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님의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지난 27일 신양생활관 옆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님의 흉상 앞에서, 21일 별세하신 정석규 이사장님을 추모求�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조삼현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 및 학생 등 수십 명이 참석하여 국화를 헌화하며 그 분의 뜻을 기렸습니다.
정석규 이사장님은 1929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셨으며, 매우 가난한 학창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부산공업고등학교 22회 졸업생으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부산에서 서울대 공대 화공과를 다니며 고무공장에 취업하셨고 이후 1967년 태성고무화학을 설립하셨습니다. 처음으로 방적기에 사용하는 고무를 국산화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석규 이사장님은 돈이 없어 공부하기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1998년 후두암 판정과 1999년 미국 하버드 대학 등을 돌아보면서 동문들의 기부금이 많은 것을 보신 것은 정석규 이사장으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기부에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7년 1,000만원으로 시작한 기부는 해가 갈수록 그 규모가 커졌고 1998년에는 5억원으로 신양문화재단을 세우셨습니다. 2001년에는 자신이 세우고 키운 태성고무화학을 매각한 뒤에 이 자금을 재단에 쏟아 부으셨습니다. 정석규 이사장님은 지금까지 부산공고에 40여억, 서울대에 450여억 등 모교에 총액 500억 원 이상을 기부를 하셨습니다.
모교인 부산공고에 1998년부터 매년 2000만원씩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후원하셨고 신양부산공고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총 20억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여 매년 많은 학생들이 장학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11억 4천만 원의 사비를 들여 4층 규모의 최신식 편의시설을 갖춘 신양생활관(기숙사)을 건립 기증하셨습니다. 또한 올해는 총 건설비 9억 3천만 원이 소요된 신양 기념관’을 건립 기증하셨습니다.
이처럼 많은 돈을 기부하셨지만 정작 자신은 검소한 삶을 사셨습니다. 살아생전 35평짜리 오피스텔에 사시면서 20년 이상 된 양복을 입고 굽이 뜯어진 빛바랜 구두를 신고 다니셨으며, 점심은 2,500원짜리 학생식당을 이용하셨습니다. 먹다 남은 짜장면을 싸 가신 유명한 일화는 이사장님의 검소한 삶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돈은 분뇨와 같아. 그저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를 풍기지만, 밭에다 고루 뿌리면 풍성한 수확을 거둔다.”
남에게서 받는 것 보다 남에게 주는 것을 더 즐겁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기부를 하지 못한다. 기부라는 것은 일시적으로 돈을 소비해버리는 것이 아니다. 기부는 미래에 대한 가치 있는 투자이며 아름다운 유산을 후세에 남기는 것이다.”
내가 사회에서 얻은 재물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얻은 것이니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한다.”
선배님의 말씀 속에 담긴 깊은 뜻과 실천의 삶은 우리 기억 속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