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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최혜경 선생님 카페에서
발도르프 인증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인증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진행시키다가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생각하고,
이 인생이 이렇게 꼬인^^ 그 첫걸음을 생각하며
우연히 아주 옛날 교대생 시절 카페를 들어갔더니
그때 썼던 글이 있네요. 또 댓글들도.
20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때 저의 고민들이 어떻게 매듭지어지고 있는지 보게 되네요.
또 댓글 단 사람의 삶들도 (마치 특수교육학 책 강의 뒤의, 사례로 나온 어린이의 삶처럼) 지금까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보니 무엇이 진심어린 말인지, 어떤게 진짜 사람을 돕는 조언인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또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써야할 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네요.
이십대의 마지막이던
스물아홉살의 장뜨꾸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살펴보러 가실까요?
혹시 알아요?
지금 아이들, 잘 자라게 하는데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지...
^^;;
제목: 나에게 선택의 자유를 뺏어주세요...그럼 시키는데로 할께요
작성자:장승규
작성시간:2003.10.06 조회수:697
댓글7
제가 교회 카페에 썼던 내용의 글인데,
아래에 있는 이 글에 대한 리플이 너무도 사람을 심란하게 합니다.
머리도 식힐 겸 한 번 읽어 보시죠..
제목: 내가 지방으로 가려는 이유
그랬다. 적어도 난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지방으로 내려가리라고,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섬마을 선생님이 될 꺼라고...
그것이 지금도 그 개념정의를 정확히 할 수 없는 "참교육"의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udt중사 출신과 초등학교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두가지의 공통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욱 많은 것이 그 두 직업일 것이다.
그렇게 나의 교대 생활은 시작되었다.
섬마을 선생의 처음은 아마도 이러했다고 기억된다.
udt 선배 중 한명이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날 소개할 때,
교대 합격한 후배라면서
(udt하사관 출신 치고는 꽤나 성공한 케이스였으니 그 선배의 입장에선 자랑할 만 하다)
난 전혀 이야기한 적도 없는 이야기를 해 대는 것이었다.
이 후배(그러니까 바로 나)는 낙도나 도서 벽지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대를 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난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난 얼굴만 시골스타일이지,
그 외 모든 생활 패턴은 체질적으로 도시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은 내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화인(火印)으로 남아
날 끝까지 괴롭혔다. 지금 이 순간까지 말이다.
그렇게 교대를 들어와서도
그 화인으로 남은 망령은 날 따라다녔으며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휩싸여 지내기도 하였다.
물론 사고가 조금씩 발달함에 따라 참교육은,
진정한 스승은
꼭 섬마을 낙도에서, 시골 촌구석에서, 깊은 산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만이 진정한 스승이 아니란 것도,
참교육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어쩌면 그런 곳에 있는 선생들이 진급을 위해
일부러 오지로 전근을 간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혼돈스러워 졌다.
그리곤 내 머리속에서 슬슬 잊혀져 버렸다.
단지 티비에서나 가끔씩 나오는 김용택 선생과 그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그냥 이상으로만 꿈꾸는 그런 것들로 내게 희미해져 가기 시작했다.
다시 오늘,,, 임용고사가 몇 일 안남은 시점에서 나는 또 다시 갈등하고 방황한다.
이번엔 경기가 경쟁률이 쎄고, 인천이 안전빵이라더라,
특별 편입생이 어쩌구 저쩌구,,,
나도 이야기를 많이하고 또 다른 이들도 이야기를 많이 해 댄다.
불안한 건 사실이다.
아무리 붙을 자신이 있어도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시험이 닥치게 되면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 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불안해 하는가 하는 반문을 하기도 한다.
이유는 하나, 불안하면 그만큼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는 놀다 지치면 하는 정도니깐.
그러나 아직 어디를 지원해야 하는지 난 결정하지 못한다.
열심히 공부해 온 친구들은 서울을 볼 것이다.
그들을 절대 욕하지 않는다. 아니 욕할 수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들이 교사, 혹은 교직 생활을 하는데 필요로 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꾸준히 노력해 온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난 어디를 보아야 할 것인가?
솔직히 말한다면 나도 내 맘을 잘 모르겠다.
하루에도 열 두번이 더 바뀌는 것이 나의 마음이다.
사실 인천은 그리 가고 싶지 않다. 이상시리도 그리 정이 붙지 않는 도시이다.
그럼 경기? 그럴 수도 있다.
어쩜 경기는 내가 원하는 시골에서의 학교 생활과 도시적 삶의 풍요로움을
같이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시골과 도시가 지역마다 나뉘어 있으니까.
그리고 나머지 한 곳, 경남이다.
