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 09:30~
관옥나무자료모임 / 풍경소리방
구정/언연/향원/자허
향원이 마법의 녹색가루를 넣은 뭔가?를 줍니다. 숟가락도 줍니다.
한숟갈 뜨니 덩어리같이 생긴 것이 올라옵니다. 입속으로 쏙 넣었더니 달달합니다.
싹싹!
맛좋습니다.
한주살이를 자유로이 나누어요.
오늘은 [사서일기] 2장 갈등관리
주제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읽는 동안 아프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했어요.
읽어갈수록 앨리는 도서관보살입니다.
2장을 읽는데 [관옥나무도서관의 길]이 내내 생각났지요.
‘병든 몸과 마음이 치유받고 날마다 영적 성숙을 이루는 곳간이길 기도합니다.’
‘상처받은 치유자’
‘갈등관리’이 말을 다른 말로 쓴다면 어떤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아무튼 다른 말이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자, 이번 장도 밑줄긋기!
-좋아요. 헤더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혼자 일한다는 것은 내 임의대로 도서관을 관리할 자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 일은 명상을 하듯 머리를 비우기에 안성맞춤이었고, 나는 그 단순 반복 작업에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게 혼자 일하는 것에는 자유와 함께 단점도 있었고, 그 단점은 처음엔 사소한 말썽이었다가 이내 내가 도서관에 대해 가졌던 모든 책임감과 포부를 집어삼키는 압도적 골짓덩이가 되었다.
-혼자서 일한다는 것은 유사시에 주위의 도움을 받지 못하며 무방비 상태임을 의미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도서관이라 함은 말 그대로였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노출되어 있었다.
-사람보다 냄새가 먼저 도착했다.
-신입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곳의 직원이었다. 이건 내 일이었다. 나는 데스크 담당자이자 책 마법사였다. 나는 모든 사람의 도무미였다.
-“근데 내가 아직 이걸 한 번도 못 봐서”
-“그만!”
-“그만해, 안돼! 도서관에서는 안돼! 여기서 당장 꺼져! 나가! 경찰을 부를 거야!”
-군중은 예측할 수 없는 짐승이다. 절대 등을 보이지 말 것. 폭력에는 눈이 달리지 않았고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른다. 만반의 대비를 할 것.
-문서화된 기록을 남길 것.
-하루 종일 의자가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순간을 강박적으로 재생하고 있던 터라.
-‘진성’ 독자들과 교류하며 조금씩 도서관 공간을 재조직하는 즐거움 덕분에 정말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쇄신 중인 콜뮤어도서관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이 무료 서비스만은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걸까?
-리사
-아이리스
-“여러분은 모두 직장에서 충돌을 겪거나 목격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렇죠?”
-여러분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폐쇄적, 거리감, 담벼락, 접근불가
-개방적, 다가가기 쉬움, 상냥함
-대인관계에 필요한 거리에 관한 얘기
-자폐스팩트럼장애
-자신의 본능적 감을 믿으세요.
-공격을 못하게 방해하는 자세와 갈등의 부채꼴, 목소리의 변화, 목덜미를 긁는 행동에 대해서는 그의 말이 옳았다.
-상황이라. 점점 막나가다 물리적 폭력으로 치달은 사건사고들......
-“우리 도서관은 CCTV를 설치할 겁니다.”
-“자기방어!”
역시 앨리의 이야기는 질문을 던집니다.
콜뮤어도서관이 아닌 관옥나무도서관은 어떤 상황속에 있는가?
앨리가 도서관에서 움직이는 그것과 같은, 또는 비슷한 업무를 수행할 때 나는 어떤가?
도서관 사서의 전문성을 다른 말로 하면 관옥나무보살행일터인데(실무를 포함하여), 어떻게 나는 하고 있는가?
나는 대인관계를 맺을 때 얼만큼 거리를 가지는가?
앨리가 말하는 갈등관리교육이 이곳에서는 불필요한가? 하고 있다면 어떤 걸까?
서로 밑줄그은 부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서구사회에서는 도서관을 개인(민간단체)이 열어 운영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개인이 왜?'라는 질문은 언젠가 유럽의 사서한테 받은 적이 있어요. 도서관은 당연히 '공공'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거죠. 가까운 일본은 '가정문고'나 '도쿄어린이도서관' 같은 민간이 설립하여 운영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국가나 지자체, 공공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기본인데도 개인이나 민간단체들이 도서관을 설립하여 운영할때는 저마다 품은 뜻이 있게 마련이겠지요.
우리도 학교너머, 온마을이 함께 어울려 배울 수 있는 마을도서관을 지향하며, 2013년 교실 세칸을 하나로 연결하여 문을 연 이래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하면서 10여년을 보내고 있지요. 그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관옥나무도서관 백번만남>으로 '보살', '관옥나무도서관의 길'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관옥나무도서관은 도서관옷을 입고 있으니 그에 걸맞는 형식과 틀을 갖추어야 합니다. 느슨하지만 자발적인, 엉성하지만 세심한 자유로움이 살아 움직이는, 친절한 '공공도서관'의 옷을 차려입어야 합니다. '공공성', '공공'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共과 空의 조화, 조율을 관옥나무도서관에서 실험하고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 제게는 있습니다.
10년을 지나오는 동안, 다시 도서관의 本을 말하고 있잖아요? 여기에는 사람과 공간과 자료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사서일기]를 쓴 앨리한테서 보게 되는 도서관 사람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앨리는 도서관업무로 인한 심리상담, '갈등관리교육'을 받아요. 불안과 두려움속에서도 앨리는 도서관에 있는 즐거움을 찾는 사람입니다. 재조직가입니다.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올려집니다.
관세음보살 관옥나무보살 하면서 노래를 부르면 살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다시금 앨리를 보면 관옥나무보살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연결되기를 원합니다. 이야기와 책과 사람으로 연결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꿉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