 많던지 서로 밟힐 지경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은 제자들을 위한 가르침입니다.
제자는 배우려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의 삶과 가르침을 따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그대로 따르는 사람입니다. 제자가 부지런히 따른다면 그 스승과 같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듯이 제자는 그 스승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한복음 14:1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고자 하실 때, 먼저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셨습니다. 그들은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백성을 위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려면 한 사람을 통해서 열두 기둥이 세워지고 그 기둥 위에 집이 세워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이 든든하게 세워지고 유지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가 필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교회가 그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디모데전서 3:15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집입니다. 그 집은 진리의 기둥과 기초(터)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반석과 같은 교회의 기초요, 열두 사도는 그 기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진리의 가르침을 든든히 배운 기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오늘날 목사와 장로, 권사와 안수집사와 같은 임직자들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교회의 기둥과 같다고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베드로)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갈라디아서 2:9
수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먼저 말씀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열두 기둥 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볼 때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을 통해서 언약백성이 세워졌듯이 열두 제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고 그 나라에 동참하는 대리인들이라면 교회도 이렇게 기둥 같은 역할을 할 일군들이 필요합니다. 금년에 있는 임직식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의 집의 기둥으로 헌신하기를 원한다면 수많은 무리들 가운데 숨어 있지 말고 예수님의 가까이에 와서 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들 가운데서 먼저 제자들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기둥과 같은 존재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셨을까요?
2.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
오늘 본문을 공동번역성경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그들의 위선을 조심해야 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2.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말한 것은 모두 밝은 데서 들릴 것이며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것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친구들아, 잘 들어라.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은 더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인가를 알려주겠다. 그분은 육신을 죽인 뒤에 지옥에 떨어뜨릴 권한까지 가지신 하느님이다. 그렇다. 이분이야말로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이다.
6. 참새 다섯 마리가 단돈 두 푼에 팔리지 않느냐? 그런데 그런 참새 한 마리까지도 하느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어두셨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그 흔한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8. "잘 들어라.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
9.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을 거역하여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한다.
11. 너희는 회당이나 관리나 권력자들 앞에 끌려갈 때에 무슨 말로 어떻게 항변할까 걱정하지 마라.
12. 성령께서 너희가 해야 할 말을 바로 그 자리에서 일러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먼저 엘리트 계급인 지도자들의 위선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표현해볼 수 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숨기고 감추는 일들은 결국 온 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아무리 그들이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도적질하고 죽이려 할지라도 진리를 따르는 너희는 그들의 누룩 같은 속임수와 위선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라. 진리를 따르는 너희를 그들이 죽이려고 한다면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 하지만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너희를 잘 아시고 귀하게 여기신다. 너희의 머리털까지 세시고 참새 한 마리도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 아니시더냐!
그러니 악한 지도자들이 너희를 회유하고 협박한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가 그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나님의 증인들 앞에서 너희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죽을지언정 그들 앞에서 나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으면 나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너희를 인정할 것이다.
너희를 박해하고 미워하고 죽이는 사람은 사실 나를 거역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목소리인 성령을 거역하는 사람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그들 앞에 끌려갈 때 그 재판정에서 할 말을 염려하지 말라. 너희의 양심에 할 말을 주시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가 바로 성령이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잘 보면 제자들이 박해를 받으며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될 것이고 마침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길이 바로 이런 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으리라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앞으로 당하게 될 일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3. 왜 이런 말씀을 하시나?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자유와 해방의 선언입니다. 병든 자와 갇힌 자, 눌린 자를 위한 치유와 회복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 출발점에서 선언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누가복음 4:18~19
