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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학사랑 글짱들 원문보기 글쓴이: 김용복
철 영 현 기 인 구 상 수 미 자 박달제 부 인 설 란 최선생 연 사A 연 사B 명 화 무 희 강창호 |
제1장
만화가게 안이다. 무대 뒤쪽으로 만화책이 가득하고 새로 나온 만화를 소개하는 포스타가 현란하게 붙어있다. 무대 중앙쯤에 형식적인 듯한 퇴색된 커튼이 쳐져있다. 그 좌측은 낡은 책상, 그 책상을 중심으로 의자 몇 개와 나무로 만든 장의자가 벽 아래로 놓여있다. 좌측은 비상구로 보이는 듯한 문, 우측은 출입문이다. 막이 열리면 철영, 현기가 만화가게 주인인 박달제와 고스톱을 치고 있다.
철 영 : 가만!(일어나 춤을 추며) 짠짜자 짠자, 짠짜자 짠짜-아하-신라에 밤이여- 지그지그 진짜, 지그지그 진짜.
박달제 : 갑자기 왜 그래? 어떻게 된 거 아냐?
철 영 : (더 크게, 역시 춤을 추며)거울도 안보는 여자, 화투도 안보는 남자 (엉덩 이를 흔들며) 우우-우우....
현 기 : 지랄하고 자빠졌네.
박달제 : (판을 살피며) 응? 이제 보니 3점 났다고 리사이틀 하는구만.
현 기 : 빨리 을퍼, 스톱인지 곤지?
철 영 : (입맛을 여러번 다시다가) 오라이!
박달제 : 강아지 못난 것 고무신짝부터 물고 다닌다더니 꼭 그 짝이네. 아, 고면 고 지(철영이 흉내 내며) 오라이가 뭐여?
현 기 : 아저씨 비상사태예요. 잘 내셔야 돼요.
박달제 : 중요한 순간에 패가 꼬이네. (화투장을 던지며) 에라 모르겠다.
현 기 : (소리를 버럭지르며) 그것을 풀면 어떻게 해요. 청단인데.
박달제 :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해.
현 기 : 오늘 이웃 잘못 만나 큰 손해 보네.(사이) 이거 주면 이거고, 요거 주면 요 거고,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정말 미치겠네.
이때 설란, 명화 등장한다.
설 란 : 아저씨! 주인아저씨!
명 화 : (대답이 없자) 미쳐서 안 들리나봐.
설란 • 명화 만화책을 찾아 우측편 의자에 앉아 만화를 보기 시작한다.
박달제 : 뭘 꾸물거리고 있어. 작은 것 풀어야지.
철 영 : 화투치는 사람 어디 갔니?
현 기 : 에라 나도 모르겠다.(흑싸리 껍데기를 내 던진다.)
박달제 : (큰소리로) 이 사람아 이 중요한 순간에 흑싸리 껍데기를 풀면 어찌해! 고도리 하잖아!
현 기 : 오광보담 양반이죠.
철 영 : (노래하며) 돌아 주세요 네-.
현 기 : 쓰리고 아냐?
박달제 : 각설하고, 심하다 심해. 우리끼린데 쓰리고가 워여!
철 영 : 양박으로 모시겠습니다.
박달제 : 오늘 만화가게에서 번 돈 다 나가네.
현 기 : 저도 이만 원 이상 나갔어요.
박달제 : 각설하고, 고스톱을 어떤 놈이 만들었는지 몰라도 아이스타일보다 천재여!
철 영 : (웃으며) 아이스타일이 아니고 아인스타인요.
박달제 : 아이스크림이고 뭐고 간에 화투장 만든 놈도 혈압 꽤나 높았을 거여.
이때 은석이와 인구가 가방을 메고 등장한다.
인 구 : (두 손을 높이 들고) 이제 살았노라! 해방이 되었노라! 자유를 얻었노라!
은 석 : 오! 기쁨과 환희와 안락함이 있는 곳 만화방!
박달제 : 너도 자율학습 몇 시간 못 참아 뛰쳐나왔구나?
제발 만화 보는 열성처럼 공부 좀 하지 그래?
인 구 : 그렇잖아도 우리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있걸랑요. (이 엄만 욕심이 아냐. 제발 만화책 보는 만큼만 공부하면 매일 업어 주고......
박달제 : (OL) 안아주고.....
현 기 : (OL) 닦아주고......
인 구 : (OL) 장가까지 보내 주겠다.
철 영 : 이 새낀 입만 벌렸다하면 꼭 여자 얘기 아니면 장가타령이더라.
인 구 : 우리 시절에 나이 먹어가는 건 곧 결혼하기 위해서 아니겠니?
박달제 : 결혼? 말도 꺼내지 말아요. 결혼이란 말예요 새장이나 감옥과도 같은 거에 요.
인 구 : 난, 결혼이 지옥이라도 악착같이 갈 거예요.
박달제 : 난, 결혼한다는 사람 있으면 악착같이 말릴 거예요.
현 기 : 야, 너희들 수업 빼먹고 여기 있다가 걸리면 어떻게 하려구 그래.
인 구 : 너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 모르냐? 여긴 학교와 가까이 있어서 선생님들 이 오지 않아요.
철 영 : 맞아, 내가 여기를 백 번은 넘게 왔어도 단 한 번도 안 걸렸거든.
현 기 : 꼬리가 길면 밟힐 텐데, 새로 오신 수학선생 별명이 올드미스 백여우에다 형사콜롬보라던데.
철 영 : 올드미스백여우든 콜럼버스든 내말을 믿으라니까, 아저씨 ‘드래곤볼 18탄’ 나왔어요?
박달제 : 아직 안 나왔는데.
인 구 : 그럼 ‘씨티 헌터 24탄’ 나왔어요?
박달제 : 그것도 며칠 있어야 나와.
현 기 : 그럼 ‘김용복 작 후보를 사랑해요’ 는 나왔어요?
박달제 : 야 너희들은 꼭 찾아도 없는 것만 골라 찾드라. 그나저나 나희들 공부나 마치고 오지 그래?
철 영 : 내버려 두세요. 오죽 답답하면 뛰쳐나왔겠어요.
박달제 : 아무리 답답해도 지금은 공부시간이지 만화 볼 시간이 아니잖아.
인 구 : 또 시작이시네. 아저씬 정말 맘에 들다 안 들다 한단 말씀예요.
박달제 : 너희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철 영 : (뮤지컬) 아저씬 만화방 주인
현 기 : (뮤지컬) 아냐! 고스톱 동기생야
인 구 : (뮤지컬) 아냐! 쐬주 파트너야
일 동 : (뮤지컬) 아냐! 우리의 친구야. 독립투사 같은 말씀을 하시는 아저씨 정체 는 뭐죠?
박달제 : (뮤지컬) 난 보통사람, 만화방 주인일 뿐이야.
일 동 : (노래와 율동으로)맞아! 맞아! 맞아!.....
아저씨 보통사람 만화방 주인일 뿐이야?
박달제 : 각설하고!
현 기 : 그놈의 각설하고는 빠질 때가 없네.
철 영 : 한 번만 더 하면 꼭 백 번째다.
박달제 : 각설하고(의자 위로 올라가) 내 정체가 무엇이냐?
철 영 : 또 시작이다 시의원 얘기
박달제 : 여기선 박달제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하는 것은 안으론 만화방 주인으로서, 밖으론 시의원으로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현 기 : 지금 국민교육헌장 낭독 시간이냐?
인 구 : 지금 시대에 국민교육 헌장이 어디 있어. 그건 배고파 굶주리던 시절에 확 실한 국가관을 심어주기 위해 국가에서 제정해 낭송하게 했던 거지. 어찌 됐거나 연설 하나는 끝내준다.
박달제 : 여러분! 여기선 기호 일번 보통사람 박달제를 잘 부탁합니다.
일 동 : (와 하면서 박수를 친다.)
철 영 : 어이 여학생들.
설 란 : 저희들요?
철 영 : 여기에 또 다른 여학생들이 있나?
명 화 : 용건이 뭐죠?
철 영 : 무슨 놈의 만화책을 열심히 본다고 박수도 안치는 거야?
설 란 : 별꼴이 반쪽이네. 독서하는 것도 죈가?
박달제 : 자자. 조용히 해요 아직 정견발표가 안 끝났어요.
철 영 : 아저씨 이번에 진짜 시의원에 한 번 출마하시는 거예요?
박달제 : 공천까지는 문제 없는데 돈 때문에.
현 기 : 요즈음. 누가 돈 쓴다고 찍어 주나요.
인 구 : 난 정치하는 사람들한테 실망해서 정치 얘기만 나오면 밥맛까지 떨어지더 라.
