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조가의 집이 번창하려고? 조상의 음덕을 입으려고?…… 하지만 꾸어 온 조상은 자기네 자손부터 돕는답디다…….”
상훈이는 불끈하여 소리를 높이며 또 무슨 말을 이으려다가 마루 끝에서 영감님의 기침 소리가 나는 바람에 좌우 방 안은 괴괴하여졌다.
“왜들 떠드니?”
화를 참는 못마땅한 강강한 목소리와 함께 건넌방 문이 확 열린다. 방 안의 젊은 애들은 우중우중 일어서며 상훈이는 윗목으로 내려섰다.
방 안에서는 더운 김이 서린 담배 연기가 뭉긋뭉긋 흘러나온다.
“이게 굴뚝 속이지, 젊은것들이 무슨 담배를 이렇게 피우며 주책없는 소리들만 씨부렁대는 거냐?”
영감은 방 안을 들어서며 우선 나무라 놓고 아랫목으로 가서 앉으며 자기의 발끈한 성미를 속으로 간정하려는 듯이 목소리를 가라앉혀서,
“어서들 앉아라.” / 하고 무슨 잔소리를 꺼내려는지 판을 차린다. 영감은 제청을 다 배설해 놓고 시간을 기다리느라고 사랑으로 나오다가 종형제 간의 말다툼을 가만히 듣고 섰다가 참을 수 없어 뛰어든 것이다.
“너 어째 왔니? 오늘은 예배당에 안 가는 날이냐?”
영감은 얼굴이 발끈 취해 올라오며 윗목에 숙이고 섰는 아들을 쏘아본다.
“어서 가거라! 여기는 너 올 데가 아니야! 이 자식아! 나이 오십 줄에 든 놈이 철딱서니가 없이 무어 어쩌고 어째? 조상을 꾸어 왔어? 꾸어 온 조상은 자기네 자손만 도와?…… 배우지 못한 자식!…….”
영감은 금세로 숨이 넘어가려는 사람처럼 헐떡거리며 벌건 목에 푸른 힘줄이 벌렁거린다. 상훈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한구석에 섰다.
“너두 내가 낳아 놓은 자식이면야 사람이겠구나? 부모의 혈육을 타고났으면 조상은 알겠구나? 가사 젊은 애들이 주책없는 소리를 하더라도 꾸짖고 가르쳐야 할 것이 되레 철부지만도 못한 소리를 텅텅 하니 이게 집안이 되려고 이러는 거란 말이냐? 안 되려고 이러는 거란 말이냐?”
여기서 영감은 숨을 잠깐 돌리고 나서 다시 목청을 돋운다.
“이 집안에서 나만 눈을 감아 보아라! 집안 꼴이 무에 되나? 가거라! 썩썩 나가거라! 조상을 꾸어 왔다니 너는 네 아비도 꾸어 왔겠구나? 꾸어 온 아비면야 조금도 네게는 도울 게 없을 게다! 다시는 내 눈앞에 뜨일 생각도 마라!”
오른손에 든 장죽을 격검대 모양으로 들었다 놓았다 내밀었다 들이켰다 하며 펄펄 뛴다.
<중략>
“아버지께서는 너무 심한 말씀을 하십니다마는 어쨌든 세상에 좀 할 일이 많습니까. 교육 사업, 도서관 사업, 그 외 지금 조선어 자전 편찬하는 데…….”
상훈이는 조심도 하려니와 기를 눅이어서 차근차근히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할 말을 다 하겠다는 듯이 말을 이어 나가려니까 또 벼락이 내린다.
“듣기 싫다! 누가 네게 그따위 설교를 듣자던? 어서 가거라.”
“하여간에 말씀입니다. 지난 일은 어쨌든 지금 이 판에 별안간 치산이란 당한 일입니까. 치산만 한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서원을 짓고 유생들을 몰아다 놓으시렵니까? 돈도 돈이거니와 지금 시대에 당한 일입니까?”
상훈이는 아까보다 좀 어기를 높여서 반대를 하였다.
“잔소리 마라! 그놈 나가라니까 점점 더하고 섰구나. ⓐ내가 무얼하든 네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야. 내가 죽으면 동전 한 닢이라도 너를 남겨 줄 줄 아니! 너는 이후 아무리 굶어 죽는다 하여도 한 푼 없다. 너는 없는 셈만 칠 것이니까…… 너희들도 다 들어 두어라.” / 하고 좌중을 돌려다 보며 말을 잇는다.
“내 재산이라야 얼마 있는 게 아니다마는 반은 덕기에게 물려줄 것이요, 그 나머지로는 내가 쓰고 싶은 데 쓰다 남으면 공평히 나누어 주고 갈 테다. 공증인을 세우든 변호사를 불러 대든 하여 뒤를 깡그러뜨려 놓을 것이니까 너는 인제는 남 된 셈만 쳐라. 내가 죽으면 네가 머리를 풀 테냐, 거상을 입을 테냐?”
[A][영감은 사실 땅문서도 차츰차츰 덕기의 명의로 바꾸어 놓아 가는 판이요, 반은 자기가 쓰다가 남겨서 수원집과 막내딸의 명의로 물려줄 생각이다. 만일에 십오 년 더 사는 동안에 아들 하나를 더 본다면 물론 그 아들을 위하여 반은 물려줄 요량도 하고 있는 터이다.
이때까지 술에 취하면 주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기도 많이 하였지만 오늘은 친기라 하여 술 한 잔 안 자신이 영감이 맑은 정신으로 여러 젊은 애들 앞에서 떠들어 놓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야 이 방중은 고사하고 이 집안 속에서 자기편 을 들어줄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상훈 이는 새삼스러이 고독을 느끼고 모든 사람이 야속하였다.]