대대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우리 집안과 경남은 아무런 연고도 없다.
아니 적어도 연고를 찾는다면 군에 있을 때 잠시 진해라는 곳에서 살던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런 내가 경남을 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경남, 전남, 강원 이 세 지역은 교사가 가장 모자라는 지역이라 한다.
작년의 경우는 전남에 비해 경남이 더더욱 그러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진주교대 사람들이라고 어찌
도시적 삶의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을 버리고 싶어 하겠는가?
그래서 생긴 것이 잘 알고 있는 특별 편입생이다.
그러나 이전의 보수교육생들이 올해처럼 전부 서울, 경기로 재시험을 치르려 하는 것 처럼,
이들도 계약된 기간 이후에는 다시 수도권으로 몰릴 일은 불보듯 뻔하다.
아니 이젠 무자격 학사학위자들이라도 계약제로 시골 학교 교사가 될 수 있다고들 한다.
교대 특별 편입생을 반대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우리가,
아니 나를 제외한 대다수의 교대생들이 반대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정말 이땅의 교육일까?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던 교육이란,
아이들이란 과연 수도권의 아이들, 가진자의 아이들만을 말하던 것일까?
지금 어떤 특단의 대책이 있을 것인가?
이 땅의 예비교사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호소할 것인가? ..... 답이 없다.
혹시나 오해는 하지 말길 바란다.
난 위의 해결책의 선봉으로,
참교육을 지켜 나가겠다는 의지로 지방으로 시험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지방으로 지원할지 안할지 조차 모른다.
나에게는 그렇게 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것에 대한 뿌리깊은 회의감이
군시절부터 베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만약 한달 후 내가 경남으로 임용고시를 보는 이유가 있다면,
단지 조금더 자연적인 곳에서
조금 덜 때가 탄 아이들과 학업과 지식이라는 틀에서 조금은 벗어나,
선생과 제자가 아닌 조금은 수평적인 관계가 맺어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은 경제적인 문제까지 덧붙여저서,
수도권에서보다는 조금 더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있다.
또 현장에 나가서 인천교대라는 끈으로 서로가 서로를 엮고 엮는 꼴을 보기 싫다는
개인적인 취향도 있다.
더 큰 이유는 무난한 임용사정으로 인해
현재 교육학, 교육과정 공부를 좀 게을리 하면서
관심있는 책을 한권이라도 더 읽을 수 있어서 그러하다.
물론 난 걱정을 많이 한다.
서울 토박이가 과연 지방의 생활을 견디어 낼 수 있는가가 가장 큰 걱정이다.
내가 진해에서 몇 년 살때 가장 그리웠던 것이
북적대던 서울의 거리였으니까.
또 그 많던 문화 혜택과 나를 알아주는 친구들이었으니까.
더 중요한 이유는 나이가 찼으니 결혼이라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어느 부모가 수도권도 아닌 지방의 ,
그리고 미래라곤 험난한 교사부인의 삶 이외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의 딸을 쉽사리 내 줄 것인가?
내가 부모라 해도 역시 망설여지는 대목이다.
맘이야 경기에서 몇년 하면서 결혼하고 지방으로 내려가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도 있지만,
내 자신을 너무 잘 아는 난,
아마도 현실에 타협하면서 경기에서 계속 지낼 거란 확신에 찬 상상을 한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오늘 맘을 다잡기 위해,
순대국에 소주한잔 먹으며 돌아오던 집 근처 서점에서 책 두권을 샀다.
김용택의 [촌아 울지마]와 김은주의 [산골마을 작은 학교]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고 아마 난 내년 3월이면 경기나 인천에서 선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슬픈 현실의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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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에 대한 리플...
.. 승규오빠나 화정이가 교대에 들어 간다고 할때
참 잘 어울리는 길을 가는구나 생각했다
근데.. 승규오빠가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걸 보니..
슬퍼지려고 한다.
내가 강원도 오지에 산지도 2년이 넘어 간다.
여기 생활은 정말 따분하고 지루한 하루하루다.
그래도 내가 이 생활을 참고 지내는건 내 남편때문이다.
남편은 군인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산다.
여기에서 근무하는 장교들이 다 그렇다
그런 남편을 가진 사모님(여기선 그렇게 부른다.. )들은
그런남편을 자랑스러워 한다.
그리고 자식들에겐 미안해 한다.
자신은 문화적 혜택을 받고 자랐지만
그에 자식들은 그렇지 못하다.
도시에선 피아노,미술,수영,태권도.... 이런게 기본이겠지만
여기선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서 참 다양한걸 가르쳐 주려한다.
