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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五回 智荀息假途滅虢 窮百里飼牛拜相
제25회: 지혜로운 순식이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하고 궁한 백리해가 소를 길러 재상이 되다.
話說,晉獻公內蠱於驪姬,外惑於「二五」,益疏太子,而親愛奚齊。只因申生小心承順,又數將兵有功,無間可乘。驪姬乃召優施,告以心腹之事:「今欲廢太子而立奚齊,何策而可?」施曰:「三公子皆在遠鄙,誰敢為夫人難者?」驪姬曰:「三公子年皆強壯,歷事已深,朝中多為之左右,吾未敢動也。」施曰:「然則當以次去之。」驪姬曰:「去之孰先?」施曰:「必先申生。其為人也,慈仁而精潔。精潔則恥於自污,慈仁則憚於賊人。恥於自污,則憤不能忍,憚於賊人,其自賊易也。然世子跡雖見疏,君素知其為人,謗以異謀必不信。夫人必以夜半泣而訴君,若為譽世子者,而因加誣焉,庶幾說可售矣。」
한편, 진헌공은 안으로는 여희에게 빠지고, 밖으로는 이오(二五 ; 동관오와 양오)에게 미혹되어 더욱 태자 신생을 멀리하고 해제(奚齊)를 사랑하게 되었다. 오직 이 때문에 태자 신생은 더욱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헌공에게 순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여러 번 군사들을 이끌고 나아가 공을 세웠기에 두 사람 사이에 틈이 생기지는 않았다. 여희가 곧 배우 우시(優施)를 불러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말하기를, “지금 태자를 폐하고 해제를 세우고 싶은데 무슨 좋은 계책이 없겠는가?” 하니, 우시가 말하기를, “세 공자는 모두 먼 변방에 있는데 누가 감히 부인을 어렵게 하겠습니까?” 했다. 여희가 말하기를, “세 공자가 모두 나이도 들었고 세상에 대한 경험도 많으며, 또한 조정의 많은 대신들이 좌우에서 돕고 있으니 내가 아직 감히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하니, 우시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마땅히 순서대로 제거하면 됩니다.” 했다. 여희가 말하기를, “누구를 먼저 제거해야 하겠는가?” 하니, 우시가 말하기를, “반드시 먼저 태자 신생을 죽여야 합니다. 신생은 위인이 인자하고 정결(淨潔)합니다. 정결한 자는 자신이 더럽혀지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인자한 자는 자기를 해치려는 자를 꺼립니다. 자신이 더럽혀지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하면 분노를 참지 못하게 되고, 자기를 해치려는 사람을 꺼리게 되면 스스로를 해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세자가 비록 (주군과) 멀어졌다 하나 주군께서는 평소에 세자의 사람됨을 알고 계시는지라 모략해 보았자 틀림없이 주군께서는 믿지 않습니다. 부인께서는 반드시 밤에 눈물을 흘리며 주군께 호소하되 마치 세자의 좋은 점을 칭찬하는 척하다가 점차 모함한다면 주군도 거의 그 말을 믿게 될 것입니다.” 했다.
驪姬果夜半而泣,獻公驚問其故,再三不肯言。獻公迫之,驪姬對曰:「妾雖言之,君必不信也。妾所以泣者,恐妾不能久侍君為歡耳!」獻公曰:「何出此不祥之言!」驪姬收淚而對曰:「妾聞申生為人,外仁而內忍。其在曲沃,甚加惠於民,民樂為之死,其意欲有所用之也。申生每為人言:君惑於妾,必亂國。舉朝皆聞之,獨君不聞耳。毋乃以靖國之故,而禍及於君。君何不殺妾,以謝申生,可塞其謀。勿以一妾亂百姓。」獻公曰:「申生仁於民,豈反不仁父乎?」驪姬對曰:「妾亦疑之。然妾聞外人之言曰:匹夫為仁,與在上不同。匹夫以愛親為仁,在上者以利國為仁。苟利於國,何親之有?」
여희가 과연 깊은 밤에 흐느껴 우니, 진헌공이 놀라 그 까닭을 물었으나 두세 번 대답하지 않았다. 헌공이 추궁하자 여희가 대답하기를, “첩이 비록 말씀을 드린다 해도 주군께서는 틀림없이 믿지 않으실 것입니다. 첩이 우는 까닭은 머지않아 주군을 모시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해서입니다.” 했다. 진헌공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런 불길한 말을 하는가?” 하니, 여희가 눈물을 거두고 대답하기를, “첩이 듣건대, 신생은 사람됨이 겉으로는 인자하고 안으로는 참을성이 많다고 합니다. 곡옥(曲沃)에 있으면서 백성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서 백성들이 그를 위해 즐겨 죽을 것이라고 하니, 그 뜻하는 바가 따로 있을 것입니다. 또한 신생은 매번 사람들에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첩에게 미혹되어 반드시 나라를 어지럽힐 것이다.’라고 합니다. 모든 조정 대신들이 다 알고 있는데 홀로 주군께서만 모르고 계십니다. 아마도 나라를 바로잡으려 하신다면 재앙이 주군께 미칠 것입니다. 주군께서 왜 첩을 죽여 신생에게 사죄하고 그 음모를 막지 않으십니까? 첩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을 어지럽히지 마십시오.” 했다. 진헌공이 말하기를, “신생이 백성들에게도 인자하게 하는데 어찌 도리어 그 아비에게 인자하지 않겠는가?” 하니, 여희가 대답하기를, “첩도 역시 그것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첩이 바깥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필부의 인자함과 윗사람의 인자함은 같지 않다. 필부는 부모 형제나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인자함으로 삼지만,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을 인자함으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진실로 나라를 이롭게 하는 일에 부모 형제나 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했다.
獻公曰:「彼好潔,不懼惡名乎?」驪姬對曰:「昔幽王不殺宜臼,放之於申,申侯召犬戎,殺幽王於驪山之下,立宜臼為君,是為平王,為東周始祖。至於今,幽王之惡益彰,誰復以不潔之名,加之平王者哉?」獻公意悚然,遂披衣起坐,曰:「夫人言是也!若何而可?」驪姬曰:「君不若稱耄而以國授之。彼得國而厭其欲,其或可以釋君。且昔者,曲沃之兼翼,非骨肉乎?武公惟不顧其親,故能有晉。申生之志,亦猶是也。君其讓之!」獻公曰:「不可。我有武與威以臨諸侯。今當吾身而失國,不可謂武,有子而不勝,不可謂威。失武與威,人能制我,雖生不如死。爾勿憂,吾將圖之。」
진헌공이 말하기를, “그는 결백함을 좋아하니,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소?” 하니, 여희가 대답하기를, “옛날 주나라 유왕(幽王)이 아들 의구(宜臼)를 죽이지 않고 외가인 신(申)나라로 추방했다가, 결국 신후가 견융을 불러들여 유왕을 여산 아래에서 죽이고 의구를 군주로 세웠는데 그가 주나라 평왕(平王)으로 동주(東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유왕의 악명은 더욱 드러나지만, 누가 깨끗하지 못한 이름을 평왕에게 더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했다. 진헌공은 그 말의 뜻이 두려워서 옷을 걸치고 일어났다가 앉더니 말하기를, “부인의 말이 맞소. 어찌해야 되겠소.” 하니, 여희가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늙었다는 핑계로 나라를 세자에게 물려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 세자는 나라를 얻어 그 뜻하는 바를 이루어 혹시 주군을 용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옛날에 곡옥(曲沃)과 익(翼)은 골육 관계가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선군(先君)인 무공(武公)께서는 단지 골육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익 땅을 애후로부터 빼앗아 진(晉)나라를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신생의 뜻도 역시 이와 같으니 주군께서는 이 나라를 세자에게 양보하십시오.” 했다. 진헌공이 말하기를, “그것은 불가한 일이오. 힘과 위엄을 갖추어 제후들에게 임하고 있는 내가 지금 당장 나라를 물려준다면 힘을 잃게 되고 또한 자식이 있다 한들 복종하지 않게 되니 위엄도 없어질 것이오. 힘과 위엄을 잃게 되면 남이 나를 통제할 것인데, 이것은 비록 살아 있다 한들 죽은 것보다 못할 뿐이오. 부인은 너무 근심하지 마시오. 내가 장차 이 문제를 해결하겠소.” 했다.