- 염상섭,「삼대」
04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다가올 사건에 대한 다양한 예측을 제시하고 있다.
② 빠른 장면 전환으로 긴박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③ 다양한 인물들의 경험을 삽화 형식으로 나열하고 있다.
④ 사건을 사실적으로 제시하며 단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⑤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 관계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05 [A]의 기능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내용상의 기능 |
자신의 재산 관리에 대한 영감의 계획이 드러난다. ① |
집안에서 상훈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드러난다.② |
영감이 상훈에 대해 깊은 불신을 품고 있음이 드러난다 ③ |
표현상의 기능 |
유사한 상황을 연속적으로 제시하여 앞으로 일어 날 일을 암시하고 있다. ④ |
각 인물의 입장에서 서술하여 인물의 내면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⑤ |
06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ㄱ. 염상섭의「삼대」에는 후손들의 안위를 생각해 조상을 잘 모시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제사 지내는 일을 거부하는 기독교적 가치관의 충돌이 드러난다.
ㄴ.「삼대」의 조의관(영감)과 조상훈이 보여 주는 생각과 행동은 전통적인 봉건 사회로부터 근대적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해 가는 당시 사회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① ㄱ: 조상을 중시하는 ‘조의관’은 예배당에 다니며 제사를 소홀히 하는 ‘조상훈’이 인간의 도리를 제대로 못한다고 여기고 있군.
② ㄱ: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닌 ‘조의관’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지닌 ‘조상훈’으로 인해 집안에 혼란이 생기는 것을 경계하고 있군.
③ ㄱ: 조상을 꾸어 왔다는 말에 ‘조의관’이 분노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훼손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로군.
④ ㄴ: ‘조상훈’이 주장하는 교육 사업, 도서관 사업, 조선어 자전 편찬 등은 당시 사회의 근대화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군.
⑤ ㄴ: 돈의 쓰임에 대한 ‘조의관’과 ‘조상훈’의 입장 차이는 당시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해 가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군.
07 ⓐ를 바꾸어 쓰기에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마라.
②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굴지 마라.
③ 나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여기지 마라.
④ 빈대 잡으려다 초가집 태우는 짓 하지 마라.
⑤ 자라 보고 놀랐다고 솥뚜껑 보고 놀라지 마라.
도움자료
[2014 EBS N제]-(A형)
04~07
04 ⑤ 05 ④ 06 ③ 07 ①
염상섭,「삼대」
이 작품은 1930년대 서울의 중산층인 조씨 집안을 배경으로 하여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 3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치관의 충돌과 인물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보수와 개화로 대립되는 세대 간의 갈등과 식민지 현실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는 이념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당대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타락 한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시대착오적이고 위선적인 삶에 대한 비판을 드러냄과 동시에 덕기 등 젊은 세대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세대 간 가치 차이에 따른 조의관과 조상훈의 갈등
유학생 덕기는 방학을 맞아 귀향하여 친구 병화 등과 어울린다. 덕기는 조부 조의관과 조부의 새 부인인 수원댁, 그리고 부친 조상훈 등의 관계를 통해 집안의 갈등을 느끼게 된다. 조부 조의관이 병환으로 위독해지자 새 조모인 수원댁은 모략을 꾸미고 결국 조의관은 사망한다. 조부 사망 이후 재산 문제 등을 둘러싸고 집 안의 갈등이 심화되는 중에 덕기와 주변 사람들은 사회주의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다. 덕기는 무혐의로 풀려나긴 하지만 조부가 없는 조씨 가문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 망연해한다.
04 서술상의 특징 파악 ⑤
이 글에는 영감과 상훈의 첨예한 대립이 드러나고 있다. 영감이 족보를 산 일에 대해 불만스러워하는 상훈과, 그런 아들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영감의 대립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고 있다.
05 작품의 내용 파악 ④
[A]의 첫 문단은 영감의 입장에서, 둘째 문단은 상훈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제시된 부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부분의 진술에 유사한 상황이 연속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로 인해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암시되고 있다는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① 첫 번째 문단의 내용을 통해 영감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② 집안에서 상훈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③ 영감이 상훈에게 재산을 전혀 물려주지 않을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⑤ 영감과 상훈의 각각의 입장에서 서술함으로써 인물의 내면 심리를 더욱 잘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06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③
‘조상을 꾸어 왔다’는 조상훈의 말에 조의관은 분노하고 있지만, 이를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전통적 가치관의 훼손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조의관은 조상훈에 대해서만 못마땅해할 뿐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① 조의관은 예배당을 가느라 제사를 소홀히 하는 조상훈이 인간의 기본 도리를 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다.
② 조의관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지닌 조상훈이 제사를 지내지 않음으로써 집안에 혼란이 생길 것이라 여기고 있고, 이로 인해 조상훈을 자식으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④ 조상훈이 말하는 여러 사업들은 근대화의 분위기를 보여 주는 사업들이다.
⑤ 돈의 쓰임에 대해 갈등하는 조의관과 조상훈을 통해, 당시 사회가 근대적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07 구절의 의미 파악 ①
‘내가 무얼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야.’라는 말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자신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을 할 경우에 쓰는 말인, ‘(남의 일에)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마라.’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② 견문이 좁아 넓은 세상의 사정을 모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③ 여럿이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 혼자 묵묵히 앉아 있는 사람을 비유 하는 말이다.
④ 손해를 크게 볼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마땅치 아니 한 것을 없애려고 그저 덤비기만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다.
⑤ 어떤 사물에 한 번 놀란 사람은 비슷한 사물만 보아도 놀란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