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 한 편, 음악 한 곡] 연담유일의 시 <오른손이 없는 나그네에게>, 슈만의 피아노 사중주 한 곡
오른손이 없는 나그네에게(贈無右手客)
연담유일(蓮潭有一, 1720~1799)
관세음보살님에게는 천 개의 손이 있다네
바른 눈으로 보면 누구나 관세음보살이지
손 하나 없는 것이 도대체 무슨 걱정인가
아직도 구백구십구 개의 손이 남아 있거늘
觀音菩薩有千手 正眼看來誰不有 一箇雖殘何須嫌 猶存九百九十九
- 『연담대사임하록(蓮潭大師林下錄)』(H10, 221c18-c20)
[감상]
연담유일 선사가 계시는 사찰에 한 나그네가 찾아왔습니다. 이분은 어린 시절 다쳐서 팔 하나를 잃었습니다.
“스님, 저는 어린 시절 팔 하나를 잃은 뒤로 세상 사는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남들이 다하는 씨름도 못하고 줄다리기도 못하고 자치기도 못해봤습니다. 저를 좋아할 여자도 없을 것 같아 혼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시 한 편 지어볼 테니, 잘 들어보게!”
“관세음보살님에게는 천 개의 손이 있다네
바른 눈으로 보면 누구나 관세음보살이지
손 하나 없는 것이 도대체 무슨 걱정인가
아직도 구백구십구 개의 손이 남아 있거늘”
관세음보살님은 천 개의 손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천 개의 손도 모자랍니다.
연담유일 선사가 보기에는 관세음보살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마음을 잘 다지면 누구나 관세음보살이고, 관세음보살의 마음이라면 천 개의 손이 있는 거나 진배없습니다. 천 개의 손 중에 손 하나가 없어졌다면, 나머지 999개의 손이 있는 셈입니다.
장애가 있어도 큰일을 해낸 분들을 우리는 무수히 알고 있습니다. 미국 조지메이슨대 특수교육과 정유선 교수는 뇌성마비로 말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신 분이지만, 학교에서 ‘최고 교수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녀가 소극적이었던 성격을 바꾼 것은 고등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편지 한 통 덕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자기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한계를 긋는 일, 그게 장애”라는 선생님 말씀에 한마음 돌이켜 인생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정유선은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조지메이슨대(학사), 코넬대(석사)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조지메이슨대에서 보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스스로 본인이 부족하다는 퇴굴심(退屈心)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물론 자신의 능력 이상의 욕심을 부리는 것이 행복의 길에 도움되지 않을 수 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에도 도전하지 않는 것은 늘 모험하고 도전했던 부처님의 길과는 배치됩니다.
연담유일 선사의 시를 읽으며, 부처님 가르침을 구현하는 출가수행자의 길에서 퇴굴심을 일으켜 스스로 물러서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연담유일(蓮潭有一, 1720~1799) : 1720(숙종 46)∼1799(정조 23). 조선 후기의 스님.
성은 천씨(千氏). 자는 무이(無二), 법호는 연담(蓮潭). 전라남도 화순 출신. 5세 때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10세에 ≪통감 通鑑≫, 12세에 ≪맹자≫를 읽었다. 7세 때 아버지가, 13세 때 어머니가 죽은 뒤 숙부의 보살핌을 받았다.
≪대학≫·≪중용≫ 등 유가경전을 공부한 뒤, 18세 때 승달산 법천사(法泉寺)의 성철(性哲)을 따라 출가하였고, 19세 때 안빈(安賓)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보흥사(普興寺)에서 사집(四集)을 배운 뒤 대둔사(大芚寺)벽하(碧霞)로부터 ≪능엄경≫을, 용암(龍巖) 밑에서 ≪기신론 起信論≫과 ≪금강경≫을, 취서사(鷲棲寺)영곡(靈谷)으로부터 ≪원각경 圓覺經≫을 배웠다.
