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비례대표)이 지난 2월 21일 중국의 탈북자 북송을 규탄하며 시작한 단식농성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탈북자 북송 반대 시위가 열리는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은 탈북자 인권을 상징하는 국제적 장소로 떠올랐다. 지난 3월 1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4차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회의’에서도 탈북자 북송과 탈북자 인권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탈북자 문제는 이제 세계인이 주목하는 인권 이슈로 부상했다.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고 싶어하는 중국 내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만큼 한편에선 우리 내부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내 정착 탈북자 수가 이미 2만5000명을 넘어섰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과 배려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는 더 이상 ‘소수의 귀순자’로만 볼 수 없으며 이들을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품고 주요한 인적자원으로 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탈북자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주간조선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탈북자 연쇄 인터뷰를 내보낸다. 지난해 연재 기사가 북한의 다양한 직업 체험기를 통해 북한 사회를 제대로 알자는 취지에서 시도한 것이었다면 이번 시리즈는 우리 사회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성공 스토리를 통해 ‘우리 안의 탈북자 사회’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연재 기사는 사단법인 통일문화연구원(이사장 라종억)의 자문을 받아 진행된다. 통일문화연구원 연구기획실장 강동완 교수(동아대)는 “북한이탈 주민의 성공적 정착 사례는 우리 사회의 북한이탈 주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탈북자 한준(30대)·김수진(30대)씨 부부가 한국에 온 이후 여섯 번째로 개업한 매장이다. 2006년 무일푼으로 두만강을 건넌 한씨 부부는 어느새 서울시내 4곳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됐다. 2개의 편의점은 이미 권리금을 받고 처분했다. 창업에 뛰어든 지 5년 만의 성과다. 편의점 매장들은 한씨 부부가 일군 ‘코리안 드림’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한씨는 “북에 두고 온 가족이 우리 때문에 받는 핍박을 생각하면 손을 놓은 채 지낼 수가 없었다”며 “열심히 돈을 벌어놔야 통일이 됐을 때 지금까지 내레(내가) 없어 고생했던 부모님을 꽃방석에 앉혀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아직 북한 말씨가 강하게 남아 있는 그는 이북에 두고 온 가족이 한국으로 올 때를 대비해 그토록 열심히 일해왔다.
여섯 살 딸 위해 남한으로
한씨 부부는 2006년 함경북도에서 두만강을 건너 한국으로 들어왔다. 6살 난 딸과 함께였다. 한씨의 가족은 북한에서 중산층으로 살며 경제적으로 아쉬울 것이 없었다. 한씨는 북한에서 청년동맹일꾼이었다. 그의 주업무는 북한에서 적대 국가로 규정하는 남한과 미국에서 유입되는 비디오물 등을 단속·통제하는 것이었다. 압수한 영상을 다 봤다는 그는 “제가 북한 국경을 넘을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가 ‘호텔리어’ ‘겨울연가’였다”고 말했다.
한씨는 자신이 하는 일 때문에 남한 사회의 문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게 됐다. 그는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데 우리(북한)는 너무 닫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북한에서 자랄 우리 딸이 내 나이가 됐을 때도 북한은 지금처럼 정체돼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한국에 가고 보자고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정착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 처음 정착 지원금으로 600만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기초생활수급비가 매달 80만원이 나왔죠. 그런데 제가 한 보안업체에 출동요원으로 취업하자마자 이 수급비가 끊겼습니다. 4대 보험이 보장되는 직장이었기 때문이죠. 그래봤자 급여가 130만원이고 4대 보험이랑 이것저것 떼고 하면 남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한씨 부부는 창업 쪽으로 눈을 돌렸다. 함흥 전통순대란 상호의 식당을 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한씨 부부는 북한식 음식은 한국 사람들 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두 달 만에 식당을 접었다. 한씨 부부는 또 다른 창업 아이템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들이 떠올린 건 도·소매 유통업이었다. 한씨는 “도·소매업은 특별한 손맛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거래처 관리 잘하고 들어온 물건 관리 잘하면 누구나 하겠더라”고 말했다. 한씨 부부는 2007년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66㎡ 규모의 슈퍼마켓을 인수하며 다시 사업의 길로 나섰다.
한씨의 예상대로 슈퍼마켓 사업은 한동안 순풍을 탔다. 어떤 가게 주인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한 덕분이었다. 한씨 부부는 어느 정도 매출을 올리면 권리금을 받고 나오는 방식으로 가게를 확장 개업했다. 현재 서울 은평구 뉴타운2지구, 강서구 화곡동, 양천구 신월동, 양천구 목동에 점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업형슈퍼마켓(SSM)이 발목을 잡았다. 부인 김씨는 “몇 년 전부터 가게가 적자로 돌아섰다”며 울상을 지었다.