驪姬曰:「今赤狄皐落氏屢侵吾國,君何不使之將兵伐狄,以觀其能用眾與否也?若其不勝,罪之有名。若勝,則信得眾矣。彼恃其功,必有異謀,因而圖之,國人必服。夫勝敵以靖邊鄙,又以識世子之能否,君何為不使?」獻公曰:「善。」乃傳令使申生率曲沃之眾,以伐皐落氏。少傅里克在朝,諫曰:「太子,君之貳也。故君行則太子監國。夫朝夕視膳,太子之職,遠之猶不可,況可使帥師乎?」獻公曰:「申生已屢將兵矣。」里克曰:「向者從君於行,今專制,固不可也。」獻公仰面而嘆曰:「寡人有子九人,尚未定孰為太子,卿勿多言!」
여희가 말하기를, “지금 적적(赤狄) 오랑캐 고락씨(皐落氏)가 누차에 걸쳐 우리나라를 침략하는데,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세자를 시켜 군사를 이끌고 오랑캐를 쳐서 군사를 부리는 그의 능력을 보시지 않습니까? 만약 그가 승리하지 못하면 죄를 물을 명분을 얻게 되고, 승리한다면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얻게 되어 그 공을 믿고 반드시 다른 뜻을 품을 것입니다. 그때 주군께서 도모하시면 나라 사람들도 반드시 승복할 것입니다. 무릇 적을 이겨서 변경을 안정시키고, 또한 세자의 능력을 알아보는 것인데,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시키지 않으십니까?” 하니, 진헌공이 말하기를, “좋소.” 하고, 이에 사자를 신생에게 보내어 곡옥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락씨를 치라는 명을 전하게 했다. 세자의 소부(少傅) 이극(里克)이 조정에 있으면서 진헌공에게 간하기를, “태자는 군주의 다음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군주가 나라 밖으로 행차할 때는 태자가 감국(監國)이 됩니다. 또한 아침저녁으로 부왕의 식사를 보살피는 일도 태자의 직책입니다. 멀리 가는 것(곡옥성을 다스리는 일)도 불가한데, 하물며 군사를 지휘하여 원정을 나가야 하겠습니까?” 하니, 진헌공이 말하기를, “태자 신생은 이미 여러 번 군사를 거느렸소.” 했다. 이극이 말하기를, “옛날에는 주군을 따라 종군했을 뿐이지만, 지금은 세자가 책임을 지고 군사들을 지휘해야 합니다. 그런 연유로 불가합니다.” 하니, 진헌공이 하늘을 쳐다보고 한탄하며 말하기를, “과인에게는 아들이 아홉 명이나 있는데 누구를 후계자로 삼을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소. 경은 더 말하지 마시오!” 했다.
里克嘿然而退,告於狐突。狐突曰:「危哉乎,公子也!」乃遺書申生,勸使勿戰,戰而勝滋忌,不如逃之。申生得書,嘆曰:「君之以兵事使我,非好我也,欲測我心耳。違君之命,我罪大矣。戰而幸死,猶有令名。」乃與皐落大戰於稷桑之地,皐落氏敗走,申生獻捷於獻公。驪姬曰:「世子果能用眾矣,奈何?」獻公曰:「罪未著也,姑待之。」狐突料晉國將亂,乃托言痼疾,杜門不出。 時有虞虢二國,乃是同姓比鄰,唇齒相依,其地皆連晉界。虢公名醜,好兵而驕,屢侵晉之南鄙。邊人告急,獻公謀欲伐虢。
이극이 말을 못하고 조정에서 물러나서 호돌(狐突)에게 고했다. 호돌이 말하기를, “위험하구나. 공자(公子)여!” 하고, 즉시 편지를 써서 신생에게 보내어 싸우지 말라고 권하고, 싸워도 이기면 시기를 더 받게 되어 도망치는 게 낫다고 했다. 신생이 편지를 읽고 한탄하기를, “군주가 나에게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라고 명을 내린 것은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며 나의 본심을 떠보려고 함이라. 그렇다고 군주의 명을 어기면 더 큰 죄를 짓는 일이다. 내가 전쟁에 나가 다행히 죽으면 오히려 아름다운 이름이 남으리라.” 하고, 신생이 출전하여 직(稷)과 상(桑)의 땅에서 고락씨와 크게 싸웠다. 고락씨가 패해 달아나자 신생이 진헌공에게 싸움에서 이겼다고 보고했다. 여희가 말하기를, “세자가 과연 군사를 잘 부립니다. 어찌하시렵니까?” 하니, 진헌공이 말하기를, “세자의 죄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니 잠시 기다립시다.” 했다. 호돌이 진(晉)나라에 장차 변란이 일어날 것을 짐작하고 몸에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집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때 우(虞)나라와 괵(虢)나라가 있었는데, (주나라와) 동성으로 서로 이웃하여 입술과 이빨처럼 의지하여 그 땅이 진(晉)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괵나라의 군주 추(醜)는 군대를 좋아하고 교만하여 여러 번 진(晉)나라의 변경을 침범했다. 진나라의 변경을 지키는 사람이 위급함을 알리자, 진헌공이 괵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驪姬請曰:「何不更使申生?彼威名素著,士卒為用,可必成功也。」獻公已入驪姬之言,誠恐申生勝虢之後,益立威難制,躊躇未決,問於大夫荀息曰:「虢可伐乎?」荀息對曰:「虞虢方睦,吾攻虢,虞必救之,若移而攻虞,虢又救之。以一敵二,臣未見其必勝也。」獻公曰:「然則寡人無如虢何矣!」荀息對曰:「臣聞虢公淫於色。君誠求國中之美女,教之歌舞,盛其車服,以進於虢,卑詞請平,虢公必喜而受之。彼耽於聲色,將怠棄政事,疏斥忠良,我更行賂犬戎,使侵擾虢境,然後乘隙而圖之,虢可滅也。」
여희가 청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다시 신생을 시키지 않으십니까? 그는 위세 있는 이름이 이미 드러났으니 그에게 군사를 주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입니다.” 했다. 진헌공은 이미 여희의 말에 빠졌으나, 참으로 신생이 괵나라를 이긴 후에 그 위세가 더욱 제압하기 어렵게 되면 어찌할까 두려워서 주저하고 결정하지 못했다. 진헌공이 대부 순식(荀息)에게 묻기를, “괵나라를 정벌할 수 있겠는가?” 하니, 순식이 대답하기를, “우나라와 괵나라는 아주 화목하여 우리가 괵나라를 공격하면 우나라가 반드시 괵나라를 구할 것입니다. 만약 군사를 옮겨 우나라를 공격하며 괵나라가 또 구할 것입니다. 한 나라로 두 나라를 적대하여 반드시 이겼다는 것을 신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했다. 진헌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과인이 괵나라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단 말인가?” 하니, 순식이 대답하기를, “신이 듣기에 괵나라 군주는 여색을 몹시 좋아한다고 합니다. 주군께서 나라 안의 미녀들을 구해 노래와 춤을 가르친 다음 수레와 의복을 화려하게 치장하여 괵나라 군주에게 바치십시오. 그리고 공손한 말로 화의를 청하면 괵나라 군주는 틀림없이 기뻐하며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가 미녀와 풍악에 빠져서 정사를 돌보지 않으면 충성스런 신하들과는 사이가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뇌물을 견융에게 보내서 괵나라의 국경지방을 어지럽히게 한 다음에 그 틈을 타서 도모한다면 괵나라를 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獻公用其策,以女樂遺虢,虢公欲受之。大夫舟之僑諫曰:「此晉所以釣虢也,君奈何吞其餌乎?」虢公不聽,竟許晉平。自此,日聽淫聲,夜接美色,視朝稀疏矣。舟之僑復諫,虢公怒,使出守下陽之關。未幾,犬戎貪晉之賂,果侵擾虢境。兵至渭汭,為虢兵所敗。犬戎主遂起傾國之師。虢公恃其前勝,亦率兵拒之,相持於桑田之地。獻公復問於荀息曰:「今戎虢相持,寡人可以伐虢否?」荀息對曰:「虞虢之交未離也。臣有一策,可以今日取虢,而明日取虞。」獻公曰:「卿策如何?」荀息曰:「君厚賂虞,而假道以伐虢。」
진헌공이 그 계책을 써서 노래하고 춤추는 미녀들을 괵나라에 보내니, 괵공이 그것을 받으려고 했다. 괵국의 대부 주지교(舟之僑)가 간하기를, “이것은 진(晉)나라가 우리 괵나라를 낚으려는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그 미끼를 삼키려고 하십니까?” 했다. 괵나라 군주는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마침내 진나라와 화친을 허락했다. 이후로 괵나라 군주는 날마다 음탕한 노래를 듣고 밤에는 미녀를 가까이하여 자연히 조정에서 보기가 드물어졌다. 주지교가 다시 간하자 괵나라 군주가 노하여 그를 하양관(下陽關) 지기로 내쳤다. 얼마 후에 견융이 진(晉)나라의 뇌물을 받고 마침내 괵나라 경계로 쳐들어갔다. 견융의 군대가 위예(渭汭)까지 쳐들어왔으나 괵나라 군사에게 패했다. 견융의 군주가 돌아가서 남은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다시 괵나라를 침략했다. 괵나라 군주가 전날의 승리를 믿고 또한 군사를 거느리고 저항하여 상전(桑田) 땅에서 서로 대치했다. 진헌공이 다시 순식에게 묻기를, “견융과 괵나라 군사가 대치하고 있는데, 과인이 괵나라를 정벌할 수 있겠는가?” 하니, 순식이 대답하기를, “우나라와 괵나라의 사이가 아직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신에게 계책이 하나 있는데, 먼저 괵나라를 취하고 다시 우나라를 취할 수 있습니다.” 했다. 진헌공이 말하기를, “어떤 계책인가?” 하니, “주군께서 우나라에 뇌물을 후하게 주어 길을 빌려서 괵나라를 치는 것입니다.” 했다.