가난한 사람, 묶인 사람, 눈먼 사람, 억눌린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셨고 부르셨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왜 가난합니까? 가진 자들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묶인 사람은 힘센 사람이 그를 묶었기 때문입니다. 눈먼 사람은 배운 사람들이 정보를 독점했거나 경쟁에서 뒤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지 못합니다. 억눌린 사람은 권력자들의 협박과 횡포로 숨을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들을 억압하는 권세자들과 맞서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한편으로는 약자들의 친구가 되시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권세자들을 대항하셨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화 있도다!”라고 외치면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뒷부분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는 권세를 가지고 탐심으로 자기 배를 배부르게 하려고 식사 때마다 손을 깨끗이 씻고 깨끗한 잔과 그릇으로 먹을 때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너희가 자신을 높이고 사람들에게 인사하라고 위력을 행사할 때 백성들은 자유를 잃어버리고 억눌려 지내고 있지 않느냐! 너희는 어려운 짐을 백성의 어깨에 지우고 너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구나! 너희는 정보를 독점하여 왜곡하고 백성들을 눈 멀게 하는구나! 너희는 선배들의 악행을 알고도 고치려 하지 않고 그것을 되풀이하는구나! 참 예언자와 사도들을 또 다시 죽이려느냐?”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백성들의 피와 땀을 빼앗아가는 특권층의 횡포를 몰아내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주식시장에서 소액투자자들을 개미라고 합니다. 수많은 개미군단이 정보를 독점한 거대자본가들에게 얼마나 쉽게 투자금을 잃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억울한 일을 당하여 억눌린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어 다시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세상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자주 권력자들이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거나 재판을 왜곡하고 있습니까! 이런 일들은 모두 은밀한 골방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감추어지고 숨겨집니다. 비밀문서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에도 눈 먼 자와 억눌린 자, 묶인 자와 가난한 자들의 한숨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고 부름 받은 이유를 분명히 아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제자들에게도 천국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어떤 세상입니까? 그 세상은 병든 자가 고침을 받으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복음이 전파되며, 억눌린 사람은 자유의 기지개를 켜고, 묶인 사람은 해방의 기쁨을 누리며, 눈 먼 사람은 다시 보게 되는 세상입니다.
이런 분명한 목적 때문에 예수님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고 빼앗고 가두고 왜곡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싸우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길을 가실 때 한 알의 밀알처럼 희생될 것도 아셨습니다. 하지만 그 밀알의 희생을 통해서 수많은 결실을 얻을 것도 확신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도 그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럴 때 제자들이 맞게 되는 고난이 이런 것이며 그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서야 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일깨워 주셨습니다.
4.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고 숨긴 것이 알려지게 되려면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을 때, 그 누룩은 위선(僞善)이나 외식(外飾)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휘파크러시(hypocrisy)라고 하는데 이 말은 본래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의 대사나 행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훌륭한 배우는 자기가 맡은 역할을 진짜처럼 실감나게 연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배우는 연기대상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럴듯한 구호와 홍보로 백성들을 선동할 때에도 감쪽같이 속아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백성들은 재산을 잃거나 자유를 잃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원수는 바로 권세를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의 싸움은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며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그들을 붙잡고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악한 통치자들은 누룩처럼 과장되고 거짓된 말로 백성들을 눈 멀게 하고 가두고 빼앗아가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한 행동을 포장하여 감추고 숨겨서 드러나지 않게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비밀 사업을 일급비밀로 밀봉하여 공개되지 않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모든 비밀이 드러나고 공개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누가복음 12:2~3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우리의 모든 일이 드러나고 스스로 한 일을 직접 말하게 될 것이라고 바울 사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로마서 14:10~12). 그 날은 최후의 심판의 날에 우리가 하나님의 법정에 서게 될 때입니다. 그 날에는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33년 전 1987년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 끝에 대학생을 질식하여 죽게 한 경찰들의 비밀과 그 일을 감추려고 했던 사람들의 은폐 조작 사건은 어떻게 드러나게 되었습니까? 고 박종철 열사를 고문하다 죽인 경찰들은 중앙대부속 용산병원의 내과전문의를 불렀습니다. 그 내과의사에게 경찰들은 박종철 군이 심장마비로 인한 쇼크사로 죽었다고 발표하라고 회유했습니다. 하지만 내과의사 오연상 씨는 기자들에게 고문치사의 가능성이 있다고 용기 있게 말했습니다. 그 후에 박종철 열사의 시신을 부검한 의사 황적준 씨는 부검감정서에 경찰들이 주장하는 쇼크사 대신에 질식사라고 적어냈습니다. 부검의 황적준 씨는 경찰의 회유와 압박 그리고 위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경찰들의 행적을 일기장에 낱낱이 기록해서 1년 후에 공개합니다. 그 결과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사건이 온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황적준 선생님을 취재한 기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에게 힘을 준 것은 아내와 형이었다.