전교생이 30명이 되지 않는 작은 시골학교
소설책에 나올만한 작고 이쁜학교다.
전교생이 서로에 이름을 알고 한 형제처럼 지낸다
선생님들은 4~5명정도...
우린 이런 선생님들을 존경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준다는게 고마운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함께 호흡해 주려는 맘이 고맙다.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이런 맘을 가진 선생님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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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깃발이 올려진다고 합니다.
밥을 먹으며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기분에 소주도 한잔 했습니다.
어쩌면 문제의 가장 쉬운 해결책을 잘 알고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어떻해야 하는지.........정말 고민되는 저녁입니다.
그 고민에 오늘도 술을 마십니다.
누가 나에게 답 해줄 사람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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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시
2003.10.07댓글 메뉴 더보기
첫댓글경기지역에 시험보고 붙어서 교사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생각하실 필요없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곳,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교직은 분명히 성직이지만 교직자는 성직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성직자들도 수도권을 선호합니다. 격오지의 장교들은 근무하는 동안 힘들지만 평생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사시
2003.10.07댓글 메뉴 더보기
그리구 술 그만 마시고 임용고시 공부 더 열심히 하기 바랍니다. 깃발을 올리는 일이 생길 수 있겠으나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은 임용고시 합격입니다. 투쟁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 얘기할 거리가 아니니까 나중에 한번 만나서 술 한잔 하면서 얘기해 봅시다. 그 전에는 술 좀 줄이고.
solidarite
2003.10.08댓글 메뉴 더보기
농어촌의 교사 부족현상에 대한 일련의 고육책에 한탄하면서 자신은 정작 대도시 주변에 머무려는 생각.. 참교육 내지는 공교육을 통한 교육기회의 확대와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이 무너지면, 피탄하는 민중의 삶은 끊임없이 재생산 될 것이기에..
solidarite
2003.10.08댓글 메뉴 더보기
무사시님 말씀처럼 교사가 성직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단순한 직업적 접근만으론 많이 부족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교육이 갖는 사회적, 역사적 역할에 기인했을 때 교사의 책임은 너무도 크고 중요한 것이기에...
The only easy day was yesterday작성자
2003.10.08댓글 메뉴 더보기
solidarite님은 절대 저와 같은 고민의 길이 없으시길 바랍니다...저에게 현실은 항상 이론의 저만큼에 있나봅니다.
자유인
2003.10.08댓글 메뉴 더보기
저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지금 이루지 못한다고 현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꿈과 이상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면 언젠가 꼭 무슨 형태로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유인
2003.10.08댓글 메뉴 더보기
그리고 저는 무사시님과 마찬가지로 경기지역의 임용고시 합격을 바랍니다.

첫댓글 쬐꼬만 나라인데 지방마다 다른 특색이 있는게 신기하고 잼나네요. ^^
구리하야 20년 지난 지금 장쌤은 전남 어느 '촌아 울지마, 작은 풋봄 학교 있으니까' 하시는거져.
숙명은 일찌감치 길을 보여 주지만, 의식은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게 인생의 묘미져.
그 [촌아 울지마]란 책을 쓴 시인 교사가 사는 마을 바로 옆에 사는데.. 정작 그 교사는 촌에 살지도 않고, 슬픈 촌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시를 쓰되, 자신의 자식은 외국으로 유학보내버린 아주 적나라한 현실을 뒤늦게 알려주었지요. ㅋㅋ 근데 말씀처럼 일찍 알았다고 달라졌을까요? ^^
숙명은 일찌감치 길을 보여주지만,
의식은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가능하다!
충청도 빼고 전국 여기저기 떠돌며 살아보니,
그 쬐그만 나라가 정말 다 다르더라고요.
근데... 오늘,
10년 산 이곳 봉서리에서
옆집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다 느낀 것.
이젠 어디가나 완전한 이방인이란 점입니다. ^^
@장승규 되돌아 보면 그게 바로 숙명의 손짓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소소한 일 많지 않아요?
사는 데 바빠서, 달리 말해 가족과 교육과 사회가 요구하는 거에 빠져 살아서 그런 것이 그냥 휙 스쳐 지나가도 모르는 거져.
인지학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요즘 사람들에게 이방인이 아니라 외계인이 되져.
다른 사람들은 저를 보고 왜 저렇게 살까, 저는 그 사람들을 보며 왜 저렇게 부질 없는 거에 매달리나...
대충 뭐 이런 그림. ^^;;
저한테 인지학 못하게 하거나,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한 괜찮아요.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무시해요, 다들 그냥 자기 멋에 따라 사는 거니까요.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대로 부질 없는 것에 매달리고, 저는 저대로 방구석에서 인지학에 미치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