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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나슬루를 향해서
-라인홀드 메스너의 ‘검은 고독 흰 고독’을 읽고-
2020. 03. 백란주
초등학교 때였다. ‘짧은 글짓기’ 낱말이 주어지면 좋았다. 친구들이 인형놀이 하며 옷을 바꿔 입히듯 나는 앞뒤에 낱말을 더하고 빼는 것이 마냥 신났다. 어떤 단어는 브로치처럼 어떤 단어는 머플러처럼 그 느낌에 어울리는 수식어를 만나는 순간이 좋았던 것 같다. 주어진 낱말에 꾸밈이 더해져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는 느낌은 마치 무대에 오를 모델의 멋진 코디네이터가 되는 듯한 착각을 불렀다. 멋진 무대의 정점을 찍는 기분이었던 듯하다.
피날레를 끝낸 무대에서 받는 갈채처럼 담임선생님께서 친구들 앞에서 그 문장을 읽어주고 교실 뒤쪽 게시판 작품란에 내 글이 자리 잡을 때, 드러내지 못한 희열이 내 안에서는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첫 걸음을 내딛었다. 나도 모르는 어떤 이끌림의 봉우리를 향해서.
중학교를 진학해서 나는 여러 세르파들을 만났다. 무조건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선생님들, 그들은 나의 영원한 세르파였다. 국어선생님들은 내게 일류 세르파처럼 느껴졌다. 열여섯, 나는 그들이 제시하는 봉우리를 향하는 일이 그냥 시간가면 오를 수 있는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생각으로 시어를 만났고, 소설 속 주인공들을 그렸다. 무지가 주는 축복은 두려움이 제로가 되기도 한다.
수업을 마치면 쓰레기 소각장 위 언덕에서 만나는 하늘과 바다가 있었다. 하늘은 내가 뛰어 오르겠다하면 줄을 내려줄 것 같았다. 멀리로 보이는 바다는 마음에 따라 색감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언덕에서 하늘과 바다를 보며 혼잣말하듯 꿈을 꾸었다. 나만의 지붕, 봉우리를 그렸다.
고등학교, 시골아이에게 여고는 이방인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 많던 세르파선생님들은 이곳에 없었다. 내가 무얼 하는지, 어떤 것이 궁금한지 관심조차 없는 이 낯섦이 못 견디게 싫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입산이라 명했던 나만의 지붕에서 길을 잃었다. 요행을 바란 듯 나는 누군가가 안내를 받아야 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크레바스(Crevasse)가 눈에 띄면 사람이 피해서 갈 수 있다. 하지만 눈으로 덮여서 크레바스의 존재를 알 수 없는 ‘히든 크레바스’는 무서운 함정이 된다고 한다. 중학교 때 만났던 세르파 선생님들에게 익숙했던 나는 히든 크레바스를 만난 느낌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학을 요구했다. 그리고 중학교 세르파를 찾으러 가기도 했다. 뜻하지 않게 나의 이 공허함은 프로야구에 더 몰입하게 했다. 나는 전혀 다른 대륙에서 다른 봉우리를 향해서 즐기고 있었다. 그 또한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기에 지금까지 향하고자 했던 봉우리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십대 때 그렸던 나의 스무 살은 꽤 멋지고 근사할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기에 변명이 필요했고 위로가 필요했다.
초·중·고 12년을 함께 다닌 친구는 재수를 하겠다며 서울행을 택했다. 그간 공부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는 대입시험 답안지를 제출하면서 느꼈다.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 마음먹었던 것에 대한 진심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거절을 당했다. 신뢰를 져버린 것에 대한 책임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스무 살 첫 선택적 결정은 의지에 따름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생각에 따라야했다.
스무 살, 이도 저도 아닌 내 모습의 현재였다. 한계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던 시점이다. 자연은 오월이라고 한껏 부풀어 있었다. 눈에 보이는 신록이라는 색과 어울리지 않게 나의 마음색은 무채색이었다. 그러한 불만은 지리산으로 향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도 함께 지리산에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생각의 서열이 필요했다.
산으로 향하는 실루엣은 종의 서열이다. 한발 내딛는 걸음이 그러하듯 마음도 종의 서열이 지어져야한다. 횡의 형태를 갖춘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가는 삐끗하는 수밖에 없다.
중산리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지리산이 뿜어내는 연둣빛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침묵으로 종을 세웠다. 오르막은 오르막으로 평지는 평지로, 폭포를 만났을 때 짧은 감탄사 한 모금 정도는 토했던 것 같다. 느낌도 감정도 없이 무작정 천왕봉이 끝인 것처럼 걸었다. 천왕봉에 올랐다. 찰나, 끝을 표현할 수 없는 외마디 토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고사목. 지금까지 기억 속에서 가장 경이로운 나무로 기억된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깔려 있는 운무는 한 폭의 동양화였다.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는 무상의 세월을 말하는 고사목에게 나는 어리석게도 솟대를 향하듯 속마음을 토해버렸다. 말라버린 고사목이 내게 먼저 말을 건넸다고 지금도 나는 믿고 있다.
오월의 산장에서 나는 검은 고독과 마주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는 심란함으로 나의 스무 살이 처음으로 가여웠다. 아침 다시 천왕봉에 올랐다. 아니 고사목에게 답을 듣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은 나의 걸음을 방황하게 한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어설픈 고독마냥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굴렀다. 다행히 줄지어 가던 앞선 사람의 몸에 부딪혀 더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산에서는 모르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행운이 있다. 나를 막아주는 방패가 되었다. 무릎에 난 상처 중에는 지리산 지번도 있다.
