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티나 성당으로 내려가기 전 마지막에 있는 라파엘로의 방으로 알려진 4개의 방들은 바티칸 궁 오른쪽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율리우스 2세는 교황으로 선출되자 보르지아의 교황 궁 2층에 1400년대 중엽에 마련된 4개의 방에 새로운 거처를 정한다. 이 방들에는 라파엘로의 스승인 페루지노와 피엘로 델라 프란체스카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방
자신의 새로운 거처를 장식할 새로운 벽화를 그릴 화가로 당시 성 베드로 성당의 공사 총 감독관이었던 브라만테가 약관 20세의 청년 라파엘로를 추천하자 반신반의 하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서명의 방을 젊은 라파엘로에게 의뢰를 한다. 그리고 이 결과에 매우 만족한 교황은 기존에 있던 라파엘로의 스승인 페루지노와 피엘로 델라 프란체스카 등이 그린 벽화를 다 지우고 새로이 벽화를 제작할 것을 주문한다.
이런 연유로 1508년에서 1512년에는 서명의 방, 1512년에서 1514년에는 엘리오도로의 방의 벽화를 제작하는데, 1514년 바티칸 성당의 공사 총감독이었던 브라만테는 자신의 뒤를 이을 공사 총 감독관으로 31세의 라파엘로를 임명하고 그 다음해인 1515년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바로 이 때 라파엘로는 바티칸 대성당 신축공사 총 감독관을 하며 이 벽화들을 그려 1514년~1517년 보르고 화재의 방, 1517년~1524년 콘스탄티누스의 방의 벽화를 완성하게 된다. 그러던 중 1520년 4월 6일 라파엘로'가 37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자 콘스탄티누스의 방 벽화 작업은 당연히 중단되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라파엘로의 제자 쥴리오 로마노와 지안 프란체스코 펜니에 의해 작업은 완성된다. 율리우스 2세의 거처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방은 라파엘로 방으로 불리운다. 이 4개의 방은 보르고 화재의 방, 서명의 방, 엘리오도로의 방,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방으로 나뉜다.
입구에 들어서며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방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방이다. 밀라노 칙령으로 박해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교회의 시대를 열게 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중요 사건들을 묘사한 프레스코 화들이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방의 입구 바로 오른쪽 벽에는 콘스탄티누스의 세례가 있고 창문 전면 벽에는 밀비오 다리의 전투, 십자가의 환시가 있다. 천장에는 1585년에 토마스 라우레티에 의해 그려진 그리스도교의 승리라는 그림이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방 천정화
콘스탄티누스의 방의 프레스코 화는 덕목(Virtue)을 주제로 표현하였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중기 로마 황제로 흔히 그리스도교 역사서에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통칭하며, 동방정교회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여 성 콘스탄티누스로 불리며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도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여 성 콘스탄티노 대제로 불린다. 396년 7월 25일 브리타니아의 요크에서 병사들에 의해 군주로 추대되어 죽는 날까지 로마 제국을 통치했다.
십자가의 환시(Vision of Cross)
312년 10월 28일 콘스탄티누스는 서로마 제국의 패권을 놓고, 드디어 막센티우스와의 최후의 결전이 이루어진다. 로마의 신학자 락탄티우스에 의하면 콘스탄티누스는 전투가 벌어지기 전 날 밤 꿈에 부하들의 방패에 그리스도가 그의 군대를 보호한다는 의미인 'X '자가 쓰여져 있는 꿈을 꾸었다 한다. 또 다른 전승으로 유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에 의하면 한 낮에 그의 군대가 행진하고 있을 때, 그는 한 낮에 "천국에서 빛나는 승리의 십자가가 밝은 햇살을 내 비추며 떠오르고, 이 기호로 승리하리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쓰고 있다. 또 다시 다음날 그의 꿈에 그리스도가 다시 나타나 "천국의 기호를 그려 넣은 '라바룸(Labarum)' 휘장을 만들어라"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라바룸(Labarum)'은 그리스어로 "Chis(Χ)"자에 "Rho(Ρ)'자가 결함된 "☧"로, 그리스어로 구세주 그리스토스(Chrostos)를 상징하는 '치로(Chi-Rho)', 혹은 '크리스토그램(Chritosram)'으로 해석되며, 콘스탄티누스 군대의 깃발, 방패, 병사들의 군모에 이 천국의 기호를 붙이고 나가서,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콘스탄티누스의 세례(Baptimism of Constantine)
입구 바로 오른쪽 벽에 있는 콘스탄티누스의 세례는 337년 그가 죽기 바로 직전에 니코메디아, 오늘날 터키 이즈미트의 유세비우스에게 세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당시 그리스도 교인들의 전례를 따른 것으로 죽기 직전까지 세례를 받는 것을 미루어서 현세의 죄를 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로마의 헌증(Donation of Rome)
이 그림은 교황의 지배권과 통치권을 소유 영토 너머까지 인정한다는 교회 국가의 설립과 교회의 현세적 권력의 정당화에 기반을 두고 콘스탄틴 황제가 교황 실베스터 1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교황과 그 후계자들이 로마를 비롯한 서로마 제국 전체를 통치하여 달라고 청원하며 로마를 상징하는 황금 상을 바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교황 실베스터는 교황 클레멘트 7세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이 에피소드는 옛날 성 베드로 성당의 내부에 기록으로 남겨져있었으나, 후에 없애버렸다. 로마의 헌증(Donation of Rome) 또는 콘스탄틴의 헌증(Donatio of Constantine)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도움을 받았으나 그림의 대부분은 1520년에서 1524년 사이에 지안프란체스코 페니와 줄리오 로마노에 의해 그려졌다. 1520년 라파엘로가 죽자, 라파엘 공방의 제자들이 이 방의 나머지 프레스코를 완성하였다.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Battle of Milvian Bridge)
312년 10월 28일, 밀비우스 다리(Milvian Bridge) 앞에서 벌어진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Battle of Milvian Bridge)는 콘스탄티누스 의 대승으로 끝났으며, 이로써 그는 서로마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하나님께 약속했었던 일, 즉 승리 후 모친 엘레나 왕후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공경해오던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세울 것을 공표한다.