22세 때 해인사의 체정(體淨) 밑에서 3년 동안 공부하여 선리를 터득하였고, 상언(尙彦)에게서 ≪화엄경≫을 배우면서 28세까지 시봉(侍奉)하였다. 29세 때 강원도 장구산(長丘山)에 53불(佛)을 조성하였고, 체정을 증명사(證明師)로 모셨다.
31세 때 보림사(寶林寺)에서 ≪반야경≫과 ≪원각경≫을, 다음해에 ≪현담 玄談≫을 강의하기 시작하여 60세까지 30여 년 동안 계속하였다.
58세 때 영남 종장(宗匠)으로 해인사에 있으면서 서산(西山)의 비석을 대둔사에 세웠다. 60세 때 시기하는 승려의 투서 때문에 퇴암(退庵)과 함께 수일 동안 투옥된 일이 있었다. 78세 때 보림사 삼성암(三聖庵)으로 옮긴 뒤 80세에 입적하였다.
교학(敎學)뿐 아니라 선도를 함께 닦은 고승으로서, 법맥상으로 볼 때는 체정의 제자이고 상언을 동문이면서 스승으로 받들었다. 서산의 의발(衣鉢)을 전수함으로써 선교(禪敎)의 총본산인 전라남도 해남대흥사(大興寺)의 12대종사(大宗師) 중 1인이 되었다.
31세 때 강석(講席)을 연 뒤 30여년 동안 강의하면서 사집·사교 및 ≪화엄현담 華嚴玄談≫·≪염송 拈頌≫에 대한 사기(私記)를 저술하되 기존 사기를 면밀히 검토하여 후학들의 현혹됨이 없게 하였다.
특히, ≪도서 都序≫와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에 대하여 정혜(定慧)의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이지(理智)로 판단하여 본뜻을 잃었다고 비판하면서 호암(虎巖)의 사지현전(事智現前)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염불도 입으로만 외우지 말고 마음으로 해야 자심정토(自心淨土)와 자성미타(自性彌陀)가 원활하게 현전(現前)한다고 하여 염불과 참선이 일치함을 주장하였다.
중생과 제불의 마음은 각각 원만하고 완전하여 원래 하나이고 총괄적인 대실재에 귀일하며, 하나의 마음은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선악의 구별이 없으나 더럽고 깨끗한 훈습(薰習)에 의하여 선악 등이 있게 된다고 하였다.
저서에는 ≪서장사기 書狀私記≫ 1권, ≪도서사기 都序私記≫ 1권, ≪선요사기 禪要私記≫ 1권, ≪절요사기 節要私記≫ 1권, ≪기신사족 起信蛇足≫ 1권, ≪금강하목 金剛蝦目≫ 1권, ≪원각경사기 圓覺經私記≫ 2권, ≪현담사기 玄談私記≫ 2권, ≪대교유망기 大敎遺忘記≫ 5권, ≪제경회요 諸經會要≫ 1권, ≪염송착병 拈頌着柄≫ 2권, ≪임하록 林下錄≫ 등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음악 한 곡] 슈만의 피아노 사중주 E 플랫 장조, 작품번호 47, 3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https://youtube.com/watch?v=Rd8PDCOB2uI&feature=share
[부처님오신날 봉축발원문]
https://youtu.be/NoniePJm7zs
[국내 유일 출가수행자를 위한 정규대학 ‘중앙승가대’ 후원회 봉축 연등 접수 안내]
불기2566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교내 화엄전에 연등접수를 받고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지혜와 사랑의 등불을 밝혀 부처님의 가피로 가내 두루 평안하시기를 기원하며 후원자님들의 많은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동참비용: 5만원 이상
동참계좌: 282401-04-222021(국민, 중앙승가대학교)
문의사항: 031-980-7892
- 중앙승가대학교 대외협력국-
중앙승가대에 연등 접수하신 분은 제게 주소와 성함 알려주십시오. 제가 기도할 때 축원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