가을, 한라산으로 갔다. 지리산과 달리 한라산은 끝없이 걷는 느낌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생각, 스스로 무언가에 대한 패배, 굴복 같은 느낌은 횡으로 내게 덮쳤다. 제주도 선배언니를 따라갔지만 언니는 사정이 생겨 못 가고 나만 산행을 했다. 나는 낯선 이들 속에서 섬이 되는 기분이 되었다. 나를 찾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지 모른다. 가끔씩 언니는 묻는다. 그때의 한라산은 왜 가고 싶었냐고.
세르파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를 하고 싶었던 자존심은 스스로 잠식되어버렸다.
결혼을 했고 엄마가 되었다. ‘전업주부’란 직업에 최선을 다했다. 아이는 많이 아팠고 나는 늘 종합병원 입원실이거나 진료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럼에도 그 또한 내겐 천직마냥 좋았다.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행복감은 매일매일 충전되는 신비로운 백지수표였다.
어느 날 잊고 있었던 한 세르파와 연락이 닿았다. 컴맹이었던 내게 메일이란 편지지 작성하는 법을 알려줬다. 손 편지로 전했던 안부는 어느 순간부터 메일이라는 신기한 소식통으로 전해져 왔다. 2004년 4월 28일부터 시작된 메일은 2016년 2월 24일, 휴지기를 갖고 있다.
30년 넘게 근무했던 교사시절을 마무리하고 40년 동안 공들여 가꾼 세상에서 하나뿐인 천지대학교 히말라야대학 에베레스트과, 2016년 3월 6일 개교 입학한다는 소식이 닿았다. 앞으로 40년 동안 혼자서 총장, 학장, 교수, 학생 역할을 다 할 것이라며 이 소임을 마친 후 자신의 제자에게 모든 것을 물려 줄 계획의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이 세르파는 산을 좋아하고 책을 사랑하고 산책을 즐겨한 사람이다. 그의 서재는 책의 무덤이 아니라 아름다운 영혼의 부활이라고 했다. 천국은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발밑에도 있다며 고개 숙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스마트폰이 점령한 후 메일이 아닌 문자로 소식이 닿는다. 여전히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산을 좋아하는 세르파다.
이렇게 항상 어딘가를 향해가고 있다는 것이 내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즉, 안정된 생활이라든가 사랑 그리고 사회적 인정 같은 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편한 길을 가지만 나는 나 스스로 택한 길과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p249
죽음을 생각할 때 비로소 세상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사후 세계가 있다는 것과 죽으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것을 동시에 생각한다. -p247
사람들은 대체로 스스로 체험하는데 흥미를 느끼지 않는 듯하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노력과 의지를 순수한 생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 세상을 알고자 그 속으로 뛰어드는 것, 수수께끼를 풀어보고자 도전하는 것 등과 같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지금 당장 필요나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식의 실체적인 일이어야만 한다. 현실적인 이득이 없는 순수한 사고, 순수한 노력, 순수한 지식 등과 같은 것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p130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등지고 혼자 오르는 게 아니다. 이렇게 여기 앉아 있으면 나는 산의 일부가 된다. 때문에 어떤 행동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미끄러져서도 안 되며 눈사태를 일으켜서도 안 되며 크레바스에 떨어져서도 안 된다. 나는 여기 쌓여 있는 눈과 바위와 구름의 감정을 함께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철학이 필요 없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죽음까지도 이해하게 되니까.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물론 지금은 혼자 있는 것도 두렵지 않다. 이 높은 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 준다. 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고독이 정녕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 날 그렇게도 슬프던 이별이 이제는 눈부신 자유를 뜻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p165
나의 세르파들이 생각났다. 그들과 교류에서 나는 스스로 크레바스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들이 가르쳐주는 경험에 무임승차하려했다. 나의 소심한 게으름과 마주 한다. 경험하지 않고도 내 것이 될 수 있으리라 착각했던 것 같다. 순수한 생의 기쁨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나는 몰랐다.
적당히 걸었던 나의 평지를 떠올렸다. 어떤 길이든 오르막과 내리막 굴곡이 있어야 길인 것을 나는 고속도로 하이패스 카드를 찾고자 했음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눈과 바위와 구름의 감정을 함께하지 못했다. 이제야 진짜 산을 향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안의 자물쇠를 찾았다. 아랍 아부다비에서 지내고 계시는 중3 담임선생님, 지리산 자락에서 아로니아를 키우고 계시는 중2 담임선생님, 퇴직 후 카톡으로 근황을 확인 시켜주시는 중1 담임선생님, 울산에서 정년을 앞두고 계시는 수학선생님, 퇴직 전 첫 발령지였던 중학교에 교장선생님으로 다시 오셨던 체육선생님…. 열넷, 열다섯, 열여섯의 피지 않은 꽃봉오리로 기억하고 계신다. 개화의 시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 아직 꽃봉오리여도 괜찮은 듯 나를 이끌어 주신다. 그들은 열쇠였다.
‘선생님’이란 세르파는 언제나 내게 14좌봉이다. 그들로 인해 나또한 생명이 살아나고 나의 자율성도 되찾으면서 지금까지 검은색의 고독이 비로소 흰 고독으로 바뀌었다는 메스너를 닮아간다.
봉우리를 향해 나의 속도대로 이제 걸을 수 있을 듯하다. 세르파들의 흰 고독이 무엇인지 나도 알아가는 시점으로 향한다. 산스크리스트어로 ‘영혼의 산’이라는 뜻의 마나술루봉으로 향하고자 한다. 나의 영혼을 일깨워 준 세르파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으며 오늘도 나는 귀한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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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집니다. 글도 마음도...진짜 멋지다..글의 감동...첫 문단부터 빠져듭니다..이 글 정말 좋아요...아..좋다...
검은고독 흰 고독 저자의 글보다 쌤 글이 더 좋네요..읽다가 저는 중간에 덮었거든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