현 기 : 나도 그래. 매일 서로 싸움이나 하고, 서민이야 죽든 살든 우리 청소년들이 병들어 가고 있든 말든 자기네들 편한대로 정치를 하고 있으니.
철 영 : 아저씨! 옛날엔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이 당선됐지만 요즈음은요 때묻지 않 은 사람이 당선되는 시대라구요.
박달제 : (힘차게) 맞습니다. 여기선 기호 일번 박달제는 매일같이 목욕을 하기 때 문에 아주 신선하고 깨끗합니다.
일동 웃고 박수치며 환호한다.
박달제 : 그럼 참다운 민주주의란 무엇이냐?
설 란 : (명화를 때리며 크게 웃는다) 호호홋......
일동 시선이 모아진다.
명 화 : 계집애. 웃을려면 웃을 것이지 너는 남을 꼭 때리며 웃더라.
설 란 : (역시 명화를 때리며) 호호홋......
명 화 : 원 계집애두 버릇 한번 고약하네.
설 란 : 얘, 이것 봐라! 목욕탕 안에서 불이 난 거있지.
명 화 : (간드러지게 웃으며 역시 설란이를 때린다) 뭐? 목욕탕 안에서 불? 아주 흥미 있는 스토리인데?
박달제 : (연설투로) 목욕탕 안에서 갑자기 불이 났습니다. 목욕탕 안에서 신나게 목욕을 하던 남자와 여자들은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나만 살겠다고 중 요한 부분만을 가린 채 밖으로 뛰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무서 운 불길을 헤치고 뛰어드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목욕탕 주인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목욕탕 주인처럼 주인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듯이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길만이 학생의 본분이자 곧 주인정신인 것입니다.
현 기 : 아저씨? 연설도 좋지만 아주머니 들어오시면 어떡하시려고 그러세요?
쳘 영 : 별수 있냐? 지난번처럼 사모님한테(비는 시늉하며) 싹싹 비는 수밖에......
박달제 : (일동 웃자 큰소리로) 오늘부터 경우는 달라요! 여기선 기호 1번 박달제 는......
비상문이 열리며 박씨부인 들어와 금고를 열어본다. 얼굴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철영이가 눈치를 채고 박달제에게 눈짓을 하지만 박달제는 연설에만 열중이다.
박달제 :앞으로 우리 마누라가 과거처럼 버릇없이 굴면 절대로 용서 못해요! 왜 냐? 여자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자가 어찌 시정의 살림을 보살필 수가 있겠습니까? (반응이 없자) 이 사람들아 왜 박수를 안 치는가? 중요 한 대목에? (전혀 반응이 없자 약간 당황하여 의자에서 내려와 관객을 향 해) 이 친구들은 아직 투표권이 없어서 박수칠 줄 모르는 모양입니다. 현 명하신 유권자 여러분께서 이 후보를 사랑하신다면 힘찬 박수를 보내주십 시오. (박수 소리가 나자) 감사 합니다. (다시 의자 위로 올라가) 제가 이번 에 시의원으로 당선된다면.
부 인 : (탁자를 치며) 시의원 좋아하시네.
박달제 :(의자에서 내려와 인사를 하며) 언제 오셨습니까? 부인 나리.
부 인 : 어떻게 된 거에요? 오늘 수입은?
박달제 : 저......
부 인 : 또 만화책 구입하는데 썼다고 거짓말은 안하겠죠?
박달제 : 그 그게 아니라.
부 인 : 이번엔 고아원이에요? 양노원이에요?
박달제 : 아 글쎄......글쎄라니까.
부 인 : 아이구 내가 미친다니까. 주제파악을 할 줄 알아야지.
철 영 : (영문을 몰라) 아주머니 죄송해요. 제가 따먹었어요. 아저씬 잘못이 없어 요.
현 기 : 맞아요, 저희들이 딱 한번만 하자고 졸랐어요.
부 인 : 뭘 따먹고, 뭘 한 번만 해? (날카롭게) 당신 이리좀 들어와 봐요! (비상문 을 열고 나간다.)
철 영 : 아저씨 죄송해요. 괜히 저희들 때문에 (돈을 내밀며) 자 돈 여기 있어요.
박달제 : 아냐 이 사람아. (거절하는 척 돈을 받아 넣는다)
현 기 : 아저씨 힘을 내세요. 우리는 후보를 사랑해요. 박달제 후보를요.
철 영 : 아저씨 질 것 같으면 우리 아버지처럼 폭력을 사용해요.
인 구 :폭력은 비신사적이니까요. (사이) 물어뜯으세요.
박달제 : 한 번 믿어보세요. (비상문으로 나간다.)
인 구 : 야 아저씨 승률 있을까?
현 기 : 큰소리 치고 들어갔으니까 뭔가 있겠지.
철 영 : 누구 상수한테 연락받은 사람 있냐?
인 구 : 몸이 아프다고 일주일째 안 나타나고 있잖아.
철 영 : 그래도 학교에는 나왔잖아. 보충수업 자율학습에만 빠지고 학교에서도 우리 들 슬슬 피하는 눈치고
현 기 : 아무래도 우릴 클럽에서 이탈할 것 같아.
인 구 : 나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 상수 행동에서
철 영 : 오늘도 그 디스코텍에 나타나지 않으면 집으로 쳐들어가는 수밖에.
현 기 : 너 디스코텍에서 영자 만나기로 했지?
인 구 : 오늘밤 어떤 놈은 기분내고 우리는 악세사리 노릇만 하겠구나.
현 기 : 그러니까 나처럼 여자관리를 잘 하랬잖아.
인 구 : 흥미 없어. 돈 떨어지면 떨어지는 계집앤.
철 영 : 넌 몇 번이나 강조해야 알아듣겠냐? 투자와 생산은 경영에 첫 번째 요소이 자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
인 구 : 계집애 만나는 것도 경영이냐?
인구, 현기 웃는다.
철 영 : 청춘사업도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대한 경영이라구(설란, 명화에게)안그 래 학생?
인 구 : 주민등록표에 잉크도 안 마른 애들한테 물어보면 인생의 해답이 나 오겠 냐?
설 란 : 모욕적인 발언 삼갈 수 없어요? 이래봬도 중3이라구요.
인 구 : 그런데 이렇게 작아?
명 화 : 걱정도 팔자시네. 작아도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다 들어가서 생활 하는데 조금도 불편한 게 없으니까 신경 끄세요.
현 기 : (놀라며) 말 하는 것 보니까 우리보다 한 수 위같다.
인 구 : 한수 위가 아니라 백년 묵은 여우같다.
명 화 : 지금 뭐라고 했어요?
인 구 : 응, 디스코장에 가면 백년 묵은 체중이 내려갈 것 같다고 했어.
이때 무대 뒤에서 부인의 고함소리와 함께 살림 부서지는 소리 들린다.
부 인 : (소리만) 나가! 나가란 말예요!
박달제 :(소리만) 사랑하는 당신을 두고 어디로 나가란 말예요!
일동 입을 크게 벌릴 때 얌전된다.
제2장
막이 오르면 철영의 응접실이다. 무대 중앙에 대형 텔레비전이 놓여 있다.
화면이 실루엣으로 보여 이채롭다. 우측 벽쪽으로 현대감각을 살린 출입문이 있고 기다란 소파와 탁자가 놓여 있다. 상수는 비스듬이 소파에 걸터앉아 있다.
상 수 :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심심하잖아. 텔레비나 볼까? (상수 다가가 텔레비전 을 튼다. 가수, 군중과 함께 나와 율동을 하며 노래한다.)
가수들 : (빵, 빵. 하며 나란히 선다.)
진빵을 드립니다. 여러분께 드립니다. 앙꼬 없는 진빵을 여러분께 드립니다. 따끈따끈한 찐빵을 여러분께 드립니다.(율동과 함께 음악이 나온다)
군중A : 찐빵이라면 역시 앙꼬 없는 찐빵이 맛이 있습니다.
군중B : 값은?
일 동 : 백 원!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일동 율동으로 퇴장한다.)
상 수 : 아니 벌써 열시잖아? (초인종을 소리 두세 번 울린다.)
(반갑게) 엄마야? (소리가 없자) 아빠야?
(잠시 후에 어깨에 가방을 걸치고 힘없이 등장하는 철영)
철 영 : (신경질 적으로) 또 너 혼자냐?
상 수 : (고개만 끄덕인다.)
철 영 : 오늘 저녁도 수퍼마켓이니?
상 수 : (메모지를 보며) 형! 오늘은 어제보다 삼백 원어치 더 적혀 있던데...