창업 노하우를 사업 아이템으로
한씨 부부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야 했다. 이들은 주변에 창업을 희망하는 탈북자들이 많은 것에 주목했다. 자신들의 창업 노하우를 사업 아이템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오프라인 시장으론 어렵다. 온라인 시장을 찾자”는 생각을 하고 지난해 12월 탈북자들을 위한 인터넷 정보 공유사이트 ‘두드림(nkdodream.com)’을 개설했다. 처음에 두드림 사이트는 생각보다 반응이 없었다.
기회는 의외의 순간에 찾아왔다. “지난 2월 당진에 계시는 어떤 남자분이 좋은 북한 여성이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했어요. 그 분에게 주변에 알고 지내던 탈북자 여성을 한 명 소개시켜 드리고는 그 후기를 아무 생각없이 게시판에 올렸거든요. 그런데 이게 반응이 대박인 거라. 댓글도 많이 달리고 그 다음부터 사무실로 막 전화도 오고 그러더라고요.”
‘자신도 북한 여성을 소개시켜 달라’ ‘괜찮은 한국 남성을 만나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지자 한씨 부부는 아이디어를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다. 지난 2월엔 아예 한국 남성과 탈북 여성의 만남을 주선하는 결혼정보업체 ‘엔케이듀오’를 만들었다. 이 업체의 대표를 맡은 김씨는 “탈북 여성은 한국 사회에서 안정적인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고, 혼기를 놓친 남한 남성은 배우자가 필요한데 그 요구가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남남북녀 콘셉트로 회사를 세웠다”고 말했다. 김씨가 밝힌 엔케이듀오 사이트 방문자 수는 하루 1600명 정도이며 3월 15일 현재 회원 수는 남자 75명, 여자 53명이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이제 막 보름을 넘겼지만 벌써 2쌍의 커플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대표 김씨를 포함해 탈북자 출신 커플매니저 4명이 꾸려가고 있다. 김씨는 “슈퍼가 잘 안 돼서 새 길을 찾으려는 찰나 찾아온 기회”라며 “앞으로 우리 부부의 사업 비중이 결혼정보업체 쪽으로 많이 옮겨갈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자 위한 사회적기업 추진
지난 3월 15일 엔케이듀오 사무실을 찾았을 때 민생경제정책연구소(이사장 김진홍) 경영지원단 관계자들이 나와 사회적기업 방안에 대해 상담하고 있었다. 한씨는 “올 4월 서울형 사회적기업 신청을 하려고 한다”고 설명하며 “앞으로 이 결혼정보업을 사회적기업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직원 전원을 탈북자로 고용해 탈북자 일자리 창출에 일조하겠다는 계획이다.
탈북자들을 위한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한씨 부부의 꿈이자 이들만의 통일 준비이기도 했다. 한씨는 “한국에 온 탈북자의 역할은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넘어왔을 때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무슨 이유로 국경을 넘었든지 간에 어쨌든 탈북자는 도망자”라며 “우리가 거기를 떠났기 때문에 북한에 남아 있는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핍박을 받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너네 우리 두고 거기(한국) 먼저 건너가서 뭘 했냐’고 했을 때 뭐라고 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며칠 잠을 못 잤어요. (김정일이) 생각보다 빨리 죽은 거예요. 어쩌면 통일이 앞당겨질 수 있겠단 생각에 도대체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그 세월 동안 해둔 게 없는데….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한씨는 최근 불거진 중국의 탈북자 북송 문제에 대해선 나름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는 “중국과 북한은 국제 여론에 신경쓰지 않는다”며 “중국과 북한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탈북자 북송문제가 나오자 한씨는 이전과는 달리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더 이상 북송을 두고볼 수 없어 이슈화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탈북자 북송 반대 운동은 조금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북송된 탈북자들이 더 가혹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고 북한에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지나친 이슈화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북한은 정답이 확실히 나와 있는 사회예요. 저처럼 북에 아직 가족이 있는 사람으로선 아무래도 (탈북자 북송 반대를 위해) 섣불리 행동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한국은 정답이 없는 사회잖아요. 그러니 탈북자 북송 문제에 대해서도 ‘이게 옳다, 저게 옳다’ 할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북송 반대 집회에 나온 탈북자들도 자기 생각(신념)이 있어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