황 박사는 “형님이 ‘사실대로 알리는 게 옳은 일이다’라고
격려해줬던 게 큰 힘이 됐다”며
“아내도 ‘정의의 편에 서서 감정서를 작성하겠다’는 내 말에
‘주님이 늘 당신 곁에 보호해주실 것’이라며
흔쾌히 동의했다”고 회고했다.
(연합뉴스 2007년 6월 3일자 기사)
1980년도에 일어난 사회정화운동이라는 누룩을 봅시다. 겉모양은 선하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당시의 권력자들은 국회의원 14명을 연행하고, 172개 주간지와 신문의 등록을 취소하고,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을 통제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어떻습니까?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간 2~3만명의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붙들려갔습니다. 거기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구타 등의 폭행에 시달리면서 513명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형제복지원이라 부르는 이곳의 건물에는 ‘부산시 부랑인 임시보호소’라는 간판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지옥과 같은 곳이었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합니다. 그곳을 운영한 원장 박인근 씨는 재판을 받았지만 감형되어 벌금 없이 2년 6개월의 형을 살았을 뿐입니다. 그는 1,000억원대의 재산을 가지고 호위호식 하다가 2016년 6월 27일에 사망했습니다.
명심보감 천명편에 장자(莊子)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최병길 장로님이 즐겨 암송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莊子曰(장자왈),
若人(약인)이 作不善(작불선)하여
得顯名者(득현명자)는 人雖不害(인수불해)나
天必戮之(천필륙지)니라.
장자가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악을 행하여서 세상에 이름을 내는 자는
비록 사람이 그를 해치지 않는다 해도
하늘이 반드시 그를 죽일 것이니라.
언제 악인들의 은밀한 악행이 드러나며 언제 하늘이 그를 죽입니까? 하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몸은 죽이나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증언을 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경찰의 부름을 받아 남영동 대공분실의 은밀한 장소에 가서 죽은 청년 박종철 씨의 시신을 보고 고문치사가 있었다고 용기를 내어 증언한 내과의사 오연상 씨는 훗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워낙 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어서
진실을 말하는 데 부담이 있었지만
어영부영 넘어가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상황을 확실하게 밝혀서
진술 번복이나 사건 은폐가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박종철군 사건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당시 공포심에 말을 못했거나 쇼크사라고 인정했다면
평생 마음에 짐을 안고 살았을 것이다.
내과의사 오연상 씨, 국과수 법의학자 황적준 선생님, 이런 분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6월 항쟁의 중요한 계기가 되어 민주화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역사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우리 교단에 박성배 목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총회의 실세로 있었습니다. 교단 총무와 총회장을 수년간 맡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악행을 범했습니다. 결국 고소를 당하고 재판을 거듭한 끝에 지난 2017년 11월 16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징역 4년 9개월의 원심확정형을 받았습니다.
한 교단의 총회장이 왜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받았습니까? 지난 2009년 시중은행에서 받은 대출금과 부동산 매매 대금 등 우리 교단의 재산 22억 3,300만원을 횡령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2012년 순총학원 소유 임차보증금 7억 6,100만원과 순복음대학원대학교 교비 1억 1,000만원을 횡령하여 카지노 도박자금으로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성배 목사는 복역 중에 기하성 교단의 연금을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이사회 승인 없이 83억 5,000만원을 불법 대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2018년 4월 3일 징역 4년이 추가되었습니다. 현재 기하성 교단의 목회자 연금 재단은 해체되었습니다. 기하성 교단 목회자들의 노후대책 중 하나가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지난 2008년 각산타운 202호를 경매로 매입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2011년 총회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2014년 10월에 많은 비용을 물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교단 총회장이 바로 박성배 목사였습니다(2008.5~2014.5). 생각해 보건대 새소망교회는 특별한 은총 속에 불 가운데서 다행히 건짐을 받은 것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이 일도 장로직을 파면한다는 협박을 이겨낸 이인성 장로님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감추어진 것이 언제 드러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용기를 내는 증인들에 의해서 드러납니다. 그 때 천필륙지(天必戮之)가 일어납니다. 하늘의 뜻을 순종하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실현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길이요, 예수님과 함께 그 나라를 상속할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5. 성령을 모독하지 말라
예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면 주님도 하나님의 증인들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시인한다(호몰로게오, homologeo)는 말은 같은 것을 말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부인한다(아르네오마이, arneomai)는 다른 것을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정신을 따르는 사람은 주님을 시인하는 사람이요,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라는 양심의 호소를 저버리고 반대의 것을 말하는 사람은 주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께서는 ‘성령 모독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2:10
인자 곧 예수님을 말로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는다는 말은 모르니까 그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 그는 예수님과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을 모르고 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죄를 용서 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령을 좇아 사역을 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몇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로마서 9:1
공동번역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움직이는 내 양심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해 줍니다.