철 영 : (종이를 나꿔채며) 어디 봐! (읽는다) 빵 두 개, 우유 한 병, 사과 한 개, 콜라 한병......?
상 수 : 형은 참 좋겠다. 나보다 콜라 한 병 더 들어 있으니......(갑자기 생각이라도 난듯 바지에서 종이를 꺼내며) 참 이거 탁자 밑에 떨어져 있던데. (하고 종이를 건네준다.)
철 영 : (어머니 흉내를 낸 후 읽는다.) 사랑하는 내 아들 종팔아 미안하다. 어쩜 오늘까지 집에 못 들어 갈 것 같구나. 모임 때문에...헤헤헤... 콜라 하나 더 생각했다.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공부나 열심히 하고 있거라. (종이 를 찢으며) 결론은 오늘도 못 들어오신다는 거 아냐? 흥! 우리 어머니 살 림 하나는 끝내주게 하는군.
상 수 : 우리 반에도 우리집처럼 수퍼마켓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이 많다.
철 영 : 그런 집은 우리집처럼 다 된 집구석이야.
상 수 : 형! 그게 무슨 뜻이야?
철 영 : 너두 이제 초등학교 삼학년쯤 됐으면 뭔가 생각할 줄 알아야 돼! 우리 아 버지 어머니처럼 사업이다. 모임이다 뭐니뭐니하며 우리에겐 관심도 쓰지 않고 팽개친 채, 자기들 기분만 내고 다니니. 우리는 길을 잃은 미아들이 야. 아니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란 말야!
상 수 : (손가락을 헤아리며) 형 그러고 보니까. 아빠를 안 본지가 구일, 엄마를 본 지가 이틀이나 됐어. 다 팽개치고 싶다. 나는 외치고 싶다. 죽음 아니면 자 유를 달라!
텔레비전군중 : (박수치며) 옳소! 옳소! (나온다)
상 수 : 형! 저 텔레비전에서도 우리랑 똑같이 “옳소! 옳소!” 하는데?
철 영 : 그런걸 보고 우연의 일치라고 하는 거야.
상 수 : 아니, 웅변대회 잖아?
텔레비전 속의 연사A : 이 자리에 모이신 청소년 여러분! 그리고 만장하신 여러분! 여기 선 이 연사는 끓어오르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 주변에서 가정을 소홀히 하시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다면 이 속절없는 어른 들부터 선도하자고 이 연사는 여러분의 가슴을 향하여 힘차게 외칩니다.
상 수 : 옳소! 옳소! (박수친다.)
텔레비전 속릐 사회 : 지금까지 충남대표인 EXPO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전 반전연사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연제의 웅변이었습니다. 다음 연사는 서울대표의 차례입니다. (연사B 청중에게 인사한다.)
텔레비전 속의 연사B : 여러분! (사이) 여러분! (크게) 여러분!
상 수 :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어.
철 영 : 니가?
상 수 : “아, 아! 마이크 시험중! (상수 텔레비전 흉내를 내며 앞으로 나온다. 청중 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하자 철영은 관객을 향해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유 도한다.)
상 수 :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발을 힘껏 구른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 까? 우리 엄마처럼 저녁을 수퍼마켓에서 먹으라고 하시는 엄마는 안 계신 지요?
철 영 : (박수치며) 옳소! 좋은 지적이야!
상 수 : (철영을 가르키며) 또 우리 형처럼 술먹고, 담배피고 학교도 잘 다니지 않 는 청소년은 없는지요?
철 영 : (놀라며) 아니, 이 새끼가?
상 수 : 우리 형 같은 문제 청소년들은 하루 빨리 마음을 고쳐먹고 내일을 위한 새 주인공이 되라고 이 꼬마 연사는 목이 터지도록 외칩니다.
텔레비전군중 : (박수치며) 옳소! 옳소!
철 영 : 아니 이게 정말 미쳤나? (엉덩이를 힘껏 차며)
상 수 : (엉덩이를 만지며) 진짜 아프잖아?
연사B : 여러분 폭력처럼 야비한 것은 없습니다. 어찌 나약한 동생에게 폭력을 사 용한단 말입니까?
상 수 : 옳소!
철 영 : 아니? 도대체 이놈의 웅변대회가 어느 놈을 규탄하는지 알 수 없군, 야! 안 되겠다. 더 듣다간 개망신 당하겠어. 텔레비 꺼!
상 수 : 형! 난 웅변이 프로야구보다 더 좋단 말이야.
철 영 : (큰소리로) 안 꺼?
상 수 : (기에 눌려) 알았어.
(상수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가 텔레비전을 끈다.)
철 영 : 야, 텔레비 다시 켜봐!
상 수 : (신경질적으로) 또?
철 영 : 난 저 친구만 나오면 밥맛이 떨어지더라.
상 수 : 언제는 제일 좋다구 하구선.
(상수 마지못하여 텔레비를 켠다. 가수가 기타를 들고 푸른 젊음 노래를 부른다.
푸 른 젊 음
하늘이 그 아무리 아름다워도
우리의 마음속과 비할 수 있나
파아란 저 바닷가 넓다 하지만
우리의 이상과는 견줄 수 없네
젊음에 가득찬 사람들이여.
희망에 지성에 부푼 꿈으로
다가올 미래에 나래를 펴고
영광된 우리의 내일을 갖자. 내일을 갖자
상 수 : 저 누나 노래 하나는 끝내주게 잘해.
철 영 : 저게 잘해......텔레비 꺼!
상 수 : 또 꺼? 난 더 보고 싶은데.
철 영 : 네 방에 들어가 공부나 해!
상 수 : (하품을 하며) 갑자기 졸리는데.
철 영 : 저건 꼭 공부소리만 하면 졸린다고 하데......
상 수 : 형은 뭐 안 그랬어? (사이) 내가 모를 줄 알구 또 비디오 보려고 그러지?
철 영 : (약간 당황하며) 거 귀신이네.
상 수 : 비디오 보는 일 말고 다른 일이 있어야 귀신이 안 되지.
오늘 보는 비디오 또 그런 거지?
철 영 : 또 그런 거라니?
상 수 : 야리꼬리 한 거.
철 영 : 야리꼬리 한 거?
상 수 : 음큼하게 시침 떼긴 (크게) 옷 벗고 뽀뽀하는 비디오 난 그런 거 재미없어. 징그러워 싫어.
철 영 : (주위를 살피며) 그런 소리 누가 들으면 어떡할려고 큰 소리로 말해.
상 수 : 작은 소리로 말해두 그런 것은 잘 알아듣게 돼있어. (관객에게) 들었죠? (관객쪽을 가리키며)
저 학생도 우리 형처럼 공부 못하게 생겼어. 비디오 좋아하는 것 보니까.
철 영 : 뭘 알아들었다는 거야?
상 수 : 사랑이야기는 아주 작게 얘기해도 신기하게 알아듣게 돼있어. (관객에게) 그렇죠? 저 학생도 끼 있는 것 보니까 공부 못하게 생겼어. 잠깐! 불량 비 디오는 청소년을 병들게 하고 인생을 망친다. 저는 여러분에게 선택된 사 람입니다. 비디오를 볼까요? 말까요? 그러므로 나는 비디오를 보지 않고 잠이나 자야겠다. (퇴장)
철 영 : 이제 마음 놓고 비디오를 볼 수 있겠구나.
이때 밖에서 초인종 소리 크게 3번 울리자 철영 재빨리 문을 연다.
인구 현관문 안으로 들어선다.
철 영 : 야, 오늘 학교 기류가 어땠니?
인 구 : 북동풍이었다. 북동풍.
철 영 : 또 그 뻑거지가 씹대?
인 구 : 아직도 대한도 아닌데 춥더라 춰! 그나저나 꽉 찼다더라......
철 영 : 그렇게 위험수위니?
인 구 : 보통 심각한 게 아니더라. (목을 만지며) 간당 간당해.
철 영 : 너 정말 학교는 갔었니?
인 구 : 야! 너 그런 서운한 소리 하지마라 이래봬도 꼬박 아홉 시간을 착실하게 공부하고 왔다. 도시락도 두 개나 까먹었으면서 말야.
철 영 : 야. 너 참 대견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대전바닥에도 공자님한분이 탄생되겠는데?
인 구 : 너 농담하고 있는 걸 보니 뱃장 한 번 좋다. 그러나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 절과는 다르다는 걸 명심해라. (변사조로) 왜 형님이 이 밤중에 허겁지겁 동생에게 급히 달려오지 않으면 안 될 까닭은 무엇인가?
철 영 : 야! 너 연극구경 몇 번 다니더니만 연기 솜씨가 제법인데?