獻公曰:「吾新與虢成,伐之無名,虞肯信我乎?」荀息曰:「君密使北鄙之人,生事於虢。虢之邊吏,必有責言,因以為名,而請於虞。」獻公又用其策,虢之邊吏,果來責讓,兩下遂治兵相攻。虢公方有犬戎之患,不暇照管。獻公曰:「今伐虢不患無名矣。但不知賂虞當用何物?」荀息對曰:「虞公性雖貪,然非至寶,不可動之。必須用二物前去,但恐君之不舍耳。」獻公曰:「卿試言所用何物?」荀息曰:「虞公最愛者,璧馬之良也。君不有垂棘之璧,屈產之乘乎?請以此二物,假道於虞。虞貪於壁馬,墜吾計矣。」
진헌공이 말하기를. “우리는 이제 막 괵나라와 화친하여 정벌할 명분도 없는데 우나라가 우리를 믿겠는가?” 하니, 순식이 말하기를, “주군께서 몰래 북쪽 변방을 지키는 사람을 시켜 괵나라에 시비를 걸게 하시면, 괵나라의 변방 관리가 틀림없이 우리나라를 비방할 것입니다. 그것을 핑계로 우나라에 수호를 청하십시오.” 했다. 진헌공이 또 그 계책을 쓰니, 과연 괵나라의 변방 관리가 비난하면서 두 나라가 마침내 서로 공격했다. 괵공이 견융의 군사들과 대치 중에 있었기 때문에 진나라와 사이에 일어난 분쟁을 자세히 살펴 처리할 겨를이 없었다. 진헌공이 말하기를, “지금 괵나라를 치는데 명분이 없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소. 다만 우나라에 어떤 뇌물을 주어야 할지 모르겠소.”하니, 순식이 대답하기를, “우나라 군주는 그 성격이 비록 탐욕스러운 사람이지만, 천하의 보물이 아니면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나라의 두 가지 보물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단지 주군께서 허락하지 않을까 걱정될 뿐입니다.” 했다. 진헌공이 말하기를, “무슨 보물인지 말해 보라.” 하니, 순식이 말하기를, “우공은 원래 벽옥(璧玉)과 양마(良馬)를 가장 좋아합니다. 주군께서는 수극(垂棘)의 벽옥(璧玉)과 굴산(屈産)의 명마(名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청컨대 이 두 가지 물건이면 우나라로부터 길을 빌릴 수 있습니다. 우나라 군주는 이 벽옥과 명마에 욕심을 내어 우리의 계책에 떨어질 것입니다.” 했다.
獻公曰:「此二物,乃吾至寶,何忍棄之他人?」荀息曰:「臣固知君之不舍也!雖然,假吾道以伐虢,虢無虞救必滅。虢亡,虞不獨存,璧馬安往乎?夫寄璧外府,養馬外廄,特暫事耳。」大夫里克曰:「虞有賢臣二人,曰宮之奇百里奚,明於料事,恐其諫阻,奈何?」荀息曰:「虞公貪而愚,雖諫必不從也。」獻公即以璧馬交付荀息,使如虞假道。虞公初聞晉來假道,欲以伐虢,意甚怒。及見璧馬,不覺回嗔作喜,手弄璧而目視馬,問荀息曰:「此乃汝國至寶,天下罕有,奈何以惠寡人?」
진헌공이 말하기를, “그 두 물건은 다시없는 나의 보물인데 어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니, 순식이 말하기를, “신은 주군께서 그것을 내놓지 않으리라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나라로부터 길을 빌려 괵나라을 정벌한다면 괵나라는 우나라의 구원을 받지 못해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는 혼자 버티지 못하게 됩니다. 벽옥과 명마는 어디에 가겠습니까? 단지 벽옥과 명마는 밖에 있는 창고와 외양간에 잠시 맡겨 두는 것입니다.” 했다. 대부 이극이 말하기를, “우나라에는 궁지기(宮之寄)와 백리해(百里奚)라는 두 사람의 어진 신하가 있는데 그들이 우리 계획을 짐작하고 방해하면 어찌합니까?” 했다. 순식이 말하기를, “우나라 군주는 탐욕스럽고 어리석어 비록 두 사람이 간하더라도 틀림없이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진헌공이 즉시 벽옥과 명마를 순식에게 내주어 우나라에 가서 길을 빌리도록 했다. 우나라 군주가 진(晉)나라 사신이 와서 괵나라을 정벌하기 위하여 길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처음에는 매우 노하였으나, 다시 진나라 사신이 가져온 벽옥과 명마를 보자 저도 모르게 화를 가라앉히며 얼굴에 기쁜 기색을 띠고, 손으로는 벽옥을 만지면서 명마를 쳐다보더니 순식에게 묻기를, “이것들은 귀국의 천하에 드문 보물인데 무엇 때문에 나에게 주는가?” 했다.
荀息曰:「寡君慕君之賢,畏君之強,故不敢自私其寶,願邀歡於大國。」虞公曰:「雖然,必有所言於寡人也。」荀息曰:「虢人屢侵我南鄙,寡君以社稷之故,屈意請平。今約誓未寒,責讓日至,寡君欲假道以請罪焉。倘幸而勝虢,所有鹵獲,盡以歸君。寡君願與君世敦盟好。」虞公大悅。宮之奇諫曰:「君勿許也!諺云『唇亡齒寒』。晉吞噬同姓,非一國矣,獨不敢加於虞虢者,以有唇齒之助耳。虢今日亡,則明日禍必中於虞矣!」虞公曰:「晉君不愛重寶,以交歡於寡人,寡人其愛此尺寸之徑乎?且晉強於虢十倍,失虢而得晉,何不利焉?子退,勿預吾事!」
순식이 말하기를, “우리 주군이 군주님의 어진 덕을 흠모하시고 또한 우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셔서 감히 이렇게 귀한 보물들을 사사로이 갖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대국에 바쳐 환심을 사기 위해서입니다.” 하니, 우나라 군주가 말하기를, “그렇다 하더라도 반드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겠는가?” 했다. 순식이 말하기를, “괵나라가 여러 번 우리나라의 남쪽 변경을 침략하여 우리 주군께서 사직을 보존하기 위해 뜻을 굽혀 화평을 청했습니다. 지금 우리와 괵나라가 맺은 조약서의 글씨가 마르기도 전에 괵나라는 우리나라를 날마다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군께서 귀국의 길을 빌려서 괵나라의 죄를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괵나라를 쳐서 승리한다면 노획한 물건을 모두 군주께 바치고, 우리 주군은 군주님과 대대로 우호관계를 맺고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합니다.” 했다. 우나라 군주가 크게 기뻐했다. 궁지기(宮之奇)가 간하기를, “주군께서는 허락하지 마십시오. 속담에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시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진(晉)나라가 성(姓)이 같은 제후국을 삼킨 일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유독 우나라와 괵나라를 점령하지 못한 이유는 두 나라가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서로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괵나라가 망하면 내일은 틀림없이 그 화가 우나라에 닥치게 됩니다.” 했다. 우나라 군주가 말하기를, “진나라 군주가 귀중한 보물을 아까워하지 않고 과인에게 주어 이렇듯 나를 기쁘게 하는데, 내가 어찌 작은 길을 아까워하겠는가? 또한 진나라는 괵나라보다 열 배나 강한 나라다. 괵나라를 잃더라도 진나라와 친해진다면 어찌 그것이 이득이 되지 않겠는가? 나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그만 물러가라!” 했다.
