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정동자구화래(丙丁童子求火來)
불이 불을 구하다.
중국 선종(禪宗)은 당(唐) 나라때 황금기(黃金期)였다. 육조(六祖) 육조혜능대사(慧能大師) 문하(門下)에서 청원(靑原)과 남악(南嶽) 두 걸승(傑僧)이 나와서 조동종(曹洞宗) 임제종(臨濟宗), 위앙종(潙仰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 오종(五宗)이 나오고, 송조(宋朝)에 이르러서 임제종(臨濟宗) 문하(門)에서 양기파(楊岐派)와 황룡파(黃龍派)로 갈라져서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그 중에 법안종(法眼宗)의 종조(宗祖)가 되는 분이 법명(法名)이 문익선사(文益禪)이고 시호(諡號)가 법안선사(法眼禪師)이다. 문익법안(文益法眼) 선사는 선교(禪敎) 학덕(學德)까지 겸비한 선사(禪師)이다. 법안선사는 오랫동안 청량사(淸凉寺)에 머물면서 500대중(大衆)의 선지식(善知識)이 되어서 종풍(宗風)을 날리고 있었다. 선사의 회중에 보은현측(報恩玄則)이라는 선객(禪客)이 머물고 있었다. 현측은 청량사 오기전에 제방(諸方) 선지식들은 다 참방(參榜)하고 나름대로 견처(見處)가 있다고 자신하고 3년간을 회중에 살림살이를 맡고 있으면서도 법안선사(法眼禪師)에게 법(法)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를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법안선사(法眼禪師)께서 현측(玄則)을 조실 방으로 불렀다. 그대는 일찍이 어떤 사람을 보고 왔는가? 청봉(靑峯) 화상을 보고 왔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 저가 일찍이 묻기를 무엇이 학인의 자신입니까? 라고 물었더니, 청봉화상(靑峯和尙)이 말씀하시기를 병정동자(丙丁童子)가 불을 구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상좌는 어떻게 이해하셨는가? 병정은 불에 속하니, 불을 가지고 불을 구하는 것은 자기를 가지고 자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법안선사가 말씀하시되 그것은 생각으로 아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으로 아는 것이다. 그대는 불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만 알고 나에게 오지 않았다면 오늘 어지러운 번민이 일어났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현측(玄則)은 자기가 깨달았다고 여겼는데 법안선사는 깨친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을 듣고 화가 머리까지 치밀어 올라 따졌지만, 선지식이 자기 견처를 인가 인정을 해 주지 아니해서 걸망을 지고 일주문 밖으로 나왔다.
한참 걷다가 보은 화상이 되돌아가다가 문득 생각하였다. 저분은 5백 명을 거느린 선지식이다. 나를 옳지 않다고 하였으니, 반드시 훌륭한 점이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돌아와서 참회하고 곧 물었다. 무엇이 학인의 자기 자신입니까? 법안 선사가 말하였다. 병정동자가 와서 불을 구하는구나!(報恩則和尙 因法眼問 曾見什麽人來 曰見靑峯和尙來 眼曰有甚麽言句 曰某甲 曾問 如何是學人自己 峯曰丙丁童子來求火 眼曰上座 作麽生會 曰丙丁屬火 將火求火 將自己求自己 師云 情知 你不會佛法 若如此不到 今日 則躁悶 便起 至中路 却云 他是五百人善知識 道我不是 必有長處 却回懺謝 便問 如何是學人自己 師云 丙丁童子來求火 則於言下 豁然大悟) 직지심경(直指心經)72에 나오는 선문답(禪問)이다. 선방에는 이런 선화가 아주 많다. 해오(解悟)의 견처경지(見處境地)를 증오체득(證悟體得)의 경지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법안 선사가 그 점을 간파(看破) 하시고 그대는 생각으로 아는 지해료사(知解了師) 불시한(不是漢)이라고 내쳤다. 나름대로 깨쳤다고 잘못 알고 3년을 한솥밥을 먹고 수행 하면서도 법에 대해서 묻지 않는 어리석음을 일깨워준 선화(禪話)다. 법안선사와 현측선사가 묻고 답한 것은 똑 같은 말을 반복했을 뿐이다. 그러나 똑 같은 말이어도 이 선화에서는 해오(解悟) 증오(證悟)의 차이가 있다. 이것을 가려내는 안목(眼目)은 수행자의 각자의 몫이다. 불교 수행은 자내증(自內證)에 있음을 밝혀놓은 선화가 병정동자가 불을 구한다이다. *병정동자(丙丁童子)는 사찰(寺刹) 소임중에 석등(石燈)에 불을 켜는 동자를 이른 말이다.