인 구 : (봉투 하나를 꺼내며) 이 봉투 안에 들어 있는 사연은 무엇이었더란 말이 냐! 얏 카드를 받아랏!(철영에게 카드를 던진다.
철 영 : (카드를 받으며) 받았다. 진작 그렇게 고분고분 나올 것이지 처음부터 겁을 주긴... 이 카드 주인공이 지난번 빵집에서 만난 영자냐? 아니면 디스코 홀 에서 만난 숙자? (말을 빨리 한다.) 아니면 을순이, 애리, 숙희, 달자, 정희, 순자, 진아, 공순이 아냐?
인 구 : (철영이 여자 이름을 말할 때마다 손가락을 센 후 놀란 기색으로) 와! 열이네요 열?
철 영 : 으응? 이제야 알았다. 저 변동에 사는 변숙이지?
인 구 : 열 하나!
철 영 : 메주처럼 생긴 게 벌써부터 성급하긴, 크리스마스도 아직 멀었는데 벌써 카 드는...
인 구 : 착각에는 국경이 없다더라. 그나저나 실망 줘서 미안하다. 미안해 변숙이 카드가 과연 옐로우 카드다.
철 영 : 옐로우 카드?!
인 구 : 너 축구 경기도 못 봤냐? 경기를 거칠게 하는 선수에게 말도 필요 없이 착 하고 내미는 카드.
철 영 : (약간 심각해지며) 야. 더 이상 못 참겠다. 땔감 하나만 줘.인 구 : 담배? 학생이 무슨 놈의 담배냐?
철 영 : 농담이 아냐 임마! 속이 답답해서 그래. 이놈의 속이......
(가슴을 쓰다듬으며)
인 구 : 너 주특기 있잖아? 지나가는 애들 붙잡고 부수입 잡기 담배서리하는 거.
철 영 : 너 끝까지 모욕하기냐? 이 많은 청소년들 앞에서 내 족보를 밝혀? 날 개망 신 주려고 작정했냐? 더구나 (관객석 어느곳을 가리키며) 요 앞에 셋째줄 에 앉은 미인이신 학생이 나에게 지나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데 말야.
인 구 : 정말 오늘부터 달라지려고 했는데...옆에서 살살 바람을 넣으니까, 또 흔들 리네 흔들려.
철 영 : 작심삼일이란 말 모르냐?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해결이나 하라구.
인 구 : 나 중심잡고 있다. 내가 이런 소릴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마라. 변심했으니, 배신자니 하고 말야. (사이) 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공부좀 해야겠어.
철 영 : 야아! 이히히...(재주를 넘고 나서) 축하한다. 너같은 꼴통, 아니 썩구썩어 냄새나는 네 작은골이 오염되지 않았다니 놀랍다? 기적을 창조했어! 언제 부터 그렇게 정화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냐? 하기야 너도 머리 좋은 놈이니 까.
인 구 : (관심없이) 난 며칠동안 오늘에 사느냐 아니면 내일에 사느냐, 이 두 단어 의 선택을 놓고 무척 고심했어.
철 영 : 고심? 하하...무슨 심사형 같다. 그래 최종까지 올라온 두 작품 오늘과 내 일, 방황을 주제로 한 오늘이냐, 정착을 주제로 한 내일이냐를 놓고 정덕산 심사위원께서 당선작을 어느 것으로 뽑을 것인가 고심하셨다 이거지?
인 구 : 잘 헤아리는군.
철 영 : 그래 당선작은?
인 구 : (사이) 정착이었다.
철 영 : (감정을 억제하며) 결국 내가 택한 방황은 유죄가 된 셈이고, 네가 택한 정 착은 무죄가 된 셈이군(냉정하게) 그러나 유죄와 무죄는 우리 세계에선 분 리 될 수 없어! 아니, 오히려 유죄보단 무죄가 우리 세계에선 떳떳하지 못 하다는 것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인 구 : 종팔아!
철 영 : 기어코 우리 클럽에서 떠나겠다 이거지?
인 구 : 저어... 그게 아니라-.......
철 영 : 닥쳐! 그렇잖아도 요즘 네 행동이 수상쩍다 싶었는데 역시 내 예감이 빗나 가진 않았군. 그러고 보니 네 행동이 최근 들어 미심쩍은 게 많았어. 결석 하지도 않고 학교에 잘 나갔으면서도 안 나간 척, 포악 하지도 못하면서, 포악한 척 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치밀한 계획으로 철저히 위장해가며 우 리의 눈을 속여 왔던 거야!
인 구 : 그런 뜻이 아냐...
철 영 : 아무튼, 내일 그 지하실에서 모두 모이기로 했으니까 알아서 행동해. 네가 참여하고 안하고는 자유니까, 하지만, 분명히 알아둬야 해. 규칙을 어겼을 경우 어떤 보복이 가해지는가를......
인 구 : 어떠한 보복도 달게 받겠어. 네 마음대로 해...
철 영 : 너 오늘 아홉 시간 수업하고 오더니 어떻게 된 거 아냐? (멱살을 잡으며) 파악 좀 하자. 너 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거니, 순화교육을 받은 거니?
인 구 : 내 충혈 된 눈을 봐, 나 삼일동안 잠 한숨 못 잤어.
철 영 : 요즘 입시공부 하는 놈치고 편안히 잠자는 놈 봤냐?
인 구 : 입시 얘기가 아냐. 이렇게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밤샘하면서 입시공부 하 는 게 오히려 행복할 테니까...
철 영 : 무슨 뜻이지?
인 구 : 나 혼자의 희생만으로 해결될 일이야. 여기서 얘기해봤자 서로 입장만 난처 하고 부답감만 과중시킬 뿐야.
철 영 : 너 혼자만의 희생을 언제 누가 강요했지?
인 구 : 침묵은 금이라고 했어. 구태여 말을 해서 은이 되고 싶진 않아.
철 영 : 갑자기 금과 은의 논리를 주장하여 무엇을 얻겠다는 게지.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것을 자꾸 합리화 시켜서 서투른 괴변술로 적당히 치료하여 부패된 미끼를 던져 우리 대열에서 떠나려는 너의 고등수법을 모를 줄 알아?
인 구 : 그런 착각으로 비약해 계산해 왔다면 침묵속에 희생해온 나는...
철 영 : (말을 빨리 받아) 그래서, 침묵도 때에 따라 은이 될 수 있다는 논리지, 그 러니까 침묵은 현대인에게 패배만을 가져오는 낙후적인 요소를 지닌 사치 적인 단어로 통용될 때가 많아. 너도 침묵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장본 인이라면 말해봐!
인 구 : 너도 알겠지만, 아니, 관두겠어.
철 영 : 수업료 얘기지? 더럽고 치사한 (사이)...
클럽애들 모두가 수업료 다 탕진한 걸 안 네가 이제 와서...
인 구 : 가정 환경이 좋은 너희들과 합세한 내가 큰 잘못이었어. 아니 애당초 과욕 을 하지 않아야 했어. 내 처지에선 그게 현명했어. 어머니! 어머니! (하고 뛰쳐나간다.)
철 영 : 상수야! 야 어딜 가는 거야?
-암 전-
제3장
디스코장이다. 막이 열리면 중앙에 있는 대형화면에 무희가 나와 디스코를 추고 있다.
현 기 : 야! 여기 오니까 살 것 같다. 이 신나는 음악, 이 황홀한 분위기
미 자 : 이곳처럼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철 영 : 우리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돼. 그놈의 입시 때문 에 억눌려 지내야하는 우리 신세가 너무 안타까워.
현 기 : 하늘에 두고 맹세했다던 인구는 왜 안나타나는 거지?
미 자 : 인구는 우리 곁에서 이미 떠나간 사람으로 보는 게 편할 걸.
철 영 : 천만에, 두고 봐. 우리 생활이 그리워 찾아올 테니.
이때 웨이터 등장한다.
웨이터 : 뭘 주문하시겠습니까?
철 영 : 조금만 기다리세요. 예산편성을 해야 되니까.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탁 자위에 올려놓으며)
나 책값 타온 거 있어.
설 란 : (돈을 탁자위에 놓으며) 나 운동화 값.
현 기 : (돈을 탁자위에 놓으며) 난 학원비.
명 화 : (돈을 탁자위에 놓으며) 저금 타온거 있어.
인 구 : (돈을 탁자위에 놓으며) 여기 있어, 수업료.
철 영 : (돈을 탁자위에 놓으며) 이 정도면?
웨이터 : VIP로 모시겠습니다.
철 영 : 뭐든지 알아서 가지고 오쇼? 이건 아가씨 팁.
