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
석현수
‘못 찾겠다, 꾀꼬리.’ 는 술래잡기의 마지막 항복이다. 항복을 했는데도 나오지 않으면 무리들과 삐치게 되고 속이 상한다. 항복을 외쳐도 끝내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친구가 숨으려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 버린 상태일 것이니 그런 못난 친구와 다시는 놀지 않겠노라 원망하며 놀이를 파한다. 어릴 적 술래잡기의 기억이다.
근간 책 한권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평소 존경하는 교수님 이 내게 책을 보내주기로 했단다. 안부를 드리면서 지금 수필을 공부하고 있노라하고 했더니 생각 밖의 배려를 해 주신 것이다. 마침 친구 분이 ‘수필 문예지’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기에 특별히 부탁을 드렸노라고 했다. 일 년치 구독신청을 해 주셨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것도 계간지가 되어 네 번이나 보내준 상대를 생각하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네 번의 기쁨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책이 오면 본인이 부탁해 보낸 것이니 잘 읽어 보라고 이르시고 교수님은 외국 출타를 하셨다.
책이 오기를 무척 기다렸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다.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인터넷에 문예지를 찾아보았다. 카페는 이외로 내용도 깔끔하고 분위기도 좋았으며 글짓기 공부하기엔 안성맞춤인 사이트였다. 카페지기의 프로필을 보니 분야에서는 널리 잘 알려진 작가였기에 바로 가입 절차를 마쳤다. 아울러 쪽지를 보내 문예사에서 보낸 책을 아직도 못 받았노라고 했다. 작가는 금방 회신을 주며 ‘아! 대구에 그 분이구나’ 하고는 준회원 정회원의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초고속 승진으로 특별회원으로 자격을 내렸다.
아마도 교수님 힘이 강하게 작용했나보다. 미 수령된 분은 즉시 내일 다시 보낸다고 하셨으니 잃은 책 한권을 구실로 유명 작가와의 면식을 굳힌 전화위복의 기회를 얻었다. 휴대폰을 잊었을 때 쉽게 찾는 방법은 다른 전화로 전화질 해 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때론 진동을 해놓아 소리가 나지 않을 때는 낭패지만, 그래도 대게 진동 소리도 귀가 밝으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보냈다는 책이 중간에서 두 번이나 증발해 버렸을 경우는 위에 같은 술수로는 통하지 않을 테니 참으로 난감하다. 먼저 책 구독료를 내 주신 교수님께 잘 읽었노라고 감사인사를 드릴 수가 없으니 난감하다. 다음은 돈도 직접내지 않은 주제에 다시 한 번 더 보내 달라고 출판사를 향해 머리를 조아린 다는 것도 보통 실례가 아니다 싶어 난감하다.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있자니 다음 계절에 출간되어 보내올 책들의 운명도 모두 이렇게 제 갈 길로 영원히 잠복해 버릴 것일 텐데. 앞으로도 네 번의 증폭된 실망과 푸념 속에 한 해 동안 속이 썩나 싶었다.
‘못 찾겠다. 꾀꼬리.’ 하고 손을 들어도, 책은 제 집으로 갔는지 반응이 없다. 휴대폰에서처럼 술래잡기의 묘책을 생각해 내어야 할 판이다. 문예지에서 정말 보냈을까 라는 의심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렇다고 집배원 아저씨들이 제대로 전해주지 않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도 전혀 그럴 가능성은 없다. 우편물 배달 여부를 문자 메시지로 확인까지 보내주는 현대식 서비스 수준인데 이런 생각은 아저씨들께도 여간한 결례가 아니다. 그렇다면 집으로 배달까지 된 것을 혹여 다른 사람들이 집어간 것은 아닐까? 아파트 주위 사람들의 생활수준으로 보아 남의 편지함을 넘겨다 볼 위인은 없다. 이웃을 초라하게 만드는 엉뚱한 생각이다.
여행으로부터 돌아온 교수님께 자초지종 내용을 말씀드리고 죄송하지만 친구 분께 한 번 더 기회를 요청해 주시기를 청했다. 여러 가지 억측이 있었지만, 교수님은 그러자고 했고, 문예지에서는 이번에는 집배원 아저씨와 대면과 지난 일들을 물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등기로 발송한다는 전갈도 왔다. 완벽하다. 모두가 술래잡기에 다시 한 번 열중해 들어갔다. 교수님도 혹시 주소가 맞는지 다시 확인해 보라하며 이메일로 주소를 보내왔다.
모두들 이중 삼중으로 덫을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술래잡기는 싱겁게 끝났다. 교수님이 잡지사로 보내준 주소가 잘못 되어있었다. 아파트 동 번호의 끝자리가 달랐다. 교수님은 지난해 내 쪽에서 보내드린 우편물 겉봉 주소를 보고 옮겼다고 하며 그 겉봉은 지금 가지고 있으니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증거로 보여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나는 백기를 들고 순순히 투항할 도리밖에 없다.
숫자놀음에서 동 하나 차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주소만 보고 들이대는 집배원 아저씨들에게는 틀린 번호는 전혀 해독이 불가능한 난수표 같은 숫자였으리라. 아파트란 한 동에 100세대, 200세대가 층층이 살고 있으니 골목만 달라도 이방인이다. 잘못된 주소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술래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다. 책과의 술래잡기는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술래의 항복과 그래도 나오지 않아 삐치고 토라질 놀이가 되지 못했다. 눈 가리고 붙어 섰던 술래의 담벼락이 자판기 오타 하나로 허술하게 무너지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