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가 된 어머니를 구한 아들
부처님이 마다가국 왕사성의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실 때였다.
이 성중에 거부(巨富) 장자가 있었는데, 그는 문벌이 매우 좋은 집의 딸과 결혼하여 매일 기악(妓樂)을 즐기며 보냈다. 결혼한 지 열 달 만에 장자의 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 세상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얼굴이 단정하고 빼어났으므로 부모의 기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우다라(優多羅)라고 지었다.
이 아이가 자라나 청년이 되었을 무렵에 먼저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이 청년은 ‘우리 아버지는 장사를 하였으니 나의 대에 와서는 이 업을 그만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가 하루는 어머니에게 출가할 뜻을 비쳤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하나뿐인 너를 믿고 살아왔는데 어찌하여 나를 버리고 출가하려 하는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출가할 수 없다. 내가 죽은 뒤에 출가를 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거라.”
이 청년의 소원은 이후에도 번번이 꺾이었다. 이 청년은 매일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하루는 단단히 마음속으로 각오를 하고 어머니께 사뢰었다.
“어머니께서 끝까지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바위에서 떨어지거나 독약을 마시고 죽어 버리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이러다가는 정말 아들을 죽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드러운 말로 타일렀다.
“그런 말을 해서는 못쓴다. 무엇 때문에 꼭 출가를 하려고 하느냐? 그렇다면 지금부터 여러 비구와 바라문들을 청해서 공양을 올리도록 해라. 너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준비해 주겠다.”
청년은 이 말을 듣고는 조금의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여러 비구들과 바라문들을 자주 집으로 청해서 공양을 베풀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주 이런 공양을 베풀게 되니 그의 어머니는 몹시 짜증이 났다. 비구들과 바라문들이 보기도 싫어졌다. 어머니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계획을 세웠다.
어느 날 아들이 외출하고 없는 틈을 타서 비구들과 바라문들을 초청해 모이게 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스스로 생활할 생각은 하지 않고 백성의 집에 의존만 하려 하니 보기도 싫다.”
그리고는 장만했던 음식을 땅바닥에다 팽개쳐 버렸던 것이다. 저녁 때가 되어 아들이 돌아오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내가 비구들과 바라문들을 청해 음식을 베풀었단다.”
그러면서 음식물 버린 곳으로 데려가 음식을 장만했다는 것을 확인시키면서 거짓말까지 보탰다.
“내가 정성들여 공양을 베풀었더니, 잡숫고는 곧 떠나셨다.”
이렇게 해서 후일 그의 어머니는 목숨을 마치자 아귀지옥에 떨어졌다. 한편 그의 아들은 출가하여 열심히 수행한 탓으로 아라한과를 얻어 어느 강 언덕의 굴속에서 참선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그 굴속에 아귀가 나타나 굶주림과 목마름에 허덕이는 모습으로 아들이 참선하는 옆에 와서 말했다.
“내가 바로 너의 어머니란다.”
아들은 그 아귀가 어머니임을 즉시 알고는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께서는 살아 계실 때 손수 비구들과 바라문들에게 정성껏 공양을 하셨는데 어찌하여 아귀지옥에 떨어지는 과보를 받았습니까?”
“아니다. 나는 그 당시 비구들과 바라문들을 정성껏 공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귀의 몸을 받아 20년 동안 음식과 마실 것을 얻어먹지 못했다. 강, 샘, 못 등 물이 있는 곳에 가면 물이 절로 마르고, 과일나무가 있는 곳을 가보면 과일나무가 절로 말라버리므로 지금 나의 이 기갈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구나.”
“무슨 말인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어머니.”
“내가 그 당시 공양은 베풀었지만 짜증스런 마음이 생겨 그분들을 정성껏 공양하지 않고 욕설을 퍼부은 탓으로 그 과보를 받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네가 나를 위해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을 베풀어 보시하고 나를 위해 참회한다면 나는 반드시 아귀의 몸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어머니가 불교에 귀의하여 바른길을 걷게 하기 위해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해 갖가지 맛난 음식을 공양하였다. 공양을 마칠 무렵 과연 어머니인 아귀가 모임에 몸을 나타내어 모든 사실을 참회하였다. 부처님도 아귀를 위해 갖가지 진리를 말해 주시니 아귀는 마음속으로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그래서 그날 밤 목숨이 끝나 다시 몸을 받기는 했으나 날아다니는 아귀의 몸을 받아 천관(天冠)을 쓰고 보배 목걸이로 장엄하여 아들의 처소로 내려와 다시 말했다.
“나는 아직도 아귀의 몸을 벗지 못했다. 네가 나를 위해 한 번 더 음식과 의복 등을 스님들에게 공양해야만 이 아귀의 몸을 완전히 벗을 수 있겠구나.”
이 말을 듣고 아들은 다시 음식과 의복 등을 갖추어 스님들에게 공양하였는데, 그 공양을 마칠 무렵에 아귀는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나 참회하였다. 그리고 그날 밤 목숨이 끝나 도리천에 왕생하게 되자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무슨 복을 지었기에 천상에 태어났는가를 관찰해 보니, 내 아들이 부처님과 여러 스님들을 청해 갖가지 음식을 베풀었기 때문에 아귀의 몸을 벗고 천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부처님과 아들의 은혜를 갚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즉시 천관을 쓰고 보배로 몸을 장엄하여 향과 꽃을 가지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부처님과 그의 아들에게 공양한 다음 한쪽에 물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은 그녀를 위해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녀는 곧 마음의 깨달음을 얻고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을 세 번 돌아서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
부처님께서 이 우다라의 인연을 말씀하실 때 그 모임에 있던 여러 비구들도 모두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어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찬집백연경》
불교에서는 위로부터 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여섯 세계를 설정해 놓고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중생은 이 세계를 윤회한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장자의 어머니는 여섯 세계 중에서 아귀에 덜어져 고통을 받다가 결국은 아귀의 세계를 벗어나 천상의 세계에 태어나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불교는 자신이 지은 행위(業)에 의해서 천상에도 태어나거나 아귀에 덜어지게 하는 것은 신이나 악마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신의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아귀세계는 반드시 사후의 세계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고통의 세계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영화를 누리다가 단죄를 받아 감옥살이하는 것이 바로 현실의 아귀이며 지옥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행위의상속자로서의 자기’를 보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이러한 자각은 마땅히 오늘을 바르게 살고, 바른 행위를 쌓도록 하는 데에 있다.
신지우(申智宇)스님 엮음 《부처님의 그림자 중생의 그림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