웨이터 : (팁을 받으며) 고맙습니다. 갑사합니다. 전 신사숙녀 후보를 사랑합니다.
설 란 : 이유는 뭐죠.
웨이터 : 역시 VIP는 철저하게 다른 데가 있기 때문입니다.(퇴장한다.)
설 란 : 저 언닌 미용사가 꿈이라더니 여기까지 오게됐네.
미 자 : 흥겨운 시간 미치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흥겨운 음악이 나오자 모두 일어나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잠시 후 흥겨운 음악이 멈추면 모두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웨이터 술과 안주를 가지고 등장한다. 무희는 퇴장한다.
명 화 : 오빠들 춤 솜씨에 감탄했어요.
철 영 : 대학입시를 디스코로 결정한다면 여기 있는 친구들은 수석감이지.
설 란 : (울먹이며) 정말 오빠들한테 반하고 또 반했어요.
현 기 : (설란의 표정을 흉내를 내며) 반하고 또 반하세요.
설 란 : (발을 구르며) 이제 저희들 마음은 오빠들 마음이세요.
(은석을 가리키며) 특히 저 오빠한테 내 모든 것을 정복당한 느낌을 받았 어요.
철 영 : (놀라며) 나한테? 야! 너 비약하지 말아라. 나는 확신이 선 사람이에요. 난 말야, 가출하는 사람하고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설 란 : (톨아져) 그건 왜죠?
철 영 : 몰라서 묻냐? 보자하니 가출 출신 같은데...엄마가 가출 출신이라면 유전학 상 2세도 뻔할 게 아니겠니? 가령 엄마인 너는 중학교 3학년에 가출했고, 아빠인 나는 고1때 가출한번 했으니까 그 딸은 초등학교 4학년쯤 가출하 겠다.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니까.
일동 웃는다.
설 란 : (다가서며) 그래도 난 오빠가 좋은 걸.
은 석 : (피하며) 여자가 징그럽게 왜 이러니?
현 기 : 야 너희들 그러다 (사이) 말 것 같다.
미 자 : 그나저나 오늘 땡땡이를 쳤으니 내일 뭐라고 거짓말하지? 1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할 수도 없고.
인 구 : 그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
미 자 : 두 눈 멀쩡하게 뜨고 계신 할머니를?
설 란 : 그럼 언니가 교통사고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 되잖아.
미 자 : 난 언니가 없는데.
인 구 : 오빠가 맹장수술 했다고 해.
미 자 : 오빠도 없잖아.
명 화 : 언니는 왜 이렇게 없는 게 많아요.
미 자 : 나에겐 남편도 없어.
철 영 : 생각했다. 엄마가 고혈압으로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실려고 해서 그랬다고 해. 다 죽어가는 시늉을 하고 울면서 “어머니, 어머니 돌아가시면 안돼 요.” 하며 연극을 하는 거야.
현 기 :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철 영 : 나도 모르겠다.
설란이 훌쩍거린다.
철 영 : (설란이를 보고) 갑자기 왜 훌쩍거리냐?
설 란 : 엄마얘기 하니까 엄마 생각이 나서요.
철 영 : 그러고 보니까 내 말이 맞았군. 너 가출했구나?
설 란 : (고개를 끄덕이며) 공부하라는 엄마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나왔어요. 오늘 이 삼일째예요.
명 화 : (울먹이며) 새 아버지가 술만 먹고 들어오면 우리 엄마는 안 때리고 나만 막 때려요. 이제 무서워서 집에 안 들어 갈래요.
미 자 : 아무튼 우리 청소년들은 어른들 때문에 저렇게 피해를 입고 있다고. 우리 도 일류대학병에 걸린 부모님 때문에 이꼴이 되었지만 말야.
설 란 : 자식을 둔 대한민국 부모님 처놓고 인류병에 안 걸린 사람 어디 있냐?
현 기 : 정말 큰일이야. 일류병엔 약도 없다는데 왜 일류병에 걸리는지?
철 영 : 그것은 인류대학을 나오지 못한 부모님들이 일류대학에 한이 맺혀 자식만 을 일류대학에 보내어 한을 풀어보기 위해서야.
명 화 : 일등? 일류? 욕심내며 외친다고 되냐구요 부모님들은 학교에 다닐 때 일등 도 못했으면서 왜 우리에겐 무조건 일등만 강요하냐구요? 100미터를 20초 에 뛸 수 있는 우리에게 10초에 뛰라고 소리만 치면 되냐구요?
설 란 : 어른들은 우리 사정을 너무나 몰라요. 아니 알려고 조차 하지도 않아요. 타 산적인데가 많아요. 물을 먹기 싫어하는 소에게 강제로 물을 먹일 때 소가 받는 아픔과 고통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무게만 늘려 이득을 보려는 악독 업자와 같아요.
철 영 : 우리도 부모님 말씀처럼 일류대학에 들어가고 싶어요. 하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해요. 성적이 욕심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잖아요?
현 기 : 우리가 언제 어머니 아버지더러 낳아 달라고 했나요? 왜 자식을 낳아 놓구 꺼떡하면 우리들 앞에서 나가라, 나가 죽어라 소리 아니면 이혼하자, 헤어 지자 자기들 기분대로 말과 행동을 쉽게 막 해도 되는 건가요? 부모라면 자식이 올바르게 성장해서 한사람의 시민으로 될 때까지 책임을 지고 돌봐 야 하는 건 아닐까요?
미 자 : 학부모님 우리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우리의 아름다운 꿈을 펼칠 수 있도 록 해 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일 동 :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건지 대답해 주세요. (암전된다. 스포트 라이터가 웨이터만 비춘다.)
웨이터 : 누가 이렇게 만들었죠? 저렇게 술마시고 괴로워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전 알 것 같아요. 저도 저러다가 학교 때려치우고 이렇게 웨이터를 하고 있 으니까요. 하지만 저렇게 방황하는 청소년은 누가 책임지죠? 문명인의 사 회가 책임을 질 건가요? 아니면 부모님? 선생님?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세 요. 저희들의 고독한 외로움을 달래 주세요.
-암 전-
제4장
변두리에 있는 어느 공사장의 지하실인 듯하다. 공사가 중단된 곳이므로 으슥한 느낌마저 준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 공포감을 더욱 자아낸다. 막이 열리면, 무대 왼편에서 미자는 율동 연습에 여념이 없고 오른편에서는 철영이가 샤도 복싱을 하고 있다. 가출자는 한쪽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다.
미 자 : (동작을 계속하며) 오늘 그치도 참석한다며?
철 영 : 그치라니?
미 자 : 미스타 포옹 말야.
철 영 : 미스타 포옹?
미 자 : 왜 있잖아, 계룡산 남매탑 부근에서 소개해 준 ...
인사를 포옹으로 하는 특이한 사람, 친군지 선밴지 하는 그치.
철 영 : (동작을 멈추며) 아! 이제 생각난다.
미 자 : 나 그치 주는 거 없이 싫더라.
철 영 : 싫고, 좋고할 게 뭐 있어? 사랑하는 사이도 아닌데.
미 자 : 저... 실은...
철 영 : (날쎄게 몸을 놀리며) 말해봐?
미 자 : 화 안 내는 거지?
철 영 ; 말 해 보라니까...
미 자 : 나 지난번에 (사이)당했단 말야.
철 영 : (멈추며) 당해? 어디서? 동학사? 보문산? 아님 인숙이네 집? 어디야!?
미 자 : (흥분한다) 정말 기가 막혀서... 꼭 돼지처럼 생긴 게 날 어찌 보구.
철 영 : 그렇담, 심각해지는데?
미 자 : 그거 뭐 잘한 일이라고 얘길 하고 그래.
철 영 : 아니 이게 ... 너. 몰라서 물어? 넌(사이) 내꺼 잖아? 가만히 있어봐. 얘길 듣고 보니까 오기가 생기네. (미자 멱살을 잡으며) 사실대로 얘기해!
미 자 : 무슨 얘길 하라고 자꾸 다그치는 거야!
철 영 : 이제 딱 잡아떼네, 당했다며?
미 자 :(사이) 지난 일요일 자기 만나구 버스에서 내려 집에가는 길이었걸랑. 근 데 누가 뒤에서 날 탁 치었 걸랑.
철 영 : (답답해서) 남 급해 죽겠는데 그 놈의 걸랑걸랑 말소리 빼지 못하겠어?
미 자 : 그래, 뒤를 돌아보았걸랑(창호 흉내 내며) 헤헤... 이봐! 어딜 그렇게 바쁘 게 가지? 하며 갑자기 내 두 손을 잡더니 다짜고짜 포옹을 하는 거야. 그 것도 영국 스타일로 말야.
