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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암 박사 |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먼저 그 통일성을 이해해야 한다. 통일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요한계시록은 무질서와 혼란의 책이요, 이분(2分), 삼분(3分) 된 책이요, 일곱교회와 상관이 없는, 유대인의 운명을 예고한 책이요,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인류역사의 시간표를 보여주는 책이 된다. 그렇게 되면 “2-3장 따로, 4-22장 따로” 해석하는 것이 되어, 4-22장까지의 해석을 해석자 제 멋대로 해석해도 그 해석이 잘못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계시록은 지금까지 그에 대한 그릇된 해석으로 인해, 그 통일성을 인정받지 못한 책으로 인식되어 왔다. 세대주의 신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계시록 1:9을 잘못 해석하여, 계시록이 마치 3분 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였다.
즉 1장은 “네 본 것,” 2-3장은 “이제 있는 것,” 4-22장은 “장차 될 일”(혹은 7년 대환난 시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해 있다는 것이다(3분설: Bousset, Charles, Swete, Lohmeyer, Walvoord, Thomas,, Lindsay, van Unnik, 이상근, 조용기, 신성종 등)1). 그런가 하면, 2-3장은 1:20에 포함되며, 1:20은 1:11,12-18과 함께 19a를 가리킨다고 보고, 1-3장은 “네 본 것,” 4-22장은 “장차 될 일”을 기록한 것이라 보는 학자들도 있다(2분설 : M. Stuart, Alford, Johnson, Gundry, Chilton, Michaels 등)2). 그런가 하면, 오늘날 계시록의 편집설(Boismard, Ford, Rousseau, Spitta, Stierlin, Aune)3), 개정설(Charles, Gaechter, Kraft, Prigent)4)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계시록 2-3장을 하나의 부록으로 보고, 그것들은 계시록 이전이나(Charles), 이후에(Ford, Kraft, Prigent, Stierlin, Aune) 생겨난 것으로, 후대의 편집자에 의해 하나의 부록으로 계시록에 첨가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네가 본 것들과 현재 있는 일들과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라(계 1:19).
계 1:19은 계시록의 구조가 3등분임을 규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구절이다. 1장과 22장은 개괄장과 정리장으로서 특정 시기를 말씀하는 장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제외하면 2-3장, 4-19장, 20-21장의 삼등분으로 나뉜다. 박교수는 어찌 이를 놓치고 잘못 짚은 학자들만 인용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4-19장은 명백히 대환란을 다룬다. 이것은 "현재 있는 일들"에 해당하는데 사도 요한이 대환란 시점으로 이동한 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앞으로 있을 일이지만 "현재 있는 일들"이 된다. 계시록의 "현재 시점"을 정확히 7년 대환란으로 잡지 못하면 무천년 후천년, 역사적 전천년, 그 외 엉뚱한 헛소리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이론들과 주장들은 계시록의 통일성을 부인하고, 계시록을 하나의 ‘바벨’(Babel)의 책으로 보려는 시도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계시록은 얼핏 보면 혼란의 책이요 단편적인 책 같이 보이나, 좀 더 깊이 연구해보면 그것은 질서 정연한 책이요(Hendriksen)5),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책이다. 그것은 ‘투 피스’(two pieces) ‘쓰리피스’(three pieces)의 책이 아니라 ‘원피스’(one piece)의 책이다(Moffatt, Beckwith, McDowell, Caird, Beasley-Murray, Mounce, Rissi, Beale, Wall 등)6).
계시록 1:19의 또 다른 번역은 첫 번 째 καί를 설명적인(epexegetical) καί 로 보고, “네가 본 것 즉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로 번역하는 것이다(Moffatt, Roloff, Sweet, Caird, Beasley-Murrary, Beckwith, Mounce 등)7).
우리가 계시록을 보면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 계시록 전체에 분산되어 나와 있다. 1장의 소위 “네가 본 것”에는 1절에 “속히 될 일”이, 7-8절에는 “장차 될 일”이 언급되어 있다. 2-3장의 소위 “이제 있는 일”에도 “이기는 자”에 대한 상급으로 미래적인 내용이 나온다(2:5, 7, 10-11, 16-17, 22-23, 26-28; 3:5, 9. 12, 20-21).
그런가 하면 미래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는 4:1-22:5에서도 그 당시의 상황(“이제 있는 일”)을 나타내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아래에 나오는 2-3장과 4장 이하의 관계 참조).
