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소개
▲ 소년 시기 11세(1808년)때 아름다운 소년 소프라노 음성을 인정받아 빈 궁정예배당의 소년합창단원으로 채용되어 국립 기숙신학교(寄宿神學校)에 들어갔고,소년합창단원뿐 아니라 상류계급의 자녀들이 다니는 엘리트학교인「아카데미 김나지움」에서 교육을 받았다.여기서 궁정 오르간 주자 루치카에 오르간 연주를 또 궁정악장A.살리에리에게 작곡법을 배웠다.한편 이 공동생활에서 그는 많은 교우들과 끈끈한 우정을 쌓아서 장차 그가 성인이 되어서 그의 확고한 지주가 되는 친구들의 모임인〈슈베르티아드(Schubertiad):슈베르트의 동료들〉의 기틀을 마련하였다.특히 학우들 가운데에서 가장 연장자였던 미래의 법률가 요제프 폰 스파운(Josef von Spaun)은 가난했던 슈베르트에게 다량의 오선지를 제공하면서 곁에서 그의 작곡습작을 지켜본 증인이기도 하다.그동안 작곡에서 그의 재능은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고,가끔 궁정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되었다.당시에 선두 작곡가인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소년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작곡과 음악이론을 가르쳤고,나중에 그가 졸업한 후에도3년 동안 그를 지도해 주었다. ▲ 슈베르트티아드(schubertiad :슈베르트의 동료들) * *이 명칭은<Schubertiads ; wlkipedia>·<Schubertiaden ;서양음악사100장면>·<중앙일보,‘음악의 유산’ : Schubertianer>등 여러 가지가 혼용되고 있다. 1814년에 슈베르트는 귀족으로 법률가인 오랜 친구 스파운(Josef von Spaun,1788~1865)의 소개로 시인·작사가인 마이어호퍼(Johann B. Mayrhofer, 1787~1836 :가곡47곡 이상이 그의 시에 의한 것)와 사귀게 됨으로서 그의 가곡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슈베르트 그룹인‘슈베르티아드’가 최초로 형성되고,이듬해에는시인·작사가·출판업자인 쇼버(Franz von Schpber,1796~1882)가 이 그룹에 가담하게 되고, 그의 소개로 30살 연상의 바리톤 포글(Johann Michael Vogl, 1768~1840)이 합류한다. 이외에도 저명한 화가 슈빈트(Moritz von Schwind,1804~1871),화가 쿠펠비저(Leopold Kupelwieser)등이 항상 슈베르트 곁에서 그를 응원하고 사랑으로 감싸주었다. 포글과 슈베르트(친구 쇼버가 그린 풍자화)
슈베르트의 외모는 155cm의 키에 잘생긴 편이 아니었으나,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 친구들 간에 ‘스펀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들은 모두 슈베르트의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굳게 결속되어 있었고,슈베르트의 음악을 세상에 알린다는 일념으로 굳게 결합되어 있었다.서로가 거의 매일처럼 만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이른 ‘슈베르티아드(일명 슈베르트의 밤)’을 자주 열곤 했다. 이 들은 카페나 와인하우스에서 만나서 수수께끼,무도 및 각종 놀이로 저녁의 여흥을 즐겼는데,슈베르트는 이 모임에서 주로 피아노 즉흥연주로 춤곡을 연주했고,가곡은 그룹의 일원이던 바리톤 미하엘 포글이 담당했다.포글은 유명한 연가곡<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겨울 나그네>를 처음 부른 가수이다. 젊은 예술가가 하나 둘 이 모임에 끼어들었다.어느새 슈베르트와 친구들의 모임,즉‘슈베르티아드’는 관객100여 명이 모일 만큼 큰 모임으로 성장했다.당시 빈에서 활동하던 여러 장르의 예술가가 슈베르트의 신곡을 듣겠다는 기대로 슈베르티아드를 찾아왔다.
▲ 슈베르트의 요절 1826년 아버지의 바람으로 교사가 되었으나 음악에 대한 갈망을 이루기 위해 집을 뛰쳐나와 쇼버의 집으로 들어가 함께 살기 시작하였다. 쇼버는 번뜩이는 예술가적 재능은 있었으나,친구들 사이에 엽색행각으로 유명하였는데,그는 그의 그런 행동이 단순한 방탕이 아니라 나름의 탐미주의적 철학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쇼버를 무척 좋아했던 순진한 천재 슈베르트도1822년부터 그와 함께 방탕항‘밤 문화’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그러면서 슈베르트는 매독에 걸리게 되었고,그처럼 슈베르트가 때 이른 죽음(31세)을 당한 후,그의 친구들은 젊은 슈베르트의 육체를 서서히 붕괴시켜간 매독과 그의 요절을 모두 쇼버의 탓으로 돌렸다. ▲ 슈베르트를 잊지 못한 슈빈트의 그림 그 후 슈베르티아드 멤버 가운데 한 명이던 화가 모리츠 폰 슈빈트(Moritz von Schwind,1804~1871)는 빈을 떠나 독일 뮌헨으로 이주했다.바이에른 왕국 국왕 루트비히1세의 명을 받아 ‘호엔슈방가우’성 벽화를 그릴 정도로 유명한 화가가 된 그는 성공에 따른 명성과 경제적 안정도 얻었다. 그런 슈빈트가 죽기3년 전인1868년 슈베르티아드를 떠올린 모양이다.그는 아득한 기억을 더듬어 슈베르트와 친구들의 모습을 펜화로 그렸다.두꺼운 안경을 낀 젊은 슈베르트가 피아노를 치고 슈파운,포글 등 친구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싼 채 음악에 빠져든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벽에 걸린 초상화의 주인공은 슈베르트가 마음속으로 연모했던 카롤린 백작부인이라고 한다.곁으로 성큼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 화가는 젊은 날의 추억을 기록하고픈 충동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슈빈트는“내 평생 그렸던 그림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작품은 슈베르트에게 그려준 오선지”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30년 남짓한 짧은 생애를 살고 간 작곡가는 친구의 애정이 담긴 펜화 속에서 영원히 젊은 모습으로 살아 있다. |
◆ 음악 ● 세레나데「Horch! horch die Lerch(들어라!들어라 종달새),D.889」 1826년 어느날 오후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가 빈의 어느 공원에 가서 한잔의 커피로 목을 추기고 있을 때,슈베르트는 무심코 친구가 꺼내놓은 셰익스피어의 책을 펼쳐 보았다. 그는 "심벨린(Cymbeline)"이라는 시 속의 "들어라,들어라,종달새의 노래를"이라는 아름다운 시를 읽게 되자 갑자기 악상이 떠올랐고, 이윽고 곁에 있는 메뉴 카드를 뒤집어서 작곡했는데,그것이 이 불후의 명가곡이었다고 한다. ▲ 감상: 세레나데 2곡 --- 하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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