천정 중앙에 그려진 그리스도교의 승리(Triupm of the Christan Region)
원래 천정은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나무로 만들어졌고, 이후 교황 그레고리 13세에 의해 현대식 지붕으로 재건축되었다. 그리고 이를 장식하기 위하여 토마소 라우레티에게 의뢰하여 지붕 중앙 패널에 그리스도교의 승리를 제작한다. 이 작업은 교황 식스투스 5세 때인 1585년 말에 완성되었다. 땅에 떨어져 깨어져 있는 것은 이교도를 상징한 것이다.
이제 바티칸 박물관 관람 마지막 코스인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간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가 열리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관람객들의 관심은 이 예배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정 프레스코 화일 것이다.
예술품 수집가였던 교황 바오르 3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예배당의 제대 위에 웅대한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을 그려줄 것을 주문하였고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 작업을 마친 지 24년이 지난 1536년에 미켈란젤로는 다시 시스티나 예배당의 장식을 맡게 된다.
시스티나 예배당 전경
새 프레스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원래 있던 페루지노와 다른 화가들의 작품 세 점과 그 자신이 천장화를 마무리하면서 1512년에 그린 두 점의 루넷화를 없애야 했다. 미켈란젤로는 장엄한 장면과 잊을 수 없는 인물들을 골라 심판(Judgement)이라는 주제를 표현하였는데, 부분적으로 단테(Dante)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었다. 최후의 심판은 1541년에 완성되었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주제는 1500년 경 이탈리아 교회들의 제대 뒷벽에 즐겨 그려진 주제였으나 그 이후로는 유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주제의 부활은 당시 교황 파울루스 3세 때 행해진 반(反)종교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생겨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제대(Alter)
세 개의 띠로 이루어진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 그림의 구성을 도식화하면 이 작품은 나란히 놓인 세 개의 띠로 이루어졌으며, 꼭대기의 두 루넷(Lunette)에는 날개 없는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수난 당시 사용된 도구들을 들고 있다. 맨 아래 띠 왼쪽에는 종말 이후 죽은 이들의 부활이, 오른쪽에는 영원한 벌을 선고받는 이들의 영혼을 나르는 카론의 배와 이들을 심판하는 미노스가 있는 지옥이 그려졌다. 가운데 띠 중앙에는 심판의 나팔을 든 일곱 대천사들이 있고, 왼쪽에는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영혼들이, 오른쪽에는 지옥의 불로 떨어지는 영혼들이 그려졌다. 마지막으로 맨 위쪽 띠에는 성모 마리아 옆에서 구원자들의 무리에 둘러싸인 위엄있는 심판자로서의 모습을 한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를 주관하는 재판관으로, 그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오른팔은 치켜들고 있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을 정죄하기 위해 왼팔은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다. 구원받은 영혼들은 두터운 대기를 통과해 서서히 올라가고 저주받은 영혼들은 밑으로 가라앉는다. 밑에서는 해골들이 무덤에서 일어나는데, 이는 중세 미술에서 그대로 따온 주제이다.
구원자들의 무리에 둘리어 성모와 함께 있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전통적인 그리스도의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 마치 헤라클레스와 같은 웅장한 몸집의 신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얼굴은 벨베데레 정원에 있는 아폴로를 닮아있다. 그리스도의 오른편에 앉아있는 성모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이들을 안타까워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있다.
최후의 심판 중앙
중앙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흰 수염의 성 베드로가 한 손에 천국의 열쇠를 쥐고 그리스도를 바라고 서 있다. 예수의 승천 후 베드로는 예수를 대신하여 교회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으며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게 붙들렸다가 도망하여 소아시아 및 안티오키아에서 전도하였다. 가톨릭 교회에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그는 로마에서 잠깐 동안 교회를 주재하였으나 네로 황제의 박해에 휘말려 거꾸로 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바티칸 베드로 대성전 아래에 그의 무덤이 있다.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천국의 열쇠(Key of Heaven)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를 초대 교황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 제도를 현재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자신의 벗겨진 피부(미켈란젤로의 자화상)를 들고 있는 성 바돌로매
성 바돌로매가 미켈란젤로 자신의 벗겨진 껍질을 들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이 장면은 벗겨진 피부의 인물상이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바돌로매라 부르는 성인은 예수의 12사도 중의 하나로 요한복음 첫 장에 나다나엘(Nathanael)로 표현된 사도이다.
저승 뱃사공 카론
좌측 하단 천사 무리 좌측에 위치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 저승의 뱃사공 카론이 바닥이 없는 쇠가죽 배에 죽은 자들을 태워 강을 건네주며 저승으로 이끌고 있다.
우측 하단에는 나팔을 부는 날개 없는 천사의 무리들이 그려져 있다. 지옥에서 천사들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늘로 이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