철 영 : (마음이 놓여) 난 또... 당한 줄 알고 초긴장했잖아 (시계를 보며) 18초 동 안 말야. 아무튼 다행이다. 포옹으로 끝났으니...
미 자 : 포옹이 문제야? 장소가 문제지.
철 영 : (심각해지며) 또 장소가 어디 길래 심각해지니?
미 자 : 대전역. 그것도 광장에서...
철 영 : 뭐? 대전역? 이것들이 미쳤군.
미 자 : 그때 서울, 부산, 광주등지에서 통일호, 무궁화호, 새마을호가 동시에 도착 했을 테니까.
사람들이 우굴우굴, 바글바글 상상만해도...
(이 때 지하실 입구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현기)
철 영 ; (현기 발견 못한채) 그 개새끼도 언젠가 포옹으로 망하고 말걸?
미 자 : 아이참! 어떡하지? 오늘 또 그치 만나면 헤헤...
미자, 오래간만이야 헤헤... 하고 포옹할 텐데...
철 영 : 염려 마! 내 오늘 필사적으로 저지시킬 테니까.
미 자 : 그럼 안심이야.
(현기 계단에서 내려온다.)
현 기 : (철영을 보고) 야! 너 일찍 왔구나?
(한옆에 서 있는 미자를 발견하고는)
오! 미자도 와 있었군? 헤헤... 반가와요. (하며 포옹하려 할 때)
철 영 : (크게) 스톱!
현 기 : 아이 깜짝이야. 놀랬잖아. 임마, 내가 치마씨였다면 어떻게 됐을 거야. 근데 이 지하실에서 택시는 잡아 뭐 하려고 스톱하냐?
철 영 : 택시가 아니라 형의 포옹 ....?
현 기 : 아참! 내 정신 좀 봐. 포옹이 남았었지.(미자에게 다가가 포옹하려 할 때)
철 영 : (큰소리로)스톱!
현 기 : (화가 나) 저 새낀, 내가 기분 내려 할 때마다 브레이크를 거네.
철 영 : (퉁명스럽게)형! 그 포옹하는 버릇 고칠 수 없어?
현 기 : 포옹만은 나도 내 마음대로 못한다. 전통이니까 그러니 날 방해 하지 말아 다오. 아우야?
(미자를 포옹한다. 가출자를 발견하고)
현 기 : (가출자를 가르키며) 누구지?
철 영 : 우리 뜻을 따르는 동조자!
현 기 : (일어나는 가출자를 주의 깊게 살피고 난 후) 이름은?
가출자 : (벌떡 일어나며) 가출자.
현 기 : 가출자? 특이하군. 소속은?
가출자 : 중 3
현 기 : 가출 이유는?
가출자 : 부모님의 지나친 간섭 때문에.
현 기 : 경력은?
가출자 : 가출 일곱 번, 미팅 다섯 번.
현 기 : 이름처럼 경력도 화려하군. 근데 눈웃음 살살치는 게 좀 보긴 안 좋지만 라면은 잘 끓이겠지? (철영 미자 웃는다.)
(이때 무희가 등장한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무 희 : 여기가 어딘가?
가출자 : (무의식중) 여기가 어디죠?
무 희 : (덤블링을 한 후) 잘 찾아왔군, 내가 나를 소개하지 내가 나에 대해선 내 가 나를 잘 알고 있으니까 너희들이 나를 모르는데 나를 소개 할 순 없잖 아.
현 기 : 전하!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무 희 : 난 삼수생이야 아버지에 대한 불신감, 엄마의 무관심에 대한 반항과 호기 심으로 본드흡입을 하다가 발각됐어. 그때부터 정신이상자로 몰려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어 난 안 미쳤는데 미쳤다는 거야, 미친 사람은 미 쳤다고 말을 안 한다나? 이 세상엔 나 혼자뿐야.
가출자 : 부모님이 계신다면서요?
무 희 : 있으면 뭘하니 내가 원하는 내 식의 사랑이 없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자기 말을 안 들으면 미친 줄 알아, 그것은 부모님의 삶의 기준이 아니겠니? 내 겐 내 식의 삶이 있잖아.
철 영 : 누나의 고통은 우리 모두의 생앞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적 병리현상이 아닐 까요?
미 자 : 그렇다면 그것은 사회적 실천행위로써만 치유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언니.
무 희 : 지금이야말로 사랑이라는 말이 관념적이 아닌 실천적 의미로서 우리에게 깊이 각인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
현 기 : 와 ㅡ 모처럼 수준 있는 설교를 들었어.
무 희 : 설교? 설교한번 해볼까? 지금 이 시간에도 어려운 환경에서 근로 조건이 열악한 곳에서도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학교에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 하는 근로 청소년들이 많은데 그들은 결코 불우한 환경이나 가난밖에 모르 는 부모님을 원망하질 않습니다.
행복에 푹 파묻힌 청소년 여러분! 약속합시다.
술, 담배, 본드는 아주아주 청소년 몸에 해롭습니다. (설교를 하다말고 무 엇을 찾는 듯)
여기 없을까? 술?
현 기 : 내 이럴 줄 알구 준비해 갖구 왔지.
우리 두 신입회원을 열열히 환영하면서 얼씨구 좋다. 자화자 좋다.
현 기 : 아니, 근데 인구는 왜 안 나타나지?
철 영 : 우리 클럽에서 자퇴하겠대.
미 자 : 자퇴?
철 영 : 공부좀 해야겠대.
현 기 : 그러기에 내가 뭐랬어! 회칙을 통과시키랬잖아!
미 자 : 그래서 오늘 이렇게 모인 것 아녜요?
현 기 : (신경질조로) 야! 가결한 것 발표해. 찬동하면 박수치고...
철 영 : 그럼 지금부터 여러분이 만장일치로 가결한 사항을 발표하겠습니다.
현 기 : 제 일조! 명칭, 우리는 폭발물 클럽이라 칭한다.
미 자 : 제 이조! 목적, 우리는 폭발물 클럽인의 긍지를 가지고 폭발물 같이 터지는 힘으로 대항한다.
가출자 : 제 삼조! 자금조달,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학생 호주머 니를 창고로 이용한다. 단, 투쟁이 필요할 시는 모사 깐다.
무 희 : 제 사조 권리 이해, 우리의 수입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가출자 : 제 오조! 상벌칙, 많은 건수를 올린자는 특별보너스를 지급한다.
배반자는 어떠한 벌칙이라도 감수할 것을 약속한다.
미 자 : 제 육조! 사업, 우리는 청소년 권익보호를 위하여 투쟁한다.
현 기 : 이제 우리의 굳은 결의를 다짐하는 뜻에서 맹세를!
(창호, 미자, 가출자 순으로 맹세를 외치며 현기 손 등에 손을 얹으며 결의 를 다짐한다.)
가출자 : 폭발물 클럽이 창립되었으니 잔치는 있어야죠?
철 영 : 오우! 그거 좋은 생각이야. (동작으로 표현하며)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
무 희 : (박수치며) 그럼 우리 노래부터 할까?
일 동 : 좋아2 “아파트” (1절) *아파트를 아지트로)
(모두들 한바탕 노래하며 춤을 춘다. 분위기가 고조될 무렵, 멀리서 싸이렌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점점 가까이 공포를 자아내며 들린다.)
가출자 : (동작을 멈추며) 아니, 이게 무슨 소리죠?
미 자 : (놀라며) 신고가 들어간 것이 아닐까?
철 영 : 신고? 뭐 우리가 간첩이니? 신고가 들어가게...
가출자 : 요즈음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신고정신이 높아졌다구요.
현 기 : (느긋하게) 겁먹을 필요 없어. 지금은 경계경보에 불과하니까. 또 우리가 현행범들도 아니고...
미 자 : (귀를 기울이며) 아니? 소리가 점점 이리로 오는 거 같은데?
가출자 : (공포에 떨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강창호 가만(사이)소리가 안 나잖아?
무 희 : 여긴 지하실이라서 소리를 측정하기 어려워.
양미자 : (공포에 떨며) 무, 무서워!
가출자 : (울먹이며) 엄마!
강창호 : 미자가 공포에? 이럴 땐 포옹이 특효약이지.
(창호, 포옹하는 동작을 반복하며 미자에게 다가가 포옹하려고 할 때)
철 영 : (급히) 스톱!
현 기 : 이 새낀 심심하면 스톱이네.
미 자 : (영문을 몰라) 지금 스톱, 오라이를 찾고 있을 때야?