宮之奇再欲進諫,百里奚牽其裾,乃止。宮之奇退謂百里奚曰:「子不助我一言,而更止我,何故?」百里奚曰:「吾聞進嘉言於愚人之前,猶委珠玉於道也。桀殺關龍逄,紂殺比干,惟強諫耳。子其危哉!」宮之奇曰:「然則虞必亡矣,吾與子盍去乎?」百里奚曰:「子去則可矣。又偕一人,不重子罪乎?吾寧徐耳。」宮之奇盡族而行,不言所之。荀息歸報晉侯,言:「虞公已受璧馬,許以假道。」獻公便欲親將伐虢。里克入見曰:「虢,易與也,毋煩君往。」獻公曰:「滅虢之策何如?」
궁지기가 다시 나아가 간하려고 하자, 백리해가 궁지기의 옷자락을 잡아끌어서 말렸다. 궁지기가 물러 나와서 백리해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나에게 한마디도 돕지 않고 도리어 나를 말리는 까닭은 무엇이오?” 하니, 백리해가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어리석은 사람에게 바른말을 하는 것은 마치 좋은 구슬을 길거리에 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 충신 관룡방(關龍逄)을 죽이고,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이 현신 비간(比干)을 죽인 일은 모두가 끝까지 간했기 때문입니다. 그대도 너무 간하면 위태롭습니다.” 했다. 궁지기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우나라는 반드시 망할 터인데 그대와 나는 어디로 간단 말이오?” 하니, 백리해가 말하기를, “그대는 가려면 가시오. 또 같이 떠나면 그대의 죄가 더 무겁지 않겠소? 나는 차라리 천천히 떠나겠습니다.” 했다. 궁지기가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우나라를 떠났다. 그러나 가는 곳을 말하지 않았다. 한편 순식은 우나라에서 돌아와 진헌공에게 보고하기를, “우나라 군주가 이미 벽옥과 명마를 받고 길을 빌려주기로 허락했습니다.” 하니, 진헌공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괵나라를 정벌하러 나서려고 하자, 이극이 들어와 뵙고 말하기를, “괵나라를 정벌하는 일은 쉽습니다. 주군께서 번거롭게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하니, 진헌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괵나라를 멸할 계책은 무엇이오?” 했다.
里克曰:「虢都上陽,其門戶在於下陽。下陽一破,無完虢矣。臣雖不才,願效此微勞,如無功甘罪。」獻公乃拜里克為大將,荀息副之,率車四百乘伐虢,先使人報虞以兵至之期。虞公曰:「寡人辱受重寶,無以為報,願以兵從。」荀息曰:「君以兵從,不如獻下陽之關。」虞公曰:「下陽,虢所守也。寡人安得獻之?」荀息曰:「臣聞虢君方與犬戎大戰於桑田,勝敗未決。君托言助戰,以車乘獻之,陰納晉兵,則關可得也。臣有鐵葉車百乘,惟君所用。」虞公從其計。守將舟之僑信以為然,開關納車。
이극이 말하기를, “괵나라 도성 상양성(上陽城)은 그 입구가 하양성(下陽城)에 있습니다. 하양성을 함락시키기만 한다면 괵나라는 무너집니다. 신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이 일을 담당하겠습니다. 만일 공을 세우지 못하면 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했다. 진헌공이 이극을 대장으로 삼고 순식을 부장으로 삼아 전차 400대를 거느리고 괵을 정벌하라고 했다. 순식은 즉시 우나라에 가서 진나라 군사들이 도착할 시기를 알렸다. 우나라 군주가 말하기를, “과인이 귀중한 보물을 받고 아무런 보답도 못했으니, 과인도 군사를 이끌고 따르겠소.” 했다. 순식이 말하기를, “군주께서 군사를 내어 따르는 것보다 하양관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 낫습니다.” 하니, 우나라 군주가 말하기를, “하양관은 괵나라 군사가 지키고 있는데, 과인이 어떻게 줄 수 있겠오?” 했다. 순식이 말하기를, “신이 듣기에, 괵나라 군사와 견융의 군사가 상전의 땅에서 크게 싸웠으나 승패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군주께서 괵나라 군주에게 전차를 바쳐 싸움을 돕겠다고 하면서 몰래 우리 진나라 군사를 들인다면 하양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에게 철엽거(鐵葉車 ; 쇠로 차체를 싼 전차) 백 대가 있으니 군주께서 끌고 가십시오.” 하니, 우나라 군주가 그 계책을 따랐다. 하양관을 지키는 장수 주지교(舟之僑)는 우나라 군주가 구원군을 끌고 왔다는 말을 믿고 관문을 열고 전차를 맞아들였다.
車中藏有晉甲,入關後一齊發作,欲閉關已無及矣。里克驅兵直進,舟之僑既失下陽,恐虢公見罪,遂以兵降晉。里克用為嚮導,望上陽進發。卻說,虢公在桑田,聞晉師破關,急急班師,被犬戎兵掩殺一陣,大敗而走,隨身僅數十乘,奔至上陽守禦,茫然無策。晉兵至,築長圍以困之。自八月至十二月,城中樵採俱絕。連戰不勝,士卒疲敝,百姓日夜號哭。里克使舟之僑為書,射入城中,諭虢公使降。虢公曰:「吾先君為王卿士,吾不能為降諸侯!」乘夜開城,率家眷奔京師去訖。里克等亦不追趕。百姓香花燈燭,迎里克等進城。
철엽거 안에 숨어 있던 진나라 무장병이 하양관 안에 들어오자 일제히 튀어나오니, 주지교가 관문을 닫으려고 했으나 이미 그럴 수가 없었다. 이극이 군사를 몰아 진격하니, 주지교는 이미 하양성을 잃고 괵나라 군주에게 문책을 당할 것이 두려워서 군졸들을 거느리고 진나라에 항복했다. 이극이 주지교를 향도로 삼아 상양성을 향해 진격했다. 한편, 괵나라 군주는 상전에서 진나라 군사가 하양관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군사를 거두어 퇴각하자, 견융의 군사가 한 무리를 기습하여 괵나라 군사가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괵나라 군주의 뒤를 따르는 전차는 겨우 수십 대에 불과했다. 괵나라 군주는 상양성에 이르러 지켰으나, 망연히 대책이 없었다. 진나라 군사가 상양성 앞에 이르러 그 주위를 포위하여 압박했다. 8월에 포위해서 12월에 이르자 성중에는 땔나무와 먹을 것이 모두 떨어졌다. 성 밖의 진나라 군사와 싸움을 걸어봤으나 번번이 패했다. 사졸들은 지치고 백성들이 밤낮으로 울부짖었다. 이극이 주지교를 시켜 편지를 써서 화살에 매달아 성안으로 쏘아 괵나라 군주에게 항복을 권하게 했다. 괵공이 말하기를, “우리 선조들은 주나라 왕실의 경사였다. 내가 제후에게 항복할 수는 없다.” 하고, 밤이 되자 가솔들을 이끌고 성문을 열어 주나라 도성을 향해 도망쳤다. 이극 등은 또한 뒤를 쫓지 않았다. 괵나라의 백성들은 향기로운 꽃과 등불을 들고 성안으로 들어오는 이극 등을 환영했다.
克安集百姓,秋毫無犯,留兵戍守。將府庫寶藏,盡數裝載,以十分之三,並女樂獻於虞公。虞公益大喜。里克一面遣人馳報晉侯,自己托言有疾,休兵城外,俟病愈方行。虞公不時饋藥,候問不絕。如此月餘。忽諜報:「晉侯兵在郊外。」虞公問其來意,報者曰:「恐伐虢無功,親來接應耳。」虞公曰:「寡人正欲面與晉君講好。今晉君自來,寡人之願也。」慌忙郊迎致餼,兩君相見,彼此稱謝。自不必說。獻公約與虞公較獵於箕山。虞公欲誇耀晉人,盡出城中之甲及堅車良馬,與晉侯馳逐賭勝。
이극은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추호도 노략질하지 않았으며 군사만 머물러 지키게 했다. 괵나라의 국고에 있던 금은보화를 모두 꺼내어 수레에 싣게 하고 그중 10분의 3과 (괵공에게 주었던) 미녀들을 우공에게 주었다. 우공은 아주 기뻐했다. 이극은 한편 진헌공에게 사람을 보내 괵나라를 정벌한 공을 고하게 하고, 자기는 병이 났다고 핑계하고, 군사들을 우나라 도성 밖에서 쉬도록 했다. 병이 나으면 바로 회군할 것이라고 했다. 우공이 수시로 약을 가지고 와서 병문안을 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던 중에 갑자기 보고가 들어오기를, “진(晉)나라의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도성 밖에 이르렀습니다.” 했다. 우공이 그 온 까닭을 물으니, 보고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괵나라를 정벌하러 나간 진나라 군사들이 이기지 못할까 걱정하여 친히 지원하러 왔다고 합니다.” 했다. 우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마침 진나라 군주를 만나 수호(修好)를 맺고자 했는데 오늘 그가 스스로 찾아오니 과인이 바라고 있던 바이다.” 했다. 우공이 황급히 음식을 준비하여 진헌공을 맞이했다. 두 군주가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눈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진헌공과 우나라 군주는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나가자고 약속했다. 우공이 진나라 사람들에게 자기의 사냥 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서 성안의 모든 무장병과 튼튼한 수레와 좋은 말을 모두 끌고 나와 진헌공과의 사냥 시합에 이기려고 했다.
