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라지가 간도 빼 묵것다.”
수아의 뒤꿈치가 자동문을 미처 빠져나가기도 전에 엄마가 내 면전에 쏘아붙였다.
“잇다, 마 문디 자슥! 이기나 하나 더 달고 니 간 단디 간수 하거라.”
수아를 뒤쫓아 가려고 인사를 하는데 불알 같은 흙감자 한 개가 나선형으로 날아와 내 두 다리 사이를 직격했다.
“악! 으으으”
비명을 지르며 사타구니를 움켜잡고 무릎을 꺾고 말았다. 식당 홀에서 소주를 털어 넣고 감자탕에 숟가락을 담그려던 손님들의 눈살이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왔다.
“간까지 안 빼주면 평생 혼자 살아야 돼.”
나는 한 마디 쏘아붙이고 빠르게 식당을 뛰쳐나갔다. 자동문 닫히는 소리를 등지고 갈비뼈 아래를 문지르는데 멀리 고층 아파트가 눈앞을 막아 섰다.
수아는 결혼 전에 3베드룸 아파트를 장만해야 한다고 불퉁거렸다. 그녀와 나는 밤을 새워가며 도메인 사이트에서 아파트를 검색했다. 그녀가 좋다는 아파트는 매번 돈이 부족했다. 발품을 팔아 주말 오픈 하우스에서 힘겹게 찾은 매물은 번번이 융자승인 거절을 당했다. 속도 모르는 수아는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채근을 했지만 나는 엄마를 잘 알고 있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내가 42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 한 것은 엄마의 책임이 컸다. 남자는 처가의 덕을 봐야 한다는 항목은 그녀의 희망목록 일번이고, 얼굴이 좀 빠져야 외간남자들 손 안타고 제 남편 속 썩이지 않는다는 이번 외에도 감자탕을 잘 먹는 여자라야 한다는 삼번과 간이 튼실해야 한다는 사번…. 외아들을 향한 그녀의 욕망목록은 시큼했다.
아버지가 두 사람이 순탄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엄마의 견고한 인생철학 덕이었다. 그녀는 사람의 속을 투시할 줄 알았다. “네 엄마의 눈은 귀신도 못 속인다.” 간암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께서 부르신 작곡 작사 애창곡이었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녀는 장사수완이 뛰어났다. 이민을 와서도 마치 기계처럼 돈을 벌었다. 그것은 순전히 사람의 속을 뚫어보는 그녀 투시력 영향이었다.
간신이 융자승인을 받고 아파트계약을 했지만 상환금 걱정에 간이 두 쪽으로 쪼개질 것 같았다. 거기다 정부정책이 무원금상환에서 표준모기지로 바뀌어버렸다. 아내의 쇼핑센터 메니저 수입과 나의 토목기사 수입으론 모기지 상환이 벅찼다. 하지만 엄마에게 감자로 얻어맞는 것보다 투잡을 뛰어서 갚아 나가기로 했다.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수아가 엄마가 바라는 조건의 여자였다면 아파트구입과 결혼비용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장모님이 안방에 그 옆방엔 처남이, 우리부부는 식탁의자를 밀쳐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손바닥 같은 방에 각각 자리를 틀었다. 아내는 옷과 핸드백 그리고 화장품 구입에 큰돈을 지출했다. 그녀의 일이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 나는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발! 쥐뿔도 없는 주제에. …호주면 됐지, 무슨 영국유학까지. 대학생 처남이 영국으로 유학을 가야 한다고 아내가 말을 꺼냈을 때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 넘어갔다.
“3대 독자구먼 귀승이가.”
옆에 앉아서 듣고 있던 장모님이 한 말씀 보탰다.
“……”
나는 말문이 막혔다.
“금포크, 은포크 물고 태어난 호주 백인들과 경쟁하려면 적어도 영국명문대학 학위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
씰그러뜨린 인상을 하고 앉아 있던 아내가 장모의 말을 받았다.
“짝, 짝, 짝! 그럼 그렇고, 말고.”
장모는 손뼉까지 치면 아내의 장단을 맞추었다.
“자기, 우리가 쓰리잡을 뛰면 안 될까?”
아내가 대단한 아이디어를 찾아냈다는 듯 내 눈을 뚫어보며 말했다.
*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아내는 젓가락처럼 말라갔다. 아내가 소화불량을 호소해 오는 바람에 나는 쓰리잡이 힘들어죽겠다는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온몸이 저리다고 해서 마사지를 해주면 아내의 피부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칫솔질을 하고 욕실에서 나오는 그녀의 입에선 피가 줄줄 흘렀다. 거짓말이 아니라, 지혈이 되지 않는 아내의 입은 시체의 간이라도 빼 먹은 꼴일 때가 많았다. 그 지경에도 아내는 동생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며 종합검진을 미루었다.
처남이 올리는 카톡 사진마다 봄 꽃이 만발했다. 캠퍼스에서 활짝 웃고 있는 처남의 사진과 은행단풍처럼 노랗게 물든 아내의 피부는 한 눈에 봐도 상반되었다. 쓰리잡을 마치고 시멘트 바닥으로 잘못 기어 나와 죽은 지렁이처럼 축 늘어진 몸을 끌고 막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달포 전 종합검진예약을 해둔 병원의 전화번호가 액정에 떴다. 재빠르게 응답했지만 응급실이란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내가 일터에서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갔고 혼수상태라고 했다.
아내의 몸에 악성종양이 발병한 것은 과로 탓이고, 이미 간세포 전체에 종양이 싹쓸이 잠식했다는 검진결과가 나왔다. 치료를 한들 일 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며 의사는 사형선고를 내렸다. 지구가 폭삭 망해버려, 라고 기도했다. 동생을 위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살아왔던 아내가 너무 불쌍해서 자살하고 싶었다.
아내는 간신이 의식이 깨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장기이식 코오디네이터의 전화를 받고 병원 상담실로 달려갔다. 밤새 잠을 못 잔 탓으로 머리는 띵하고 시야가 흐릿했다. 장기이식 절차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전 그녀가 중요한 단서를 확인하듯 피붙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천만다행이군요. 피가 섞인 공여자가 있어서 안심입니다.”
수혜자에게 핏줄인 남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코오디네이터는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처남에게 공헌했던 일들이 모두 미래에 닥칠 운명을 예비한 통과의례였음을 알게 되었다. 삶이란 얼마나 아이러니한 인과관계로 얽혀 있는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고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코오디네이터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감사하다는 말을 수십 번 하고 그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내 발길은 그 동안 내가 잘못 살지 않았다는 긍지로 간만에 가슴에 힘이 솟구쳤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코오디네이터와 심각하게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를 마친 아내가 마른 몸을 바스락대며 다가왔다. 나는 아내의 몸이 금방이라도 마지막 잎새럼 똑, 하고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아 조심조심 손을 잡았다.
“자기, 나 사랑하지?”
“그럼, 그럼, 당신이 더 잘 알잖아.”
”500g, 안 될까?”
“그래, 당신 고기 먹어야지. 소고기? 돼지고기? 아님 양고기가 좋을까.”
“…그런 고기 말고… 자기 간.”
테리사 리 (소설가·캥거루 소설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