(창호 밖으로 나가려 할 때)
가출자 : 방금 검은 그림자가 지나갔어요.
철 영 : 사람 그림자?
미 자 : 응 나도 봤어.
(이때 지하실 입구에서 인구 나타난다.)
양미자 : (반갑게) 인구야!
가출자 : 괜히 겁먹고 있었잖아.
철 영 : (비꼬며) 현명한 고기는 놀던 물이 좋은 법여.
인 구 : 난 송충이도 고기도 아냐.
철 영 : 이상하네 솔충이 얘길해서 그런지 몸이 근질거리고, 고기 얘길해서 그런지 비린내가 풍기는 것 같네.
인 구 :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
현 기 : 세익스피어 선생께서 웅변은 진리가 아니고 설득이라고 했으니까 어디 한 번 읇어봐.
인 구 : 난 느꼈어. 방황은 청춘의 특권이 아니라 형벌이라는 것을...
현 기 : 형벌?
인 구 : 왜 우리는 안락하고 부유한 가정과 친구들이 있는 학교를 뛰쳐나와 젊음의 유형지 같은 거리를 방황하고 있지? 방황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 을 잃어버리고 탈선이란 유혹에 휘말려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 지금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면 그땐 이미 늦어.
철 영 : (인구의 멱살을 잡으며) 아니 너, 지금 무슨 개 뼈따구 같은 소릴 내 뱉고 있는 거야!
인 구 : 방황하면 탈선하게 되고 탈선하면 우리에게 이로울 게 하나도 없어.
철 영 : 아니, 이 새끼가! (때리려 할 때)
현 기 : 가만둬! 사형수도 최후의 진술은 있는 법이니까.
인 구 : 우리와 같이 길을 걷는 선배라는 사람들.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어? (사 이) 사회에서 냉대와 멸시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잖아. 그런데 우린 뭐야? 학생? 건달? 이것도 저것도 아니잖아. 흉낼 내고 있음을 알아야 해! 언제까 지 그렇게 곡마단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될 거야?
현 기 : 우리가 (원숭이 흉내를 내며) 이런 끼긱기 원숭이들이란 말이지? 헤헤 ...
미 자 : 그 소린 모독적인 발언이야.
가출자 : 정말 불쾌해요.
인 구 : 왜 너희들끼리 덩달아 춤을 추려고 그래? 현재는 우리 기분대로 먹고, 마 시고 하니까 우리들 세상 같지만, 그렇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 건 계산착오야.
철 영 : (머리를 움켜쥐며) 야!
인 구 : (강렬하게) 너희들 한 마디만 더 들어. 너희들이 하는 행동은 모방에 불과 해. 날개도 없으면서 날으려고 하는 방종이야. 아니 탈선이란 말야!
현 기 : (비꼬며) 역시 책벌레는 다른 데가 있어. 송충이처럼 징그러운데다가 (인 구를 주먹으로 윽박지르며) 야! 몇 조에 해당하냐?
철 영 : 제 5조.
현 기 : 5조? 좋아! 5조를 과감히 보여주지 (현기, 인구의 옷을 벗기려들자)
철 영 : 이왕이면 여자가 벗기는 게 더 흥미가 있을 거야. 한번 해 보라구.
(미자, 출자, 잠시 망설이다 인구에게 다가가 옷을 벗긴다. 긴장이 감돌 무렵 이때 밖에서 요란한 경찰 사이카 소리가 공포를 자아내며 가까이 다가온다.)
현 기 : 떴다! 비상이다!
철 영 : 튀자!
-암 전-
제5장
그 이튿날 아침이다. 찬바람 소리가 지하실의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해주고 있다. 강창호는 뒤 중앙쯤에 지쳐 누워있고, 미자는 한쪽 구석에서 추운 듯 떨며 몸을 움츠리고 고개를 무릎위에 묻은 채 앉아있다. 가출자는 지하실 계단 옆쪽에 붙어 천진난만하게 졸고 있다. 그러나 현기만은 지치지 않은 듯 체조를 하고 있다.
철 영 : (동작을 멈추며) 흥! 꼴보기 좋다. 밤새도록 마시고 흔들어대더니 ... 물 간 생선처럼 축 늘어져 맥들을 못추고 있으니 (주먹을 높이 올리며) 역시 체 력은 (사이) 뚝심이야.
현 기 : 뚝심 좋아하네, 행복에 겨운 소릴 하는 것도 네 뱃속에다 가득히 기름기를 저장해준 부모님 덕인 줄 알아라.
철 영 : 부모님 덕이라고? 그렇지. 가정에 충실하신 아버지 어머니 덕분에 이 싸늘 하고 음산한 공사장 지하실에서 추운 겨울에 요모양 요꼴로 있지. 그런데 현기 형은?
현 기 : 말 했잖아. 시험인지 고사인지 그것 때문에 가출했다고. 중간고사, 월말고 사, 학력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실력고사 (흥분하며) 야! 우리가 뭐 시 험 보는 기계냐!
가출자 : (갑자기) 저도 찬성이에요. 미국이나 서독은 하루 4시간 밖에 수업이 없 대요.
철 영 : 부럽다 부러워. 존경하는 대통령 할아버지 그리고 교육부장관님! 제발 부탁 이에요. 우리를 시험지옥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주세요.
현 기 : 안돼! 선진국들과 어깨를 겨루기 위해서는 지옥을 더 만들어야 돼.
미 자 (울먹이며) 아이, 추워. 춥단 말야. 우리 따뜻한 곳으로 가자.
현 기 ; 야, 야! 춥다쟎아 꽃반지 끼고 새끼손가락 건 사이면 끝까지 책임을 질 줄 알아야지.
철 영 : 책임? 지가 좋아서 날 죽자사자 따라다니길래 귀찮아도 제가 불쌍해서 몇 번 인숙이네 집 신세를 졌을 뿐이야.
미 자 : (크게 울며) 우리 아빠가 그 사실을 알면 내다 버리실거야.
철 영 : 그렇게 울려거든 집에 가!
(가출자, 울음이 터져나오려고 코와 입이 실룩거린다.)
가출자 : (큰소리로 운다) 으앙 엄마아!
현 기 : 이제 얘까지도 시동 거네?
가출자 : (발을 구르며) 엄마! 배고파!
현 기 : (장난으로) 젖 줘?
(미자, 가출자, 울음바다를 이룬다.)
현 기 : (큰소리로) 야! 누가 죽기라도 했냐? 초상났냐구?
가출자 : (울음을 멈추고)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게 생각나요. 우리는 아직 어 린가 봐요. 혼자 자신있게 일어나 걸을 수 있을 때 성인이 된 거라고 말 씀하셨는데... 우리에겐 힘이 없는가 봐요.
현 기 : (철영에게) 야! 자존심 푹푹 상하는 소리 더 나오기 전에 우리가 대책을 세워야겠다.
철 영 : (심각하게) 다 떨어졌어. 돈 떨어져, 담배 떨어져 (신발을 벗는다. 구멍난 양말에 엄지 발가락을 보이며) 양말까지도 ...
(이 때, 인구 빵과 우유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인 구 : (반갑게) 너희들 여기 있었구나?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 (일동 외면한다.)
(밝게) 아직도 어제 감정이 남아있냐? 난 아무렇지도 않아...
인 구 : (사이) 너희들이 그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이상해! 답답하고 말야. 참! 배고플 텐데 이거 먹어봐.
(인구, 들고 있던 빵봉지를 바닥에 놓자 철영, 발로 찬다. 빵과 우유가 굴러 가출자 근처에까지 오자 가출자, 미자와 함께 눈치를 보며 먹기 시작한다.)
인 구 : 지금 부모님들께서 너희들을 얼마나 찾으시는지 몰라. 철영이 넌 신문에까 지 났어. (신문을 펴며) 자, 봐?
철 영 : 신문 하하 ... 웃기지 말라고 해. 난 합법적으로 가출신고를 내고나온 놈이 야. 질식할 것 같아서...
(인구 손에 쥔 신문을 나꿔채가지고 읽는다.)
‘철영아! 어머니가 위독하니 속히 돌아오너라. 거처 연락하면 후사하겠음’
(신문을 팽개치며)
왜 그래? 왜들 그러느냐고? 집안 자랑을 하는 건지, 돈 자랑을 하는 건지 신 문엔 온통 사람 찾는 기사들 뿐이니 그것은 뭔가 썩어가고 있다는 증거야. 불 만일 수도 있구, 쫓아냈음 왜 찾아? 호들갑 떨건 뻔한 일 가지고 왜 미리미리 예방을 하지 못하고 야단법석을 떠느냔 말야!
현 기 : (박수치며) 옳소!