是日,自辰及申,圍尚未撤。忽有人報:「城中火起!」獻公曰:「此必民間漏火,不久撲滅耳。」固請再打一圍。大夫百里奚密奏曰:「傳聞城中有亂,君不可留矣。」虞公乃辭晉侯先行,半路見人民紛紛逃竄,言:「城池已被晉兵乘虛襲破。」虞公大怒,喝教:「驅車速進!」來至城邊。只見城樓上一員大將,倚欄而立,盔甲鮮明,威風凜凜,向虞公言曰:「前蒙君假我以道,今再假我以國,敬謝明賜!」虞公轉怒,便欲攻門。城頭上一聲梆響,箭如雨下。虞公命車速退,使人催趲後面車馬。
이날, 진시(辰時 ; 오전 8시경)에 시작한 사냥이 신시(申時 ; 오후 4시경)가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알리기를, “성안에 불이 났습니다.” 했다. 진헌공이 말하기를, “그것은 틀림없이 민간이 잘못해서 일어난 불일 것이오. 사람들이 곧 끌 것이오.” 하고, 다시 한번 더 사냥터를 에워싼 후 내기를 하자고 청했다. 대부 백리해가 은밀히 우공에게 이뢰기를, “성안에 난이 일어났다고 하니 주군께서는 이곳에 더 머무르시면 안 됩니다.” 했다. 우공이 진헌공의 청을 사양하고 먼저 사냥터를 떠났다. 우공의 일행이 도성 쪽으로 반쯤 갔을 때 많은 백성들이 어지러이 달아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백성들이 말하기를, “성이 빈 사이에 진나라 군사들이 이미 점령해 버렸습니다.” 했다. 우공이 크게 노하여 소리치기를, “빨리 수레를 몰아라.” 했다. 우공 일행이 도성 아래에 도착하니, 성루 위에 한 대장이 난간에 기대어 섰는데, 투구와 갑옷을 선명하고 위풍이 늠름했다. 그가 우공을 향해 말하기를, “전에 군주가 우리에게 길을 빌려주어 괵나라를 얻었고, 지금 다시 군주께서 나라를 빌려주시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했다. 우공이 더욱 노하여 성문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자 성 위에서 한번 딱딱이 소리가 나더니 화살이 비 처럼 쏟아졌다. 우공이 명을 내려 전차를 빨리 물러서게 하고, 사람을 시켜 수레와 말을 뒤로 달아나게 했다.
軍人報曰:「後軍行遲者,俱被晉兵截住。或降或殺,車馬皆為晉有。晉侯大軍即到矣。」虞公進退兩難,嘆曰:「悔不聽宮之奇之諫也!」顧百里奚在側,問曰:「彼時卿何不言?」百里奚曰:「君不聽之奇,其能聽奚乎?臣之不言,正留身以從君於今日耳。」虞公正在危急之際,見後有單車驅至,視之,乃虢國降將舟之僑也。虞公不覺面有慚色。舟之僑曰:「君誤聽棄虢,失已在前。今日之計,與其出奔他國,不如歸晉。晉君德量寬洪,必無相害,且憐君必厚待君,君其勿疑。」虞公躊躇未決。晉獻公隨後來到,使人請虞公相見。虞公不得不往。獻公笑曰:「寡人此來,為取璧馬之值耳。」命以後車,載虞公宿於軍中。百里奚緊緊相隨,或諷其去,曰:「吾食其祿久,所以報也!」
한 군사가 우공에게 보고하기를, “뒤에 따라오던 군사들은 진나라 군사에 의해 길이 끊겨서 일부는 항복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 군사들의 전차와 말은 모두 진나라 군사들이 가져가 버렸습니다. 진나라 군주가 대군을 거느리고 곧 도착할 것입니다.” 했다. 우공은 진퇴양난이 되어 탄식하며 말하기를, “궁지기(宮之奇)의 간언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되는구나!” 했다. 곁에 있던 백리해를 돌아보며 묻기를, “그대는 그때 어찌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가?” 하니, 백리해가 말하기를, “주군께서 궁지기의 간언도 듣지 않았는데 어찌 제 말을 듣겠습니까? 신은 간언은 드리지 않았지만 정작 몸은 머물러서 지금까지 주군을 따르고 있습니다.” 했다. 우공이 위급한 상항에 빠져 있을 때 뒤에서 수레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는 괵나라의 항복한 장수 주지교였다. 우공은 저도 모르게 부끄러운 기색이 되었다. 주지교가 말하기를, “군주께서 감언이설에 속아 진나라의 말을 듣고 괵나라를 버리신 결과 우나라와 백성들을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계책은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것보다 진나라에 항복하는 게 낫습니다. 진나라 군주는 덕이 많고 도량이 크신 분이라 틀림없이 아무 해도 가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군주의 처지를 동정하여 후하게 대하실 것입니다. 군주께서는 의심하시지 마십시오.” 했다. 우공이 주저하며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진헌공이 뒤따라와서 사람을 보내 우공과 만나기를 청했다. 우공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헌공이 웃으며 말하기를, “과인이 이곳에 온 것은 벽옥과 명마를 찾고자 함이오.” 하고, 시종에게 명하여 우공을 수레에 태워 진의 군중으로 보내 머물게 했다. 백리해가 우공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니며 모셨다. 어떤 사람이 그의 행동을 비웃자 백리해가 말하기를, “내가 우공의 녹을 오랫동안 받았으므로 보답을 하려는 것이다.” 했다.
獻公入城安民。荀息左手托璧,右手牽馬而前曰:「臣謀已行,今請還璧於府,還馬於廄。」獻公大悅。髯翁有詩云:「璧馬區區雖至寶,請將社稷較何如?不誇荀息多奇計,還笑虞公真是愚。」獻公以虞公歸,欲殺之。荀息曰:「此騃豎子耳,何能為!」於是待以寓公之禮,別以他璧及他馬贈之。曰:「吾不忘假道之惠也。」舟之僑至晉,拜為大夫。僑薦百里奚之賢。獻公欲用奚,使僑通意。奚曰:「終舊君之世乃可。」僑去,奚嘆曰:「君子違,不適仇國,況仕乎?吾即仕,不於晉也。」舟之僑聞其言,惡形其短,意甚不悅。
진헌공이 성안으로 들어와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순식이 왼손에는 벽옥을 들고 오른손에는 굴산지마의 고삐를 끌고 진헌공 앞에 와서 말하기를, “신의 계책은 이미 시행되었으므로 오늘 벽옥은 부고에, 굴산지마는 마구간에 넣어 두기를 청합니다.” 하니, 진헌공이 크게 기뻐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벽옥과 굴산지마가 비록 천하의 보물이었다지만, 어찌 한 나라의 사직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순식의 꾀가 많음을 자랑하지 말아라. 우습구나! 우공이 그만큼 어리석었을 뿐이다.” 했다. 진헌공이 귀순한 우공을 죽이려고 하자 순식이 말하기를, “그는 한갓 어리석은 자인데 무엇을 하겠습니까?” 했다. 이에 진헌공은 우공을 망명객에 대한 예로써 대하고 따로 다른 벽옥과 말을 주면서 말하기를, “나에게 길을 빌려준 은혜를 잊지 않겠소.” 했다. 주지교는 진나라에 와서 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주지교가 백리해의 현명함을 추천하니 진헌공이 백리해를 쓰려고 주지교를 보내어 그 뜻을 전했다. 백리해가 말하기를, “옛날에 모시던 군주가 죽고 나면 가능하겠소.” 했다. 주지교가 돌아가고 나서 백리해가 한탄하며 말하기를, “군자가 어긋나도 원수의 나라에 가면 안 되는데 하물며 벼슬을 하겠는가? 내가 벼슬을 구한다고 할지라도 진(晉)나라는 아니다.” 했다. 주지교가 그 말을 전해 듣고 자기의 잘못을 꼬집는다고 생각하여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時秦穆公任好即位六年,尚未有中宮,使大夫公子縶求婚於晉,欲得晉侯長女伯姬為夫人。獻公使太史蘇筮之,得《雷澤歸妹》卦第六爻,其繇曰:「士刲羊,亦無也。女承筐,亦無貺也。西鄰責言,不可償也。」太史蘇玩其辭,以為秦國在西,而有責言,非和睦之兆。況《歸妹》嫁娶之事,而《震》變為《離》,其卦為《睽》,《睽》《離》皆非吉名,此親不可許。獻公更使太卜郭偃以龜卜之。偃獻其兆,上吉。斷詞曰:「松柏為鄰,世作舅甥,三定我君。利於婚媾,不利寇。」史蘇猶據筮詞爭之。獻公曰:「向者固云:『從筮不如從卜。』卜既吉矣,又可違乎?吾聞秦受帝命,其後將大,不可拒也。」遂許之。
그때 진(秦)나라 목공(穆公) 임호(任好)는 즉위한 지 6년이 지났으나 아직 정부인이 없었다. 목공이 대부 공자집(公子 縶)을 진(晉)나라에 보내어 진헌공의 장녀 백희(伯姬)를 부인으로 삼고자 구혼했다. 진헌공이 태사 소(太史蘇)를 시켜 산가지 점을 치게 하여 ‘뇌택귀매(雷澤歸妹)’ 괘의 여섯째 효(爻)를 얻었는데 그 점사에 이르기를, “남자가 양을 잡았는데, 피가 흐르지 않고, 아내는 광주리를 받들었는데,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구나. 서쪽의 이웃나라가 꾸짖으나, 갚을 길이 없구나.” 했다. 태사소가 그 점사를 풀이하기를, “진(秦)나라는 우리나라의 서쪽에 있고, 꾸짖는다는 말이 있으니, 화목하지 못하다는 징조입니다. 하물며 귀매(歸妹,䷵)는 젊은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말인데, 진(震,☳)이 변하여 이(離,☲)가 되면 그 괘(卦)는 규(睽,䷥)괘가 되는데, 규(睽)괘나 이(離)괘는 모두 길한 괘가 아닙니다. 결코 혼인을 허락하면 안 됩니다.” 했다. 진헌공이 다시 태복(太卜) 곽언(郭偃)을 시켜 거북점을 치게 했다. 곽언은 그 징조가 아주 좋다고 했다. 단사(斷詞)에 이르기를, “소나무와 잣나무가 서로 이웃으로 하고 있으니, 대대로 장인과 사위가 되어, 세 번이나 우리나라의 군주를 정해 주니, 혼인을 맺으면 이로움이 있을 것이지, 싸우면 좋지 않으리라.” 했다. 태사소가 산가지 점괘를 들어 그렇지 않다고 다투자 진헌공이 말하기를, “옛말에 ‘서초점보다 거북점이 낫다.’고 했다. 거북점에 좋다고 하니 어찌 틀리겠는가? 내가 들으니 진(秦)나라는 천제의 명을 받은 후부터 나라가 강대해졌다고 하니 거절하면 안 될 것이다.” 하고, 마침내 혼사를 허락했다.