그리하여 서사비평적 입장에서 계시록을 본 마이켈스(J. R. Michaels)는 “계시록 1:19은 계시록 구성을 여는 열쇠로서 현재와 미래사건을 나누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요한이 본 사실적 내용을 단순하게 기록했다는 것을 알릴 뿐이며, 현재 있는 것과 그 전개될 것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있다”8) 고 했다.
이러한 사실은 1장과 나머지 장들과의 관계성을 고찰함에서 분명해진다. 1:3의 “예언의 말씀”은 2-3장의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2:1,8,12, 3:1,7,14)과 관계가 있고, 1:7의 “재림”의 주제는 19:14에, “애곡”의 주제는 18:9,11,15에 나타나며, 1장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2-3장에서 각각 분산되어 각 교회에게 합당하게 나타난다.
1:13,16의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모습은 2:1의 에베소 교회에 나타난 모습과 같고, 1:18의 “죽었다가 살아나신” 모습은 2:8의 서머나 교회에 나타난 모습과 같다. 1:14,15의 “눈이 불꽃 같고 발이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은” 모습은 2:18의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난 모습과 같고, 1:4,16의 “일곱 별과 일곱 영을 가지신” 모습은 3:1의 사데 교회에 나타나신 모습과 같으며, 1:5,18의 “충성된 증인으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모습은 3:7의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난 모습과 맞먹는다. 그리고 1:5의 “충성된 증인”의 모습은 3:14의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난 모습과 같다. 또한 1장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계시록 전체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과도 같다.9)
1:13의 “가슴에 금띠를 띤 그리스도,”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시고 붙들고 계신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2-3장의 주제가 되고 있으며, 1:14의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신 그리스도”는 위엄 있는 영광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4-5장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습과 병행한다.
1:14-15의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같으신 그리스도”는 심판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6장, 8-9장, 15-16장의 주제가 되어 있으며, 1:11의 “많은 물소리 같은 그리스도의 음성”은 10장의 천사의 음성과 같다.
1:16의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으시고 그 입에서 좌우의 날선 검이 나오는 그리스도”는 교회의 사자들을 붙잡으시고 용의 왕국을 패망시키신 그리스도를 보이는 것으로, 11-18장의 주제와 관련이 있으며, “그 얼굴이 해 같으신 그리스도”는 승리자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19-22장의 주제에 해당한다.
1:3에서 저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22:7에서 다시 저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1:7에서 “볼지어다 구름을 타로 오시리라”고 했는데, 22:12에서도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한다.
1:8에서 하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했는데, 21:6에서 또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하신다. 이리하여 이 부분은 ABB'A'의 교차대구법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Wall)10).
1장에서 요한은 본서를 묵시(1:1), 예언(1:3), 편지(1:4)로 보고 있는데, 나머지 장들에서 저자는 자신의 책을 예언(2-3장), 묵시(4-22장), 편지(2-3장)로 본다. 1:11에서 주님은 요한에게 일곱 교회에게로 편지를 하라 했는데, 2:1,8,18, 3:1,7,14에서 주님은 요한에게 일곱 교회에 각각 편지를 하라 하신다.
특히 1:1-3과 22:6 이하는 대칭관계에 있다 : 1:1과 22:6(기록의 경로), 1:3과 22:7,9-10,18-19(예언의 글), 1:1,9-10과 22:8-10(예언자에게 위탁됨), 1:3,11과 22:18(교회가 읽을 책), 1:3과 22:7(구조), 1:3과 22:7,12,14(성도격려), 1:1과 22:6,16,18-19(계시록의 신실성과 절대적 가치).
이러한 관계성은 2-3장과 나머지 장들과의 관계성에서도 나타난다.
먼저 2-3장은 1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Love, Hendriksen, Ladd, Wall 등)11). 2-3장에 나타난 주님은 1장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의 분산이다. 에베소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1:12,16에 이미 나온 것이고, 서머나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1:18에 이미 나온 것이다. 버가모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1:16에 이미 나온 것이고,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1:14,15에 이미 나온 것이다. 사데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1:4,16에 이미 나온 것이고,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1:5,18에 이미 나온 것이며,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1:5에 이미 나온 것이다. 다음으로 2-3장은 4장 이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Parez, Minear, Farrer, Sweet, Beale, Wall 등)12).
2-3장의 “기록하라”는 명령들은(2:1,8,12,18, 3:1,7,14) 14:13, 19:9, 21:5에도 나타나며, 2:13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는 6:9의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 14:13의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 20:4의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과 관계가 있다.
2-3장의 “교회”는 4장 이하에서 144,000, “하늘에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하나님의 성전”, “거룩한 성”,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 “해를 입은 한 여자”, “신부”, “어린 양의 아내”, “새 예루살렘” 등으로 나타나며, 2-3장의 그리스도는 4장 이하에서 “어린 양”, “아이”, “백마와 그 탄 자”로 나타난다.