인 구 : 부모님이 화나시면 무슨 말씀인들 못하시겠니?
철 영 : 너 몰라서 묻는 거냐? 밥 세끼 먹여주고, 용돈주고, 학교에 보내준다고 해 서 그걸로 부모님 도리가 다 끝났다고 생각해? 식물이 수분과 온도만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냐구?
인 구 : 알아. 영양분이 있어야 한다는 걸.
철 영 : 영양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랑이야. 따뜻한 보살핌이 없 이는 죽고 말아. 사춘기에 들어있는 우리에게 인성교육 제대로 한 번 해 봤냐구?
난 동식물의 생태기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잘 알아. 우리와 같은 청소년들 은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하단 말이야.
미 자 : 아마 어른들은 시간이 없을꺼야. 계모임, 부동산투기, 동창회, 사업일 때문 에...
가출자 : 맞아요. 어른들은 자식들의 인성교육 보다는 돈 버는데 더 관심을 많이 쏟고 있으니까요.
현 기 : 어른들은 우리들 보고 선도선도 하지만 사실 똑 까놓고 이야기해서 어른들 부터 선도해야 할 사람이 많다구. 어른들은 할짓 못할짓 다 하면서 우리만 보고 잘해라 하면 누가 곧이 듣겠냐?
가출자 : 어른들부터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구요.
인 구 : 결코 어른들 탓만으로 돌릴 수 없잖아. 우리들도 반성할 것은 많아.
철 영 : 그런 걸 모르는 우리가 아냐. 다 알고 있어 그러나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환경의 보금자리는 최소한 어른들답게 어른들께서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인 구 : 환경의 보금자리?
철 영 : 우리들이 밝고 건전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사랑의 보금자리가 필요해. 다시 말하면 공해가 없어야 한다구. 우리 입장에서 말한다고, 일방통행식의 발언 이라고 지적할지는 몰라도 자연의 이치에 비유하면 해답은 쉽게 풀릴 수 있 어 (사이) 우리에겐 도래지가 필요해.
미 자 : 도래지? 철새들이 마음 놓고 날 수 있고 먹이도 풍부한 도래지 말이지?
철 영 : 도래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자연이 아름다워 질거야.
가출자 : 맞아. 한동안 한강이 오염되었을 때 물고기와 철새들이 한강을 떠나갔어. 몇십 년 동안 한 마리도 찾아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때? 많이 찾아오고 있잖아? 그것은 오염에서 시달린 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에 민물인 물고기 들이 한강의 물맛을 귀신같이 알고 모여드는게 아니겠니?
미 자 : 그건 (가출자를 가리키며) 얘 말이 말이 맞아요.
인 구 : 우리 집에 불이 났을 때, 그 불을 꺼줄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 봤니? 주 인인 나는 강건너 불구경하듯 가만히 앉아 구경만하고 있으면 누가 그불을 꺼주겠어? 우리에겐 갈 길이 있어.(그들 괴로워 한다.)
철 영 : (역시 괴로워하며.) 괴롭히지 마...
현 기 : (역시 괴로워한다.) 설득하지 말란 말이야!
이때 박달제와 최선생 등장한다.
박달제 : 대학생 후보들이 왜 안보이나 했더니 여기들 있었구나.
인 구 : 다 아는 얘들이에요.
박달제 : 내 유권자들이지 하하 ...
최선생 : 몸을 숨길만큼 잘못을 했나보지? 남의집 지하실을 술집으로 만들고. 꼭 이런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되겠느냔 말이야. 경찰서에서 빼온지가 며칠 됐다구.
철 영 : 요즘 웬지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해서인지 광란의 네온싸인을 바라보고 걸 으면서 우리도 모르게 이끌리게 돼요. 그래서 술도 마시게 되고 돈을 마련 하느라 강도짓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싸움까지 하게 되고요.
최선생 : 그게 바로 너희들이 아직 어리다는 말이다. 아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았 다는 증거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거다.
미 자 : 교육요? 그 잘난 교육이 우리에게 가치관을 심어준다구요? 아침 일곱시부 터 밤 11시까지 우리에게 영어단어와 수학공식과 싸우게 하는 게 가치관 의 교육인가요? 모든 것이 입시를 위한 교육이지 인간교육은 아니잖아요.
최선생 : 고등학교에서 인간교육은 곧 입시교육이야! 대학 진학을 빼놓고 교육이란 있을 수 없어!
(사이) 우리도 야간 자습이고 보충수업이고 다 집어치우고 딱 6교시만 끝 나고 너희들을 자유로이 풀어주고 싶지만 현실이라는 것 그것 때문에 어 쩔 수 없어.
가출자 : 그러면 우리는 콩나물처럼 시대의 기형아로 살아가야 하나요? 누군가 나 서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나요? (사이) 그 길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역사에서 보면 시대의 선각자들은 괴로웠지만 후대에는 괴로움 이 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최선생 : 옛날은 지금의 문제와 달라!
철 영 : 우리도 알고 있어요. 선생님들이 우리를 위해서 고생하시는 것도 우리가 술먹고 담배피고 유흥업소에 드나드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싫은 것을 어떡해요.
최선생 :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싸워이겨 나가야지 싸우기 전에 항복하는 것 은 바보같은 놈들이나 하는 짓이야.
박달제 : 그래 그건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아침 등굣길에 만원 버스 안에서 시달 리며 학교에 올 때 힘이 든다고 손을 놓거나 학교에 오기도 전에 내린다 면 어떻게 되겠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로 현실이 어렵고 힘들다고 도중 하차 한다면 너희들은 시대의 낙오자라는 멍에를 씻기가 어려워. 우리는 우리가 목표한 곳에 갈 때까지 꼭 매달려 있어야 한다구.
인 구 : 우리를 위하여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박달제 아저씨 이 은혜는 정말 감동 적이었는데... 아저씨의 마음을 져버리고... 그만 난 믿어요. 내 유권자들의 인격을 ...
최선생 : 열심히 공부해서 후에 사회에 나가 너희들의 이상을 마음껏 펼치는 거야, 더 넓은 세계에다 말야.
철 영 : 선생님 우리도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을까요?
최선생 : 그럼 너희들에겐 우리 세대보다 더 넓은 세계가 있고 그를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국력을 가진 조국이 있어.
철 영 : 강한 국력을 가진 조국요?
최선생 : 지난번 걸프전쟁이 났을 때 전세기를 보내 우리 기술자들을 본국으로 안 전하게 데려온 것도 조국이 있기 때문이지. 또 어디 그 뿐이겠니 이번 바 로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에서 세계를 재패했고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 별 1호가 발사되었고, 2천 년대는 바로 너희들의 무대가 아니겠니.
박달제:너희들 소나기 내린 뒤 앞산을 본 적이 있지? 그 앞산이 어떻게 보이데? 매우 가까워 보이잖아. 바로 그거야 방황하던 너희들이 마음만 먹고 목표 를 향해 나가면 그 목표가 더 뚜렷이 그리고 가깝게 보이는 거야.
최선생 : 그래서 너희들 나이 때 모든 것을 갖추어 놓으라는 거다.
현 기 : 맞아요. 선생님 술 먹고 디스코나 추고나면 즐거운 것 같지만 집으로 돌아 오는 마음은 오히려 더 무겁고 답답했어요.
철 영 :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정했어요. 마음잡고 공부해서 저희들의 이상을 마음껏 펼쳐볼래요.
야, 우리 모두 저 넓은 세계로 나가자!
현 기 : 선생님, 아저씨 저희를 인도해 주세요.
일 동 : 후보를 사랑해주세요, 대학생 후보를요?
최선생 : 후보는 항상 다음 경기를 위하여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 주전 선수를 제 치고 우수한 선수로 등장하기 위해선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을 잊어서 는 안 된다. 후보는 언제나 후보이기 때문이다.
박달제 : 그래도 나는 후보를 사랑해요.
일 동 : 밝게 웃는다.
박달제 : (뮤지컬로) 나는 시의원 후보.
최선생 : (뮤지컬로) 나는 신부감 후보.
철영, 현기, 은석, 인구 : (뮤지컬로) 우리는 대학생 후보.
웨이터 : (뮤지컬로) 나는 미용사 후보.
설란, 명화 : (안에서 나오는 뮤지컬로) 우리는 고등학생 후보.
부 인 : (안에서 나오는 뮤지컬로) 나는 만화방 주인 후보.
상 수 : (안에서 나오는 뮤지컬로) 나는 서태지 후보.
일동 크게 웃는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일동 흥겹게 춤을 춘다.
관객과 함께... 절정에 다다르면서 막 조용히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