公子縶歸復命,路遇一人,面如噀血,隆準虯鬚,以兩手握兩鋤而耕,入土累尺。命索其鋤觀之,左右皆不能舉。公子縶問其姓名,對曰:「公孫氏名枝,字子桑,晉君之疏族也。」縶曰:「以子之才,何以屈於隴畝?」枝對曰:「無人薦引耳。」縶曰:「肯從我遊於秦乎?」公孫枝曰:「『士為知己者死』。若能見挈,固所願也。」縶與之同載歸秦。言於穆公,穆公使為大夫。穆公聞晉已許婚,復遣公子縶如晉納幣,遂迎伯姬。晉侯問媵於群臣。舟之僑進曰:「百里奚不願仕晉,其心不測,不如遠之。」乃用奚為媵。
공자 집이 복명하려고 돌아가는 도중에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의 얼굴은 핏빛 같고 코가 우뚝하며 곱슬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양손에 괭이를 잡고 밭을 갈고 있었다. 그가 땅을 파면 몇 자씩 파헤쳐졌다. 공자 집이 괭이를 살펴보려고 시종들에게 가져오게 하니, 시종들이 모두 괭이를 들 수가 없었다. 공자 집이 그 사람의 성명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성은 공손씨(公孫氏)이고 이름은 지(枝)이며 자는 자상(子桑)입니다. 진(晉)나라 군주와는 먼 친척이 됩니다.” 했다. 공자 집이 말하기를, “그대와 같은 인재가 어찌 농사를 짓고 있습니까?” 하니, 공손지가 말하기를, “천거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입니다.” 했다. 공자 집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나를 따라 우리 진(秦)나라에 가지 않겠습니까?” 하니, 공손지가 말하기를,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만약 저를 천거해 준다면 진실로 제가 바라던 바입니다.” 했다. 공자집이 그와 함께 수레를 타고 진(秦)나라로 돌아와서, 목공에게 말하니 목공이 공손지를 대부로 삼았다. 진(秦)목공이 진헌공이 이미 혼인을 허락했다는 보고를 듣고, 다시 공자집을 진(晉)나라에 보내어 폐백을 바치고 백희를 모셔오도록 했다. 진헌공이 백희에게 딸려 보낼 사람을 여러 신하에게 물으니, 주지교가 나와서 말하기를, “백리해가 우리나라의 벼슬을 받지 않으니 그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먼 나라로 보내는 편이 좋겠습니다.” 했다. 그리하여 백리해를 백희에게 딸려 보내기로 했다.
卻說,百里奚是虞國人,字井伯,年三十餘,娶妻杜氏,生一子。奚家貧不遇,欲出遊,念其妻子無依,戀戀不舍。杜氏曰:「妾聞『男子志在四方』。君壯年不出圖仕,乃區區守妻子坐困乎?妾能自給,毋相念也!」家只有一伏雌,杜氏宰之以餞行。廚下乏薪,乃取扊扅炊之。舂黃齏,煮脫粟飯。奚飽餐一頓。臨別,妻抱其子,牽袂而泣曰:「富貴勿相忘!」奚遂去。遊於齊,求事襄公,無人薦引。久之,窮困乞食於銍,時奚年四十矣。銍人有蹇叔者,奇其貌,曰:「子非乞人也。」叩其姓名,因留飯,與談時事,奚應對如流,指畫井井有敘。
한편, 백리해는 우(虞)나라 사람으로, 자는 정백(井伯)이고, 나이가 삼십 여세로 두(杜)씨에게 장가들어 아들 하나를 낳았다. 백리해의 집안은 가난하고 불우하여 집을 떠나 벼슬자리를 구하려고 했지만, 그 처자가 의지할 곳이 없음을 생각하여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두씨가 말하기를, “첩이 듣기에 남자는 그 뜻을 천하에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장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세상에 나가 벼슬을 구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곧 처자식을 지키고자 어려움을 견디는 것입니까? 첩은 능히 혼자서 살아갈 수 있으니 저희를 염려하지 마십시오.” 했다. 집에 암탉이 한 마리 있었는데, 두씨가 그것을 잡아 이별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 부엌에 땔감이 없어 문빗장을 뜯어서 불을 지폈다. 누런 기장을 찧고 좁쌀을 쓿어 밥을 지었다. 백리해가 한 끼의 식사를 배불리 먹고 가족과 이별할 때 그 처가 아들을 품에 안고 백리해의 소매를 붙잡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부귀하게 되면 서로 잊지 마십시오.” 백리해가 길을 떠나 제나라에 가서 제양공(齊襄公)에게 벼슬하려 했으나 천거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질(銍) 땅에서 오래도록 빈곤하여 걸식을 했다. 그때 백리해의 나이가 마흔 살이었다. 질(銍) 땅에 건숙(蹇叔)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백리해의 얼굴을 보고 기이하다고 생각하여 말하기를, “그대는 걸인이 아니다.” 했다. 그리고 그 성명을 묻고 머무르게 하여 밥을 먹인 후, 당시의 일을 이야기하니, 백리해의 응대가 물 흐르듯 하고 손가락으로 그리듯 조리가 정연했다.
蹇叔嘆曰:「以子之才,而窮困乃爾,豈非命乎?」遂留奚於家,結為兄弟。蹇叔長奚一歲,奚呼叔為兄。蹇叔家亦貧,奚乃為村中養牛,以佐饔飱之費。值公子無知弒襄公,新立為君,懸榜招賢。奚欲往應招。蹇叔曰:「先君有子在外,無知非分竊立,終必無成。」奚乃止。後聞周王子頹好牛,其飼牛者皆獲厚糈,乃辭蹇叔如周。蹇叔戒之曰:「丈夫不可輕失身於人。仕而棄之,則不忠,與同患難,則不智。此行弟其慎之!吾料理家事,當至周相看也。」奚至周,謁見王子頹,以飼牛之術進。頹大喜,欲用為家臣。蹇叔自銍而至,奚與之同見子頹。
건숙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그대가 뛰어난 재주를 갖고도 곤궁한 처지에 이른 것은 운명이 아니겠는가?” 하고, 백리해를 집에 묵게 하고 이어서 결의형제를 맺었다. 건숙이 백리해보다 한살이 많아서 백리해가 건숙을 형이라고 불렀다. 건숙의 집도 역시 가난하여 백리해가 마을에서 소를 길러 양식값을 보탰다. 그때 제나라에서는 공손무지(公孫無知)가 제양공을 시해하고 새로 군주의 자리에 올라 방을 붙여 어진 선비를 초빙했다. 백리해가 방을 보고 초빙에 응하려고 했다. 건숙이 말하기를, “제양공의 아들들이 나라 밖에 모두 살아 있는데 공손무지가 분수도 지키지 않고 자리를 훔쳤으니 끝내 성공하지 못할 것이네.” 하니, 백리해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백리해는 주나라의 왕자 퇴(頹)가 소를 좋아하여 소를 잘 기르는 자에게는 봉록을 후하게 준다는 소문을 들었다. 백리해가 건숙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주나라로 가려고 하니, 건숙이 경계해 말하기를, “장부는 경솔하게 남에게 몸을 맡겨 지조를 잃으면 안 되네. 출사했다가 그를 버리면 불충이 되고 또한 환난을 같이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네. 이번에 주나라에 가는 일은 신중하게 처신하게. 나는 처리할 집안일이 있어 동행하지 못하지만 곧 뒤따라가서 한 번 살펴보겠네.” 했다. 백리해가 주나라에 도착하여 왕자 퇴를 알현하고 소를 기르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 왕자퇴가 매우 기뻐하여 가신으로 쓰려고 했다. 건숙이 질(銍)땅에서 도착하여 백리해와 함께 자퇴를 만났다.