바울은 성령을 좇아 사는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양심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면 양심을 움직이는 성령이 근심하실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에 대해서도 말한 바 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4:29~30
그러나 어떤 사람이 성령을 속이고 양심의 소리를 저버린다면 그 사람은 마침내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리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디모데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전서 1:19~20
무엇이 성령 훼방죄 또는 성령모독죄입니까? 그것은 명백합니다. 뻔히 틀린 줄 알면서도 계속 우기면서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는 죄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며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셨을 때, 그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유독 어떤 바리새인들은 그 일을 폄훼하여 귀신의 장난이라고 조롱합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마태복음 12:31).
간첩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증거를 조작하여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감옥살이하게 하는 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이런 죄는 용서 받지 못할 죄입니다.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 받지 못할 죄라고 예수께서 단언하셨습니다(마 12:32). 모독(冒瀆)이라는 말에서 모(冒)는 머리에 쓰는 두건으로 눈을 가렸다는 말입니다. 보고도 못 본 것처럼 사람의 명예를 더럽게 하는 것이 모독입니다. 그것은 양심을 인도하는 성령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할 말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2:11~12
어떤 사람은 양심을 인도하는 성령을 모독하고 죄를 짓습니다. 사람을 음해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법정에 끌려갔을 때에라도 성령이 양심을 인도하여 할 말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박종철 열사가 고문 받고 죽어가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지난 6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하셨습니다. 33년 전에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감춰지고 숨겨진 그 날의 일은 이제 온 천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행악자들은 처벌을 받고 행선자들은 보상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억눌리고 억울하고 슬픔에 눌려 살면서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형제복지원의 원한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입니까? 어떤 사회에서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인가에 따라서 그 사회의 하나님 나라 성숙도가 결정됩니다. 시민들이 주위에서 일어나는 억울한 일과 선행에 대해서 얼마나 공감하고 빠르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천국지수’(天國指數, The Heavenly Kingdom Index)는 결정됩니다.
지난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백인 경찰에 의해 질식사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영국에서는 300년 전에 노예무역으로 큰 돈을 벌어 사회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에드워드 콜스턴, Edward Colston, 1636~1721)의 동상을 넘어뜨려 강물에 빠뜨렸습니다. 이제 온 세계에서 억압받는 자들을 위하여 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호소가 메아리 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도를 바꾸고 문화를 바꾸면서 억눌린 자와 억울한 자를 풀어주려고 합니다. 그런 사회가 바로 하나님 나라 정신에 따라 운영되는 사회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반응이 없는 사회는 시민의식이 잠들어 있거나 죽은 사회입니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한참일 때 뉴욕의 버팔로에 있는 한 마을에서 열 여덟 살 고등학생(Antonio Gwynn Jr.)이 새벽 2시에 길거리에 나가서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열 시간 정도 길거리를 깔끔하게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아침에 거리를 청소하러 나왔을 때 이미 그 고등학생이 대부분 청소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 아름다운 소문이 나서 그 도시의 어떤 사람은 스포츠카를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보험회사는 1년간 자동차보험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는 대학입학과 함께 4년간 전액장학금을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선행에 대해서 지역사회가 이처럼 신속하게 반응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정의와 자비가 실현되는 세상입니다. 악인은 심판을 받으며 의인은 칭찬과 존경을 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고 죽음으로 위협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죽임과 함께 지옥에 던져 넣을 권세가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진실을 위해 용기를 내는 세상입니다. 그런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끝으로 박종철 씨의 부검을 담당했던 법의학자 황적준 선생님이 2007년에 기자의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소개하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사회가 올바른 쪽으로 변하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 할 것이 많아요.
당시 운동권에서 지금 정치인으로 변신한 인사들이
나라를 잘 이끌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가치와 윤리를 지키면서
각자 자기 위치에서 할 일을 정직하게 해 나간다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끝>
누가가 들려주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 19. 하나님 나라 상속자들에게 (1).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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