2-3장의 :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 “니골라 당,” “발람의 교훈,” “이세벨”은 13:11에서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으로 나타나며, 2-3장의 “마귀”는 12: 3에서 용으로, “사단의 위”는 13:1-10에서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으로 각각 나타난다.
2:10의 “장차 받을 고난”, “십일 동안의 환난,” “사단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함”의 주제는 6:9, 7:14와 11장,12장, 13장에 상론되어 나오고, 2:14의 “우상의 제물을 먹음”과 “음행”의 주제는 13:12,14-15의 “짐승의 우상에게 절함”에서 다시 나타난다.
3:16의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는 권면은 16:15의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고 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복 선언과 관련이 있다.
근본 교리가 이미 썩어버린 다음에는 아무리 설명을 덧붙여도 헛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개신교 목사들의 99%가 이런 헛소리를 정통 교리로 주입받고 나와서 목회를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요한계시록을 절대 이해할 수 없으며 성경대로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미있는 것은 계시록에 나오는 이 곳 외의 여섯 번의 복 선언의 주제들은 모두 2-3장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 1:3과 22:7의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2:7,11,17,29,3:6,13,22의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와 관련이 있으며, 14:13의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말씀은 2:13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에 대한 칭찬과 관련이 있고, 19:9의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는 복 선언은 2:17의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와 관련이 있으며, 20:6의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는 2:11의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와 관계있고, 22:14의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으니”는 3:5의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복 선언이 2-3장과 관련 있음은 1장이나 4장 이하가 2-3장의 교훈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된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2:20의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네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는 14:4의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와 17:2의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와 관련이 있고, 3:8의 “열린 문”은 7:3의 “인침”과(구원의 보장), 3:4의 “흰 옷을 입고 함께 다니다”는 14:4의 “어린 양과 함께 다님”과 각각 관련이 있다.
2:19, 3:10의 “인내” 주제는 13:10의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나니라”와 관련이 있고, 2:16의 “검으로 싸우리라”는 19:15의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와, 2:27의 “철장으로 만국을 치겠고”는 19:15의 “예리한 검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와, 2:23의 “사망으로 죽임”은 6:8의 “사망으로 죽임”과 관련이 있다.
3:10의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이마에 인 맞지 않은 자들로서(9:4), 6:10, 8:3, 11:10, 13:8,14, 17:8에 계속 나오며,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함”은 7인, 7나팔, 7대접과 관련이 있다.
2:5,16,21, 3:3,19의 “회개”의 주제는 9:20,21, 16:9,11에도 보인다.
2-3장에 나오는 “전투하는 교회”(이기는 자) 주제는 7:1-8, 11:13, 12:11, 15:2, 17:14, 19:11-21, 20:7-10에, “승리하는 교회” 주제는 7:9-17, 14:1-5, 20:1-6, 21:1-22:5에 나오며,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들은 19-22장에서 그 성취를 보인다. 즉 2:7의 “생명나무”의 상급 약속은 22:2에서, 2:11의 “둘째 사망의 해를 면함”은 20:6(“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에서, 2:17의 “흰 돌을 주겠다”는 약속은 19:9(메시야 혼인 잔치에의 초대)에서, 2:27의 “철장권세” 약속과 3:21의 “그리스도의 보좌에 앉게 함”의 약속은 20:4의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함”에서, 3:5의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우지 않음”의 약속은 20:12의 “보좌 앞의 생명책”에서,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는 19:8의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에서, 3:11의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함”의 약속은 21:3,22(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 되심)에서 각각 그 성취가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계시록 1-3장은 계시록 전체를 그 속에 함축하고 있는 서론적인 장이 되고 있다. “계시록의 첫 세장은 서론적인 것이다. 서론에는 두 가지 형태의 것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단지 문을 열어주는 정도의 역할을 하며 그 작품의 본론에 나올 사건의 참 심장 부분과는 조금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 그러한 서론들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필수의 것으로서, 태아적(胎兒的) 형태로 뒤에 따라 나올 모든 것의 골자 자체를 펼쳐주는 그러한 서론들이다. 계시록의 첫 세장의 형식은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Kallas)13). 그러므로 계시록을 읽는 사람은 부분 속에서 전체를 보고, 전체 속에서 부분을 봐야 한다. “2-3장 따로, 4장 이하 따로” 식으로 읽어서는 안된다. < 계속 >
내가 이런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화평을 지니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하시더라(요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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