退謂奚曰:「頹志大而才疏,其所與皆讒諂之人,必有覬覦非望之事,吾立見其敗也。不如去之。」奚因久別妻子,意欲還虞。蹇叔曰:「虞有賢臣宮之奇者,吾之故人也,相別已久,吾亦欲訪之。弟若還虞,吾當同行。」遂與奚同至虞國。時奚妻杜氏,貧極不能自給,已流落他方,不知去處。奚感傷不已。蹇叔與宮之奇相見,因言百里奚之賢。宮之奇遂薦奚於虞公,虞公拜奚為中大夫。蹇叔曰:「吾觀虞君見小而自用,亦非可與有為之主。」奚曰:「弟久貧困,譬之魚在陸地,急欲得勺水自濡矣!」
건숙이 왕자 퇴를 보고 물러나 백리해에게 말하기를, “왕자 퇴는 품은 뜻은 비록 크지만, 재주가 엉성하여 그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첨배들 뿐이네. 반드시 바라지 못할 일을 엿보다가 실패할 것이 뻔히 보였네. 그만 가는 것이 좋겠네.” 했다. 백리해가 그의 처자와 헤어진 지가 오래되어 우나라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니, 건숙이 말하기를, “우나라에는 궁지기(宮之奇)라는 어진 신하가 있는데 나와는 오래된 친구라. 서로 헤어진 지가 오래되어 나 역시 한 번 찾아가 보고 싶네. 아우가 우나라에 돌아가고 싶다면 나도 같이 가겠네.” 하고, 즉시 백리해와 함께 우나라에 이르렀다. 그때 백리해의 처 두씨는 극도로 가난하여 살아갈 수가 없어 이미 다른 지방으로 흘러가서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백리해는 마음속으로 슬퍼해 마지않았다. 건숙은 궁지기와 서로 만나 백리해의 어짊을 말했다. 궁지기가 곧 백리해를 우공에게 천거하자 우공은 그를 중대부에 임명했다. 건숙이 말하기를, “내가 우공의 사람됨을 살펴보니 품고 있는 뜻이 작고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는 사람이라 주인으로 모실 만하지 않네.” 하니, 백리해가 말하기를, “아우는 오랫동안 빈곤하게 살아와서 마치 물을 떠난 물고기의 신세라 급히 한 모금의 물로 목을 적셔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처지입니다.” 했다.
蹇叔曰:「弟為貧而仕,吾難阻汝,異日若見訪,當於宋之鳴鹿村。其地幽雅,吾將卜居於此。」蹇叔辭去。奚遂留事虞公。及虞公失國,奚周旋不舍,曰:「吾既不智矣,敢不忠乎?」至是,晉用奚為媵於秦。奚嘆曰:「吾抱濟世之才,不遇明主,而展其大志,又臨老為人媵,比於僕妾,辱莫大焉!」行至中途而逃。將適宋,道阻,乃適楚。及宛城,宛之野人出獵,疑為奸細,執而縛之。奚曰:「我虞人也,因國亡逃難至此。」野人問:「何能?」奚曰:「善飼牛。」野人釋其縛,使之餵牛,牛日肥澤。野人大悅,聞於楚王。
건숙이 말하기를, “아우가 가난을 이유로 출사를 하겠다고 하니 내가 말릴 수 없네. 후일에 만약 나를 찾아오려면 송나라 땅의 명록촌(鳴綠村)으로 오게. 그곳은 그윽하고 아담한 곳이라서 내가 돌아가면 장차 그곳에 옮겨 살려고 하네.” 했다. 건숙이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백리해는 우나라에 머물며 우공을 모시게 되었다. 곧이어 우공이 나라를 잃자, 백리해가 우공을 도우며 떠나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이미 지혜롭지 못했지만 감히 불충할 수야 있는가?” 했다. 이에 진(晉)나라에서 백리해를 진(秦) 목공에게 시집가는 백희의 몸종으로 딸려 보냈다. 백리해가 한탄하기를, “나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재주를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밝은 주인을 만나지 못하여 그 뜻을 펼쳐 보기도 전에 몸은 늙어가는데 종이나 첩에 비할 남의 몸종이 되었으니 그 욕됨을 너무도 크구나!” 했다. 백리해가 행렬을 따라가다가 도중에 달아나서 송나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길이 막혀 초나라 완성(宛城)에 이르렀다. 완성의 야인이 사냥을 나왔다가 백리해를 세작으로 의심하여 붙잡아서 묶었다. 백리해가 말하기를, “나는 우나라 사람인데 나라가 망해서 난을 피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소.” 하니, 야인이 묻기를,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소?” 했다. 백리해가 말하기를, “소를 잘 기를 수 있소.” 하니, 야인이 백리해의 포승을 풀어 주고 소를 기르게 했다. 백리해가 기르는 소가 날이 갈수록 살이 찌자 야인이 크게 기뻐했다. 그 소문이 초왕에게까지 들어갔다.
楚王召奚問曰:「飼牛有道乎?」奚對曰:「時其食,恤其力,心與牛而為一。」楚王曰:「善哉,子之言!非獨牛也,可通於馬。」乃使為圉人,牧馬於南海。卻說,秦穆公見晉媵有百里奚之名,而無其人,怪之。公子縶曰:「故虞臣也,今逃矣。」穆公謂公孫枝曰:「子桑在晉,必知百里奚之略,是何等人也?」公孫枝對曰:「賢人也。知虞公之不可諫而不諫,是其智。從虞公於晉,而義不臣晉,是其忠。且其人有經世之才,但不遇其時耳!」穆公曰:「寡人安得百里奚而用之?」
초왕이 백리해를 불러 묻기를, “소를 잘 기르는데 무슨 방법이 있는가?” 하니, 백리해가 대답하기를, “여물을 줄 때와 힘을 쓸 때를 알아야 하며 소를 기르는 사람의 마음과 소의 마음을 일치시키면 소를 잘 기를 수 있습니다.” 했다. 초왕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에 일리가 있도다! 그 방법이 어찌 소를 기르는 일에만 해당되겠느냐? 말을 기르는데도 통할 것이다.” 했다. 이에 백리해를 어인(圉人 ; 말 사육사)으로 임명하여 남해(南海)에서 말을 기르게 했다. 한편, 진(秦) 목공이 진(晉)나라에서 백희에게 딸려 보낸 몸종 중에 백리해라는 이름을 보았으나 사람이 없어져 괴이하게 생각하니, 공자집이 말하기를, “옛날 우공의 신하였는데 지금 달아나 버렸습니다.” 했다. 진목공이 공손지에게 묻기를, “자상(子桑)은 진(晉)나라에 있을 때 틀림없이 백리해라는 사람에 대해 대략 알았을 것이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오?” 하니, 공손지가 대답하기를, “백리해는 현인입니다. 우공이 간할 수 없는 것을 알고 간하지 않았으니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공을 따라 진(晉)에 항복하였음에도 의리상 진(晉)나라에 신하가 되지 않은 것은 그가 충성스러운 사람임을 말합니다. 또한 그 사람이 세상을 경영할 지략을 가슴속에 품었으나 때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니, 진목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어떻게 하면 백리해를 얻을 수 있겠소?” 했다.
公孫枝曰:「臣聞奚之妻子在楚,其亡必於楚,何不使人往楚訪之?」使者往楚,還報:「奚在海濱,為楚君牧馬。」穆公曰:「孤以重幣求之,楚其許我乎?」公孫枝曰:「百里奚不來矣!」穆公曰:「何故?」公孫枝曰:「楚之使奚牧馬者,為不知奚之賢也。君以重幣求之,是告以奚之賢也。楚知奚之賢,必自用之,肯畀我乎?君不若以逃媵為罪,而賤贖之,此管夷吾所以脫身於魯也。」穆公曰:「善。」乃使人持羖羊之皮五,進於楚王曰:「敝邑有賤臣百里奚者,逃在上國。寡人欲得而加罪,以警亡者,請以五羊皮贖歸。」
공손지가 말하기를, “제가 듣기에 백리해의 처자가 초나라에 있다고 했는데 그도 틀림없이 초나라로 도망쳤을 것입니다. 어찌 사람을 초나라에 보내 찾아보지 않으십니까?” 했다. 사자가 초나라에 갔다가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백리해는 남해의 바닷가에서 초왕을 위해 말을 기르고 있습니다.” 했다. 목공이 말하기를, “내가 많은 예물로 백리해를 요구하면 초왕이 나에게 백리해를 보내 주겠습니까?” 하니, 공손지가 말하기를, “그렇게 하시면 백리해는 오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어째서입니까?” 하니, 공손지가 말하기를, “초나라가 백리해에게 말을 기르게 한 것은 백리해가 현인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군께서 많은 예물을 보내 백리해를 구하면 초나라에 백리해가 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백리해가 현인임을 알면 초나라는 틀림없이 중용할 것이고 우리에게 넘겨주겠습니까? 주군께서 몸종의 신분으로 도망친 죄를 묻겠다고 하면서 몸종의 몸값을 주고 데려오십시오. 그것은 (포숙아가) 관이오를 노나라에서 탈출시킬 때 사용한 방법입니다.” 하니, 진목공이 말하기를, “좋은 생각입니다.” 하고, 즉시 사람을 시켜 염소 가죽 다섯 장을 주어 초왕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천한 신하였던 백리해란 자가 상국으로 도망쳤습니다. 과인이 그자를 잡아서 죄를 주어 도망친 자들을 경고하고자 하오니 염소 가죽 다섯 장을 몸값으로 하고 돌려보내 주기를 청합니다.” 했다.
楚王恐失秦歡,乃使東海人囚百里奚以付秦人。百里奚將行,東海人謂其就戮,持之而泣。奚笑曰:「吾聞秦君有伯王之志,彼何急於一媵?夫求我於楚,將以用我也。此行且富貴矣,又何泣焉!」遂上囚車而去。將及秦境,秦穆公使公孫枝往迎於郊。先釋其囚,然後召而見之。問:「年幾何?」奚對曰:「纔七十歲。」穆公嘆曰:「惜乎老矣!」奚曰:「使奚逐飛鳥,搏猛獸,則臣已老。若使臣坐而策國事,臣尚少也。昔呂尚年八十,釣於渭濱,文王載之以歸,拜為尚父,卒定周鼎。臣今日遇君,較呂尚不更早十年乎?」
초왕은 진(秦)나라 군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곧 동해인(東海人)이라는 사람을 보내 백리해를 잡아 함거에 넣어서 진(秦)나라 사신에게 넘겨주도록 했다. 백리해가 출발하려는데 동해인이 그가 죽으러 가는 줄 알고 눈물을 흘리면서 붙잡았다. 백리해가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진(秦)나라 군주가 패왕(霸王)의 뜻을 가졌다고 들었소! 그런 사람이 어찌 도망친 일개 몸종을 그리 급하게 찾겠습니까? 나를 초나라에서 구하는 것은 장차 나를 쓰고자 함이니, 이번에 가면 나는 부귀를 누리게 될 것이오. 그러니 어찌 울겠소?” 했다. 곧 함거에 올라 길을 떠났다. 진나라 경계에 도착하자 진목공이 공손지를 시켜 교외에서 마중하게 했다. 진목공은 먼저 백리해를 함거에서 나오게 한 뒤에 그를 불러서 만났다. 진목공이 묻기를, “나이가 몇 살입니까?” 하니, 백리해가 대답하기를, “겨우 70살입니다.” 했다. 진목공이 탄식하기를, “애석하게도 너무 늙었구려!” 하니, 백리해가 말하기를, “이 백리해를 시켜 나는 새를 쫓고 맹수를 잡으라고 하시면 신은 이미 늙었습니다. 만약에 저를 시켜 앉아서 나라의 일을 보게 하실 요량이라면 신은 아직 젊습니다. 옛날 강태공 여상(呂尙)은 나이가 80이 되어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문왕이 그를 수레에 태워 돌아가서 상보(尙父)를 삼고 마침내 주나라 사직을 일으켰습니다. 신이 오늘 군주를 만난 나이는 여상과 비교하면 열 살이나 젊지 않습니까?” 했다.
穆公壯其言,正容而問曰:「敝邑介在戎狄,不與中國會盟,叟何以教寡人,俾敝邑不後於諸侯。幸甚!」奚對曰:「君不以臣為亡國之虜,衰殘之年,乃虛心下問,臣敢不竭其愚?夫雍岐之地,文武所興,山如犬牙,原如長蛇,周不能守,而以畀之秦,此天所以開秦也。且夫介在戎狄,則兵強,不與會盟則力聚。今西戎之間,為國不啻數十,並其地足以耕,籍其民可以戰,此中國諸侯所不能與君爭者。君以德撫而以力征,既全有西陲,然後阨山川之險,以臨中國,俟隙而進,則恩威在君掌中,而伯業成矣。」
진목공은 백리해의 말이 장하다고 생각하여 자세를 바로 하고 묻기를, “우리나라는 융(戎)과 적(翟)에 이웃해 있어 중원의 회맹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인장께서는 무엇을 과인에게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우리나라를 제후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게 해주면 매우 다행이겠소.” 했다. 백리해가 대답하기를, “군주께서 신을 패망한 나라의 포로로 생각하지 않으시고, 쇠잔한 늙은이에게 마음을 비우고 하문하시니 신이 감히 어리석은 의견이나마 다 말씀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옹(雍)과 기(岐)의 땅은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이 일어난 곳이며 산은 마치 개의 이빨 같고, 벌판은 긴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 땅을 주나라가 능히 지키지 못해 진(秦)나라에 주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진(秦)나라를 열어준 것입니다. 또한 융(戎)과 적(狄)의 오랑캐들 사이에 끼어 있어서, 군사를 강하게 만들 수 있고, 회맹에 참여하지 않아서 힘을 모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서융(西戎)에는 나라가 수십 개에 달해서 그 땅을 병합하면 농사짓기에 족하고 그 백성들을 호적에 올리면 전쟁에 동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중원의 나라들이 군주와 다투지 못할 유리한 점입니다. 군주께서 덕으로 백성을 위무하고 힘으로 정벌하여 서쪽의 변경지역을 안정시킨 후에 산천의 험함을 방패로 삼아 중원을 굽어보다가 틈을 기다려 나아간다면 은덕과 위엄이 군주의 손안에 있어서 패업을 이룰 것입니다.” 했다.
穆公不覺起立曰:「孤之有井伯,猶齊之得仲父也。」一連與語三日,言無不合。遂爵為上卿,任以國政。因此秦人都稱奚為「五羖大夫」。又相傳以為穆公舉奚於牛口之下,以奚曾飼牛於楚,秦用五羖皮贖回故也。髯翁有詩云:「脫囚拜相事真奇,仲後重聞百里奚。從此西秦名顯赫,不虧身價五羊皮。」百里奚辭上卿之位,舉薦一人以自代。
목공이 부지중에 일어서서 말하기를, “과인이 정백(井伯 ; 백리해의 자)을 얻음은 제환공이 관중을 얻은 것과 같도다.” 하고, 백리해와 연 3일간을 이야기했으나 이치에 맞지 않은 말은 하나도 없었다. 마침내 벼슬을 상경으로 하여 나라의 모든 정치를 맡기려고 했다. 이런 연유로 진나라 사람들은 모두 백리해를 염소 가죽 다섯 장으로 얻었다고 해서 오고대부(五羖大夫)라고 불렀다. 또 백성들은 진목공이 소의 입 아래에서 백리해를 얻었다고 했는데, 백리해가 일찍이 초나라에서 소를 길렀고 진나라에서 염소 가죽 다섯 장으로 속죄하여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죄수를 빼 와서 재상으로 삼은 일은 참으로 드문 일인데, 관중에 이어 다시 백리해가 있었음을 들었네! 이로부터 서쪽 진(秦)나라의 이름이 크게 빛났으니, 몸값이 불과 염소 가죽 다섯 장인 백리해 덕택이라.” 했다. 백리해는 상경의 지위를 사양하고, 한 사람을 천거하여 자기의 자리를 대신하도록 했다.
不知所舉何人,且聽下回分解。
천거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네. 다음 회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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